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호] 세계를 놀라게한 한국의 알피니스트 박영석 대장

인생의 많은 위대한 것이 산에서 잉태되었다. 인도의 심원한 철학은 히말라야 산 속의 명상에서 나왔고, 타고르의 아름다운 시는 깊은 산의 산물이며, 괴테는 산에서 위대한 시의 영감을 얻었다. 세계최초 산악그랜드슬램이라는 신화를 일궈낸 박영석, 산을 오를 수밖에 없는, 산에서 비로소 가슴이 뛰는 영원한 산사나이다.

지난 2005년 5월1일, 마침내 산악인 박영석은 북극점에 태극기를 꽂았다. 북극점을 향해 캐나다령 위드헌트를 떠난 지 54일 만의 쾌거였다. 이로써 그는 히말라야 8000m급 14좌와 7대륙 최고봉, 북극점과 남극점을 모두 밟아‘산악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세계최초의 사나이가 된 것이다. 1993년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처음으로 산악그랜드슬램에 도전장을 낸 박영석은 히말라야 14개봉을 8년 만에 정복한 데 이어 2002년 11월에는 남극 최고봉인 빈슨매시프에 올라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완등 했고, 곧바로 남극점과 북극점 도전에 나섰다. 그가‘산악그랜드슬램’마지막인 북극점에 도전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지난 2003년 2월, 첫 도전에 나섰지만 4월 말 악천후에 이은 부상 등으로 북극점 절반 정도를 남겨두고 통한의 눈물을 삼키며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때의 뼈아픈 경험을 토대로 원정에 앞서 의류와 신발, 장비까지 직접 디자인하는 등 만반의 준비로, 결국 2년 만의 재도전 끝에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한 세계최고의 산악인으로 우뚝 선 것이다.“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박영석, 이제 그의 신념은 현실이 되었고, 그 현실은 미래를 향해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예고에 불과할 뿐이다.

피할 수 없는 운명 속으로
산악인 박영석 대장, 그는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 어느 날, 마나슬루를 등정한 동국대산악부 환영퍼레이드를 본 순간 그의 가슴 속에는 산에 대한 도전의 불씨가 타올랐고 불기둥처럼 솟구쳐 오르는 감흥에 산악인으로서의 인생을 걷기로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는 무조건 산을 오르고 또 오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고,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등반은 인생과도 같았다. 지금의 산악인이 되기까지 많은 고난과역경이 함께 했다. 18세의 적지도, 그렇다고 많지도 않은 나이에, 남들은 확실한 꿈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을 그 나이에 선택 한 것이다. 숱한 어려움을 뚫고 산을 오르며 스스로에게‘나는 왜 산에 오르는가, 나는 왜 이토록 무모한 도전에 목숨을 거는가’라고 히말라야의 고봉에서, 남극과 북극의 얼음 속에서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기를 반복하는 박영석 이었다. 그런 뒤에 그의 마지막 대답은 무엇일까. 직접 그에게서 산을 향한 열정과 도전에 대한 모든 것을 들어보았다.

- 듣기만 해도 대단한 세계최초 산악그랜드슬램을 달성했는데, 남다른 감회나 소감은
‘그 많은 일을 내가 했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은 담담하다. 사실, 그랜드슬램을 이루느라 다른 많은 것을 못해봤다. 89년 히말라야 등정 이후, 16년 동안 인명과 돈, 또 젊음을  흘려보내야만 했다. 많은 사람들이 다 오르고 났는데 이제 뭐하냐고 질문을 던지는데 사실 한 가지만 끝낸 것뿐,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더 많다. 그랜드슬램을 위해 청춘을 다 보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시작한다는 게 너무 늦은 것이 아닌지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이제 또다시 시작이다’가 정답인 것 같다.

- 1997년, 1년 동안 히말라야8000m 고봉을 6곳이나 등정한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그런 기록이 또 있나
좋았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이 기록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1년 동안 히말라야 얼음 구덩이 속을 헤매면서 우리는 해낸 것이다. 내가 등반대장이었는데 그 6곳 중에 5곳은 6개월 만에 등정했다.‘나도 그걸 어떻게 했을까?’라고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이다.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아마도 산에 정말 미쳐 있었나 보다. 그리고 날씨 운과 몸 컨디션이 최고였던 것이 그런 놀라운 기록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 통속적인 질문이지만 산에 왜 오르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을 텐데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과 벗하며 살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어린 시절 나의 우상은 김찬삼과 고상돈이었는데, 그들의 탐험정신과 용기를 동경했다. 그래서 10권짜리 저서‘김찬삼의 세계여행’은 책장이 너덜너덜해질 만큼 읽고 또 읽었고, 태극기를 들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우뚝 서 있는 고상돈의 모습이 찍혀 있는 책받침과 학용품만 썼다. 내가 인생의 뒤를 돌아볼 나이가 됐다면‘산이란 이런 거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 내겐 새로운 목표가 있는 현역이다. 뉴질랜드 지폐에는 세계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에드문드 힐러리 경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생존해 있는 산악인의 얼굴을 화폐에 새길 만큼 산악인을 예우하는 것에 정말 놀랬다. 해외에 나가면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으로 무시당하는 경향이 많은데, 내가 산악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Sir’라는 호칭을 붙이며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왜 산에 가느냐고 한다. 문화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솔직히 우리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우리를 보고 꿈과 도전정신을 키웠으면 한다. 우리나라에도 어서 탐험의 가치를 알고, 개척정신을 높이 평가하길 바란다.

