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와 사형수 - 사라져가는 생명을 그대로 두어도 좋은가

방금 세상의 빛을 경험한 아이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 아이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한의 가능성이다. 동일하게 부여된 생명이라는 소중한 핵을 품고 세상으로 나온 아이. 그 소중함을 생각한다면 결코 쉽게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이다.

영화<데이비드 게일>이 개봉했을 때 받았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사형제가 지니는 아이러니를 아주 명확하게 집어내는 극적인 반전이 사형제가 가지는 문제점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게끔 만들고 있었다. 사형 집행 후에야 비로소 그것이 짜여진 각본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알리면서 사형제가 지니는 모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텍사스 지역을 배경으로 영화는 사형 제도를 둘러싼 미국인들의 대립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었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의 젊고 패기 넘치는 철학과 교수 데이비드 게일은 사형제도 폐지 운동 단체인 데스워치의 회원이다. 지적이며 존경받는 대학교수인 게일은 어느 날 자신이 가르치던 벨린이라는 학생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기소가 된다. 무혐의로 풀려나기는 했지만 그때부터 게일은 자신이 누려왔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고 만다. 그는 더 이상 존경 받는 교수가 아니었으며 학생들과 학교에서 버림받은 것은 물론 가족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게 된다. 그에게 남은 동료이자 친구는 단 한명이다. 데스워치의 회원이자 오스틴 대학의 교수인 콘스탄스만이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가 된다. 어느 날 게일은 콘스탄스가 백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유일하게 남은 친구인 콘스탄스의 불치병은 그를 상심하게 만든다.

▲ 사형이 가지는 모순에 대하여 이야기하려던 영화<데이비드 게일>중에서

하지만 콘스탄스는 성폭행을 당한 후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경찰은 벨린의 강간범으로 기소되었던 데이비드 게일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검사 결과 그는 강간범으로 구속이 된다. 6년의 수감 생활 후 사형 집행일을 불과 5, 6일 앞둔 어느 날 게일을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인터뷰를 요청한다. 세인의 관심을 모았던 데이비드 게일은 빗시 블룸을 통해서 인터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게 된다. 그가 살해범이라고 확신하던 블룸은 그와의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그가 무죄이며 누군가의 음모로 누명을 쓴 것은 아닐까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3일도 채 남지 않았다.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지만 결국 데이비드 게일의 사형은 집행되고 그의 사형이 집행되던 날 모든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서 그 기막힌 반전에 모두 경악하고 만다. 사형이 가지는 모순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이 벌였던 모든 일들의 과정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공개되고 사람들은 충격에 빠진다. 결국 콘스탄스는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것이 아니라 살인을 위장한 자살을 한 것으로 밝혀지고 데이비드 게일은 의도적으로 누명을 쓰고 억울한 사형이 집행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범인이 아닌 사람을 사형수로 판결 내린 법원의 심판으로 사형을 집행당한 목숨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사형수에게 죽을 권리는 없다?

▲ 빛이 차단된 교도소의 전경은 슬프다. "당신이라면 마지막 식사로 무엇을 주문할 것인가?"
사형이라는 패러다임에 대해 다시 한 번 관심을 쏟게 된 또 하나의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1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 켄틴 형무소에서 한 살인범에 대한 사형이 집행이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찬반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었다. 사형수였던 클레런스 레이 앨런은 올해 76세의 노인이었다. 고령의 나이 탓에 눈은 거의 보이지 않고 귀까지 먹은 상태였다. 당뇨병과 심장병에 시달리고 있어 최근 몇 년 동안은 휠체어에 앉아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지난 9월 심장마비로 쓰러져 위험한 고비를 맞았을 때 교도소 측에서 외부 의료진까지 동원하여 그를 가까스로 살렸다고 전했다. 사형수의 목숨을 소중히 여겨 최선을 다해 살린 행위에 대해서는 그 어느 누구도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사형 집행을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해석을 해야 할 지 의문이다. 사형수가 사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죽는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인지 그래서 사형수의 목숨은 오로지 사형에 의해서만 끝이 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는 것인지 말이다. 인간의 목숨에 대해서 살리고 죽이고를 결정하는 엄청난 권한을 가진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

