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볼거리와 히트 팝 속에 숨은 ‘인간’에 관한 성찰

[서울=시사뉴스피플] 김미진 기자

 
시작부터 음악에 맞춰 관객들이 손뼉을 친다. 막이 오른다. 음악 소리가 점점 커진다. 휘황찬란한 무대장치와 반짝이는 의상이 눈부시다. 공중에서 디바가 노래를 부르며 내려온다. 관객들은 환호한다.

뮤지컬 <프리실라>는 이처럼 화려함으로 ‘한껏’ 무장한 작품이다. 캐스팅 공개 때부터 알록달록한 화장과 꽃 가발로 누군지 서로 분간이 안 될 만큼 꽃다운 미모를 뽐내던 남자배우들은 3만 개 불빛이 반짝거리는 LED 버스 안팎에서 500여 벌이나 되는 의상을 시도 때도 없이 갈아입으며 관객들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맘마미아> 이후 히트 팝으로 이뤄진 또 하나의 새로운 주크박스 뮤지컬이라 자부하는 만큼 그 넘버도 벌써 제목부터 익숙하다. 마돈나의 ‘라이크 어 버진(Like a virgin)’, 도나 썸머의 ‘핫 스터프(Hot Stuff)’, 진주가 부른 ‘난 괜찮아’로 유명한 ‘아이 윌 서바이브(I will survive)’ 등 80년대 친숙한 팝 음악은 무더운 여름 스트레스를 단번에 날려주기에 제격이다.

이렇듯 ‘프리실라’ 버스에 오른 관객들은 막이 오르기 전부터 열광하고, 본격적인 스토리가 진행되기도 전에 극 속으로 쉽게 빠져든다. 하지만, <프리실라> 속 주인공들은 현실에서는 우리에게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은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성 소수자’로 대변되는 이들은 자신의 성적 취향, 혹은 자신이 타고난 ‘진짜’ 성별을 가까운 가족들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간다.

작품 속 ‘드랙퀸(Drag Queenㆍ여장남자)’들도 마찬가지다. 남편을 잃고 나이도 들었지만 여전히 새로운 사랑에 설레는 버나뎃(조성하ㆍ고영빈ㆍ김다현),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하면서도 용기 내 아들을 찾아 나선 틱(마이클리ㆍ이지훈ㆍ이주광), ‘버스 타고 사막횡단 하다 보면 혹시 알아, 남자가 좋아질지’라고 엄마에게 뻥을 쳐 여행길에 오른 아담(조권ㆍ김호영ㆍ유승엽)은 이제껏 살아오면서, 또 이번 공연을 하기 위해 떠난 여행중에도 “호모 새끼들은 꺼져라”와 같은 욕설을 들으며 가슴 아파한다.

 
하지만 극은 이들이 지닌 상처를 일부러 무겁게 강조하거나,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 억지로 감동을 짜내려 하지 않는다. 그런 낙서 따위야 페인트로 덮어버리면 그뿐이듯 주인공들이 툭툭 내뱉는 대사는 시종일관 관객들을 폭소하게 하고, 몸을 사리지 않는 과감한 애교(?)와 퍼포먼스는 그들이 지닌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그저 한순간이라도 한바탕 신나게 웃고 놀고 뛰고, 춤추고서 즐기면 된 것이다. 형형색색 찬란한 조명과 짙은 가면 같은 화장 뒤에 숨은 그들의 아픔은 그렇게 조금씩 위로받는다.

드디어 아들 벤지와 만난 틱은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왔던 질문에 대해 의외로 너무 쉬운 답을 얻어낸다. 틱뿐만 아니라 그와 그의 동료들, 그리고 극을 지켜보는 관객들도 그동안 어쩌면 모두 불필요한 시선 속에 간단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린 꼬마 벤지는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아빠도 이젠 ‘남자친구’가 생길 때가 됐대. 우리 집에 방도 많아. 아빠 남자친구도 같이 살 수 있어” 벤지에게 틱은 ‘남자’나 ‘여자’이기 이전에, 가족으로서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틱과 드랙퀸들은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다.

호주에서 초연이 성공하며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를 거쳐 올여름 한국에 첫선을 보인 <프리실라>는 국내 초연이 믿기지 않을 만큼 빼어난 무대 구성과 장면 전환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만 극의 특성상 주연배우 모두 여자 앙상블이 대신 부르는 립싱크가 많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바꿔 이야기하면 그만큼 또 앙상블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극이기도 하다. 하이힐을 신은 남자배우들이 춤을 추고, 여자배우들은 공중에 매달린 채 열창한다.

특히 뮤지컬에 첫 도전장을 내민 중견배우 조성하는 그동안 쌓아온 중후한 이미지를 단번에 날려버리며 귀엽고 아기자기한 연기로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본래 ‘립싱크’를 자랑으로 여기는 버나뎃 역인 만큼 아직은 다소 어색한 노래나 춤 실력마저 배역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틱 역할을 맡은 마이클리 역시 점점 한국어 대사가 많은 배역을 소화하며 고질적인 발음 문제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안정적인 저음과 특유의 세심한 부성애 연기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길쭉길쭉한 몸매를 자랑하는 고영빈은 화끈하고 시원시원한 버나뎃을, 이미 ‘꽃드윅’으로 이름 날렸던 김다현은 이번 버나뎃 역을 맡아 ‘예쁘면서도 웃긴’ 개그연기를 선보인다. ‘본투드랙퀸’다운 김호영은 재기발랄한 아담 역을 꼭 맞춘 옷처럼 소화해내며, 공연 초반 실제 극 중 주인공들처럼 조롱이 담긴 악성댓글에 시달려야 했던 조권은 자신이 맡은 아담처럼 페인트로 유쾌하게 악플을 지워내듯 ‘깝권’다운 끼 넘치는 연기를 선보이면서도 과하지 않게 극 속에 어우러지는 조화를 이루어낸다.

개성 넘치는 이들과 함께하는 뮤지컬 <프리실라>는 오는 9월 2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 사진제공: 설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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