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피플-손영철전문기자]  한국축구가 끝나고 나면 모두가 "베트남(박항서감독)은 어떻게 되서?" 라고 묻는다.  

박항서 59년 경남 산청 출신, 한양대 졸, U-20 청소년대표, 81년 실업팀 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하여 선수로 뛰었고 육군축구단에 복무하고 84년 럭키금성으로 이적하며 프로무대에 데뷔했다. 85년에는 리그 우승을 이끌며 리그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었고, 86년 주장으로 7년간 선수 생활을 한 후 88년 은퇴를 했다. 선수시절 박 감독은 미드필더로 짧고 빠른 패스를 중시하는 선수로 '악바리' 로 통했다.

은퇴 후 안양치터스에서 트레이너로 96년까지 활동하였고, 94년 미국월드컵 김호 감독 국가대표팀에 트레이너로 활약 이후 수원삼성블루윙즈 김호 감독과 함께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전에는 국가대표 수속코치로 히딩크 감독과 함께 4강 신화를 이뤘다. 이후 히딩크가 떠나고 박항서 에게 국가대표 감독직을 제안했지만 축구협회 와의 마찰로 잠시 힘든 시절을 보냈다.

이후 부산아시안게임의 감독을 맡았지만 동메달에 머문 성적부진 이유로 경질되었다. 박 감독은 2005년 국내 프로무대의 경남 FC 창단에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07년 12월에는 전남 드래곤즈 의 감독시절 컵 준우승 과 2009년에는 플레이오프 진출 최종 4위라는 성적을 기록한다. 2013년에는 상주감독이 된 박항서 는 2부 리그인 챌린지 리그에서 좋은 성적으로 상주를 1부 리그로 승격시켰다. 끝으로 2017년 창원시청 감독을 거쳐 2017년 9월 베트남으로 떠났다

박 감독은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후 "나를 선택해준 베트남 축구에 내가 가진 축구 인생의 모든 지식과 철학 그리고 열정을 쏟아 붓겠다" 며 취임 각오를  밝혔다. 감독을 맡은 얼마 후 그는 베트남이 10년간 이기지 못했던 태국원정에서 태국을 격파 하면서 박항서 호 의 매직이 시작 되었다.

박감독의 매직은 중국에서 열린 AFC U-23 축구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을 하는 기적을 연출하여 베트남을 열광시켰다. 이어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비나폰’ 4개국 대회에서 팔레스타인에 2-1, 오만에 1-0, 강호 우즈베키스탄에 1-1로 비기며 우승했다.

여기에 U-23 아시안게임에서는 일본을 이기는 기적과 함께 시리아를 제치고 4강에 진출하여 29일 6시 한국과의 결전을 앞두고 있다. 박항서의 매직은 아시아 축구의 판도를 바꾸며 베트남이 아시아 축구 신흥강자로 탄생 시켰다. 박항서 감독은 인간이지만 리더십 과 열정적인 지도력은 ‘신의 한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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