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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 특집] 덕수궁, 근대의 아픔을 품은 조선의 마지막 황궁
붉은 단풍 든 덕수궁 (사진=박정연)

[시사뉴스피플=박정연 기자] 가을이 오면 정동을 찾는다. 낙엽이 내려앉은 돌담길은 깊어가는 계절에 고즈넉한 낭만을 더한다. 돌담을 따라 걷기에 더없이 좋은 이 길은 사실 과거 덕수궁의 일부인 궁궐 터였다는 사실을 아는가. 세월의 부침에 못 이겨 규모가 대폭 축소된 덕수궁에는 대한제국 13년간의 이야기와 격동의 근대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대한제국의 꿈과 아픔이 서리다 
덕수궁은 본디 궁궐이 아니었다. 덕수궁 터에는 조선 태조의 계비 강씨 무덤인 정릉(貞陵)이 있었다. 태종 때 능은 지금의 정릉동으로 옮겨졌고, 그 자리에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1454~1488)이 사가(私家)를 지었다. 이후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한양의 모든 궁궐이 불타자 선조는 월산대군의 처소를 행궁(行宮, 임금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물던 별궁)이라 칭하여 임시거처로 사용했다. 정릉동 행궁이라 불리던 이곳은 광해군 때에 ‘경사를 부르는 궁궐’이라는 뜻을 담아 경운궁(慶運宮)으로 개칭됐다. 1618년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긴 광해군이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를 유폐, 1623년 인조가 경운궁 즉조당에서 즉위하고 창덕궁으로 옮긴 이후 약 270년 동안 덕수궁은 별궁으로 사용되었다.

덕수궁이 다시 왕궁으로 사용된 것은 1895년 경복궁 건청궁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당하는 을미사변이 발생하자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였던 고종이 경복궁이 아닌 경운궁으로 환궁하면서부터이다. 이때를 전후하여 고종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 대한제국이 자주 독립국임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또한 덕수궁 내에 선원전, 함녕전, 보문각 등의 건물들을 지어 궁궐의 영역을 확대하였는데, 당시 궁궐은 정동과 시청 앞 광장 일대를 아우르는 규모로 현재의 3배에 달했다.  

1905년 경운궁 중명전에서 치욕스러운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 1907년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개칭된다. 일제에 의해 순종에게 왕위를 양위한 선황제 고종이 이곳에 머무르게 되면서 ‘고종의 장수를 기원한다’는 뜻을 담아 덕수궁(德壽宮)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1919년 1월 고종이 함녕전에서 승하하면서 덕수궁은 주인 없는 빈 궁궐이 된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덕수궁 터를 일반에게 팔기 시작하면서 지금처럼 외국 공사관들이 들어서게 되었고, 궁역과 건물들이 훼손과 퇴락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게 된다. 

매일 11시, 2시, 3시30분이면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수문장 교대식이 진행된다. (사진=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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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대한문: 현재 덕수궁의 정문으로 사용되는 대한문은 과거 경운궁의 동문이었다. 1896년 중건 당시 경운궁의 정문은 남문인 인화문(仁化門)이었는데, 1900년대 동문인 대안문 앞으로 도로가 건설되면서 대안문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며 서울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04년 경운궁에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된 전각들을 재건하면서 동문인 대안문(大安門)을 대한문(大漢門)으로 개칭하고 정문으로 삼았다. 대한문은 큰 하늘을 뜻하는 ‘대한’을 붙여 한양이 창대해진다는 뜻이 담겼다. 나라와 백성 모두 태평성대를 이루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붙여진 명칭이다. 대한문의 건축양식을 살펴보면 정면 3칸 측면 2칸 우진각지붕집 형태를 가지고 있다. 궁궐 정문으로는 드물게 단층 구조인데,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이 단층이기 때문에 이와 격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왕의 즉위식 및 가례식,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이 치뤄졌던 덕수궁 중화전(사진=박정연)

②중화전: 덕수궁의 법전인 중화전(中和殿)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성정’이란 뜻을 지녀, 조선을 뒤흔드는 세계열강들의 각축전 속에서 자주국으로서 당당하게 자리 잡겠다는 대한제국의 의지가 담겼다. 임금이 가마를 타고 지나는 길인 ‘답도’에는 조선 궁궐의 정전 중 유일하게 봉황이 아닌 용 두 마리가 새겨져 있는데, 대한제국 출범 후 지어진 건물이기 때문에 황제를 뜻하는 용을 장식한 것이다.
중화전은 궁궐의 법전인 만큼 왕의 즉위식 및 가례식, 외국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이었다. 하지만 중화전은 법전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픔이 서려있는 장소다. 1904년 화재로 인해 소실된 중층 전각을 단층 팔각지붕으로 재건했는데, 궁궐의 중심이 되는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어지러운 시국과 궁핍한 국가재정으로 인해 단층으로 축소되어 건립되었다. 또한 1907년 일제가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면서 양위식을 개최한 곳이기도 하다.

