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영원한 동반자, 안내견

올해는 병술년(丙戌年) 개(犬)의 해이다. 천간지지야 인간의 셈법이지만 올해의 주인공 개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대단하다. 만취한 주인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 임실 오수의 개,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대구로 팔려갔다가 수천 킬로미터나 되는 먼 길을 주인을 찾아 되돌아온 진돗개 백구, 그리고 책과 드라마로 그 이야기가 알려진 안내견 토람이까지 자고로 개는 인류와 가장 절친한 친구이며, 그 존재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작년 1월‘내 사랑 토람이’라는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의 만남에서부터 헤어짐을 감동적으로 그린 드라마가 방영됐다. 이 드라마는 시각장애를 이겨낸 전숙연씨가 눈물로 쓴 에세이집「내 사랑 토람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토람이’는 국내 여성 시각장애인 최초로 맹도견을 사용한 전숙연씨의 안내견으로 지난 93년 그녀와 처음 인연을 맺은 뒤, 7년의 세월을 함께 하다 2000년 병사했다.‘내 사랑 토람이’의 주인공 역을 맡았던 하희라는 연말시상식에서 단만극 특별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그녀는 시상식장에서 말하기를“드라마 하나로 많은 유행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드라마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느꼈던 것 같다”는 소감을 털어놓았다. 실제로 드라마‘내 사랑 토람이’가 방영된 후, 사람들은 안내견과 시각장애인의 관계를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함으로써 안내견이 시각장애인에게 헌신하는 모습을 통해 감동 그 이상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안내견이 어떤 개인지, 시각 장애인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해 준 것이다.

1st. 눈이 아닌 따스한 마음을 열고

전숙연씨는 경남 진영의 과수원에서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어머니로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농약 통이 폭발하는 사고를 입어 양쪽 눈의 시력을 상실하게 된다. 시력을 잃고 난 후, 단국대 특수교유학과 대학원을 졸업하여 석사 학위와 특수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녀는 현재 한빛맹학교 교사로서, 시력을 잃은 학령기 아이들과 함께 오늘의 좌절을 내일의 희망으로 바꾸는데 여념이 없었다. 전숙연씨를 만나러 한빛맹학교에 가기 위해 마을버스를 탔다. 그동안 길거리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여러 시각장애인을 봐왔지만, 그저 스쳐지나 쳤을 뿐, 오늘처럼 정식으로 만나는 일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약간은 걱정이 앞섰다. 아무리 앞을 못 본다지만, 내 눈은 어디를 향해 있어야 하며, 명함이나 기사가 나오면 어떻게 전해 줘야할 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그러는 사이 한빛맹학교가 시야에 나타났다.“안녕하세요”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전숙연 교사의 말 한 마디는 문 앞까지 긴장감 속에 있던 나를 안정제처럼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녀 옆을 마치 보디가드처럼 바싹 지키고 있는 안내견 대양이가 있었다.“제 이야기가 드라마로 나오고 나서 사람들이 안내견을 보면‘토람이 간다’라고 말해요. 예전에는 호기심 어린 눈과 단지 구경차원이었지만, 지금은 이해의 눈으로 봐주시고, 격려도 많이 해주세요.”그러면서 처음에 토람이랑 살 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그때는 세상천지가 안내견과 다닐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 토람이가 죽고 나서 너무 슬픈 마음에 토람이를 가슴에 묻고자 책을 썼죠. 드라가 방영됐을 때는 내 속에 있는 토람이가 이제 모두의 토람이가 되길 바랐어요. 정말 울면서 남의 이야기인양 봤는데, 기대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었던 것 같아요”그러면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안내견 뿐만이 아니라 장애인이라면‘집에서 그냥 있지, 개 데리고 왜 나왔나’라는 인식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에요. 진정한 자활은 스스로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면서 그 뒤에 보조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값싼 동정보다는 더불어 살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하죠.”장애인들은 장애가 서러운 게 아니라 주위 눈빛에 서러운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다.

