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피해후의 처참한 생활  

태국통신원 김대흥

수마트라 근해의 해저지진으로 말미암아 발생했던 쓰나미가 온지도 어언 1년. 수많은 이재민과 애꿎은 희생자가 발생했던 카오락과 피피를 찾았다. 카오락은 푸껫에서 130 킬로미터 북쪽에 있는 곳이고, 긴 백사장과 최고급 방갈로들이 있던 휴양지였다. 피피 역시 고급 방갈로와 아름다운 해변이 있던 휴양지였고, 수많은 여행객이 찾던 곳 이다. 카오락은 아직도 예전 모습을 찾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파괴된 숙소 건물과 그 철거로 인해 썰렁 하다못해 괴괴한 적막감마저 도는데다, 휴양객마저 없어 더욱 황량하기만 했다. 가장 피해가 컸다는 방니앙 비치의 산자락엔 아직도 해양경찰선의 813호가 그대로 있었고, 해변으로 통하는 길은 접근금지 된 곳이 많았지만, 공사용 트럭들은 통과되는 모습을 보니 복구가 한창인 모양이다. 산자락에 걸친 채 본분을 잊은 경찰선 주위에 쓰나미 희생자추모관이 세워질 전망이라는데, 지난 12월 26일에 있었던 행사의 흔적들이 지저분하고, 간간이 찾는 여행객들의 모습이 생경스럽다. 사찰로 옮기기 전에 시신들을 모아둔 곳이 있던 자리엔 식당이 생겼고, 쓰나미 참사 때 이곳을 찾았던 나는 또 다른 상념에 젖어 들었다. 방니앙 해변으로 가는 길 주변에 흔적만 남아있는 집터만 봐도 그 참상을 가늠케 한다.
비참한 생활 눈물도 말라
이 집터에 살던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방삭의 해변에서 사진을 찍던 중 울고 있는 아줌마를 발견하고 옆으로 슬며시 다가갔다. 한참을 있어도 옆에 누가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것 같아, 가지고 있던 음료수를 한 병 권했다.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리다 주변에서 피해가 제일 컸던 곳이 어디냐고 묻자, 다시 눈물을 쏟으며 방니앙은 거의 초토화 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방니앙 해변으로 가는 곳곳은 출입금지가 된 곳이 많았다. 이 아줌마는 쓰나미 재해당시 방니앙에서 식당을 했는데, 쓰나미로 네 식구를 잃고 지금은 정부에서 제공한 땅에 ITV(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지어준 집에서 산다고 한다. 자신이 운영하던 식당에 대한 애착과 긍지가 강했던지, 손님들도 많았고, 정말 예쁜 식당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는 아줌마는 얘기도중에도 몇 번이나 눈물을 쏟아내는 바람에 얘길 그만둘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이왕 시작한 거니 끝까지 물어보면서도 정말 미안 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사망자가 5,000명 선이라는데, 실제는 얼마나 되나? 하는 질문엔 손사래까지 치며, 자기가 직접 본 시신의 수만도 8,000구는 되는데, 카오락 전역에서 몇 만구는 되리란다. 보상에 대해 묻자 사망자에 대한 보상금은 없었고, 완파된 집이나 가게에 한해24,500밧이 지급 되었고,그런 사람에 한해 1년에 510밧의 사용료를 내고 30년 동안 사용 할 수 있는 집이 제공되었다 한다. 그 집이 보고 싶어 가볼 수 있냐고 했더니 흔쾌히 앞장선다. 원룸식의 연립주택인데 방엔 침대 하나와 매트리스 하나, 장롱과 알루미늄으로 만든 찬장 같은 옷장하나, 탁자와 의자두개, 텔레비전 한 대가 있었다. 전기밥솥이며 TV는 전부 ITV 에서 제공한 거라고 한다. 이방인으로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알량한 돈을 손에 쥐어주고 집을 나섰는데, 마음이 그리 편치 않음은 당연 한 것이리라. 쓰나미 추모관을 만들고 대대적인 행사를 했던 반 남캠으로 가는 중 동네 한가운데에 어선 한척이 덩그마니 있는 게 아닌가? 