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간을 여행하는 우표를 통해 근현대사를 알 수 있다. 우표가 그 시대를 그려내기 때문인지 우표수집가도 많다. 우표를 회화에 차용해 독자적인 미술세계를 확장시킨 유필근 화백을 만나 캔버스에 담긴 철학을 들어본다.

 
“우표 한 장 한 장마다 각기 다른 사연이 숨바꼭질을 한다. 살아오면서 스쳐왔던 수많은 발신자들의 언어가 함축돼 녹아있다”고 말문을 연 유필근 화백은 14년 전 대장암 수술을 했다. 항암치료와 더불어 2년간 항암약을 복용하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고 한다. 유 화백은 “항암약을 한번 먹어보니 고통이 너무 심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약을 복용하는 동안은 나는 매일 죽는 것 같은 고통을 격어야 한다 . 나는 매일 매일 죽음의 고통을 느끼는 것  보다 한번 죽을 거야”하며 비싸게 사온 약을 모두 버렸다. 이후로는 일체의 약을 먹지 않았다. 이제는 죽음을 기다리며 인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며 “그 과정 그동안 받은 편지들을 정리하면서 우표만 떼어낸 후 편지는 모두 불태웠다”고 회상하듯 말했다. 한편 3.4년이 지난는데도 유작가는 죽지 않았다고  다양한 가지 수의 우표들을 한 장 한 장 정리하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추억의 편린” 우표로 그림을 그리자.

우표의 변신, 철학적 사유 더해
2007년 대한민국 미술제(KPAM)에 테마 “아름다운 삶” 추억의 편린, ‘사슴가족 15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우표작품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2005년, 캔버스 중앙에 ‘사슴가족’을 그리고 北 현무, 南 주작, 東 청룡,

 
西 백호의 오방색으로 밑그림을 그린 후 그 위에 약 5mm 간격으로 우표를 붙여 콜라주로 표현한 작품을 시작으로 옵티컬 아트의 세계가 열린 것이다. 우표를 이용해 현대미술의 옵티컬리즘(opticalism) 형식과 팝아트(pop-art)적인 조형 활동으로 독자적인 미술세계를 확장시켜 온 유 화백은 “한국의 전통을 바탕으로 철학적인 사유와 서양의 투시 입체적 기법으로 접목된 미래지향적인 작품을 구상한다” 작품 세종대왕 100호을 작업하는 데는 세종대왕우표 910원 짜리가 2,800 장의 우표가 들어갔고, 지금까지 작품에 사용된 우표는 수 만장이 된다”고 설명했다. 때론 우표가 부족해 ‘나만의 우표’를 주문 제작해 작업하기도 하는 데,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아이들과 석류, 비약이’라고 한다. 아울러 그는 “화판의 밑그림은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워 그 위에 덧붙여진 우표의 나열이 더 추상적으로 보인다”며 “우표와 우표 사이의 공백에 비치는 밑그림의 은은한 속살과 겉면에 우표의 모자이크한 조화로 차원이 다른 두 곳을 꿈꾸듯 색다른 이미지를 갖는다. 멀리서 보면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회화적으로 재해석됨으로 실체보다 더한 미적 쾌감을 맛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한편 유필근 화백은 우표를 사용하기 전에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끊임없이 시도해왔다. 석채(돌가루)를 이용한 작업을 많이 했는데, 특히 색을 입힌 돌가루를 캔버스위에 흩뿌려 표현한 카라 꽃은 은은한 파스텔 색채를 띠며 보는 이로 하여금 몽환적이면서도 따뜻한 분위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옛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는 캔버스 80호 ‘추억의 편린’을 계기로 현대미술의 세미앱스트랙(Semiabstract) 형식과 팝아트를 넘나들며 작품을 전시해 온 유 화백을 통해 미술계의 무궁무진한 발전을 기대해본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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