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내 삶의 존재 이유이다”
철의 여인, 높이와 기록의 한계에 도전
2006-12-25 신성아 기자
십여 킬로그램 가량의 장비를 짊어지고 산을 타는 산악인들은 마치 출정을 나가는 병사와 같다. 질끈 묶은 등산화에 모자, 방한복 등 완전무장을 한 그들은 영락없이 전쟁터에 뛰어들기 일보 직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산에 대한 존경과 겸허함이 스며 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산악인의 모험심을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목숨을 걸고 높이와 기록에 도전하는 그들에게 찬사와 갈채를 보내기도 하지만, 내심 폄훼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산악인들은 도전 그 자체가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이구동성 말한다. “산이 있기 때문에 오를 뿐.” 1924년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다 목숨을 잃은 영국 산악인 조지 맬러리의 그 말은 산악인들이 왜 산을 오를 수밖에 없는지를 다 보여주고도 남는다. 세계 7대륙 중 최고봉인 ‘매킨리’를 완등하고, 한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단독 완등 하는 등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 산악인 오은선을 만났다. 그녀와의 만남은 인도네시아 영토인 뉴기니 섬 서쪽에 위치한 오세아니아 최고봉 칼스텐츠(4884m)로 떠나 기 사흘 전(2006년 11월 30일에 출국)의 인터뷰라 더욱 귀한 시간이었다.
산이 나를 부르고, 나는 산에 인생을 걸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북한산 인수봉에서 암벽 등반하는 사람들을 보며 산에 대한 무한한 꿈을 품었던 오은선은 그리하여 1985년 수원대 전산학과에 입학해 산악부에 들어가게 된다. 4년 내내 집과 학교, 산을 오가며 자신의 평범하고 단조로운 생활을 지속했던 그녀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 산이 존재했다고 한다. 그러던 1993년에 대한산악연맹이 꾸린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응모하자,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거기에 응모하여 당당히 14명의 대원에 선발되었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안정된 직장인 공무원을 그만두고 에베레스트로 떠났다. 혹시 그 당시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한 적이 없는 지 물었다. “후회요? 저도 사람인지라 삶이 아주 힘들 때는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평생을 놓고 본다면 그 선택에 대한 미련이 없어요. 그때 등반대를 선발한다는 말을 듣고, 안정된 생활이냐, 도전이냐 하는 저울질을 할 새도 없이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어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거든요. 선택 이후의 힘든 점들은 모두 제가 극복해야 할 몫이죠. 매 순간 넘어야 할 산이 많아요. 저는 산을 오르기 위한 과정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고요.” 사흘 후면 떠날 준비로 인해 바쁘고 힘들 텐데, 그 피곤함도 잊은 듯 활짝 웃음 짓는 모습 속에 강단이 서려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편안하게 보이는 그녀의 밝은 표정 덕분에 아주 개인적인 질문, 왜 아직도 미혼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슬쩍 꺼냈다. 혹시 외롭지는 않는지에 대해. “외로운 거야 당연히 있겠죠. 근데, 군중 속의 고독이라잖아요. 누가 옆에 있다고 해도 외로움이라는 건 다 사라지지 않죠. 그렇다고 남자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만날 시간이 없어요. 예전에는 선도 보고 그랬는데, 요즘은 지금 이대로가 더 좋은 것 같아요.”
포기가 아닌, 다음을 기약하는 용기이다
오은선은 2006년 10월 14일 히말라야 시샤팡마(해발 8027m)를 무산소로 등정에 성공한 뒤, 곧바로 이동해 11월 2일 초오유(8201m)도 무산소로 도전했다. 그러나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산인 히말라야 초오유는 정상을 불과 30~40m 남겨두고 기상 악화로 아쉽게도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시샤팡마에 도전했을 당시, 떨어지는 얼음덩어리에 맞아 왼쪽 갈비뼈 2대가 부러지고, 1대가 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불굴의 의지로 정상에 서는 괴력을 발휘했다. 만약 초오유 등정에 성공했다면 8000m급 거봉을 연속으로 등반한 아시아 최초의 여성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우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둘 만큼 그 순간이 저한테는 너무 속상하고 뼈아픈 시간이었죠. 하지만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믿어요. 돌아서는 순간‘이게 진정한 용기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돌아설 때 ‘내 자신이 나약하지 않나’라는 자책감이 들기도 했는데, 그때 욕심내지 않고 돌아섰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건강한 내가 있는 게 아니겠어요? 똑같은 상황에서 날씨만 도와준다면 언제든지 다시 도전해 꼭 정상에 설 거 에요.”