사형폐지에 대한 찬성과 반대, 그 논란 속에서

국제사면위원회와 인권위원회가 사형제 폐지에 찬성하는 등 사형제 폐지 운동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에서는 올 해 우리나라를‘사형폐지 지정국’으로 정하고 집중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올해만 넘기면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사실상 폐지국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에서 인도적 견지와 오판 가능성을 이유로 들어 사형제 폐지에 찬성했다. 이 같은 사형제 폐지운동은 사법권까지 영향을 끼쳤다. 서울지검 이헌규 부장검사는 국민들의 여론을 감안하여 사형제 대상 범죄의 축소와 감형과 사면이 없는 종신형 신설 등의 단계를 거쳐 점진적으로 폐지해야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 검사의 발표에 따르면 1948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사형이 집행된 사람은 모두 998명이다. 1997년 23명을 마지막으로 사형 집행을 멈춘 상태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로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60명이지만 아직까지 집행은 없었다.
지난 1월 23일, 한국기독교 사형 폐지 운동연합회 위원장 문장식 목사는 현재 63명의 사형수 중 형기의 반 이상을 산 모범수들의 형을 무기형으로 감형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냈다. 연합회에서는 탄원서에서 기독교인들은 모든 인간의 생명이 존귀한 것이며 비록 범죄자라고 해도 예외일 수는 없다는 믿음을 강하게 표시했으며 감형을 통하여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과 생명의 존엄성을 다시 깨닫고 새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사형제 폐지 논란 속에서 여전히 찬성과 반대의 의견이 분분하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주장하며 사형제 폐지에 찬성하는 의견과 피해자의 인권도 중요하다며 사형제를 찬성한다는 의견으로 나누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형제 폐지에 대해 반대 의견을 분명히 하고 있는 법무부와 검찰에서는 범인의 생명도 소중하지만 피해자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사형제 폐지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오고 있다. 김승규 법무부 장관의 말에 따르면 범인들에게 종신형은 희망이 없기 때문에 더 비인간적일 수 있다며 형벌에는 교화뿐만 아니라 응보의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생명을 빼앗았으면 생명으로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정의감이 국민들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이 복수의 굴레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물건을 훔치면 손목을 자르고 사기를 치면 혀를 자르는 일차원적인 응징에 불과한 것인데 말이다. 김종빈 검찰 총장 역시 인사 청문회에서“사형제가 가지는 폐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강력 범죄가 빈발하고 국민들이 많이 불안해하는 실정에서 사형제 폐지는 아직 시기가 빠르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여기서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간다면 사형제도가 엄격한 법제도의 본보기가 되어 범죄의 예방에 효과가 있다면 사형을 존치한 나라에서 흉악범죄가 줄거나, 폐지한 나라에서 늘어나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형수들의 아침

사형수들은 형이 확정된 순간부터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죽음을 생각한다고 한다. 형의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은 미결수의 신분이라 노역을 시키지 않으므로 죽음의 공포를 고스란히 경험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바깥세상이 돌아가는 사정에 유난히 민감하다고 한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안한 시기거나 흉악범죄가 기승을 부릴 때 사형집행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해 여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었던 유영철에 대한 사형이 확정되면서 실제로 많은 사형수들이 불안에 떨기도 했다고 한다.
사형집행의 명령권은 법무부 장관에게 있다. 법무부 장관은 통상 형의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가 50여명에 이르면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사형을 집행한다. 형의 집행은 장관의 명령이 떨어지게 되면 5일 이내에 한다고 정해져 있다. 사형 집행은 전국 5개 구치소와 교도소에 수감된 사형수들을 대상으로 동시에 실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사형이 거의 집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과 사형 선고 역시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시민?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제기되어 온 사형제 폐지론이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오판의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그 하나의 예로 1997년 사형을 당한 최은수의 경우를 들어볼 수 있다. 금고털이를 하다가 살인을 저지른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최은수는 서울구치소에서 사형 당했다. 증인 없이 이루어진 재판이었던 이 사건에서 그가 사형을 당한 후에 유일한 목격자였던 초소 방위병의 위증이 드러나 충격을 안겨주기도 하지 않았던가. 형이 확정된 뒤에 서울 지방 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들도 재심 청구를 요구 하였지만 사법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예로는 1984년 안양 택시 강도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던 백모군 역시 경찰의 고문으로 범인으로 몰려 1심에서 사형을 구형받았지만 2심과 3심에서 모두 무죄를 인정받으면서 풀려나기도 했었다. 완전한 존재일 수 없는 인간이기에 실수는 언제 어디서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을 보지 못하는 눈으로 억울한 사형수를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이영우 신부 인터뷰

“김 신부님 암 수술 받으셨나요? 우리 최고수들끼리 전에 모였을 때 그런 이야기했어요. 기도하자구요. 하느님께, 신부님 말고 차라리 죄 많은 우리를 먼저 데려가시라구. 그래서 우리, 신부님 나으실 때까지 점심 한 끼씩 안 먹기로 했어요.”(-공지영 작가<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중에서)

소설 속의 이야기지만 김 신부님은 실존 인물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장 이영우 신부의 모습이 바로 공지영 작가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소설 속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실제로 이영우 신부가 3년 전 암 수술을 받았을 때 서울구치소의 사형수들이 시간을 정해놓고 그의 쾌유를 비는 기도를 드렸다고 전해진다. 이 신부는 벌써 10년째 매주 교도소와 구치소를 드나들고 있다. 수술 직전에도 수술 후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졌을 때에도 교정시설을 찾았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고 미사를 드리며 그들을 위해 기도를 했다.