쓰나미에 의해 이곳까지 밀려왔나 보다. 그러고 보니 파도에 밀려와 동네 한가운데 있는 어선들이 한 두 척이 아니었다. 반남캠은 태국인이 가장 많이 피해를 봤고, 사망자 또한 제일 많았다고 한다. 흔적도 없이 집터만 남아있는 곳이 유난히 많은 이곳은 전형적인 어항으로 많은 태국인들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고, 생활수준도 꽤 높은 곳 이지만 엄청난 자연재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고 한다. 집집마다 사상자가 있었다고 하니 거의 온 동네가 다 피해를 입은 것 같았다.해변에 세워진 쓰나미 추모관은 자그마한 공원처럼 꾸며져 있었고, 난파된 배를 상징적인 구조물로 만들고, 뒤의 한쪽 벽에 사망한 태국인의 이름(말도 안 되게 적은 수.)과 희생자가 발생한 국적만 조그만 동판에 새겨져 있었고, 쓰나미 1주년 추모식의 내용도 게시되어있었다. 이 추모식엔 이 나라 수상까지 참석했다는데, 추모식에 무슨 놈의 대중가수공연이 있는 것인지 .또 영화배우가 온 게 뭐 그리 대단한 건지 누가 온다는 그 내용까지 게시 되어 있었다.
복구는 하지만 피해 흔적은 아직까지
어느 외신기자가 쓴,"정부는 희생자 추모가 아닌 흥겨운 행사에 골몰하는 등, 가족을 잃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전혀 감안하지 못하고 희생자 그 가족을 위해 쓰여 질 막대한 돈이 행사에 초청된 가수와 배우들에게 주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한 내용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며칠 뒤 피피로 가기위해 배에 몸을 싣고 보니 대부분이 유럽인 들인데, 예전과는 달리 가족단위의 외국인들이 많았다. 대부분 젊은 배낭여행객이 주를 이루던 히피 이었으나, 무엇이 가족여행으로 변하게 했을까? 아마 며칠 남지 않은 풀문 파티가 열리는 팡안으로 발길을 돌렸으리라 생각 해 본다. 필자가 제일 안타깝게 생각 하는 건 그 아름답던 피피가 많이 망가졌다는 것이다. 피피가 가장 피피 다울 수 있었던 건, 순박한 사람들과, 조그만 골목길을 두고 시장과 저렴한 게스트 하우스가 있었고, 해변엔 멋들어진 방갈로와 고급 호텔들이 있고 물에 담그기만 하면 파랗게 물들 것 같은 쪽빛바다와 수많은 물고기 떼.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피피가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지난 1년 동안 피피는 별로 복구되지 못한 게 사실이지만, 가장 안타까운 게 이 와중에도 돈부터 생각하는 것 같았다.물론, 먹고 살아야 하는 게 급선무이긴 하지만, 텐트가 하룻밤에 600밧 이라니. 망가진 건물들은 대부분 철거 되었지만,아직도 쓰나미의 상처는 곳곳에 남아 있었다. 로달람 만의 아직도 치워지지 않은 바위들 역시 카오락의 해변과 공통점인데, 그래도 피피는 많이 정리된 듯 했다. 하지만, 주인 잃은 방갈로의 이정표는 쓸쓸함과 허무함을 동시에 느끼게 했고, 사망자가 많았던 시장 통 길은 누가 뭐라고 했을 리도 없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피피를 그래도 사랑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점이다. 굳이 리턴 투 파라다이스를 외치지 않아도 말이다. 로달람 베이 한쪽 구석에 초라하게 만들어진 쓰나미 희생자 추모공원은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희생자의 명패도 몇 개 없었지만, 스쿠버 샵을 하던 아는 이의 가족사진도 있었고, 돌아가신 아빠에게 보내는 카드도 있어 숙연케 만들었다. 피피에서 희생된 한국인 희생자도 있건만, 한국인의 명패는 보이지 않았다. 두 번 다시 이런 참사가 없기를 바라며 쓰나미로 인한 희생자와 그 유가족과 피해가정에 심심한 애도를 표합니다. NP
저작권자 © 시사뉴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