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중독 된 세 사람과의 만남

검은 생명이 꿈틀대는 대지로 사람들은 그들의 열정을 불태우기 위하여 떠난다.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땅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우리의 순수한 영혼이 숨쉬고 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존재하는 아이러니한 장소, 아프리카. 사람들은 왜 아프리카를 꿈꾸는가.

임보연 기자

사진작가 김중만은 아프리카의 모습을 그의 카메라 렌즈에 담기 위하여 떠난 적이 여러 번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지금까지 늘 그러했듯, 나는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나기를 열망한다. 아프리카가 지닌 순결함은 내가 사진 속에서 구현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죽는 날까지 사진을 찍어야 하는 사진가의 운명으로 태어났지만 아프리카는 내가 죽는 날까지 끌어안아야 할 화두다. 가끔 소서스플레이 사막에서 보낸 그 밤을 떠올리며 내가 찍어야 할 사진을 생각하곤 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미비아의 사막으로 가서 셔터를 누르고 싶다.’사진작가 김중만 이외에도 조선희 역시 아프리카를 꿈꾸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도 아프리카 일주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에는 버려야할 것이 너무 많기에 아직은 꿈이라고 말하던 그녀의 눈빛이 불현듯 떠오른다.
아프리카로 향하는 사람들과 아프리카의 영혼을 느끼며 그들의 예술을 향유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발자취를 좇아 아프리카의 숨결을 함께 느껴보려 한다.

아프리카의 공기에 중독 된 사람
-아프리카 여행 전문가 김귀욱

스스로를 아프리카 전문 여행가라고 지칭하는 김귀욱 씨는 아프리카 여행만 무려 서른 번 이상을 다녀왔다. 2000년도 SBS에서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당시에 여행 전문가 한 명을 발탁하여 함께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서부 아프리카를 40일간에 걸쳐서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운이 좋게도 발탁되어 함께 떠났었다고 한다. 그에게 물었다. 아프리카에 처음 도착했을 때, 당신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무엇이었는지.“사비나 초원이었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끝도 없는 평원이 쫘악 펼쳐져 있는 사비나 초원이 들어왔다. 그 곳에는 광활한 대초원이 있었다.”라고 이야기하는 김귀욱 씨는 이미 머리 속으로 아프리카의 대초원과 만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방송에서는 기근이나 에이즈 등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시켜서 그 곳의 이미지가 한쪽으로 굳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검은 대륙 아프리카라고 하지 않는가. 그 검다는 의미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보석들이 들어있다.”
김귀욱 씨가 여행을 하면서 만난 아프리카 사람들은 굉장히 순수했다. 까만 얼굴과 하얀 웃음이 참으로 천진난만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아프리카라는 나라에는 중독성이 있나보다. 한 번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들 또 다시 아프리카로 향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이런 나의 이야기에 김귀욱 씨 역시 동의를 한다. 한 번 다녀오면 인이 박히는 그런 나라라는 것이다. 가슴 속에 아프리카라는 하나의 아이콘이 생기는 것 같다고 한다. 서른 번 아프리카라는 한 나라로 향한 그는 갈 때마다 다른 것을 보게 되는 것일까.“프랑스 파리에 가면 항상 그 자리에 에펠탑이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어떤 장소에서 어떤 동물들이 어떤 퍼포먼스를 펼칠지 알 수 없다. 어떤 모습을 보게 될지 기대하게 된다.”
그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로 남는가. 그는 아프리카의 여행을 통해서 삶의 에너지를 충전한다고 했다. 그 곳의 하늘은 그의 비유에 따르자면, 어린 시절 한 손은 엄마의 손을 잡고 한 손에는 풍선을 들고 있다가 놓쳐버려서 날아가는 풍선을 바라보았을 때 눈에 들어오던 그 푸르고 높은 하늘이 그 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 아프리카의 하늘에.
그는 아프리카를 어떤 색으로 규정짓고 있을까.“아프리카는 초록이다. 아프리카의 국기를 보며 모든 국기에 초록색이 들어가 있다. 그들은 초록을 참 좋아한다. 우리들이 검은색이라고 표현하는 색을 그들은 검푸른색이라고 표현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기자는 그에게 아프리카를 한마디로 정의 내려달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나 곧 그 물음이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아직도 그에 대한 물음을 못 찾았기에 한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다양한 매력들을 숨기고 있는 나라이기에 그는 매번 아프리카라는 나라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꿈꾸고 있기 때문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는 인터뷰가 있었던 날로부터 삼일 뒤, 다시 아프리카로 출국을 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여행길은 혼자만의 여행이라고 했다. 이번 여행에서 그는 또 얼마나 풍부해진 마음으로 돌아오게 될까.


