[시사뉴스피플=이남진 기자] 최근 ‘깔창 생리대’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여자 아이가 가격이 비싼 생리대를 살 수 없어 신발 깔창에 신문지와 휴지를 감싸 생리대 대용으로 사용한다는 내용이다. 비위생적인 것은 물론 건강마저 위험에 노출된 여학생의 사연에 대해 여론이 들끓었다.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가 이슈화됐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국내 생리대 시장 55%를 점유하는 유한킴벌리가 2010년부터 3년 주기로 생리대를 가장 많이 쓰는 여름철 직전 가격을 인상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폭로했다. 독과점 구조에서의 우리나라 생리대 가격은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수준이 됐다는 지적이다. 여성의 생활필수품인 생리대를 시장논리에만 맡길 수 없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나친 고급화 전략과 이미지 마케팅 등으로 비정상적으로 비싸진 생리대. ‘깔창 생리대’ 사태를 통해 우리의 현주소를 짚어봤다.(본기사는 월간 뉴스피플 11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천정부지 가격에 ‘대용품’ 찾는 소녀들

“신문지를 엄청 두껍게 싼 다음에 속옷에 끼워 넣다시피 했고, 양 많은 날에는 휴지 말고 생리대로 한 다음에 양이 적어지면 그때는 휴지로 바꾼다.” 자주 교체해야 하는 생리대를 살 돈이 부족해 남모를 어려움을 겪은 여중생 강 모양의 말이다.

최근 ‘깔창 생리대’ 논란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생리대 시장 점유율 1위 기업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 인상을 발표한 시점과 맞물리면서 이 논란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논란의 발단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초등학교 고학년 여학생이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을 대용품으로 사용했다”는 글이 오르면서다.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신문지, 휴지, 심지어 신발 깔창까지 대용품으로 사용한다는 저소득층 청소년의 기막힌 사연이 전해지면서 ‘깔창 생리대’ 논란은 일파만파 확산됐다. 뒤이어 인터넷에는 각자의 사연을 담은 충격적이면서도 가슴을 짠한 글들이 줄지어 올라왔다.

“생리대를 오래 사용하면 냄새나고 건강에 안 좋아 2~3시간마다 꼭 교체해야 한다고 교육 받는 데 누구에겐 힘든 일일 수 있다.” “한 학생이 생리하는 일주일 내내 결석하고 수건 깔고 누워있는데, 선생님이 문병 가셨다가 생리대 살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돼 제자랑 엄청 울었다고 한다.” 저마다 생리대에 얽힌 사연들은 트위터에서 수천 회가 넘게 리트윗되면서 확산됐다. 네티즌들은 “21세기 대한민국에 이런 일이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청소년 시기에 소녀들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라는 등 마치 자신의 일인 듯 관심을 보였다.

급기야 지난 10월1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최규복 유한킴벌리 사장이 국감장에 소환됐다. 최근 ‘깔창 생리대’ 논란을 의식한 듯 생리대 가격 인상 논란과 관련해 따가운 질문이 쏟아졌다.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낸 최 사장은 연신 물을 찾으며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역시 ‘가격 폭등’이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대리점으로부터 입수한 내부 자료에 따르면 유한킴벌리는 생리대 제품에 3년 주기로 큰 폭의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2010년, 2013년, 2016년 각각 5%, 20%, 7%의 평균 인상률을 기록했다. 특히 2013년 ‘화이트 슬림 소형 30’ 제품은 패드 당 단가가 3420원에서 6030원으로 최대 59%나 뛰었다. 이에 따라 ‘깔창생리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비자 부담이 가중됐다는 게 심상정 의원의 지적이다.

 

최규복 사장의 대응은 의외였다. 제품 가격 인상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 확인도 안한 것처럼 보였다. 최 사장은 “여기 오면서 2013년에 있었던 59% 인상에 대해 들었다”며 “가격인상을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2013년에 있었던 59%의 가격 인상은 전 제품이 아닌 일부 제품에 대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해당 제품은 2013년 ‘화이트 시크릿홀 와이드&롱’이란 신제품으로 나왔으며 소재 및 기능이 기존과 달라 제품가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유한킴벌리는 올해 5월 신제품 가격을 인상하면서 기존 ‘좋은느낌 코덱스 오버나이트’ 2종의 가격도 특별한 사유 없이 대폭 인상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20%가 넘는 ‘가격폭등’에 여론의 반발이 심상치 않게 일어나면서 물러섰다. 최규복 사장은 “해당 제품은 수년 동안 가격 인상을 못해 인상안이 논의됐다”며 “보고를 받자마자 바로 취소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사장의 해명과 달리 해당 제품 2종은 2013년 이미 한 차례 가격 상승이 있었다. 각각 17.5%, 18%로 큰 폭의 인상이 이뤄진 제품이다. 위증이란 지적이 빗발치자 최 사장은 “미처 파악을 못했다”며 꼬리를 내렸다.

