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가 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사람 냄새 나는, 솔직담백한 그의 이야기
2006-12-25 장정미 기자
공자 왈, “知之者 不如好之者 , 好之者 不如樂之者”라 했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다.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일들이 있고 그만큼 아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문득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문을 하게 된다. 과연 자신의 일을 즐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들은 정말 자신이 원해서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일까, 지금의 나는 내 일을 정말 원해서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들을 말이다. 이러한 질문에 당당히 “YES”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그만큼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나는 조선의 국모다』로 유명한 작가 이수광. 당당하게 “저는 다작 작가입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일 년에 10권 이상의 책을 출판하는,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다. 몇 권의 역사서를 쓰긴 했지만 사실 그는 역사학자가 아닌 추리소설 작가다.
진실 혹은 대담한 그의 이야기
당당하게 “저는 다작 작가입니다. 기네스북에 다작 작가로 오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미 프랑스에 저보다 더 많은 책을 출판한 작가가 있어서 포기했습니다”라고 웃으며 말하는 그가 전혀 밉지 않다. 사실 작가들이라 하면 글 좀 쓴답시고 쏟아지는 질문들에 으레 형식적인 대답들만 늘어놓기 일쑤다. 글을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본인들이 그리 대단하다 느끼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형식적인 대답들은 사실 전혀 인간적이지도 않고 또한 달갑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질문 하나 하나에 깜짝 놀랄 만큼 솔직한 답변을 하는 그가 오히려 인간적이고 또 쿨해 보인다. 본인 스스로가 다작 작가임을 인정하는 터라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편견에 불과할 뿐이다. 지금껏 그가 펴낸 책들은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신춘문예 당선. 그것은 어찌 보면 그에게 있어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다. 18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바람이여 넋이여』당선으로 등단한 이수광은 “만약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지 못했다면 아마도 노동계급을 위한 활동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라며 웃으며 말한다. 1980년대 당시 농촌의 도시화로 많은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었음을 인식하고 있던 그는 펜을 들었다. 그리고 그만의 스타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학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사실 그의 문장은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다. 오히려 놀라우리만큼 투박하며 사실적이다. 솔직담백한 그의 성격이 그대로 문체에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사실 글이라는 것은 그렇다. 글쓴이의 사고방식이 묻어나는게 당연하다지만 그 글만으로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는 쉽지가 않은 법이다. 작가는 글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전달하기보다 글과 자신과의 일정 거리를 유지하려고만 한다. ‘글=작가’가 아닌,‘글≠작가’라는 공식을 철저히 적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수광의 글을 읽고 있자면 그가 어떠한 사람일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신기하다. 글 하나만으로도 그 글을 쓴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연상이 되는 것이, 그리고 그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다. 그만큼 이수광의 글은 있는 그대로의 그를 보여주고 있다.
살인, 그리고 죽음에 대한 단상
작가 이수광이 쓰는 글의 주된 소재는 살인이다.『화성연쇄살인사건』,『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조선여인잔혹사』등은 책 제목만 봐도 살인, 죽음에 대한 내용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수많은 소재 중에서 왜 하필 죽음이며 살인일까 하는 질문에 대하여 이수광은 “죽음을 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사람들의 억울함에 대해 관심이 많을 뿐이지요”라고 답한다. 참으로 그답게 솔직하면서도 간단한 대답이다. “‘이웃집 살인마’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누구나 살인에 대한 욕망이 있습니다. 관건은 그 살인에 대한 욕망을 어떻게 억제하느냐 겠지요”라고 덧붙였다.『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의 주된 내용도 바로 이러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 선조 36년 특진관(현 부총리)인 재상 유희서가 휴가 중에 포천에서 도적떼에게 살해되어 조정이 발칵 뒤집히고, 그 범인으로 의심되어 조사를 받던 네 명의 하수인이 포도청에서 감쪽같이 살해된 사건이다. 사건에 임금의 큰아들 임해군이 연루되면서 조정과 임금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두 달 동안 조정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이 사건을 수수하던 포도대장 변영걸은 귀양을 가고, 오히려 피해자의 아들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유배를 가지만 명재상 이덕형에 의해 진상이 밝혀진다. 그러나 임금의 아들을 탄핵한 대신들은 줄줄이 파직을 당했다. 한편 정조 14년 전라도 강진에서 한 양갓집 젊은 부인이 안 소사라는 여인을 살해한 뒤 현청에 가서 자수하고 자신의 원수 최정련을 죽여 달라고 하기도 했다. 강진현감 박재순은 대경실색하여 여인을 동헌 마당에 꿇어앉히고 심문을 하기 시작했다. 여인은 18세로 성은 김씨요, 이름은 은애라고 했다. 사악하고 간교하여 남을 모해하는 것을 좋아하는 안 소사는 은애를 시누이의 아들인 최정련과 맺어주고 싶어 은애와 최정련이 사통하였다는 얼토당토않은 소문을 퍼뜨렸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안 소사의 거짓말에 정절을 훼손당했다고 생각한 은애는 마침내 안 소사에게 처절한 복수의 칼을 뽑아들었던 것이다. ‘살인’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조선시대의 양반과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여성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 저 편에 숨어 있던 살인에 대한 욕망을 끝까지 억제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범죄를 저질러 버렸다. 이수광은 그들을 통해 그 누구에게나 살인에 대한 충동은 숨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죽음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고 또한 순식간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또한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죽음 뒤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고민을 수차례 해봤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결론도 얻었지요. 종교론적인 입장에서 봤을 땐 논란의 소지가 많겠지만, 제가 내린 결론은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도 흩어진다. 공기 속으로 흩어져 버린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인간의 영혼이란 것이 존재하는가에 대하여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껏 지구상에는 160억 명인가 300억 명의 사람들이 살고 죽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세계는 60억 인구만이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한사람의 몸에는 20명 이상의 영혼이 들어있다는 계산이 나오는 거지요”라며 죽음, 그리고 살인에 대한 그의 생각을 털어 놓았다.
