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을 통해서 본‘애국심에 관하여’

야구장에 가면 경기 시작 전, 관중과 선수 모두 가슴에 손을 올리고 애국가를 제창하고 경기장 가장 높은 곳에서 휘날리는 태극기를 바라본다. 비단 야구뿐만이 아니다. 축구, 농구, 씨름 등 모든 스포츠가 그렇고, 태극기 또한 개인이 쓰는 공간이 아닌 이상에야 항상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다. 민주국가에서 국민통합이란 인권, 자유 등의 민주주의적 가치로 이루어져야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애국주의로서 국민통합을 시도한다. 그 예들은 항시 주변에 나타나고 느낄 수 있으며 또한 직접 행해지는데, 그것이 바로 이른 바‘애국 붐(boom)’이다.


‘한일월드컵’때에는 모두가 하나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를 떠올려보면 전 국민이 우리나라의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창조에 열광하고 거리는 붉은색으로 물들었으며, 좀처럼 그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축구인들은 그 현상이 계속 지속되어 우리나라 프로축구도 경기장에 사람들이 가득 찰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나고 프로축구가 시작되자 그 열기는 서서히 사그라지어 다시 예전처럼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경기장을 찾아 텅 빈 경기장에서 운동을 하는 선수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야말로 월드컵이 열리는 기간 동안만‘축구 붐’이 일어났던 것뿐이었다. 애국과 축구의 관계는 보통의 그것보다 훨씬 가깝다. 불과 십 수 년 전 TV가 보급이 잘 되지 않았던 무렵만 하더라도 국가대표의 경기가 열리던 날이거나, 차범근 선수의 경기가 중계되던 날은 TV앞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축구로 하나가 되어 오직 대한민국, 우리나라가 이기기만을 간절히 바랬었고, 그 마음들은 하나하나가 다 애국심이자 우리나라가 겪은 서러운 세월에 대한 보상심리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축구경기를 보면서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중 적어도 반은 축구에 대해서 무지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골을 넣으면 이긴다는 것은 안다. 월드컵 당시 전 국민이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무거워지고 단단하게 결속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세계의 축제이고, 그 주인공이 우리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거리의 붉은 인파 중 대부분은 축구를 통한‘애국 붐’에 한 몫씩 했고, 이 집단행동은 애국심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으로 값지게 포장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된 것이라 보여 진다.

애국심! 너무 심하거나, 혹은 나쁘거나

애국심(愛國心), 애국심은 인간이 태어나서 생활하는 고장에 대한 자연적인 애정에 그 근원이 있다고 한다. 현대국가가 형성되기 이전인 공동체사회에서는 원시적 형태의 애국심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사회학자 W.G. 섬너는 이러한 형태의 애국심을 에스노센트리즘(ethnocentrism)이라 하여 외부집단에 대하여 공포심 및 적대감을 갖고 자기가 속하는 내부집단을 이상화(理想化), 절대화하는 태도, 특히 미개사회에서 볼 수 있는 자연적 감정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근대적 애국심은 미개사회나 고대의 도시국가와 같은 소사회에 대한 애정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유럽 봉건제도의 몰락, 민주주의의 발달을 조건으로 성립, 특히 신흥 부르주아에게는 해방적인 의미를 가진다. 18세기 중엽부터 프랑스에서는 국민(nation)이라는 말이 자랑스럽게 사용되고 진보파는 스스로를 애국자라고 칭하였다. 네덜란드의 공화주의자도 애국자라 칭하고 그 운동을 애국자혁명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근대적 애국심의 의미는 ‘참다운 조국은 서로 대항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가족적으로 상부상조하는 것’이었으나, 그것이 절대주의 국가의 권력에 의하여 조작(操作)되거나 자본주의국가의 내부모순 속에서 이용되면서 침략주의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러한 예로 일본을 들 수 있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후에 성립된 절대주의정부는 의무교육을 통하여 국민의 애국심을 충국(忠國)에 종속시키는 한편, 가부장제(家父長制) 가족주의에 기초하는 사회유기체설(社會有機體說)을 도입하여 가족국가관을 형성시켰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민주주의세력은 항상 비(非)애국자 ·국적(國賊) 등으로 몰려 배척되고, 교화된 국민의 애국심은 군국주의의 침략도구로 이용되었다. 그 밖에도 나치스 독일을 비롯한 여러 전체주의국가의 지배층은 국민교육을 통하여 또는 매스커뮤니케이션 등의 기구(機構)를 이용하여 애국심을 조작,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하였다.

▲ 유관순 수형기록표
그러나 전체국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국가에서의 진정한 애국심은 직장이나 가족 ·향토에 대한 애정과 모순됨이 없이 결부되어 평화적 성격을 지닌다. 거기에는 병적인 합리화나 태도가 없으며, 다만 침략자에 대하여는 생활과 행복을 지키기 위하여 국민은 자발적으로 애국자로서 단결한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의 의병과 승병(僧兵)의 봉기는 비록 당시의 국체(國體)가 봉건군주제도라 하여도 오로지 나라를 살리려는 자발적 애국심이었으며, 결코 조작되거나 강요된 애국심은 아니었다. 3 ·1운동이라는 거족적인 항일독립운동도 지배자에 의한 종용도 조작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국가의 지배권을 확립하려는 애국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세계역사가 말하는 애국심과는 그 근원을 달리한다. 요컨대 국민은 자신의 나라가 진실로 국민을 위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가 되었을 때, 또는 그러한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발휘하는 애국심이라야 참된 애국심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애국주의