유한킴벌리는 지난해 1조5000억원의 매출에 14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배당성향은 93.7%에 달하며 매출이익률은 34.8%에 이른다. 이런 기업이 제품의 가격을 지속적으로 올리며 소비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셈이다. 가격 인상에 대해 최 사장은 “원가절감과 제품 혁신을 통해 좋은 제품을 합리적 가격에 공급할 것”이라는 대응으로 일관했다.

시장논리에 비싸진 ‘필수품’ 생리대

최 사장의 답변은 생리대 가격이 오른 것은 ‘기술향상’에 따른 비용이란 것이다. 마치 ‘시장논리’에 따라 기업이윤을 추구하는 뉘앙스마저 풍긴다. 그러나 매월 여성에게 생리대는 필수품이다. 최근 일회용 생리대부터 빨아 쓰는 면생리대, 한방제품의 생리대까지 소비자들을 겨냥한 다양한 생리대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가격대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비싼 생리대를 구입하지 못해 쩔쩔매는 저소득층 소녀들은 접근하기조차 힘들다. 심지어 비위생적 환경에 노출돼 있다. 국내 저소득층 가정 여학생은 약 10만명으로 추정된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거나 한 부모 가정에서 성장하는 소녀들은 비싼 생리대 구입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 자존감과 정체성에도 크나큰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노지은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수석연구원은 ‘생리대 가격 거품 논란’에 대해 “기업이 생리대를 ‘사치품’으로 인식하고 마케팅에 치중하며 가격을 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흡수율 강화, 향기 첨가 등 제품을 고급화한다며 지나치게 생리대 가격을 올려 거품이 생겼다”며 “시장논리로 접근하면서 여성들은 오히려 접근조차 못해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해외 제품과 비교할 때도 우리나라 생리대 가격은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독과점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가격인상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생리대의 개당 가격은 평균적으로 한국이 331원, 일본과 미국이 181원, 프랑스 218원, 덴마크 156원 등으로 집계된다. 약 5000억원 규모인 국내 생리대 시장에서 점유율은 유한킴벌리가 57%로 가장 높고, 이어 LG유니참(21%), 깨끗한 나라(9%), 한국P&G(8%)순이다. 시장 지배적 위치에서 가격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상황에서 횡포에 가까운 가격인상을 단행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급화’ 전략으로 생리대 값, 세계 최고수준

이 같은 상황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생리대 값 거품’ 논란을 빚고 있는 유한킴벌리 등 생리대 제조업체를 상대로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위법 여부 검토에 나섰다. 생리대 시장의 구조를 보면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속하기 때문이다. 시장점유율 50% 이상이거나 생리대 제조3사의 시장점유율이 75% 이상이면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시장 점유율 1위, 2위 기업인 유한킴벌리와 LG유니참의 매출총이익이 34.8%, 41.2%로 제조업보다 월등히 높은 걸 봐도 시장 구조가 왜곡될 수 있는 상황이다. 동종업종인 펄프, 종이, 종이제품 업종과 비교해도 매출총이익, 영업이익 등에서 2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통 구조에 따른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온라인과 편의점이 최대 4배 넘게 차이가 나는 제품도 있을 정도다. 결국 정가에 구매하는 소비자가 억울할 수 있는 상황도 벌어지는 셈이다. 유통업체의 지나친 이윤추구와 생활필수품인 생리대의 가격 기준도 명확하지 않게 산정되는 상태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상황이다. 심상정 의원은 “독과점 가격에 의해 소비자 후생이 축소되는 폐해가 있다면 시장 경쟁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깔창 생리대’의 배후에 있는 독과점 기업의 행포와 이에 더해 유통단계에서 폭리를 취하려는 업자들이 존재한다면 심각한 문제다. 생리대 개당 가격이 외국보다 고가인데다가 펄프 등 원자재 가격이 하락해도 생리대 가격은 올랐다는 게 심상정 의원의 지적이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현장 조사를 해서 위법성 검토를 하고 있다”며 확인했다. 공정위는 유한킴벌리 등 관련 업체에 대한 신고를 받고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금지’ 위반 여부를 검토 중이다. 상품·용역 가격의 부당한 결정·유지 또는 변경 행위, 소비자이익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 등에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공정거래법 3조)가 적용된다. 특히 상품 가격을 수급의 변동이나 공급에 필요한 비용 변동에 비해 현저하게 상승시키거나 근소하게 하락시키는 행위(시행령 5조)가 이에 해당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지 조사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며 “일차적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게 목적이고, 다음으로 법 저촉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전했다.