- 산악인들은 산을 정복했다는 표현을 절대 쓰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인간은 대자연을 결코 정복할 수 없다. 산을 정복하고 굴복시킨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우리는 산을 등정이라 하고 남극점, 북극점을 도달이라고 표현한다. 정상에 서면 정말 인간은 미세한 존재로 느껴져 겸손 안할 에야 안할 수가 없다. 그리고 산마다 그 산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고 믿는다. 때로는 포근하지만 때로는 무섭다. 실제로 대원들이 실족을 하거나 크레바스에 빠져 사망 할 때면 공포를 느낀다. 왜 안 무섭겠는가. 자연 앞에 인간은 겸손해 질수 밖에 없다.

- 극지에서의 혹한은 어찌 보면 죽음과의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위기를 극복 하는가
극지와 히말라야는 다르다. 히말라야(산)는 더 위험하고, 극지는 더 힘들다. 내 경험에 남극과 북극을 비교한다면 북극도달이 훨씬 더 어려웠다. 그렇다고 남극점원정이 쉬웠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극지는 정해진 장비와 식량 등을 가지고 매일 전진하는데 남극은 대륙인 반면, 북극은 대륙이 아닌 바다위에 떠있는 얼음 위를 가야하므로 크레바스, 블리자드, 난빙대, 리드등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고일어나면 바다에 떠밀려 어제 온 만큼의 거리를 또 다시 걸어야하는 고충을 한두번 겪은게 아니었다. 이런 연유로 위드헌터에서 북극점까지775㎞지만 실제로는 세배에 가까운 2,000㎞를 걸어야했다. 날씨가 40~50도까지 떨어지는 북극의 날씨는 상상을 초월 할 정도로 정말 춥다. 이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아마 그곳이 지옥일 것이다. 하루, 하루 그 상황은 지옥과도 같아서 나는 감정이 없는 기계라고 생각한다. 자신과 타협할 수도 있는 감정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감정이 생기면 포기하고 싶을까봐 내 자신이 더 무섭기도 하다.

- 정상에 가까워 졌을 때와 섰을 때 느끼는 기분이 다를 것 같다
그때, 그때 분위기나 상황에 따라 다르다. 정상을 100~200m 앞에 두고 루트가 설원이면 1~2시간 정도 걸리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암벽이어서 하루, 이틀이 걸리기도 한다. 이때엔 비박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생명을 담보로 한다. 그리고 막상 정상에 서면 그 환희는 단 몇 초에 불과하다. 보통 정상에서 30분정도 있는데 정신이 없다. 깃발을 꽂고 사진 찍는데 그만한 시간이 소요된다. 또, 힘든 건 오를 때 이지만 위험한 건 하산할 때이다. 대부분 사고는 하산 할 때 발생하기 때문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때까진 한시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사히 베이스캠프에 오게 되면, 이게 끝이 아니고 또다시 다음 원정이 기다리기에‘이제 하나 했구나’라고 항상 생각을 한다. 정상은 다만 반환점일 뿐이다.

- 아들이 둘 있는데 만약 아버지처럼 산악인이 되고자 한다면, 그리고 가족들에겐 몇 점짜리 아빠라고 생각하나
내가 그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좋다. 하지만 아이들 인생은 아이들 것이다. 부모는 자식 가는 길에 가지만 쳐주는 역할만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작은 아들 성민이가 골프를 하는데, 그 아이한테 가장 무서운 말은“골프 떼려 쳐라”는 말이다. 아이들한테는 100점짜리 아빠라 생각하지만, 아내에게는 0점짜리 남편이다. 아내에게 늘 미안하고 고맙다. 애들이 어릴 때 내 사진과 비디오를 보여주면서 아빠는 자랑스러운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잘 길러줘  내가 옆에 없어도 건강히 잘 커줬기 때문이다.

- 앞으로의 끝없는 도전은
나는 지금 하고 싶은 게 많다. 히말라야 14좌를 다시 한 번 암벽등반을 하고 싶고, 지구대탐사라고 해서 2년 동안 7대륙에 다시도전하고 싶다. 또, 히말라야에 코리아루트를 만들 꿈도 있다. 내가 걸어서 뭔가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도전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할 일이 너무 많고, 산에서 잃은 7명의 목숨을 대신해서 더 보람된 삶을 살아야 하는데, 나이 들어가는 게 너무 안타깝다.

- 산악계를 위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솔직히, 내 앞길 헤쳐 나가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에 거국적으로 할 말은 딱히 없다. 후배들에게 이런 말은 꼭하고 싶다.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정말 우리나라는 작은 점에 불과하다. 하지만 땅의 크기가 작다고 해서 생각의 크기까지 작아지지 않길 바란다.“도전하는 정신을 키워라”

- 2006년 새해를 맞이해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부탁한다
한국인들은 정말 저력 있는 국민이다. 특히, 청소년과 대학생들은 자신감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취직이 안 되면 어떤가. 굳이 취직이 다가 아닌데, 그것만으로 세상이 힘들다고 너무 쉽게 포기해 버리는데, 그것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 정신이 부족한 것이다.“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도전하는 삶을 살아라,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본 박영석은 산에 미쳐있었다. 아니 미치고 싶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쓴 약을 달게 먹는 미각 잃은 정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산이라는 목표를 향해 원 없이 도전했기에 감히 내 인생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산이 있기에 자신의 삶은 충만하였으며, 산에 오르지 않는 나는 내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박영석 대장, 그래서 그에겐 오늘도 내일도, 목표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 있을 뿐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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