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개인과 국가의 영고성쇠(榮枯盛衰)는 그 순환주기가 있다. 그러나 그 순환주기는 반드시 일정치만은 않다. 개인과 지도자의 역량에 따라 순환주기를 거스르거나 앞당길 수도 있음은 역사가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다. 여기서 개인은 차치하고 국가만을 놓고 볼 때 지도자가 선사시대처럼 하늘에서 내린다거나 땅에서 솟는다거나 하여 우연에 의해 국가의 흥망이 나뉘어 지지 않으니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오늘 국가의 흥망성쇠 역시 국민들의 몫이다.
윤양래 기자
1938년, 아시아에서 일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는 필리핀이었다. 1950~1960년대 필리핀은 미국의 경제지원을 바탕으로 ‘제2의 일본’으로 불리는 아시아의 용이었다. 1958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 안팎이었다. 아시아의 부자 나라 필리핀은 우리나라의 두 배 가까운 191달러였다. 아시아의 선진국 필리핀의 흔적은 아직도 수도 서울에 당당히 버티고 있다. 1963년 2월 1일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체육관인 장충체육관은 당시 필리핀 기업에 의해 최첨단 공법으로 지어졌다. 당시 우리나나에서는 돔 방식으로 지붕을 만들만한 건설회사가 없었다. 광화문에 있는 문화관광부와 주한 미국 대사관 건물도 건설은 우리나라 대림산업이 했지만 감리는 필리핀 회사가 했다. 그리고 동남아의 또 다른 다른 다크호스는 미얀마(당시 버어마)였다. 1954년 세계은행(World Bank)이 아시아에서 가장 경제 전망이 좋은 나라로 꼽은 국가가 바로 미얀마였다. 불행히도 두 나라 모두 오늘날 아시아에서 빈곤국가의 하나로 떨어지고 말았다. 당시 아시아의 4용(龍)들은 어땠을까?(이들 국가중 홍콩은 중국에 반환되었으므로 제외) 4용 중 대만만이 유일하게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공산 정권에 밀려 대만으로 간 국민당 정부는 1948~54년 연평균 12%의 경제성장을 이뤘다. 한국과 홍콩·싱가포르는 어땠을까? 이제 겨우 휴전협정을 마치고 폐허 상태나 다름없던 한국은 당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1.3%)을 기록해 최하위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식민지 상태였던 탓에 아예 보고서 작성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여기서 필리핀과 미얀마가 도저히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와 잘 나가던 대만이 갈팡질팡하는 원인을 살펴 본 후 싱가포르의 약진을 통해 중국과 인도의 열풍에 맞설 수 있는 우리나라의 길을 모색해 본다.
전근대적인 봉건국가 필리핀
무당이 수도를 바꾼 나라 미얀마
한반도 전체의 3배에 해당하는 미얀마의 광활한 국토는 티크, 원유, 천연가스에서 금, 제이드, 루비 등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지하자원의 보고이다. 1960년대 초 버마는 경제적으로 한국보다 부유한 국가였고 국제적으로도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었으며 축구도 한국만큼 잘했다. 1961년부터 10년간 UN 사무총장을 지낸 우 탄트도 버마인이고 아시아축구 최고의 스트라이커 윈몽도 버마인이다. 1962년에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서서 1988년까지 소위‘버마식 사회주의’체제를 표방하고 사회복지정책에 중점을 둔 정책을 추진하여 경제는 발전하지 못하였다. 일례가 대일청구권배상금의 상당부분을 한국에서는 대부분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소양강댐 등 사회기간시설의 건설에 배정하였지만 미얀마의 경우에는 상당 부분 복지정책에 할애하였다. 경제는 성장하지 못하였으나 농업생산량이 자급자족을 하기에는 충분하여 큰 문제는 없었다. 1988년 이후 또 다른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서고 자본주의체제를 표방하였으나 경제는 아직까지 제자리 걸음이다. 1990년 총선거에서 아웅산수지 여사가 이끄는 정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하였으나 군사정권이 권력이양을 거부하고 아웅산수지를 가택연금한 사건에서 시작된 미국에 의한 경제제재와 2003년에 미얀마로의 송금금지조치로 인해 서구자본이 유입이 되지 않아 산업발전을 위한 자금 마련에 제약을 받고 있다. 일본, 중국, 한국 등과 교역하고 있으나 규모가 크지 않은 실정이다. 이러한 형편임에도 지난 2005년, 느닷없이 수도를 양곤에서 북쪽으로 320km 떨어진 중부 삔마나(Pyinmanar)로 옮겼다. 당시의 대변인인 쪼산 장군은“현 상황이 변화하고 미얀마가 좀더 발전하려면 수도는 미얀마 국토의 중앙지점에 위치하여야 한다”면서“수도 이전은 국경 지역을 포함한 국가 전체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조치이다.”라고 했다. 삔마나로의 수도 이전 계획은 2004년 말부터 소문으로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5년 10월 들어서 삔마나의 신도시 건설사업이 자금압박으로 인해 지지부진하고 여러 가지 공사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2008년 이후로 연기될 것이라는 소문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던 것이 2005년 11월 4일 갑자기 각 부처의 일부 공무원들에게 삔마나로의 이전 명령이 내려왔고, 5일부터 정부부처의 대규모 이전작업이 실시되었다.