이영우 산부를 만나기 위해 성북동에 위치한 천주교사회교정사목위원회를 찾아가서 사형제 폐지를 주제로 삼아 대화를 나누어갔다. 이영우 신부의 이야기에 따르면, 현재 사형수는 모두 62명이라고 한다. 얼마 전 김일병 사건으로 한 명의 사형수가 추가되었으니 모두 63명의 사형수가 수감 중이다. 마지막으로 97년 23명의 사형수의 사형을 집행 한 이후 아직까지 집행한 바는 없다. 김대중 정권 중에 13명의 사형수들의 형량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해 주었고 말이다. 아영우 신부는 사형수에서 무기징역수가 되는 과정에서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얻은 거라고 표현했다.“살아있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희망이죠.”그렇다면 그는 사형제의 대안으로 어떠한 방법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일까.“종신제를 주장한다. 우리나라도 감형 없는 종신제로 가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의 법감정이나 그런 측면을 고려해서라도 말이다. 종신제의 주장에 대하여 때때로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하더라. 교도관의 경우, “어떻게 관리를 하느냐?”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종신형은 사형제보다 더 지독한 벌이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더라. 그렇게 갇혀 사는 게 더 지옥일 수 있다는 거다.

수도원 중에‘봉쇄수도원’이라는 것이 있다. 자원해서 들어가면 죽어서도 못 나오는 수도원이다. 일생동안 침묵과 일, 기도를 하면서 지낸다. 그 안에서 자유와 행복을 느낀다. 그들을 변화시켜서 봉쇄수도원의 수사들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희망 가지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또 다른 희망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곳에 지옥일 것이다. 변화의 시작은 그들이 가진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종신제가 극악적인 형벌이 아닐 수도 있다.”
사실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판결이 내릴 정도라면 그 죄질이 어느 정도인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가족과 사형수와의 교류가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그러자 이영우 신부는 고정운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해 주었다. 유영철에게 자식을 희생당한 사람인데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다고 한다. 둔기로 머리를 맞아 잔인하게 살해당한 자식을 보고 그 충격은 가실 수 없는 것이었다. 가족들 간에 그 일을 입에 담는 것조차 상처가 되는 것이었기에 가슴에 담아두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범인이 잡히지 않은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원망할 대상을 찾지도 못하고 괴로워해야만 하는 현실이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신자는 아니었으나 카톨릭 프로그램에 부부가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사건 후 일년 동안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 당시 살고 싶은 마음이 없더란다. 분풀이 대상도 없고 가족끼리 서로 상처가 될까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오히려 유영철 검거 이후 누가 범인인지 알고 나니 조금 위안은 되더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여전했다고 했다. 그래서 죽으려고 한강을 찾았는데 문득 내가 그 놈을 용서해주자라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 길로 경찰서에 가서 유영철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혈서까지 쓰고 난리를 피웠는데도 만나게 해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두 장의 탄원서를 썼다. 사형 말아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용서라는 과정을 통해서 고정운 할아버지는 지금은 많이 밝아지고 좋아졌다고 한다. 이영우 신부는 결국 사형으로 어떠한 해결도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 치유라든가 경제적 부담감을 감소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해자를 죽이고 나면 피해자의 가족들은 용서와 화해조차 할 기회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그 대상이 없어지는 것은 또 다른 짐으로 마음에 남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형수들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영우 신부는“저는 운발이 좋아서 없었어요.”라는 대답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담담하게 받아들여 형장으로 향한다고 했다. 더불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심리치료라는 이야기를 한다. 10년 동안을 언제 죽을지 모른 채로 갇혀 지낸다고 생각해보아라. 돌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년에 유영철 사건이 있었을 때 사형 집행이 있을 거라면서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아...오늘인가보다.’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고 한다. 사실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사형 폐지의 부당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에 이영우 신부는 대부분의 사형수들이 가난하고 돌봄을 받지 못한 이들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들이 힘들 때 함께 해주지 못한 것을 우리가 돌려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면서 말이다. 공지영 작가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단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형벌이 무엇인가 말이다. 그것은 바로 사형이지만 죽고 싶은 사람에게 사형은 큰 형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짜 큰 형벌은 참회하도록 만드는 것, 내가 했던 행동들을 하나하나 적나라하게 바라보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게 가장 힘든 일이다. 사형수들이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것이 죽는 것보다 더 괴롭고 힘들 수 있다. 악으로 가득 차서 죽여 달라는 그를 죽이는 것이 형벌일 수는 없다. 변화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죽음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생명의 소중함을 새롭게 일깨워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상 사형을 집행하게 되면 피해자 가족들은 사회가 대신 형을 집행하면서 사건에 대해서 제3자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기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올해 사형제 폐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고 있다. 이영우 신부 역시 해마다 기대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현재 시기가 좋다. 노무현 정권이 이런 것에 유연하지 않은가. 지금 시기를 놓치면 또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사형제도를 이야기함에 있어 물론 인권이라는 측면도 중요하지만 교정사목위원회에서는 치료 중심의 프로그램에 치중하고 있다. 매일 타인에게 비난을 받아온 사람들이기에 그 곳에 갇힌 사람들은 자존감과 자신감이 결여된 상태이다. 자아 형성이 안 된 사람들도 많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프로그램을 통하여 새로운 삶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주변과 환경만을 탓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서 남은 인생을 낭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저희(이영우 신부님과 사형수들)는 자주 만나요. 월, 화, 금요일에 정기적으로 만남의 자리를 가지기도 하고 말이죠. 한 달에 한번씩 고정적으로 만나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다른 종파의 친구들도 가끔 만날 기회가 있고. 처음엔 제가 그들을 두려워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변화하는 것을 느꼈어요.”