다채로운 예술의 향연에 중독된 사람
-세계 장신구 박물관 이강원 관장

아프리카 사람들이 만들어낸 조각품에는 돌에서조차도 온기가 느껴진다. 쇼나 조각이라고 불리는 아프리카의 조각품은 그 특유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 무거운 느낌의 돌에는 금방이라도 팔딱팔딱 숨을 쉬는 듯하다. 그들에게는 다른 민족과는 차별화 된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삼청동의 골목을 거닐다 보면 독특한 분위기의 박물관 하나를 만날 수 있다.‘세계장신구박물관’이라는 묘한 것들의 집합장소이다. 장신구 하나하나마다 혼이 담겨있다고 이야기하는 이강원 관장의 오랜 시간에 걸친 노력으로 만들어진 장소이다. 대사 부인으로 세계 곳곳을 누비던 그녀가 장신구들에 담긴 영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시작한 일이 어느새 박물관이라는 장소를 만들기에 이른 것이다. 그녀는 이야기하더라. 결국 장신구의 수집은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것이었다고. 아프리카에 갔던 20세 후반 장신구의 수집을 시작했다. 그 때 이강원 관장은 아프리카 미술이 가지는 힘에 자신도 모르게 이끌림을 느꼈던 것 같다. 그녀의 입을 통해 들어보는 아프리카의 예술에 대해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그 오묘한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프리카 미술은 우리의 사고와 관념과 모든 미의식의 틀을 깬 거라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것에 감동을 한거죠. 이들은 추상 미술을 타고난 사람들에요. 마티스나 피카소 등 유명 화가들 역시 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았던 거죠. 아마도 아프리카의 미술이 없었다면 현대 미술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전체가 타고난 예술가예요. 피 속에 예술가의 피가 흐르고 있죠. 조형에 대한 감각과 인식, 그리고 사고의 자유로움까지 모두 예술로 승화되고 있는 겁니다. 사실 우리가 인위적인 것에는 감동을 하지 못하죠. 인위적인 것에는 힘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아프리카인들이 표현하는 예술에는 다른 것들에는 존재하지 않는 힘이 있어요. 역동성이랄까. 그들이 표현하는 역동성이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전달이 되고 있다는 거예요.”
이야기 도중 관장실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아프리카 미술품들을 가리킨다. 쇼나 조각과 나무 조각이며 마스크가 조심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관장은 그들의 예술품은 이상하게 슬프고 조용하다고 한다. 특히 마스크를 보면 그 정적에 숨이 멎는 듯하기까지 하다고 했다. 무겁고 가라앉아 있는 보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어 주는 그 무언가가 그들의 작품 속에는 숨어있는 것 같다고 한다. 또 하나의 아프리카 미술의 특징은 해학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이 만든 작품을 보면 웃음이 난다는 것이다. 구수한 웃음이 말이다. 기본적으로 따뜻함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서일까.
에티오피아에서 그녀는 독특한 경험을 했다. 시장에서 야채를 팔고 있던 할머니의 목에 걸려있던 은 목걸이를 보고 숨이 멎을 뻔 했다는. 그들에게 장신구는 몸을 치장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 자신의 영혼인 셈이었다. 야채 장사를 하던 할머니의 목걸이를 본 후 그녀는 자꾸만 그쪽으로 쏠려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아마도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 그녀를 아프리카로 그리고 아프리카의 예술이라는 어마어마한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었던 것이리라. 이를 두고 사람들은 숙명이라고들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숙명... 아프리카는 이강원 관장에게는 숙명이었던 것 같다. 그 곳의 예술품들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박물관 안에서 그녀의 몸짓과 말투가 참으로 자유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한 번은 아프리카의 장신구 중 하나인 귀한 코걸이가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전쟁 중인 곳으로 몇 km를 달려갔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손목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팔찌를 차고 있는 것을 보고서는 만져보고 싶은 마음에 손을 댔다가 도둑으로 오해를 받아 매를 맞은 적도 있단다.
아프리카의 예술에 흠뻑 취해 있는 이강원 원장에게 그곳은 과연 어떤 색을 가진 나라로 존재하고 있을까. 이강원 원장에게 그곳은 까만색이다. 피부라는 외형적인 허울을 떠나서 원초적인 모든 색을 흡수한 그 검은색이 바로 아프리카라는 것이다. 검은색에는 깊은 슬픔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고도의 아름다움이 까만색을 통하여 표출된다. 이러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검은색이 바로 아프리카이다. 이강원 관장에게는.
아프리카에 처음으로 도착했을 때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무엇이었을까. 예술품이거나 자연 환경이겠거니 했는데 나의 예상을 철저히 벗어나‘사람들’이었다는 대답을 한다. 사람들이라.  그녀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따뜻한 온기를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영혼이 스민 예술품을 좋아하는 것이며 그들이 하나하나의 의미를 투영하고 있는 장신구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로소 고개를 들었을 때 눈에 비치던 맑은 하늘이 기억난다고 한다. 아주 파랗고 깊은 눈을 찌를 것 같던 파란 하늘이 말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본다. 적막하고 고요하다. 하지만 조용히 장신구 하나하나를 조각품 하나하나를 바라보고 있자니 평온한 숨소리가 느껴진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의 역사를 생각해보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아프리카인의 매력에 중독 된 사람
-피스프렌드 황학주

