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의학’ ,생생한 의료 현장 담아내며 일상의 고단함 따뜻하게 위무

 

[서울=시사뉴스피플] 김원태 기자

“가슴을 쥐어짠다는 이웃집 할머니에겐 심전도, 속이/ 따갑다는 박선생은 내시경, 기침 심한 한별이에겐 칭찬과/ 코푸시럽, 화 못 다스려 속이 아픈 병원집 며느리는 차 한 잔과/ 하드록, 우울증에 빠진 몸짱 모델에겐 장미꽃과 바리움, 불면증/ 심한 취업 준비생 영준씨에겐 시 한 편과 자낙스, 유방절제술로/ 한쪽 가슴이 없는 보람 엄마에겐 힘있는 악수와 셀렌 Q…// 손을 씻고/ 가슴을 열고// 늦은 밤/ 불빛조차 지친 진료실에서/ 나를 위한/ 오늘의 마지막 처방전을 쓴다/ 파릇한 시의 잉태를 위한/ 건강한 출산을 위한/ 습작習作 수액 주사/ 용량 제 한 없 음”

소화기내과 전문의 박언휘 시인의 ‘처방전’이라는 작품이다. 생생한 의료 현장을 담아내면서 일상의 고단함을 따뜻하게 위무하는 시편이다. 최근 대중 독자에게 공개된 반연간 문예지 ‘문학과 의학’ 7호에 수록됐다.

 
문학의학학회(회장 마종기 시인)가 창립된 건 2010년이다. 손명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이 연세대 의대 교수 시절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인문학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주변 선후배 의사들을 모아 대표적인 의사 시인 마종기를 회장으로 추대해 만든 학회다. 현재 100여명이 소속돼 있는 이 학회가 창립하면서 반연간지 ‘문학과 의학’을 출간해왔다. 내부 회원들끼리만 보는 학술지로 내다가 이번 7호부터는 서점에서 판매하면서 대중에게 공개하는 본격 문예지로 재탄생했다. ‘노년과 문학’을 특집으로 내세우고 시, 소설은 물론 다양한 현장 의사 문인들의 기고를 수록한 이 잡지는 본격 문예지 못지않게 알차다.

고령화 사회를 눈앞에 둔 한국 사회가 고민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인 노년의 문제를 문학·의학적 시각에서 심층적으로 성찰한 기획 특집은 ‘노년문학과 노년의 미학’(이병훈), ‘이 노년을 보라’(김미현), ‘노년의 선택’(이소영), ‘노년에 대한 의학적 성찰’(유형준) 등으로 꾸려졌다. 소설가 김남일의 암투병기‘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문학평론가 김주연의 의사 시인 고트프리트 벤 이야기 ‘과학으로 과학을 넘어서려고 했으나’, 신경정신과전문의 이나미의 ‘한국사회와 그 적들’을 문학적 시각에서 접근한 서평들도 두루 흥미롭다.

이 잡지의 편집장인 문학평론가 이병훈은 “대한민국 의료문화가 의사 중심이어서 환자, 인간 중심 의료문화 형성에 일조하자는 취지에다, 문학과 의학이 결합하는 문화예술 영역을 개척할 필요성에서 문학의학학회가 출범했다”면서 “내부에서만 공유할 게 아니라 시민 독자들과 함께 나눌 때 그 의미가 더 확산될 거라고 판단해 학회지를 공개하게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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