세상의 빛이 밝을수록 어두움은 짙어진다

어둠 속을 전전하다 결국 사형수가 되는 사회의 전형적인 소외자, 윤수를 통해 사회 이면에 드리워져 있는 그늘 속의 삶을 세상 밖으로 끌어냈다. 세상의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더욱 어두워져 가는 감옥 속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공지영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사형수들을 만나고 구치소의 집회에 참여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몸으로 부딪혀가며 느꼈다. 작가의 말에서 그녀는 사형수들을 만났을 때의 느낌을 솔직하게 적어놓고 있었다.‘그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무섭고 혐오스러워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맑은 얼굴을 하고 있을까. 가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어두움이 그들의 얼굴을 파도치듯 흔들어놓기는 했지만 그들은 내가 사회에서 만난 어떤 인간들의 집단보다 아름다운 수도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내가 그들보다 착하고 아니 내가 그들보다 죄가 적을까, 자꾸만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신이라면 마지막 식사로 무엇을 주문할 것인가?”스탠리 필의 마지막 메시지에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하겠는가.NP

▲ 영화<데이비드 게일>중에서
죽은 이들이 잠들어 있는 십자가 사이를 달리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죽음을 생각하는 사형수들의 심정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어느 사형수의 편지 - 첫 번째

바람이 지면 꽃이 진다는 말이 왠지 서럽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제 아무리 무성하게 피던 꽃들도 비바람이 치면 지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왜 그렇게 죽음 뒤를 따라오는 말처럼 서럽게 들리는지요. 생에 대한 애착 때문일까요?
신부님! 자신의 삶의 시간 속에 함께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바로 사랑의 의미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제가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 말만 들어도 소름 끼치는 사형수들을 찾아 위로하고 하느님 사랑을 전하려 하시는 여러 자매님들을 만나고는“세상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었구나”하고 놀랐습니다. 말은 거칠고 생각은 악하고 행동은 불손하니 처음 얼마 동안은 교회 시간만 되면 거북스럽고 양심이 찔끔찔끔 하였습니다...(중략)...사실 저에게 사형이 선고되던 그 순간에는 하늘이 노랗다는 표현이 실감날 만큼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부모, 형제, 친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도록 삶과 죽음이 뒤바뀌는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오랜 시간 방황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이 아들의 고통스러운 방황을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뒷골목이나 누비고 다니며 매일 향락에 빠져 흥청망청 살던 저의 삶은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새로운 삶에로 옮겨가는 놀라운 변화를 겪었습니다...(이하생략) -프란치스코 드림

