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후에 오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사랑은 항상 조용하게 흔적을 남기곤 한다. 사랑하던 사람으로 인하여 일상은 그의 이름이 형용사로 붙은 새로운 명사가 된다. 그가 좋아하던 커피라든가 그와 걸었던 산책로 그리고 그와 헤어졌던 그 날 등으로 말이다. 그리고 가슴 아픈 사실은 그 모든 것이 과거형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도 한때 그의 연인이었던 사람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서 공지영 작가는 사랑 후에 오는 우리들의 감정과 일상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임보연 기자

누군가와의 사랑은 나를 이전의 나와 다른 나로 살아가게 만든다. 이 사실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것, 사랑은 둘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었기에 그 이별의 슬픔 역시 둘이 느껴야하는 것이다.「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한국과 일본의 두 작가가 만나 완성한 사랑에 관한 소설 두 편이다. 그들이 만나고 이별하고 슬퍼하고 재회하고 사랑하는 그 모든 과정들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공지영 작가가 일본에서는 츠지 히토나리가 각각 남녀의 다르면서도 같은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었다. 오히려 담담하게 그리기에 가슴 아픔을 쉬이 드러낼 수 없는 그런 묘함이 존재했다. 그래서일까? 평소에는 느껴지던 책갈피의 가벼움이 이 책을 들고 있는 동안은 그렇게 무겁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기자가 책에서 느꼈던 감정처럼 공지영 작가와의 만남은 그렇게 쉬운 듯 어렵게 이루어졌고 그녀와의 이야기 역시 그렇게 설레고 들뜨고 때론 버겁고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랑과 사랑이야기

공지영 소설이 가지는 또 하나의 힘은 읽는 이의 가슴을 동요시키는 글쓰기를 한다는 것이다. 섬세한 감정 표현이 탁월한 어휘의 선택과 만나면 공지영의 소설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오롯이 사랑이라는 것에만 집중하여 글쓰기를 한 적은 없다. 그녀의 감성이 사랑을 풀어내본 적이 없다니 놀라는 이들도 있겠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사랑 그것을 주제로 삼은 적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녀가 지금까지 짐지어오던 사회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아픔을 살짝 내려놓고 사랑, 지금도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을 그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랑에 대한 소설을 쓴 소감이 어떠한가 물었다.“쑥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사랑, 살아오면서 느낀 건 의식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혼과는 별개의 낭만적인 의미의 사랑이다.”그녀는 과연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던지면서 소설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안에는 후회, 성숙, 그리고 예기치 못한 재회 등 다양한 것들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갑자기 왜 사랑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을까. 공지영 작가는 이야기한다.“80년대의 문학관을 가지고 20년 동안 글을 썼다. 그런데 문득 돌아보니 세상이 바뀌었더라. 이전에는 현실 반영의 문학이었다. 20년 동안 현실이 바뀌었는데 소설은 그걸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7,80년대처럼 정치와 역사를 담보할 필요는 없다. 이제 문학 본연의 자세로 돌아갈 때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자유롭게 내가 꿈꾸던 문학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 어깨에 힘주고 문학을 썼다. 그러나 이제는 그 힘을 조금 뺀 것 같다.”

공지영과 츠지 히토나리

공지영과 츠지 히토나리의 공동 작업은 소담출판사에서 2005년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 진행되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 있어 역사의 한 매듭을 짓는 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나라 사이가 과거의 시간을 뛰어 넘어 우호의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방편으로 문학적 접근을 시도한 것이다. 그래서 이루어진 한?일 작가의 공동 집필 계획이 세워졌다. 서울과 파리에 있는 두 작가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집필하여 지난 5월 16일부터 12월 1일까지 한겨례 신문에‘먼 하늘 가까운 바다’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었다. 그리고 이 연재 원고를 모아「사랑 후에 오는 것들」로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이다.
사실 일본작가와 호흡을 맞추며 작품을 완성한다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츠지 히토나리와의 공동 작업에 대한 고민은 없었을까? 새로운 형식의 작업을 해야 한다는 데에 부담감은 없었을까?“고민을 많이 했다. 아주 많이 했다. 그래서 몇 번은 뺐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내가 과연 사랑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라는 의문 때문이었다. 두려움이 있었던 거다.「별들의 들판」을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호기심이 발동한거다. 모험을 한 번 해보자, 하던 대로만 해보자, 그런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검은 색 옷만 입다가 원색 톤의 옷을 입어보는 용기였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때부터 고민하던 것을 이번 소설에서 비로소 떨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역사적인 기능 때문에 오락적인 기능을 배제해왔던 것 말이다. 그걸 복원해야겠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그런데 신기한 것은 공지영의 소설을 읽으면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이,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을 읽으면 또 공지영 작가의 소설이 연상되는 것이었다. 공지영 작가에게 물었다. 그의 소설에서 당신의 분위기가 느껴지니 어찌된 일이냐고 말이다.“그 사람 비슷하다. 나랑 비슷한 면이 참 많다. 신기하게도 소설을 보면 단어의 선택이나 표현 면에 있어서도 나와 비슷한 면들이 발견되곤 해서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서로 알아갈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각자 본인의 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인물에 투영하기로 했었다. 그래서 가족사부터 혈액형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정보들을 작성해서 보내주기로 했다. 그렇게 처음 기획안을 주고받으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맞추어 나갔다. 그런데 또 신기한 건 그가 나를 굉장히 잘 파악하더란 것이다. 오래 만나온 친구들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나에 대한 것들에 대해서 그는 짚어냈다. 그래서 많이 놀라곤 했다.”

