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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세지는 낙태죄 폐지론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사이
    낙태죄 폐지 시위(사진출처=페미당당)

    우리나라에서 낙태는 범죄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낙태를 둘러싸고 찬반 여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분위기다. 청와대 게시판의 낙태죄 폐지 청원에는 약 한 달 만에 20만 명이 동의 서명을 했고, 헌법재판소는 현재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게다가 먹는 낙태약이라 불리는 ‘미프진’을 허가해 줄 것을 요구하는 여성계의 목소리가 뜨겁다. 낙태죄를 둘러싼 온도차를 짚어보자.

     

    낙태 불법 국가, 하루 약 3000건의 낙태수술 이뤄져

    ‘자기낙태죄’로 불리는 형법 269조 1항은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270조 1항은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경우 2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이다. 낙태죄는 1953년 제정된 첫 형법에서 명시돼 지금까지 기본 틀을 유지하고 있다. 이후 모자보건법 14조를 통해 우생학적, 유전적 장애가 있거나 강간, 모체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ㆍ인척간에 이루어진 임신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는 기준을 마련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법률상 정해놓은 극히 일부 제한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허용치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낙태는 불법 의료행위로 처벌 대상이 된다.

    보건복지부의 전국 인공임신중절 변동 실태조사(2011) 결과에서도 2010년 기준 인공임신중절 수술 추정 건수는 16만8738건이다. 2005년 34만 건, 2008년 24만 건에 비하면 감소추세다. 그러나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 1월 전국 산부인과 의사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하루 평균 3000명이 낙태수술을 받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힌바 있다. 병원이 진료기록에 남기지 않고 행한 수술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는 지적이다. 당국이 공식 집계한 낙태 건수는 전체의 5%에 불과할 뿐 나머지 95%는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 달 만에 20만 명 동의한 낙태죄 폐지 청원

    지난 9월 3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게시됐다. 이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청와대의 답변을 받게 된 가운데, 찬반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청원 게시물은 “낙태죄 폐지를 청원한다. 대한민국은 저출산 국가지만 원치 않는 출산은 당사자와 태어나는 아이 그리고 국가 모두에게 비극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행법은 여성에게만 죄를 묻고 처벌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책임을 묻더라도 더 이상 여성에게만 ‘독박’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자연유산 유도약 합법화에 관해서는 “현재 119개국에서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을 합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약은 12주 안에만 복용하면 생리통 수준과 약간의 출혈로 안전하게 낙태가 된다”고 했다. 이어 “낙태죄를 만들고 낙태약을 불법으로 규정짓는 것은 이 나라 여성들의 안전과 건강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라며 “국민들이 제대로 된 계획에 의해 임신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게 될 때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더 많은 출산을 할 수 있다. 나라에서 국민의 신체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존경하는 대통령님과 국회의원분들에게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유도제 국내 도입을 부탁드린다”고 요구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난달 30일 청와대 관계자는 “20만 명이 넘었기 때문에 청와대가 응대를 준비할 것”이라며 “답변을 정부가 할지 청와대가 할지는 논의해봐야 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는 청원이 올라온 뒤 30일 안에 참여인이 20만 명을 넘으면 관련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급 등이 공식 답변을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청원 20만 건이 넘어선 것은 소년법 관련 청원 이후 두 번째다.

    낙태법 폐지 시위는 서울을 전국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폴란드에서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이 거리로 나서 ‘낙태금지법 반대 시위’에 참가해 법안 철회를 이끌어낸 것처럼 한국 여성들도 낙태금지법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폴란드 검은 시위(사진출쳐=AP통신)

