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상이군경회 김덕남 회장 “국가 안보는 무엇보다 중요”

(사진=한국전 참전UN군 전상자초청행사, 대한민국상이군경회 제공)

[시사뉴스피플=노동진 기자] 6월은 호국보훈(護國報勳)의 달이다. 최소한 이 달만큼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역사는 늘 전쟁과 함께했다. 근대에서도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에서 국가를 지켜냈다. 남다른 애국심으로 중무장한 이들은 북한의 도발이나 수많은 교전을 거뜬히 막아냈다.
분명한 것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들에 대한 예우는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또 다른 국가의 위기가 찾아와도 목숨 바쳐 수호에 나설 것이다. 국민들도 당연히 이들의 아름다운 애국심에 찬사를 보내고 고마움을 표현해야만 한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보훈가족들 중 상이를 입어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도 있다. 이들이 몸담고 있는 단체가 대한민국상이군경회다. 장애가 있다 보니 번듯한 직장을 가지기도 힘들어 형편이 매우 어렵다. 때문에 정부에서는 무상 진료를 지원하고 있고, 대한민국상이군경회에서는 재활체육 사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돕고 있다. 하지만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고통과 스트레스 등 정신적인 부분과 물질적인 부분에서 부족함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상이군경회는 이들의 아픔을 감싸줄 예우와 복지를 위해 늘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심
대한민국상이군경회는 1951년 5월 15일 임시수도였던 부산 소재 부산극장에서 6.25전쟁 희생자 단체로서는 최초로 사단법인 ‘대한상이군인회’라는 단체명으로 창립했다. 현재 국가수호 최일선에서 영예로운 부상을 입은 전·공상군경 10만5천여 명의 회원을 두고, 상부상조하고 자활능력을 길러 조국통일 성업 달성 등 국가발전과 세계평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미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여전히 남다른 국가관으로 중무장한 이들은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연평해전과 천안함 사건, 북한의 핵실험과 같은 대북관련 사항에 대해 국민을 대변하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김덕남 회장은 “우리 회원 모두 삶이 다하는 날까지 오직 국가 발전만을 생각하고 있다”면서 “비록 몸이 불편한 퇴역한 군인이지만 조국수호를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신념으로 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중상이자가 2천여명이 넘는데, 이들이 휠체어를 왜 타게 됐는지 한 번쯤 생각해달라. 국민을 지키고 나라를 살리기 위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이 있게 된 것”이라면서 “합당한 예우와 국민적 인식이 따라줘야 또 다른 국가 위기가 발생해도 과거처럼 나라를 위해 값진 희생을 할 수 젊은 층이 나올 수 있다”고 언급했다.

(사진=대한민국상이군경회)

상이용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
대한민국상이군경회 회원들 모두 상이를 입은 용사로, 어느 보훈가족보다 삶의 있어서는 평탄치 못하다. 때문에 본회에서는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활동으로, 먼저 보상금 인상을 위해 뛰고 있는 부분이 있다. 상이와 함께 고령으로 경제활동을 하기 힘든 회원들이 전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현재의 보상금으로는 생활비로도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정부에 지속적으로 보상금 증액을 요청하고 있다.
두 번째는 불합리한 법령개정으로, 국가유공자 보상금을 소득으로 인정하고 있는 법령 탓에 기초생활수급자나 기초연금 대상자에 배제가 되고 있다. 때문에 불합리한 현행 법률개정을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세 번째는 장학사업으로, 상이처로 인해 노동력을 상실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원과 가족들 중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매년 45명에게 인당 백만원의 ‘백의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올해로 42회째를 맞이했으며, 지금까지 1,607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서울을 비롯한 9개 지부에서도 지부장학회를 설립해 소속 회원들과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외에도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한 보훈수당 지급을 위한 조례제정 활동 ▼매년 명절과 호국보훈의 달에 보훈병원 위문행사와 장수회원 위안행사 ▼상이처로 인해 일반 목욕탕을 이용하기 어려운 회원들을 위해 매주 목욕탕 개방은 물론 재활을 위한 운동시설, 급식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상이군경복지회관 운영 ▼안보 및 교양 교육과 건전한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보훈복지문화대학도 개설 ▼중상이자 회원들의 신체기능 회복과 퇴화 방지를 위하여 상이군경체육회를 설립하고 체계적인 재활체육 활동도 지원하고 있다.