어느 사형수의 편지 - 두 번째

사형수로 지나온 세월은 만 8년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그동안의 시간을 죄의식으로 가득 찬 내면의 밑바닥에는 결코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이 항상 깔려 있었습니다. 처음 사형 판결을 받고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이성의 작용보다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사형수라는 현실에 나의 모든 비판은 흐릿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가오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여기게 되고 스스로 고독해지는 방식을 택하며 자신을 철저히 소외시켜 참담하게 무너지는 시간만을 기다렸습니다. 차라리 그럴 거라면 도움이 안 될 현실에 단 한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하루하루를 이어가느니 이렇게 살다 죽으려고 태어난 팔자려니 생각하고는 자살을 결심하고 그 기회를 엿보기도 했습니다. 속 편하게 그냥 확 죽어버리면 그만이라는 것과 그래도 이 곳의 생활도 내 삶의 일부일 것인데 하는 이 두 가지는 내 마음을 온통 차지하고는 치열한 사투를 벌였습니다. 그러다 첫 번째 사형집행이 있던 날 내 마음에는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내 앞에 펼쳐진 것을 현실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것이었습니다. 가까이 있는 죽음을 영혼의 상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심한 영혼을 치유 받는 과정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형 집행하는 날을 세 번 보냈습니다. 사형수이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형 집행이 있는 날은 음산한 기운을 느끼게 되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오늘이 그날’임을 알게 됩니다. 그 날은 어느 날보다 몸 씻음은 깨끗하고 옷매무새는 단정합니다. 이승을 떠나는 자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도 되는 것인양 그렇게 차분하게 준비하는 것입니다. 감방에서 기다리며 함께 있는 동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내 번호가 불려지면 지체 없이 바로 나갈 수 있도록 출입구 쪽 가까이에 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알몸으로 태어나 많은 것을 누리다 신세만 지고 떠나는 자로서 세상에 대한 감사의 기도이고, 형 집행으로 가는 사형수들이 평화롭게 죽음을 맞기를 바라는 기도이며, 피해자의 영혼을 그리고 그 가족들을 위한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하게 될 속죄의 기도입니다. 두 번째 형 집행이 있던 때입니다. 이제 겨우 스물 셋의 나이로 형장에 가기 위해 내 방을 지나며“형님, 먼저 갑니다.”라고 인사하던 젊은 사형수에게“그래, 나도 곧 갈 거야.”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나도 곧 간다고 한 것은 같은 사형수라는 동병상련의 감정도 작용했겠지만 세상을 두루 경험하지 못한 스물 셋의 젊은 나이로 형장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그 친구가 안쓰러워 순간일지라도 너 혼자 가는 것이 아니고 나도 가는 거니까 외롭다거나 어떤 조금의 미련도 없이 당당하게 죽음을 맞자고 위로하고픈 내 마음이었던 것입니다...(중략)...

인간의 생명이 존귀하고 저마다 천부적인 생명을 지닌 더없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젊은 사형수의 죽음을 통해 새삼 깨달았습니다. 형 집행이 끝난 후 며칠 동안 나는 끙끙 앓았습니다. 슬픔이 쉬 가시지 않아서였습니다. 사형수인 내가 이럴진대 그 친구의 가족들은 어떨까. 내가 겪는 슬픔으로 가족들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이 그대로 내 마음에 전해지는 듯하여 참으로 견디기 힘든 슬프고도 아픈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곳도 사람들이 만나 생활을 나누며 정드는 이웃에 대한 호의가 있고 배려가 있으며 인격적인 교감이 살아 숨쉬는 곳입니다. 그런 관계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더불어 사는 따뜻함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방에서 함께 생활하다 출소하여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면회를 왔습니다. 거의 삼년 만에 보는 것이라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자기 부인과 함께 왔는데 시장에서 야채 장사를 부부가 같이 한다고 했습니다. 부인의 말에 의하면 자신도 힘들 사형수이면서 오히려 방에 같이 생활하는 동료 중에 어렵고 힘들어하는 이들을 토닥여주며 마음의 안정을 가질 수 있게 이끌었고 평안하게 방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어 사형수이지만 저렇게 사는 모습도 있구나 하며 느끼는 것도 많았고 고마웠다며 남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남편이 출소하며 성실하게 일하여 작지만 가게를 얻어 자리를 잡았노라며 활짝 웃는데 열심히 사는 두 부부의 성실함이 베어있는 웃음이 보기 좋았고 고마웠습니다. 면회를 끝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의 죄책감만을 끌어안고 씨름하다가 허망하게 죽는 날을 기다리는 인생이 아니라 이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같이 살며 그들이 새로운 인생을 사는데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는 시간을 맞고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눈에 드러나는 봉사나 도움이 아니더라도 하찮은 일일망정 그렇게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살아갈 때 피해자들에게 속죄라는 삶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오늘도 옆방에서 출소하는 사람이 있어서“출소를 축하합니다. 후회 없이 열심히 사세요.”라고 인사했더니 그는 내게 이렇게 인사했습니다.“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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