이런 말이 있다.“우리나라 사람은 외국에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우스갯소리지만 사실 맞는 말이다. 나라 안에 있을 땐 자신이 애국자인줄 모른다. 아니 애국이 정확히 나라를 사랑한다는 말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미국과 함께 야구경기에 앞서 애국가를 제창하고 태극기에 경례를 하는 나라이다. 초등학교에서 애국가를 4절까지 외워서 부르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암기시킨다. 교실은 물론이고 어느 장소에서나 태극기를 쉽게 볼 수 있다. 애국, 애국, 나라를 사랑하자! 우리는 한민족이다. 학교에서는 늘 애국을 교육하고 공영방송 캠페인에서도 정부 각 부처에서 어떤 식으로도 애국이라는 콘셉트로 캠페인광고를 한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월드컵이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물론 현상적으로 보건대 2002년의 열정과 합창 역시‘애국’이었다. 그러나 고통스럽고 지루하게 진행된 한국 현대사의 오랜 언어 관습 속의‘애국’은 아니었다. 혹시 자유와 민주에 대한 열망, 그리고 삶의 질을 고양시키기 위한 공동체의 아름다운 합창은 아니었을까. 자유와 민주에 대한 열망은 세계인 누구나 꿈꾸는 가치들이며 그 가치를 위해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는 내전과 대립과 차별을 뛰어 넘어 진정한 화해와 공동체의 발전으로 전진하려는 드라마가 매일 펼쳐지고 있다. 혹시 우리는 4년 전에 그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세계인들과 열렬한 감성의 연대를 했던 것은 아닐까. 또 한 차례 애국 붐이 일어나는 것일까.

진정한 애국은 순수한 혈통보다 중요하다.

북아메리카프로미식축구리그(NFL) 피츠버그 스틸러스에서 뛰고 있는‘하인즈 워드’에 대한 열기는 요즘 또 한 차례 붐을 일으켰다. NFL 최고의 팀을 가리는 경기이며 단일경기로는 세계최대의 이벤트이자 가장 많은 관중이 보는 슈퍼볼에서 우승을 하고 하인즈 워드는 MVP까지 수상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관심 밖 경기였던 미식축구선수가 이렇게 붐을 일으킨 것은 그가 한국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한국계 선수이기 때문이다. 연신 언론에 보도되는 그는 항상“내 어머니는 한국인이고 나도 한국인이며 한국을 사랑한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오른쪽 팔뚝에 한글로‘하인즈 워드’라고 새긴 문신을 보인다. 한국에서는 이런 그를 보며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한국미식축구리그 홈페이지가 성황을 이뤘고, 워드 같은 한국계 혼혈아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갑자기 높아졌으며, 그의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찬사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그를 통해 대리 애국심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워드의 어머니인 김영희 氏는 인터뷰를 하러 온 취재진들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하였다“한국 사람들이 흑인이라고 언제 사람 취급이나 했느냐. 어렵게 혼자 살 때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잘 되면 쳐다보고 그렇지 않으면 쳐다보지도 않는 게 한국 풍토 아닌가요.”우리나라에는 약 2~3만여 혼혈인들이 살고 있다. 그들도 한국국적을 가진 한국인이다. 현대 사회는 다양성을 지향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민족에 대해서는 한겨레 한민족을 고집한다. 혼혈인과 한국으로 이주한 아시아계(백인 제외)들도 월드컵에서 한국의 시합이 벌어지면 목이 터져라 한국을 응원한다. 그들도 엄연한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애국 붐’이 일어나는 자리에도 우리는 그들을 배척한다. 성공을 한 자는 애국자이고, 그렇지 못한 자는 애국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

순수한 마음은 순수한 혈통보다 중요하다. 애국은 순수한 마음에서 이루어진다. 올해로 87주년을 맞은<삼일절>은 우리나라 최초의 평화시위였다. 일본군의 총칼에 쓰러져가면서도 우리민족은 폭력을 쓰지 않고 애국하는 길을 택했다. 1918년 1월 미국대통령 윌슨은 14개조로 된 전후(戰後) 처리원칙을 파리 강화회의(講和會議)에 제출하였는데, 그 가운데‘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 스스로 결정한’고 하는 민족자결(民族自決)의 원칙을 제창하였다. 이것은 세계의 피압박민족에 대한 자극제가 되었다. 이 민족자결주의의 새로운 원칙은 항일투쟁을 계속해오고 있던 독립 운동가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것이었다. 그리고 1919년, 순수함을 고이 간직한 채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많은 우리 민족들이 쓰러져갔다. 살아서도 갖은 고통을 당하면서까지 순수한 애국정신만은 잃지 않았다. 그 결과가 오늘에 이른 것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길은 항상 열려있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고, 누구나 달릴 수 있는 길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길이다. 어렵게 하면 어려운 것이고, 쉽다면 그 어떤 것보다 쉬운 것이 애국이다. 전 국민이 그 작고 순수한 마음 하나씩만 가질 수 있다면, 올해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또 한 차례 애국심이 붐을 일으켜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왼쪽 가슴에 손을 올리고 쿵쿵 뛰는 심장을 느껴보라. 내 나라 대한민국을 크게 외쳐보자. 대! 한! 민! 국!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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