한 나라의 수도 이전이라는 엄청난 대역사가 군사작전처럼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이에 따라 현재 미얀마의 많은 공무원들이 주택이나 기반시설이 전혀 없는 삔마나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이사를 했다(당시 명령을 거부한 공무원 또는 사직서를 낸 공무원들은 재판에 회부할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미얀마 행정수도 이전조치에 대해 정부의 발표가 있었지만, 그와 별도로 진짜 행정수도 이전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구구한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그중 가장 설득력이 있는‘설’은 미국의 미얀마 침공에 대한 미얀마정부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는 설이다. 몇 년 전부터 삔마나 인근지역에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군사시설이 건설 중이며 미국의 공격에 대한 방어가 목적이라는 말이 돌았었다. 이 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삔마나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군이 주둔했고 그 후 중국 국민당 잔당과 아웅산 장군의 독립투쟁 거점이었다. 미얀마가 최근 몇 년 사이 러시아나 인도, 중국, 우크라이나 등으로부터 대량으로 전투기나 장갑차 등의 무기를 구입하여 군 현대화를 도모하고 있으며, 병력도 40만명 규모로 증강을 진행해 왔다는 것도 이 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다. 즉,‘미국의 이라크’공격 이후 현 정부의 책임자들은 자신들도 미국의 공격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바다와 인접한 양곤은 바다에서의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지로서 산간의 중부지역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이와는 달리 점성술과 미신에 의해 수도를 멀쩡한 양곤을 놔두고 삔마나로 옮긴다는 설도 있다. 미얀마는 점성술 등을 다루는 국가기관이 있는데, 그곳에서 수도로서 양곤보다는 삔마나가 길지(吉地)라는 의견을 받아들여 수도를 옮긴다는 것이다. 미얀마는 왕조시대부터 국가 대사를 점성술 등에 근거하여 행해왔다. 근대에 들어 미얀마의 독립선포일도 점성술에 따라 1월 4일로 정해졌다. 철권통치를 행한 네윈(Nay win)의 경우 자신의 행운 숫자인‘9’자를 내세우기 위해 십진법을 무시한 45짯, 90짯 화폐를 발행하기조차 했다. 현 정부의 최고지도자인 딴쉐(Than Swe) 장군 역시 자신이 고용한 개인 점술가의 말을 전폭적으로 신뢰한다고 소문이 나 있다. 미얀마 국민들도 국가 대사가 점성술 등에 좌지우지되는 이러한 일들을 당연히 받아 들이고 있다.