국내 최초의 유럽식 정원과 분수대를 갖춘 덕수궁 석조전(사진=박정연)

③석조전: 중화전 뒤쪽으로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서양식 건축물이 있다. 석조전이다. ‘돌로 지은 집’이라는 뜻을 지닌 이 건축물은 고종이 추구했던 강력한 근대국가 모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영궁인 ‘하딩’이 설계한 석조 건축물로 1900년 기공, 1910년 준공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유럽식 정원과 분수대를 갖추고 있다. 
석조전은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되면서 황궁의 전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고종은 석조전을 대신과 외국사절을 만나는 용도로 사용했다. 1945년 해방 이전까지 석조전은 현대 미술품을 진열했고, 1946~1947년에는 유엔 한국위원단이 이곳을 사무실로 사용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사용되다가 2009년 문화재청에서 석조전을 1910년 준공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개관했다. 

④함녕전: 함녕전은 고종의 편전이자 침전으로 사용된 곳으로 고종이 68세를 일기로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정면 9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구조이며, 평면은 ㄱ자형으로 되어있다. 
덕수궁에는 다른 궁궐과 달리 황후의 침전이 따로 없는데, 그 이유는 을미사변이 발생한 뒤 고종이 다시 황후를 맞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후의 침전을 대신한 것은 명성황후의 신주를 모신 경효전이다. 경효전은 1904년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고, 그 자리에는 덕홍전이 세워졌다. 덕홍전은 함녕전과 나란히 위치해 있다. 함녕전의 명칭에는 ‘길이 평안하기를’이라는 뜻이 담겨 더욱 가슴 아프게 와닿는다. 

서양식 건축 양식과 우리 전통 문양이 어우러진 덕수궁 정관헌(사진=박정연)

⑤정관헌: 고종은 경운궁으로 환궁하면서 서양식 건물을 몇 채 지었는데, 정관헌은 당시 건립된 초기 서양식 건물 중 유일하게 남은 것으로 궁궐 내 근대 건축물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다. 정관헌은 러시아 건축가인 사바틴(Sabatine)이 설계했다. 사바틴은 1895년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목격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린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정관헌은 고종이 다과를 들며 휴식을 취하거나 외교사절단을 맞아 연회를 열기 위해 건립된 건물로, 서양풍의 건축 양식에 전통 목조 건축이 더해져 독특한 모습을 지닌다. 금속난간에는 사슴, 소나무와 같은 전통 문양과 고종의 장수를 기원하는 천도복숭아를 물고 있는 박쥐도 찾아볼 수 있다. 정관헌은 고종이 조선 역대 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봉안했던 장소이기도하다. 하지만 고종이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된 이후 1912년 황제는 역대왕의 어진을 중화전으로 옮겼다. 정관헌은 ‘고요하게 내다보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⑥중명전: 덕수궁 돌담길에 위치한 정동극장 뒤쪽으로 들어오면 중명전이 나온다. 중명전은 황실의 도서와 보물을 보관하는 용도의 황실 도서관으로 계획되었는데 1904년 화재로 인해 궁궐의 대부분의 전각이 불타자 고종 황제는 중명전으로 처소를 옮겨 집무실로 사용했다. 중명전은 궁궐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건물 중 하나로, 근대 문물의 수용에 앞장섰던 고종의 의지가 담겨있다. 중명전은 시련의 근대사를 간직한 곳이다. 이곳에서 을사조약이 체결되었고, 헤이그 특사를 파견했다.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면서 덕수궁은 축소되어 중명전은 외국인에게 임대되어 1960년까지 경성구락부로 사용되었다. 1925년에는 화재로 인해 내부가 크게 훼손되었고, 이후 문화재청이 매입하여 2007년 덕수궁에 추가로 편입되었다. 영화 <동주>의 촬영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박정연 기자  ilenapar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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