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제공/ ‘먼하늘 가까운 바다’ 전시 이보름 화가
어느 날 아침이었다. 집 근처의 공중전화가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던 것은.
오래 전 다홍색의 촌스러운 공중전화가 은회색의 공중전화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이제는 아예 사라져버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딱히 공중전화를 사용할 일도 없건만 괜시리 서글퍼진다.
밤이 깊어가고 공중전화 박스 안의 불이 켜지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끼곤 했다. 이상하게도 그 곳의 불빛은 낭만적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길, 예전 같았으면 연인에게 전화를 거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도 꽤 있었을텐데, 요즘에는 텅 빈 전화박스를 보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그 때마다 마음이 쓸쓸해지고 콧등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회수되어가는 저 공중전화에는 얼마나 많은 기억들이 들어있을까 생각해본다. 깊은 밤 연인에게 속삭이는 사랑의 고백도, 삐삐의 호출번호를 보고 공중전화에서 확인하던 메시지도. 공중전화의 기억 속에 존재하고 있다.
사랑한 후에 나는 이미 그를 만나기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생각한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랑했던 사랑할 누군가의 일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 모든 과정을 알고 있는 공중전화의 기억 속 옛 연인들을 떠올리면서 씁쓸한 아침을 보낸 어느 날이다.NP
저작권자 © 시사뉴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