무능한 천수이벤
싱가포르의 위기극복
최근 세계은행이‘동아시아의 르네상스’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1993년‘동아시아의 기적’이후 13년 만에 나온 아시아 경제 종합보고서다. 세계은행은 이 보고서에서 동아시아 지역이 1997년의 금융위기를 딛고 일어나 다시 경쟁력 있고 혁신적인 경제를 창출해냈다고 평가했다. 동아시아 경제모델 복권(復權) 선언인 셈이다. 세계은행이 이 보고서를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례총회가 열린 싱가포르에서 발표한 것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싱가포르야말로‘르네상스’의 말 뜻 그대로 동아시아 경제의‘재생(再生)’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가장 생생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한국·태국·인도네시아와는 달리 외환위기를 겪지 않았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을 덮친 폭풍우에서 무사할 수는 없었다. 1998년과 2001년 두 차례나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당시 세계경제 전문가들은 중개무역으로 커온 싱가포르 경제의 태생적 한계가 드러났다고 했다. 5년 전 싱가포르는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보다 앞날이 더 어두워 보였다. 그랬던 싱가포르가 지금은 21세기 지식기반 경제의 우등생으로 불리고 있다. 미국 MIT 등 세계 최고 대학들의 분교를 유치해 6만명이 넘는 외국 유학생을 끌어들이고 있다. 의료분야도 연간 30만명의 외국 환자를 받아들일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이다. 지식기반 서비스 산업에서 싱가포르 경제의 살 길을 찾아 과감하게 문을 열고 규제를 푼 결과다. 싱가포르 교육부는 최근 학생들의 영어실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새로운 교육정책을 발표했다. 특히 말하기와 쓰기 교육에 역점을 둬 대부분의 학생들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상위 20%는 미국·영국인만큼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도록 한다고 했다. 글로벌 경제시대에 세계 어느 나라의 누구와도 경쟁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겠다는 것이다. 2004년 8.7%, 2005년 6.4%에 이어 올해는 7.5%에 이르는 높은 경제성장률은 바로 이런 노력의 결실이다.‘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고 했던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 가운데 지금은 싱가포르만 홀로 우뚝 서 있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그런데도 싱가포르 지도자들은 “경제는 이만 하면 됐다”라고 하지 않는다. 리셴룽 총리는 지난 8월 독립기념일 축제를 마감하는 행사에서“폭풍우가 다시 몰아칠 때를 대비해 여건이 좋고 태양이 빛나고 있을 때 최대한 더 빨리 더 많이 성장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덧붙여“경제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의 전제조건”이라고도 했다. 국가 지도자의 이런’경제 제일‘ ,’성장 우선‘의 철학이야말로 싱가포르 경제 재생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지도자의 경제철학과 의지가 국가의 성쇠를 좌우한다는 것을 싱가포르는 보여주고 있다.
CHINDIA 의 부상
1990년대 아시아 NICs(Newly Industrializing[industrialized] Countries)의 계속된 성공 스토리는 마침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1993년 세계은행은 ‘동아시아의 기적(East Asian Miracle)’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네 마리 용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경제성장의 성과와 원인을 분석한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에서 기적을 일으킨 것으로 거론된 국가는 일본·홍콩·한국·싱가포르·대만·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 등 8개국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단연 관심의 초점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8개국의 1인당 생산량은 1960~90년 연평균 5.5%의 성장률을 보여 남미와 남아시아 지역에 비해 3배,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서는 5배나 빠르게 성장했다. 2~3%대였던 중동이나 선진 공업국보다 성장률이 높았다. 특히 싱가포르·홍콩·대만·한국과 일본의 1인당 소득은 1960~85년 사이 동반성장했던 동남아시아에 비해서도 2배나 빠르게 증가했다. 보고서는‘성장이 무작위로 분포한다고 가정하면 고도성장이 지역적으로 집중될 확률은 약 1만 분의 1 정도’라며‘수년간 고성장한 개발도상국은 있었지만 수십 년간 고성장한 개발도상국들은 없었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세계은행은 동아시아 성공의 원인을 물적·인적 자본의 축적, 안정적 거시정책, 적절한 정부 개입 정책의 성공 등에서 찾았다. 그러나 네 마리 용의 ‘욱일승천’은 여기까지였다. 1990년대 본격적인 개혁 개방에 나선 중국의 부상에 따라 저임금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잃어 갔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때문에 2000년대 들어서는 과거 발전 모델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까지 받게 된다. 경제 활력의 저하는 투자 부진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의 급부상과 더불어 아시아 4룡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신흥국가로 인도를 빼놓을 수 없다. 이른바 BRICs 국가 중 아시아 2개국에 해당하는 이들은 이미 4용을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양국의 저력은 무서운 성장 속도에 있다. 