(사진=김덕남 회장이 백의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공정성과 투명성 극대화
“상이군경회가 많이 투명해졌다. 때때로 수의계약과 관련해 물의를 빚은 사례가 조명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확실히 달라진 것 같다.” 실제 대한민국상이군경회를 두고 연일 회자되는 말이다.
현 김덕남 회장은 2012년 회장 선거 당시 ‘예산집행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바로잡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당선됐다. 취임 후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당사자로써 불공정한 형태의 질서를 바로 잡아 국민들과 회원들에게 신망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서원아래, 투명성을 제고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이에 그간의 수의계약으로 얻은 수익이 60% 이상 줄어들게 됐지만, 모든 회계가 적법하게 처리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외부 회계감사는 물론 변호사와 회계사들로 구성된 ‘복지사업심의위원회’를 거쳐야만 예산이 집행되고 있다.

김덕남 회장 취임 후 강력한 개혁 탓에 불평이 늘어난 사례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연적으로 현재의 개혁이 올바른 판단이었다는 믿음이 심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이같은 과감한 결단이 이뤄질 수 있었던 데에는, 김 회장의 이력에서 알 수 있다. 그는 상이용사로는 드물게 사업적인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수년간 광주와 전남지역에서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노력의 땀방울은 종자돈이 됐고, 명망있는 사업가로 만들었다. 장성군 지역경제인협의회 회장도 맡았다.
그간의 사업적인 경험과 노하우를 여감없이 발휘하며 새 지평을 열게 된 것이다. 김 회장은 “상이군경회가 외형적으로 덩치만 컸지 내부를 살펴보니 부실이 많았다”며 “우리 회원들이 오직 나라만 생각해 경제에 관해서는 잘 몰라 일반인에게 속고 이용당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상황이 온 것”이라고 회상했다.  
한편, 김 회장은 앞으로 남은 임기동안 미국과 유럽 등과 같은 선진 재활시스템을 구축하고, 음악과 미술, 연극 등의 분야에서 정신적·심리적 재활을 돕는 창작예술제 정착, 수준 높은 보훈복지문화대학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사진=전국상이군경체육대회)

국제 민간교류 전도사 자처
김덕남 회장 취임 후 눈에 띄는 사업으로 ‘국제교류협력 사업’이 있다. 2011년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를 위한 요양시설인 ‘평화의 마을’을 건립한 것을 계기로, 양국 간 교류 활성화에 적극 나선 것.
김 회장은 2012년부터 베트남의 의료지원을 시작해 현재까지 매년 2회 찾고 있다. 평화의 마을 사람들은 한 번만 오고 다시는 찾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덧 8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서로간 신뢰가 쌓여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도 진료를 받기 위해 찾는다. 매회 300명 이상의 환자들을 진료하는 것. 이를 통해 대한민국상이군경회와 김덕남 회장은 2017년 쾅남성 인민위원회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또한 2007년부터 매년 1회 UN군 전상자를 초청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2016년에는 에티오피아 칵뉴부대원들이 기거하는 곳을 직접 찾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가족을 위한 행사를 가졌다. 이들을 무료 진료를 해주는 현지 기독명성병원을 찾아 기부금을 기부하는 한편 지속적인 무료진료를 요청하기도 했다.
칵뉴부대원은 에티오피아 참전부대로, 한국전 이후 자국에서 오히려 핍박을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김덕남 회장은 “한국전에 참전했던 16개국의 전상자들은 90세 전 후의 고령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한분에게라도 더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예산을 확보했다”면서 “그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감사의 답례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제대군인연맹(WVF) 상임이사국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베트남 의료지원 사업)

대한민국상이군경회 김덕남 회장은...
김덕남 회장은 1965년 해병대 청룡부대 소속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다. 당시 베트콩의 포탄 공격으로 중상을 입었다. 이 탓에 현재까지 배뇨이상 증세로 후유증을 앓고 있다. 20대부터 상이군경회에서 활동한 그는 상이자였지만 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평소 근면성실함을 무기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덕분에 비료 제조공장과 PVC수도관을 생산하는 (주)고리파이프를 창업하는 등 사업가로서 면모를 다지기 시작했다. 사세는 확장되고 다수의 제조업체를 경영했다. 2007년에는 장성 백양CC를 인수했다.

그는 회사의 성장과 함께 상이군경회 회원들을 돕고 처우개선을 위해 앞장섰다. 헌신적인 노력을 회원들이 알기 시작했고, 2012년 주변의 권유로 회장에 출마해 당선의 기쁨을 맛봤다. 재선도 했는데, 그만큼 회원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텁다는 얘기다. 김덕남 회장은 “과거 북한의 남침과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국가안보는 생명과 같다”며 “이를 위해서는 현재 미국과의 동맹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점을 깊이 새기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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