    낙태죄 찬반논란 팽팽히 맞서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연간 30여만 건의 인공임신 중절이 대부분 불법으로 행해져 낙태죄가 수많은 여성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태아에 대한 살인행위라는 입장에 대해 임신 초기, 즉 1주에서 12주 사이와 중기, 즉 12주에서 24주 사이의 태아는, 인간의 생명과 어느 정도 동일시할 수 있는 임신 24주 이후의 태아와는 달리 봐야 한다며 임신 초기의 경우 태아가 고통을 느끼는 신경생리학적 구조를 갖추지 않은데다 낙태 시술도 간단하고 부작용도 적어, 낙태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폐지론을 주장하는 대표적 단체인 한국여성민우회는 “고비용에 안전하지 못하는 수술을 수많은 여성들이 감행하고 있다”며 “낙태죄는 낙태한 여성과 시술한 의사만 처벌하고 있기 때문에 연인과 배우자 등 낙태한 여성을 협박하는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들의 의견처럼 국내서는 낙태가 어려워지고 음성적으로 행해지는 수술의 비용까지 급격히 오르면서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를 찾아 떠나는 ‘원정 수술’이 성행한 바 있다. 특히 연 1300만 건 이상의 낙태 수술이 이뤄지고 있는 중국 등이다.

    또한 여성민우회의 주장처럼 낙태죄는 여성과 의료인만을 처벌 대상으로 할 뿐 남성은 제외돼 있다. 낙태를 예외적으로 허용한 모자보건법도 수술 시 남성의 동의를 반드시 구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대의 동의 없이 출산을 결심한 여성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거나 일부 남성은 여성의 낙태 전력을 빌미로 협박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낙태죄를 폐지할 경우 낙태 시술이 일상화돼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할 것이라는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낙태법 폐지를 반대하는 여론은 자궁에 수정란이 착상한 뒤의 태아는 모두 생명권의 주체로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폐지 시 태아의 생명 가치가 바닥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미프진이 시장에 유통될 경우 ‘자가낙태’가 만연하고 부작용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일부에서는 먹는 낙태약이 간편하고 안전한 낙태 방법인 것으로 선전하지만 이는 오해라는 지적도 있다. 

     

    불법 유통되는 먹는 낙태약 ‘미프진’

    미프진에 대해서도 도입을 찬성하는 시민들은 무조건적인 금지가 오히려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을 따를 경우 흡입식 인공임신중절시술에 비해 안전하다는 것이다. 또 구입이 허용돼 있지 않은 상태에선 오히려 유통의 음성화로 ‘가짜약’을 구입할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먹는 낙태약으로 불리는 ‘미프진’은 1988년 프랑스에서 개발된 경구용 자연유산유도약이다. 태아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호르몬 생성을 억제하고 자궁을 수축시켜 유산을 유도한다. 그러나 이 약을 허용하는 데 프랑스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여성민우회의 ‘낙태죄’ 폐지 요구 전문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미프진이 1988년 9월에 승인되었으나 거센 반대 시위 끝에 제약회사가 시장철수를 결정했다. 그러나 프랑스정부와 보건국에서 공중보건을 위해 약물을 계속 생산해줄 것을 요구했다. 당시 프랑스 보건부장관은 “나는 임신중지 논쟁이 여성에게서 의학진보의 결과물을 빼앗아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 지금부터 미페프리스톤은 단지 제약회사의 상품이 아니라 여성을 위한 도덕적인 상품임을 프랑스 정부가 보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로써 1990년 2월, 프랑스는 병원에서 미프진 판매를 시작했다. 여성민우회는 미프진(미페프리스톤)은 세계보건기구에 의해 안전성과 효과를 인정받았으며, 2005년에는 필수의약품 목록에 등재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중국, 영국, 스웨덴,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스위스, 대만, 미국, 캐나다 등 119개국에서 승인되어 합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미프진’의 유통 및 도입을 허용하지 않는 상태이나 인터넷을 통해 음성적으로 약 구매가 이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낙태가 합법화된 나라에서조차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약이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쉬운 낙태’, ‘후유증 없는 먹는 낙태약’ 등 불법 광고가 판치고 가격은 30만 원에서 60만 원 사이를 호가한다. 더 큰 문제는 중국산 가짜가 판을 치고 있어 음성적으로 유통되는 약들의 진위여부를 파악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미프진(사진=픽사베이)