투자 자문사인 골드먼삭스는 2003년 일찌감치 ‘2039년이 되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인도는 일본을 능가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당장 2년 뒤인 2007년 중국은 경제규모에서 독일을 따라잡고, 2015년에는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됐다. 인구 13억 명의 중국은 구매력 기준으로 이미 일본을 앞질러 세계 2위에 올라 있다. 인구 10억 명의 인도도 일본에 이어 4위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중국은 연평균 8~10%, 인도는 연평균 4~8%의 고성장을 이어 가고 있다. 지금도 투자가 활발하고 시장 개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고성장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들 두 나라는 석유기업 유코스를 공기업화해 시장 개방에 역행하는 러시아나 원자재 수출 비중이 지나치게 큰 브라질 등 경쟁국에 비해 해외 자본의 투자 매력과 안정성이 높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실현되면 양국은 세계 최대 경제권인‘23억 명의 시장’을 공유할 뿐 아니라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세계의 공장’에 비유될 만큼 제조업이 발달한 중국은 서비스 산업이 제조업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고민이다. 반면‘세계 IT의 허브’라고 할 수 있는 인도는 서비스 산업에 한참 처진 제조업 때문에 애를 태우고 있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1년 23억 달러에 불과하던 양국 교역규모는 지난해 136억 달러로 6배 늘어났다. FTA가 체결되면 항공·우주·생명과학 등 신기술과 에너지·천연자원 개발 분야의 협력도 예상된다.
그러나 위기는 경제자체가 아니라 국민에게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고성장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으로 진단했다. 아직 미국·유럽과 같은 선진국형 저성장 단계에 본격 진입하진 않았지만 빠른 속도로 근접해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경제가 활력을 잃어가는 요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경제정책 방향의 불확실성,정부 규제, 노사분규, 고유가, 제조업의 해외 탈출 등을 주로 꼽았다. 대통령의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도력과, 관리에 실패한 정치불안이 경제성장과 외자 유치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주요한 이유들이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금융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과감한 개방과 정부규제 완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10년 후 아시아 경제를 주도할 3개국으론 중국, 일본, 인도를 가장 많이 꼽았는데 이 중 일본과 중국은 확실하고 나머지 한자리를 놓고 한국과 인도가 경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만일 한국이 하이테크·자동화 분야에서 잘 하면 인도를 제치고 10년 후 아시아 경제에서 3강(强)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은 중국이 할 수 없는 것 즉 연구개발과 혁신을 통해 고부가 가치산업 육성에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 위기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표현에 ‘너트 크래커’(nut cracker)라는 말이 있다. 한국을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인 ‘호두까기 인형’같은 존재로 설명한 것이다. 앞서가는 일본과 뒤쫓아오는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임금경쟁력, 기술경쟁력을 모두 상실한 채 결국 남미형 경제와 같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비관적 예측을 하면서 원용된 표현이다. IMF외환위기 직전에 한 컨설팅 회사가 처음 사용한 이 표현은 지난 10년 동안이나 회자돼 왔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일본과 중국경제에 끼인 ‘너트 크래커’ 신세라면 지난 10년 동안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시장에 보여준 그 뜨거운 관심과 엄청난 주식 매수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난 10년 동안 세계 일류 회사로 발돋움한 삼성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 등의 성공 사례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일본과 중국에 끼인 존재가 아니라 일본·중국 시장을 잘 활용하고 절묘한 분업을 이루면서 사상 최대의 기업 수익이 보여주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경기 전망이 어두워진다면 한국경제도 어려움에 처할 것이지만, 이는 ‘한국경제 위기론’과는 분명 큰 간극이 있다. 일선 펀드회사에서는 외국 투자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내수가 언제 살아나느냐”는 것과“정부 차원의 경기활성화 대책은 도대체 언제 나올 것이냐”는 것 정도라는 것이다. 외국 투자자들의 이 같은 질문 속에는 한국경제는 이미 기초체력을 갖출 만큼 갖추고 있어 경기활성화대책을 무력화할 수 있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따라서 교과서적인 재정·통화 정책만 충분히 써 준다면 곧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을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는 일부 경제위기론자들이 말하는‘한국경제는 유동성 함정에 빠져 금리인하의 효과가 없을 것’,‘재정 확대 정책은 경기부양 효과보다 오히려 국가부채 누적 등 재정 악화를 가져와 더 큰 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견해와 분명히 다른 것이다.