세계의 정상을 내 품에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20세기 이래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상징의 무대가 되어 왔고,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가 최초로 등정에 성공한 이후 지금까지 1천이 명이 넘는 수많은 산악인들이 등정했다. 그 과정에서 백여 명이 넘는 목숨도 앗아갔다. 우리나라도 1977년 고상돈 이래 많은 산악인이 생명을 담보로 값진 도전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높이는 더 이상의 새로운 이슈가 되지 못한다. 대신에 다양한 한계상황에서 단독등반, 최연소 등반, 무산소 등정, 여성 등정 등 인간의 끝없는 도전이 계속되고 있는 네버 엔딩 스토리다. 오은선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03년 5월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를 한국 여성 산악인 최초로 단독 등정하면서부터이다. 이후 2004년 남미 아콩카콰(6959m), 아시아 에베레스트(8850m),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 호주 코시어스코(2230m)를 거쳐 같은 해 12월 남극 빈슨매시프(4857m)까지 2년 4개월 만에 초스피드로 세계 7대륙 최고봉에 모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는 한국 여성 최초의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자가 된 것은 물론, 허영호(1995년)와 박영석(2002년)에 이어 국내 산악인 중 3번째이며, 여성 산악인으로 세계에서 13번째라는 놀라운 기록이다. 게다가 2004년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은 한국 여성 최초의 기록이기 때문에 그녀를 세계적인 유명인사로 만들어 주었다. “여자로서 매킨리 등정은 더 의미가 깊어요. 매킨리의 입산허가와 등반규정이 매우 까다롭기로 유명하죠. 제가 등정하기 전, 일본의 나오미라는 산악인이 있었는데, 그 분이 단독으로 등반하다 추락사를 당했고, 한국 산악인의 정신적 지주 고상돈 그 분 역시 매킨리에서 하산하다 추락사 하셨죠. 그래서 더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고요.”오은선의 말에서 마치 맞춤옷을 입은 듯 자연스럽게 산의 이미지가 포개진다. 그렇다면 최악의 순간과 최고의 순간은 언제일까?“최악의 순간은 아무래도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이요. 산소가 부족해 온 몸에 진액이 다 떨어져 나간 듯 정말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거든요. 그래도 산악인으로서의 평생소원 하나는 풀었죠. 또, 신문과 TV, 잡지 등 사회적으로 난리가 나서 저를 알리는 계기가 됐고요. 개인적인 최고의 순간은 매킨리 때가 스스로 생각해도 뿌듯할 정도로 자랑스러운 등반이었어요.”
오은선의 힘, 희망 여성을 만들다
세계적인 여성 산악인 반다 루트키에비치는 22년간 20개의 원정대에 참가하여 히말라야의 8000m급 8개봉을 등정하고, 1992년 캉첸중가(8586m) 등반 도중 해발 8300m 부근에서 실종되었다. 그녀는 등산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위험을 겪지 않고는 모험을 체험할 수 없다. 구사일생의 위험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삶의 진가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다. 위험한 등반에 매혹되는 이유는 위험을 겪고 난 후의 바람의 감촉, 바위 냄새, 따뜻한 한 잔의 차와 같은 사소한 일에서 엄청나게 큰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산은 내 삶의 원동력이 되어버려, 비록 등반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이 될지라도 등반의 열정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나는 다시 태어나도 등산가가 되겠다.” 산을 오를 때마다 즐겁고 행복하다는 오은선은 과정이 주는 설렘을 만끽할 줄 아는 진정한 알피니스트이다. “정상에 섰을 때의 기쁨은 잠시에 지나지 않아요. 마라톤으로 치면 반환점에 불과하죠. 정상에 오래 있어 봤자 30분이 전부에요. 또, 정상만 바라보고 산을 오르는 것은 절대 안 돼요.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을 때까지 방심은 절대 금물이거든요. 하산하다 많은 사고를 봤고, 동료들의 죽음도 겪어야했기 때문에 내려가는 길에 더 힘을 싣고 있어요.” 한편, 여성 산악인이라는 사회적 제약은 그녀가 가야할 길이 더 멀고도 험난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장비가 발전하면서 남성 산악인은 거기에 맞춰 앞서 나가는데, 여성 산악인은 더 뒤처진 상태에요. 기본적으로 밀어주는 힘 자체가 약하고, 여성 산악계를 이끌어 가시는 선배 분들도 많이 부족하죠. 여러 면에서 열악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산에 전념할 수 있는 기본적인 생활들이 뒷받침해주니까요. 본의 아니게 여성 대표 산악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여졌는데, 그래서 더 모범적인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하나의 비전이 되고 싶기도 해요.”
오은선은 오세아니아 최고봉인 칼스텐츠 원정이(2006년 12월 4일 현지시간 4시 30분에 출발해 5시간 30분 만인 오전 10시에 정상을 밝았다고 전해왔다) 끝난 뒤, 곧바로 히말라야로 떠난다. 에베레스트 남쪽에 있는 히말라야의 보석 아마다블람(6812m)에 후배 여성 산악인 4명을 이끌고 도전할 계획이다. 그리고 이번 원정이 잘 마무리 되면, 순수 여성 원정대를 구성해 함께 브로드피크와 K2를 오르는 목표를 두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2007년 희망의 신년 메시지를 부탁했다. “행복은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되죠. 청소년 시절에 누구나 꿈 하나쯤은 있었을 거 에요. 꿈이 없는 사람은 무덤 속에 살아가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터무니없는 목표와 환상을 버리고, 자기의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전진할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꿈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희망을 놓지 않는 의미거든요.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목표를 갖고,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세요.” 순도 100%의 그녀의 메시지와 함께 2007년 오은선이 이룰 쾌거가 이 시대에 꿈을 잃고 좌절하는 모든 세대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 넣는 정신적 기폭제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