    국민 절반 이상 “낙태죄 폐지 찬성”

    한편 낙태죄에 대해 국민의 절반 이상이 낙태죄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516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낙태죄을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51.9%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6.2%, ‘잘 모름’은 11.9%로 집계됐다. 성별로 여성(낙태죄 폐지 59.9%, 유지 30.1%)은 낙태죄 폐지 응답이 절반을 넘는 다수였다. 남성(43.7%, 42.5%)은 폐지와 유지 응답이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했다. 연령별로 20대(낙태죄 폐지 62.1%, 유지 30.8%), 30대(60.7%, 28.3%), 40대(56.8%, 33.7%)는 낙태죄 폐지 응답이 절반을 넘는 다수였다. 50대(46.1%, 41.6%)는 폐지 응답이 다소 우세했다. 60대 이상(39.0%, 43.5%)은 유지 응답이 다소 우세했다. 이념성향별로 진보층(낙태죄 폐지 54.7%, 유지 35.9%), 중도층(51.3%, 38.0%), 보수층(50.7%, 38.6%)은 낙태죄 폐지 응답이 절반을 넘는 다수였다.

    뜨거운 감자가 된 낙태죄와 관련해 지난달 6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홈페이지 낙태죄 폐지 청원이 20만 명을 넘은 것과 관련한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의 질의에 정 장관은 “낙태가 합법이냐 불법이냐의 이분법으로 논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산모가 아이를 낙태하지 않고 출산해 기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행법 내에서 여성이 대단히 위험한 낙태, 임신중절 시술로 가는 것도 심각하다”며 “그래서 여성 건강과 안전, 보호를 위해 낙태 허용 범위, 상담 등 제도 전반에 대한 검토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금태섭 의원은 “낙태죄 폐지가 바람직하다는 국민 여론이 50%를 넘었다”며 “실제로 낙태로 인한 입건 60~70건, 기소 14건인데 실제로는 훨씬 많다. 음성적 낙태, 여성의 목숨을 위협하는 낙태가 많다”고 우려했다. 이어 “낙태도 그렇지만 문제는 법과 현실의 괴리다. 우리만큼 낙태 규제가 강한 곳도 없다”면서 “정부도 어떤 식으로든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짚었다.

     

    헌재, 낙태죄의 위헌 여부 심리 중

    헌법재판소는 이르면 내년 초 ‘낙태죄’의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놓게 된다. 지난 2012년 8월 낙태죄를 합헌이라고 결정한 후 5년 만에 같은 사안을 판단하게 된다. 헌법재판소는 현재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현재 20만 명 이상이 청와대에 ‘낙태죄 폐지’ 청원을 하는 등 사회적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헌재는 2012년 8월 23일 ‘동의낙태죄’ 조항에 대해 “낙태를 처벌하지 않을 경우 현재보다 훨씬 더 낙태가 만연하게 돼 자기낙태죄 조항의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뿐더러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결코 중요하다고 볼 수 없다”며 재판관 4대 4 의견으로 팽팽히 맞섰지만 위헌정족수 6명에서 2명 모자라 합헌 결정을 내린바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번엔 기존 합헌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말한다.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는 데다 인사청문회 준비 중인 유남석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유 후보자는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서에서 낙태죄 폐지에 대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에 관한 최상위 기본권인 태아의 생명권이 우선 보호받아야 한다”면서도 “임신 초기 단계에서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의 자기결정권도 존중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의사 상담 전제 하에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인한 낙태는 어느 정도 허용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헌재 재판관 8명 중 5명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도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을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밝힌 바 있다. 낙태죄를 둘러싼 찬반여론을 정확히 수렴한 올바른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은정 기자  connecting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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