무디스는 지난 6월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16개월만에‘부정적’에서‘안정적’으로 한단계 올렸다. 한국경제 위기론의 또 하나의 근거는 바로 1인당 국민소득이 10년째 1만 달러 근처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달러 표시 1인당 국민소득의 정체는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각국에 공통적 현상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이 ‘마의 1만 달러’였다면, 홍콩과 싱가포르는‘마의 2만 달러’였다.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률 그 자체이며, 한국은 지난 10년 동안 IMF 경제위기에도 무려 60%이상의 성장을 실현했다. 한국경제에 대한 외국 투자자들의‘낙관론’을 잘 보여주는 일례가 있다. 지난 6월, 정부가 미 2사단 병력의 일부 철수를 발표했을 때나 북핵 문제가 한창 대두했을 때는 외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뒤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6자회담의 진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물론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 투자자의 무관심 속에는 북핵 해결에 대한 믿음보다 한국시장에 대한 믿음과 필요성이 더 앞서 있는 듯 보인다. 한국 사람들은 왜 실제보다 앞서간 경제위기론에 매달리는 것일까. 한국발(發)경제위기론을 바라보는 월가를 비롯한 외국의 시각은‘IMF를 겪고 난 한국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선진국을 지향하는 한국 사람들의 의욕 역시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의욕이 너무 앞서다 보니 경제가 뜻대로 안 풀릴 때 좌절도 더 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90년대 초 한국사회를 풍미했던 단어 가운데 하나가‘총체적 난국’이라는 표현이었다.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1992~93년의 경제성장률은 5%대였다. 물론 그 당시 9%였던 평균성장률에 비교해 보면‘불황’임은 사실이었지만 절대‘난국’은 아니었다. 물론 지금의 한국경제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문제 대부분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경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청년실업률 상승의‘원조’ 바로 유럽이다. 빈부격차의 심화야말로 전 세계적 문제이며, 특히 미국이 가장 심각하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도 고도성장에 가려진 빈곤 문제가 극에 달해 있다. 하지만 이들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대다수의 전문가가 나서서‘위기론’만 주장하지는 않는다. 자국 경제의 낙관적 요소를 찾기 위해 노력하며, 또 문제점에 대한 구체적 해결 방안이 무엇일까를 차분히 고민하고 있다. 결국은 대통령이다. 이러한 백가쟁명식의 위기론을 혁파하고 국민과 기업에 희망을 줄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우리는 그 숱한‘위기상황’과‘난국’을 뚫고 헤쳐나온 저력이 있다. 이러한 저력을 충분히 활용하여 싱가포르의 경우처럼“폭풍우가 다시 몰아칠 때를 대비해 여건이 좋고 태양이 빛나고 있을 때 최대한 더 빨리 더 많이 성장해야 한다”라고 생각할 줄 아는 대통령,“경제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의 전제조건”이라고 설득해 가며 모든 일에‘경제 우선주의’를 실행에 옮길 줄 아는 대통령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 보다 월등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친디아의 거센 추격을 따돌릴 수 있는 길은 이러한 사고를 갖고 있는 지도자가 출현해야만 이룰 수가 있다.‘경제 제1주의’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이념을 초월하여 이에 매진하고 있는데 우리만 뒷짐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2007년 12월에 있을 대통령선거, 이를 통해 우리는 다시금 우리나라를 도약시킬 수 있는 진정한 지도자를 선출해 내야 한다. 또 한번 이번과 같은 정체기를 몰고 올 대통령을 뽑게 된다면 우리 민족은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지경에 처할 수도 있다.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