▲ 안내견사용자 김예진씨와 쌔미 /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의 안전하고 독립적인 보행을 돕는 개로서 언제 어디서든 주인과 함께 한다"

2nd. 대양이는 동반자이며, 또 다른 나

토람이가 죽은 후, 분양받은 안내견‘대양이’와 생활한 지 4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전숙연씨는 대양이는 자연스럽게 내 몸에 붙어 있는 신체의 일부라고 이야기한다. 대양이의 컨디션을 항상 챙기고, 대양이의 도움을 받은 후에는 항상“잘했어”라는 칭찬의 말을 빼놓지 않는다. 그녀는 호기심 많고 막내 같은 대양이를 위해 혼자 두고 외출할 때는 음악도 틀어주고, 장남감도 놓고 나온다고 한다. 전숙연씨에게 있어 대양이는 그저 안내견이 아니다. 자식과도 같으며, 자신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동반자인 것이다. 그녀는 올해가 더 남다르다고 말한다.“제가 58년 개띠에요. 그리고 우리 대양이도 있고요. 작년 을유년에는‘튼튼한 어미닭이 되자’라는 마음에서 시작했다면 올해 병술년에는 서로가 다름을 인정해 모두와 같이 어울릴 수 있는 포용력 넘치는 마음으로 시작하고 있어요.”삶의 여정을 함께 하고 있는 그녀와 대양이는 별처럼 수많은 존재들 가운데 서로에게 가장 특별한 선물이며, 둘이 아닌 하나이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마음을 열고 서로 도우며 사는 사람들과 사회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게 해 주었다.

3rd. 말은 못하지만 눈을 보고 말해요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의 안전하고 독립적인 보행을 돕는 개로서 언제 어디서든 주인과 함께하며, 장애인복지법 상 공공장소 출입을 보장받고 있다. 지난 1994년부터 안내견 무상기증사업을 펼쳐 오고 있는 삼성안내견학교를 찾았다. 축적된 선진 훈련기법과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매년 15두 규모의 안내견을 시각장애인에게 분양하고 있는 이곳은 안내견 번식부터 은퇴까지‘퍼피워커’등의 많은 자원봉사자의 참여를 확대하여 생명존중과 동물애호사상을 전파하는데 힘쓰고 있다.“사회 전반적으로 10여 년 전보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다른 선진국에 비해 견공에 대한 인식이 낮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동정이 많은 것이 우리나라이다.”라고 말하는 국내 첫 국제공인‘맹인안내견’조련사 이동훈 차장의 말이다. 선진국에 비해 1/10도 못 미치는 900마리 정도의 안내견이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그는 전한다.“시각장애인이 안내견과 동행하는 것은 독립과 하나의 자유를 뜻한다. 2000년부터 장애인복지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직접 학교를 찾아다니며 일일이 홍보활동을 하는 등 안내견에 대한 존재 인식이 많이 부족했던 현실이었다. 물론 지금은 여러 면에서 나아진 편이지만,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다. 특히,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잘못된 관습이나 제도에 변화를 주길 바란다.‘사람은 되지만 개는 안 된다’는 식의 입장은 그들에게 있어서 인권침해와도 같다.”고 덧붙여 말했다. 훈련사로서 어렵거나 힘든 점에 대해 물었다.“훈련사는 자질과, 공정성,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말을 못하는 개이지만 움직임과 교감을 통해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다. 날씨에 상관없이 훈련해야하며, 한 사람을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과 긴장, 그리고 정든 안내견과의 이별은 개인적으로 힘든 부분이다.”그는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애견문화 문제점에 대해“가장 큰 문제점은 장난감 사주듯이 개를 사준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학교 앞 병아리처럼 말이다. 근본적 해결은 책임의식을 갖고, 입양과 같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현재 안내견학교에서 일하고, 인연을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안내견’을 통하여‘시각장애인의 동반자’라는 작지만 발전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었다.

내가 보는 세상, 네가 보는 세상‘여유와 상생으로’

세상은 날로 복잡해지고 있는데, 사람들의 생각은 갈수록 단순해진다. 나와 내 가족에게 이득이 되는가, 해가 되는가의 문제만이 사태 판단의 준거가 된다. 세계는 날로 다원화되고 있는데, 사람들의 고민은 점차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 어떻게 먹고살고, 어떻게 내 몸을 챙길 것인가에만 몰두한다. 모두들 하나같이 여유와 배려, 이해와 양보의 미덕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 이제는 편견으로 굴러가는 바퀴 위에서의 미친 춤을 멈추고, 세상과 타인에게로 눈을 돌려야 한다. 세상은 모든 생명체에게 모두 다르게 보인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장애인이든, 동물이든 모든 것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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