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을 찾아 묵묵히 현실 속에 그려내다

[서울=시사뉴스피플] 박재찬 기자

오랫동안 한 길만을 묵묵히 걸어온 예술인들의 삶을 마주하면 바쁘고 고단했던 일상에 습관처럼 늘어놓던 투정이 한순간 덧없이 느껴진다. 일확천금을 벌어준다는 확신도, 훗날 세상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대가로 이름을 남기리라는 보장도 없지만 그저 ‘좋아서’ 이 길을 간다. 이기복 화백이 걸어온 길 역시 그랬다.

12살 때 시작한 미술, 평생 내 길이 되다

▲ 이기복 화백
이기복 화백이 처음 미술을 접한 것은 12살 때였다. 이 화백은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아버지의 친구 아들을 통해 그림이라는 세계에 입문했다. 어린 초등학생의 눈에 그림이란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세계였다. 이후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더욱 미술에 대한 관심을 키워 관동대학교 김용원 교수와 유한대학교 엄익규 교수의 지도 아래 보다 체계적으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워나갔다. “당시 은사님들 덕분에 이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는 이 화백은 “고등학교 때도 신학철 선생님과 안상규 선생님 두 분의 도움이 매우 컸다”고 전했다. 이 화백은 특히 홍대 미대 진학을 위해 10수를 할 만큼 오로지 미술 하나만을 보며 평생을 살아왔다. 결국 한성대를 진학해 대학원까지 학업을 마쳤지만 화가의 길을 걷는 데 열정 말고 더 필요한 것은 없었다. 이 화백에게는 그런 끈질긴 열정이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 졸업 후 이것저것 다른 일도 많이 했지만 한 번도 미술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는 그는 현재 미술협회 광명지구 부지부장을 맡고 있다. 많은 제자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최근 경기미술대전에서는 심사를 담당하기도 했다. “기회가 되면 국전심사에도 봉사하고 싶다”는 그는 “사실 화가가 된다는 것은 그중에 고작 1,000분의 1만이 작가로 인정받는 매우 힘든 세계”라고 표현했다. “아마 어머님이 살아계셨으면 애초에 이 길을 말리셨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이 화백의 어머니는 그가 15살일 때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를 잃은 중학생은 이후 더욱 묵묵하게 그림에만 매달렸다. 어쩌면 그것이 화가로서의 길을 오래도록 걷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어머니가 그가 직접 그린 그림들을 본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옛것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 눈 내린 밤일삼거리 6호 수채화
이기복 화백의 손을 거쳐 탄생하는 작품들은 그래서인지 모두 기본적으로 ‘그리움’을 담고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잃어버린 분실물을 모아 만든 작품도 그 대표적인 예다. 학교 미술 선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던 중 아이디어를 얻은 이 화백은 아이들이 잃어버린 사물함 열쇠들을 모아 오브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물건들로 하여금 작품을 보는 이는 잃어버린 무언가를 다시 추억하고,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잃어버렸던 그것을 그리워하며 마음에서라도 다시 찾게 된다면, 그것이 작품을 만들며 이 화백이 바랐던 한 가지 작은 희망이다. 이기복 화백은 어렸을 적부터 옛 고궁을 돌며 그림을 그려온 덕분인지 유달리 ‘옛것’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이 남다르다. 그는 “요즘 학생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아쉽다”며 작품을 통해 옛것을 현재로 되살려내고 지키는 일에 앞장선다. 남대문 오브제 작업 역시 그 일환 가운데 하나다. “남대문이 불타 없어지는 것을 보고 그날 많이 울었다”는 이 화백은 10년째 이 오브제 작업에 매달려오고 있다. 10년이 지나도 “아직 끝나지 않은 작품”인 이유는 아마도 600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남대문의 아름다운 가치가 그만큼 크고 위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화백이 지나간 옛것에 애착을 갖는 이유 역시 그러할 것이다. ‘우리 것’에 대한 가치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아름답다. 그것이 바로 그가 작품을 만들어가는 이유다.

내가 사는 세상을 담아내다

▲ 밤일삼거리와 구름산 1호 수채화
이기복 화백은 작업실에서 화목을 직접 뗀다. 산에 있는 나무를 떼 오기도 하지만 집을 부숴서 폐목재로 화목을 떼기도 한다. 폐목재를 직접 떼다보면 거기서 못이 나오는데, 이 못은 바로 남대문 형상화 작업에 쓰이는 중요한 재료다. “남대문이 불타던 모습을 형상화하기 위해 몇 년간 못이 부식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이 화백은 “적당한 습도와 온도가 유지돼야 제대로 부식된 색깔이 나온다”고 말했다. 옛것을 복원해내는 게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못 색깔 하나에도 이렇게 몇 년이 넘는 공을 들여야 나올 수 있는 것이 바로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다. 이 화백은 이 외에도 난로를 떼서 나온 못과 쇠붙이들을 골라두었다가 그것들을 모아서 다른 오브제 작품들도 많이 만들어낸다. 화목 속에는 못 뿐만 아니라 말굽, 옛날 문고리, 장식, 경첩 등 여러 종류의 오래된 쇳덩어리가 나온다. “아주 오래된 물건들이 이것저것 나오는 것을 보면 재미있다”는 이 화백은 “비록 목재는 땔감으로 사라져 없어지고 말지만 거기에 붙어있던 장식들은 새카맣게 타버린 뒤에도 끝까지 남더라”며 “이 같이 사라지지 않는 옛것을 자식이나 후손들에게 남겨주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이 화백의 작품 세계는 기본적으로 ‘내가 사는 세상’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가 만들어내는 오브제 작업은 다름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과 그것에 대한 각자 다른 생각들을 표현해내는 방법인 것이다.

서울 속 아름다움… 화가 인생의 버팀목

 
서울에서 초ㆍ중ㆍ고등학교를 모두 나온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릴 곳을 찾아 서울 곳곳의 아름다움을 보며 자랐다. 요즘에야 궁에서 그림을 그리는 풍경이 별로 없지만 이 화백이 어렸던 시절만 해도 작품을 처음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이 고궁이었다. “경복궁, 덕수궁, 종묘 등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림을 그렸다”는 이 화백은 “우리나라처럼 천하가 아름다운 나라도 없다”고 말한다. “가까운 서울만 해도 우리 문화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옛 건물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져 운치 있는 풍경을 자아내는 곳이 많다”는 그는 특히 “계절별로 꽃이 피고 지는 시기에 따라 그 풍경이 물에 비친 경복궁의 자태는 실로 기가 막히다”며 감탄을 내뱉었다. 이 화백은 어린 시절 그러한 고궁들을 보며 그렸던 그림이 지금까지도 화가 인생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오직 미술 한 길만을 바라보며 걸어온 이기복 화백은 언제까지고 우리 것을 찾아, 옛 그리운 정서를 찾아서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 따스하게 담아낸다. 무던히도 그 길을 걸어온 장인의 삶은 그렇게 순백의 화폭 위에 빛이 났다. 그 삶의 가치는 지워지지 않을 옛 추억을 담은 마음처럼 오래도록 간직될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뉴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