‘가난 인증서’ 힐난…정부, ‘탁상행정’ 도마에

‘깔창 생리대’ 논란에 정부는 추가경정예산 가운데 30억원을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에 대한 생리대 지원예산으로 긴급 편성했다. 이에 따라 생리대 지원은 지난 10월부터 시작됐다. 중위소득의 40%이하(4인 가구 175만6570원)인 의료·생계급여 대상 가정의 11~18세 청소년 19만8000명, 지역아동센터 등의 시설 이용자 9만2000명이 지원대상이다. 이 중 9만2000명은 아동센터 등 시설을 통해 지원하고 19만8000명은 보건소를 통해 보급했다. 생리대가 필요한 청소년들은 보건소와 지역아동센터 등 복지시설을 통해 3개월 분량의 생리대를 지원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문제는 또다시 불거졌다. 보건복지부의 ‘생리대 지원 사업’이 가난한 여자 아이들을 ‘가난 인증서’로 낙인을 찍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보건복지부가 생리대 지원 대상자들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보건복지부가 각 지자체에 ‘생리대 지원 대상자인 청소년들이 보건소나 아동복지시설을 직접 방문해 생리대 지원 신청서를 작성한뒤 생리대를 받아가도록 지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지침에 따라 3개월 치의 생리대를 지원받기 위해선 지원 대상 청소년들은 보건소를 직접 방문하고, 신청서를 작성한 뒤, 공무원의 동의를 받아 생리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가뜩이나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청소년들은 생리대를 받으러 가면서 또 한 번 위화감(違和感)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곳곳에서 수혜자를 배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보건복지부는 늑장 대응에 나선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보건소에 찾아가서 직접 수령하는 지침으로 사생활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며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수령할 때 본인이나 부모, 대리인도 신청할 수 있게 하고 e메일로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현장에 먼저 나서서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수혜자를 배려하는 지원을 고민해야 할 보건복지부가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보건복지부는 생리대 지원 대상을 만 11세부터 만 18세로 한정했다. 지침대로라면 생리가 빨리 시작되는 만 10세 이하 저소득층 청소년들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이에 대한 전국 지자체 관계자들의 문제제기에도 정부는 “지침을 바꿀 수 없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일각에선 복지부의 복지 사각지대 정책 자체가 부서별로 흩어져 있고, 지자체와도 협력이 필요해 제대로 된 정책이 아닌 ‘탁상행정’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토로하고 있다.

석 달 한시적 지원, ‘전시행정’ 우려

이번 ‘생리대 지원 사업’의 경우도 정부주도로 추진된 게 아니라 추경예산 집행이 끝나는 3개월 뒤에는 잠정 중단된다. 저소득 여학생들의 인권을 지켜주기 위한 사업이 아니라 단순 ‘보여주기’식의 일회용 정책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주광덕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측은 본지와 통화에서 “보건복지부 예산에 반영되기 위해 여야 의원들이 모여서 논의를 해봐야 할 문제”라고 전했다. 또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예결위 간사 측은 “생리대 지원 사업은 정부 주도로 시작된 사업이 아니다보니 예부예산안에는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정부가 편성을 안했다면 당연히 당 차원에서 반영할 생각”이라며 “가능하면 전달체계도 보완해서 프라이버시 침해가 없도록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심상정 의원 측은 “정부의 복지예산으로 비싼 가격에 생리대를 구입해서 나눠주는 것은 일시적인 정책”이라며 “기본적으로 생리대 가격이 불공정하게 올려 폭리를 취하려는 행위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생리대 가격 거품 논란은 한국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미국, 영국, 호주 등 세계 각국에서 생리대 문제를 ‘여성의 기본권’으로 인식해 국가 차원에서 생리대 구매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미국 뉴욕주(州)는 최근 생리대 등 여성의 생리 관련 제품들에 부과된 4%의 주(州) 판매세와 약 5%의 지방세를 모두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또 뉴욕시 의회는 공립학교와 노숙인쉼터, 교정시설 등에 있는 여학생, 여성들에게 생리대를 무료로 제공하는 법을 발의했다. 캐나다도 지난해 여성 위생용품에 대한 소비세 5%를 폐지했다.

우리나라는 생리대를 기본 생활필수품으로 인정해 지난 2003년부터 부과가치세 10%를 면제받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생리대는 수돗물, 연탄과 같은 수준의 부가가치세 면세 혜택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생리대 가격의 거품’에 대한 질문에 “면세로 인한 가격효과가 있지만, 원자재 가격이나 기업의 품질 개선, 원가 상승요인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여성의 생활필수품인 생리대는 공공재적 성격을 띠기 때문에 높은 생리대 가격은 여성의 건강과 모성을 해치는 사회적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노은지 수석연구원은 “기본적인 생필품인 생리대 가격과 퀄리티에 대한 정부의 감독이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다”며 “성적인 권리와 건강 서비스 혜택을 제공하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인식도 중요한 만큼 지원제도와 함께 성(性)교육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시사뉴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