PEACE FRIEND. 이름에서 그 의미를 대충 짐작해본다. 지난해 12월 8일 김중만 사진작가와 황학주 시인의 함께 만든 포토에세이<아프리카 아프리카>의 출판 기념회 겸 피스프렌드의 1주년 기념행사가 이루어졌다. 그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축하를 해 주었으며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슬픈 삶이나 어려움 등에 가슴 아파하고 친구가 되는 방법을 모색해가고 있었다. 탤런트 김혜자 씨의 축사로 행사는 빛을 발했으며 홍보대사로 김민준 씨를 위촉하여 NGO단체로서의 모습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피스프렌드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뜻을 모았다. 하나의 뜻으로 모여 만들어가는 사랑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들의 모습이 가슴에 남는다. 개인적인 느낌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아프리카 아프리카’라는 사진에세이집의 제목을 들었을 때 그 곳의 울림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듯 했다. 그 책에 에세이를 쓴 황학주 교수가 바로 피스프렌드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었다. 원래 피스프렌드의 사무실이 좁아서 이번에 이전을 한 관계로 새로 이사한 사무실로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갔다. 거의 아무것도 없는 사무실이었지만 벽에는 아프리카와 관련된 그림들이 장식장 위에는 쇼나 조각들이 놓여 있다.
행사 다음날 만난 황 교수는 조금 피로해 보였지만 미소만은 따뜻했다.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어서일까 라는 생각으로 그의 미소를 보며 나도 한 번 슬며시 웃어 보았다. 그렇게 피스 프렌드 사무실에서 쇼나조각과 황 교수와 기자 셋이서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어갔다. 피스프렌드라는 단체를 어떻게 구성하게 됐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황 교수 주변에는 유난히 아프리카와 연관된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 자신도 아프리카에 머물면서 점점 더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고 말이다. 국제 사랑의 봉사단 소속이었던 그는 활동을 하면서 문화 예술인들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누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활동하던 봉사단과 같은 복음의 경우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여 그들의 참여에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과는 조금 다른 접근 방식인 문화 예술적인 접근 방법으로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하여 피스프렌드라는 단체를 만들어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그곳에서 생활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갔다. 식량이나 의료적인 지원은 당연히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의료행위와 같은 경우는 전문적인 집단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식량과 같은 경우도 끊임없는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으로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자존심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래서 생각했다. 빵을 주되 먼저 친구가 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준비한 행사 중의 하나가 문화 이벤트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예술적인 끼가 상당하기 때문에 이런 접근 방법은 그들이 원하는 방법 중의 하나였다.”
황 교수는 아프리카라는 배울 점이 참 많은 나라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 곳에 가면 생과 사라는 것,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서 느끼는 바가 크다고 한다.“사실 한국에 살면서 죽음의 광경을 목격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가면 수십, 수백 명의 죽음을 만나게 된다. 그 때문일까. 죽음의 의미라든가 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자연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아프리카에서는 자연이 어떻게 무너져 가는가 그 과정을 볼 수 있게 된다. 사막화가 진행되는 것이며 소의 수가 증가하는 것들이며 밀렵꾼들의 무자비한 사냥 등을 말이다. 인간이 결코 자연을 지켜낼 수 없는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의 슬픔을 느낀다. 누군가는 직립의 슬픔이라고 하더라.”
그가 아프리카에 처음 도착했을 때 과연 그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공항의 풍경은 모두 비슷하다. 나는 삭막한 아름다운 풍경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체질에 맞았다. 그 곳의 쓸쓸하고 적막한 풍경이 포근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시내로 들어서면서 보았던 난민가의 풍경이 충격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곳은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곳이었다. 결코 행복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맞는 공간이었다.”
