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챔피언이 되는 그날까지, 희망을 믿는다”

지난 2004년 10월, 일본의 사다케 마사카즈와의 경기에서 2라운드 2분6초 만에 KO승을 거두며 동양태평양복싱연맹(OPBF) 슈퍼라이트급 챔피언 자리에 오른 김정범 선수, 한국복싱의 희망으로 손꼽히는 김정범 선수의 WBC 세계타이틀 전초전이 일주일여 남은 지난 3월 13일, 맹연습 중인 그를 만나기 위해 체육관을 찾았다.

지난 1996년 프로데뷔 이후 오직 세계챔피언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려온 김정범 선수, 프로전적 33전 29승 3패 1무 가운데 25차례가 모두 KO승을 기록했다는 것만 봐도 복싱에 대한 그의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김정범 선수는 지난 1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2007 권투의 밤’행사에서 지난해 최우수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복싱은 결코 괴로운 스포츠가 아니다
복싱=헝그리정신, 언제부턴가 우리의 뇌리 속에 복싱은 가난하고 힘든 스포츠라는 인식이 팽배하게 자리 잡고 있다. 1970~1980년대만 해도 큰 인기에 힘입어 복싱선수들은 어딜 가나 영웅대접을 받기 일쑤였고, 세계챔피언을 거머쥔 한국복싱선수의 위력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자꾸 헝그리정신을 얘기하는데 왜 그런 말이 나돌고 있는지 모르겠다. 배고프면 누가 세계챔피언이 되려고 하겠는가. 외국영화만 보더라도 복싱은 아메리칸 드림, 즉 희망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눈물 젖은 샌드백부터 챔피언까지 한국에서 복싱은 결코 희망이 아니다. 왜 어두운 모습만을 꺼내보려고 하는 건지 안타까울 때가 많다. 이제는 그 시선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과거 세계챔피언을 동시에 5명까지 보유했던 한국복싱은 현재 단 한명의 세계챔피언도 보유하지 못한 채, 지난해에는 비운의 사건까지 겹쳐 침체기를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연스레 그 사건을 시발점으로 WBC 세계타이틀 전초전을 앞두고 있는 김정범 선수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히 받아야할 관심인데 관심의 촉매제가 한 사람의 죽음 때문이었다는 점에 마음이 좋지 않다. 이 전에도 훌륭한 선수가 많았고 관심가질 일도 많았는데, 이런 시점에서 관심이 집중되니 솔직히 달갑진 않다. 하지만 이 계기를 통해 많은 훌륭한 선수들과 복싱이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의 말대로 복싱은 더 이상 가난하고 괴로운 스포츠가 아니다. 이제 음지에서 양지로 우리 아버지 세대의 영웅스포츠 복싱을 끌어내야할 때이다. “복싱은 잡초와도 같다. 아무리 남들이 어렵다 해도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지 않은가. 바람이 있다면 정말 메시아 같은 존재가 하나 나와서 말 많고 탈 많은 지금의 복싱계를 강하게 이끌어나갔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희망은 있다.”

영원히 세계챔피언으로 기억되고 싶다
철없던 옛 시절, 방황하던 김정범 선수를 유일하게 잡아준 것은 복싱이었다. “그 시절에는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무작정 운동에 매달렸다. 그렇게 운동을 반대하시던 아버지께서도 복싱을 시작한다고 하니 선뜻 해보라고 하시더라. 그 믿음을 저버리기 싫어서 남들보다 수십 배 연습했다.” 혹독한 자기관리 덕분에 지금의 자리에 오른 김정범 선수는 세계챔피언이라는 높은 산을 정복하기 위해 지금도 링에 오르고 있다.
지난 1996년 김기수 선수가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를 15회 판정으로 이기며 WBA 주니어미들급 챔피언에 오른 이후, 한국은 유제두, 홍수환, 김태식, 박찬희 등 수많은 세계챔피언을 배출했다. 뿐만 아니라 1986년 동양태평양복싱연맹의 15명 챔피언 가운데 무려 10명이 한국인챔피언일 정도로,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아시아복싱의 맹주였고 세계 복싱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강호였다. “불모지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선배들은 모두 존경할 만하다. 순전히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굳은 의지를 본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은 그 무엇보다 세계타이틀을 따느냐 못 따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에 그 외에 다른 마음은 없다는 김정범 선수는 상대를 압도하는 배짱과 뚝심을 자신의 가장 큰 강점으로 꼽기도 했다. 복싱도 내 직업이 아니냐며 지금까지 직업정신을 갖고 임해왔기 때문에 슬럼프가 없었다고 말하는 그에게 복싱의 가장 큰 매력이 무어냐고 물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하지 않는가. 누구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12라운드 동안 시합을 하면서 포기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싸움이다. 내 자신을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고, 남들이 하기 힘든 것을 즐기면서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바로 복싱의 매력이다.” 그렇다 해도 언제까지 복싱을 할 수는 없는 법, 은퇴 후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나중을 생각하는 순간 지금의 목표가 흐트러진다. 지금의 목표는 세계챔피언일 뿐, 그리고 나중에도 세계챔피언으로 기억되고 싶을 뿐이다”라며 일침을 가하던 김정범 선수, 그의 쉼 없는 열정이 사각의 링 위에서 끝없는 함성으로 돌아오길 기대해본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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