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피플=김은정기자] 시사뉴스피플에서는 출간 이래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서적을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하고 있다. 그 여섯 번째, 일곱번 째 책은 독일문학의 위대한 거장 W. G. 제발트의 대표작인 『토성의 고리』와 『이민자들』이다.

W. G. 제발트는 생전에 단 네권의 소설을 남겼지만 ‘제발디언(Sebaldian)’이라는 용어가 생길 만큼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추종자를 양산한 20세기 말 독일문학의 위대한 거장으로 불린다.

사진제공=창비

작가에게 커다란 명성을 가져다준 『이민자들』에서 제발트는 ‘어둠의 가장자리’를 더듬는다. 섬세한 감성과 시적인 문체, 때론 짓궂은 유머감각을 동원해 유럽에 고향을 두었지만 자의로든 타의로든 다른 나라로 떠난 네 이민자의 삶과 결코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 치유되지 않는 고통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위안 없는 삶을 절감하고 삶을 마감한다.

네편의 공통 화자로 등장하는 나(작가의 분신)는 예전에 영국에서 세들어 산 집의 주인이던 헨리 쎌윈 박사, 독일 고향 마을의 초등학교 선생님이던 파울 베라이터, 미국으로 이주해 은행가 가문의 집사로 지냈던 친척 할아버지 암브로스 아델바르트와 1960년대 후반 영국으로 이주했을 당시 알게 된, 독일 출신의 유대인 화가 막스 페르버의 삶을 재구성하려 시도하면서 동시에 간접적으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 자신 또한 스무살이 갓 넘은 나이에 영국으로 이주해 이민자, 이방인으로서 살아온 인물이다.

작가는 이름도 없이 파묻힌 역사의 개별자를 기억하기 위해 그들을 알고 있는 여러 사람의 증언을 녹취하고 자료를 조사하고 사진을 수집할 뿐만 아니라 직접 그 현장을 두루 여행한다. 그 결과로 현실과 허구를 오가며 팩트와 픽션을 절묘하게 결합한, 잘 짜인 시적 소설이 탄생한다. 특히 이 작품을 독특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는 편마다 삽입된 흐릿한 흑백사진이다. 이 사진들은 회상과 픽션을 놀라우리만치 정밀한 구성으로 광범위하게 뒤섞은 작품의 사실성을 강조해준다. 실재성을 증명하는 가장 뚜렷한 증거이면서 한편으로는 기억 속에서 방금 끄집어낸 듯한 사진의 흐릿함은 덧붙여진 세월의 무게와 기억의 왜곡(즉 소설적인 것)을 강렬하게 대비시킨다.

제발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토성의 고리』에도 사실과 허구가 교묘히 섞여 있

사진제공=창비

어 그 경계가 분명치 않으며 소설 속 화자 또한 여러모로 제발트 자신과 겹친다.

1992년 8월 소설의 화자는 고대왕국이 있던 영국의 동남부지방(노퍽주와 써퍽주)을 여행한다. 이 순례의 발단은 화자 자신의 내면적 공허였지만 목적의식 없는 여정은 자주 샛길과 미로로 접어들고 어긋난다. 그러나 이런 이탈 덕택에 화자는 이미 발생했거나 장차 도래할 대재앙의 숱한 증인을 만나게 된다.

제국주의의 광기가 남겨놓은 방랑하는 유대인이나 노예화된 민족, 문명의 흐름에서 비켜난 삶을 살아간 아웃사이더 등의 인간집단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열기가 남겨놓은 폐허의 상징들—파괴된 숲, 청어와 누에처럼 산업적으로 희생된 생물, 버려진 공장, 몰락한 도시—을 마주하며 화자는 “미래의 어떤 대재앙으로 파멸한 문명의 잔해”를 보는 듯한 먹먹한 전율을 느낀다.

출판사 창작과비평은 작가 탄생 75주년을 맞아 『토성의 고리』와 『이민자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국내에 제발트를 처음으로 소개한 『이민자들』이 출간된 지 11년, 『토성의 고리』가 출간된 지 8년 만이다.

사진 및 자료 제공= 창작과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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