홍이와 준고

소설은 스물아홉 살 난 출판사 기획실장 최홍(베니)과 서른 살 난 일본 유명 작가 아오키 준고(윤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랑이야기이다. 출판사를 경영하는 집안의 맏딸인 최홍은 어학연수를 위해 일본 도쿄로 간다. 일본어를 겨우 떠듬거리게 된 그녀는 4월의 어느 날 도쿄의 한 공원 안 호숫가에서 준고를 만난다. 부모님은 이혼하고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아버지와 살면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해야 했던 준고와 최홍은 사랑에 빠져버린다. 벚꽃 잎이 흩날리던 봄날의 공원에서 그렇게 만나 말 그대로 사랑에 빠져버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과 현실에 차츰 지쳐가던 두 사람의 감정은 폭발하고 오해와 집안의 반대까지 덧붙여져 그들은 헤어진다. 헤어진 지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갑작스러운 재회가 이루어진다. 이별 7년 후, 출판사 기획실장과 일본의 유명작가가 되어 김포 공항에서 기적적인 우연으로 뜻밖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뜻밖의 만남은 과연 기적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아니면 우연이었을까.
홍이의 입장이 되었던 공지영 작가는 홍이를 어떤 사람으로 그리고자 했던 것인가. 혹 작가 자신과 닮아있는 인물은 아니었을까 궁금증이 일었다.“나는 홍이를 굉장히 좋아한다. 소설에서 그녀는 적극적인 사람이다. 사랑에 굉장히 적극적이다. 10년 동안 우리나라 소설 속의 여성 캐릭터를 대변해오던 쿨한 여자를 타파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홍이는 굉장히 정열적이다.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책을 보면 홍이가 호숫가에서 넘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누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그때 홍이는 안 괜찮다고 대답을 한다. 그게 바로 홍이다.”

한국과 일본, 한국소설과 일본소설

살아온 환경은 사람을 지배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소설과 일본소설은 많이 다른 모습일 것이다. 한국소설과 일본소설을 비교해본다면 어떨까?“한국소설은 진한 것 같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본소설은 희미하다고 할까? 가볍고 투명한 느낌이 일본소설인 것 같다. 음식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우리나라의 음식 맛이 진한 맛이라면 일본음식은 엷은 맛이다. 그런 음식이 가지는 분위기를 소설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거다.”듣고 보니 일본 음식과 소설이 참 많이 닮아있기는 하다.
이번 작업을 계기로 공지영의 소설이 일본에 진출한다. 한류 붐이 이제는 문학 분야에서도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이번에 유리하게 일본 시장에 진출하는 건 사실이다. 츠지 히토나리의 덕을 보고 일본에 진출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현재 3개의 소설이 일본에서 출판 섭외를 받고 있는 중이다.「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고등어」,「봉순이 언니」세 편이다.”
이 같은 일들의 진행은 어쩌면 처음의 기획의도대로 되어가는 것이리라. 이 역시도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며 문학적 접근으로서의 공동 집필이 서로의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게 만든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소설에서 보면 홍이가 7년의 세월을 회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면 공지영 작가는 지난 시간을 어떻게 회고하고 있을까. 소설을 시작할 때의 공지영과 수년이 흐른 지금의 공지영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혹은 변하지 않고 여전히 공지영스러움으로 남아있는 것들은 무엇일까?“한 번은 대학 때부터 친구였던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가 많이 변했다는 이야기가 화제로 오른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 번 질문을 던져보았다. 우리가 정말 변했을까, 라고. 하지만 사실 핵심적인 부분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지금 변한 것은 여행 가서 화장실 없는 방에서 잠자지 않는 것, 20kg 배낭을 메고 여행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완행열차를 안타게 되었다는 것. 이 세 가지가 변했을 뿐이다. 본질은 변하지 않고 다만 그 폭이 넓어지는 것뿐이다. 그리고 성숙을 하게 되는 거다.”그녀의 소설을 통하여 수년의 시간을 돌아보는 일은 독자에게 약간의 벅참이다. 그 벅참이 또 다시 책장을 넘기는 손길로 이어지고 있다.
공지영 작가는 올 해 독서일기를 출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녀를 만나서 놀랐던 또 하나의 사실은 공지영 작가의 독서량이었다. 잡독하는 스타일이라는 그녀는 가벼운 책부터 무거운 책까지 거의 다 읽어낸다. 한 달 평균 6~70권 정도의 책을 읽으며 적을 때에는 20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 그녀가 읽어온 책의 이야기가 독서일기에서는 또 어떻게 풀어나가게 될지 벌써 궁금증이 일어난다. 공지영 작가는 소설을 쓰려는 이들에게 카메라로 찍듯이 매순간을 생생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더불어 아주 맑게 깨어있는 의식을 강조하곤 한다. 이것이 아마도 그녀가 작가로서 살아가는 방식이리라. 사실 공지영 작가는 소위 말하는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한 시선이 글을 쓰는 이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사실 많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해야 할 일이 문단과 평론가에게서 자유로워지는 것이었다. 그건 많이 자유로워졌다. 이제는 독자들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노력을 하는 중이다. 내 삶과 문학의 모토가‘자유’다.(웃음)”

어딘가에 또 있을 제2의 홍이와 제3의 준고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가슴이 설레고 마음이 아프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동안 만나온 어떤 소설가도 어떤 시인도 사랑에 대한 정의는 내리지 못했다. 다만 사랑은 아픈 것을 알면서도 빠져들고 마는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라는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지영 작가와의 만남은 그것을 알려주었다.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에 대하여.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사랑한 후에 나는 이미 그를 만나기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생각한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랑했던 사랑할 누군가의 일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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