황 교수는 그들이 돕는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에이즈 어린이들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에이즈 어린이들의 경우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돕는다고 해서 살릴 수 있는 경우는 아니다. 때문에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회생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돕게 된다. 그러나 이들이 하는 일은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도 돕고자하는 것이란다. 그는 이야기한다. 적어도 나눔이나 사랑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최소한의 인간적인 품위를 잊지 말자고 말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난민촌에서 아이들에게 빨과 우유를 나누어 줄 때 한 아이가 이렇게 이야기하더란다.“나 말고 저 아이에게 빵을 주라.”고 말이다. 상상할 수 없는 비극 속에 놓여 있는 아이들이지만 그 상황에서도 남을 배려하고 또 돕는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는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피스프렌드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다양하게 나누어진다. 아프리카 에이즈 고아 및 가정 급식 프로그램과 케냐 탄자니아 난민촌 생활지원 프로그램 그리고 아프리카 자연보호 기금 프로그램 등 이외에도 문화적인 지원을 하는 특징을 가진다. 바로 피스프렌드 난민캠프 페스티벌과 스와힐리어 문예지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현재 문예지 창간 작업이 한창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케냐 작가협회장과 함께 일을 추진 중에 있다고 한다. 스와힐리어의 아름다움을 계승시켜 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황 교수에게 물었다 아프리카를 색으로 표현한다면 당신에게 그 곳은 어떤 색을 가진 땅인가.“무채색에 가깝다. 그렇지만 그 무채색 속에는 초록이 잉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색이 있다. 빨간색 역시 그들의 색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시성과 생명감이 꿈틀대는 빨간색 역시 그들의 색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적인 끼, 그 다이나믹함이 빨강에 가깝다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무채색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다채로운 색이 들어있는 것이다.”
황학주 교수는 시인이다. 그동안 1987년 시집<사람>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여러 권의 시집을 출간하면서 끊임없이 시를 써왔다. 그의 시에 아프리카는 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쳐왔던 것일까. 그는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자신의 시의 특성 중 하나인 애매 모호성과 아프리카의 말이 여러 뜻을 가지고 있는 특성이 맥락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언어에는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혼재되어 있다고 한다. 단어의 수가 많지 않으니 하나의 단어가 표현하는 뜻 또한 다양하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자연 역시 마찬가지다. 바람이 불면 왼쪽에 있던 모래 언덕이 오른쪽으로 이동을 하는 것처럼. 아프리카는 그에게 창작의 에너지가 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아프리카의 위기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아프리카에 대하여 낙관론을 펼치기 보다는 비관론을 더 크게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이야기한다. 아프리카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각성된 아프리카인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맹에서 문명으로 나아가는 교육이 필요하며 또 하나 그들이 자신의 상황을 선택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문명을 그들이 진행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국제 사회가 많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그들은 불과 빵 몇 개를 주는 것뿐이란다. 그러나 정치적인 측면에서 그들은 많은 도움을 제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때문에 NGO단체들의 도움이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전해질 수 있을 것이란다. 황 교수는 아프리카 전문 NGO단체로 피스프렌드가 나갈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친구가 되려는 인간적인 노력을 시작으로 그들에게 다가서겠다는 모토를 세웠다. 그리고 이제 1여년의 시간을 함께 했다. 묵을수록 좋은 것은 장과 친구이다. 오랜 친구는 삶의 더할 나위없는 큰 재산이 된다. 아프리카인들에게 진정으로 친구가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모인 피스프렌드의 앞날에 희망을 걸어보며 기자 역시 피스프렌드의 후원 회원이 되었다. 단지 후원회원 신청서를 작성했을 뿐인데 겨울의 밤바람마저 따뜻하게 느껴진다.


아프리카를 들여다보며 기자는 아프리카의 각기 다른 모습에 매료된 세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 역시 아프리카에 중독 된 네 번째 사람이 되려하고 있었다. 내가 만난 아프리카는 생의 모든 모습을 내포하고 있는 공간이었다.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태초의 장소였으며 때문에 원시적인 힘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곳은 원시적인 힘이 예술로 승화되는 다채로운 장소였다. 그들의 춤은 삶의 표현이었으며 가슴 속의 열정을 분출하는 움직임이었다. 돌이라는 존재에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 숨쉬는 조각으로 창조하는 사람들이 그들 아프리카인이었다. 숨이 턱 멎을 듯한 파란 하늘과 수많은 동물들과 어우러지면 우리들 생의 초라함을 느껴 머리를 숙이게 하는 공간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모두 철학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때로는 인간의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기아와 전쟁과 에이즈에 허덕이고 있지만 자신의 빵을 다른 아이에게 양보하겠다고 이야기하는 순수한 눈망울의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아프리카에 뜨는 내일의 태양은 그 곳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리라.NP
저작권자 © 시사뉴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