역사와 추리소설, 그 갈림길에 대하여
추리소설 작가로서 이름을 날렸던 이수광이 역사로 눈을 돌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는 고(故)신상옥 감독의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비운의 삶을 살다 간 명성황후에 대해 더욱 알고 싶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전까지 악평이 주를 이루었던 명성황후를 재조명할 필요성을 느꼈다 한다. 그에게 있어 역사란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그는 “한 사람을 볼 때는 그 사람의 과거부터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과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지요. 그러한 모습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가 이렇게 존재하는 겁니다. 역사도 이와 마찬가지겠지요”라고 말한다. 소설가인 그는 역사소설, 혹은 사극을 볼 때 그것에 픽션이 가미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함을 주지시킨다. “역사소설을 쓸 때 논픽션은 15-20%, 나머지가 픽션입니다. 논픽션이 80%라면 그게 역사서지 소설입니까”라고 웃으며 말하는 그는『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을 쓸 때도 최대한 상상력을 자제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하지만 몇몇 독자들은 그의 기존의 작품들 때문에『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이 추리소설이라 착각을 하기도 하는 듯 싶다. “일부 독자들은 박진감이 떨어진다, 조금 더 추리소설답기를 원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는데 어쩔 수 없지요. 그건 추리소설이 아니라 역사서니까요” 작가, 특히 추리소설 작가인 그가 역사서를 쓰는 것은 얼핏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역사의 사건들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직관과 추리력이 필요하기에, 오히려 역사라는 분야에 있어 그는 남들보다 조금은 더 유리한 고지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설가이기 때문에 보다 쉽게 우리에게 역사라는 분야를 보여줄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수광이『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이라는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궁극적인 메시지는 다름이 아니다. 과거와 지금의 우리의 삶의 모습이 별반 다를 것 없다는 것, 그거다. 자고로 책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것이 지식이 될 수도 있고, 또 간접적인 경험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인문서적의 경우는 그 주된 목적이 지식의 전달이다. 하지만 기존의 인문서적들은 독자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쓴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쓴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마치 자신들끼리 서로의 지식을 자랑하며 그렇게 인문학의 벽을 끊임없이 쌓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은 인문서적 읽는 것을 꺼려하고 있으며 결국 ‘인문학의 위기’라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천상 글쟁이일 수밖에 없는 그
추리소설과 인문분야를 오가는 작품 활동을 하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질 염려가 없다 말하는 작가 이수광. 하루에 3개의 소설을 연재할 만큼 다양하고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그의 본업은 추리소설 작가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서를 쓰기도 하지만 추리소설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다. 그는 “여타 다른 소설분야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추리소설 분야가 죽어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추리소설이 발전을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추리소설이 발전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왜일까요. 혹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직관의 국민성이 문제라 합니다. 감정적인 국민이기에 논리적인 추리가 발전할 수 없다는 겁니다”라며 추리소설분야의 사양화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중문학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말하는 그 역시 글쟁이다. 자신이 글을 쓰는 것 이 외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것 같다는 그는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천직임을 느낀다고 한다. “역사와 추리. 둘 중 어느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쉬이 결정을 못할 것 같습니다. 경제적인 부분도 무시를 못하니까요”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책을 읽은 독자들이 ‘책값만큼 열심히 썼네’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글을 쓰기 원한다는 이수광. 그는 독자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내용의 글을 원하며 독자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또한 사람의 냄새가 나는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철저히 대중적인 작가로 남아 있고 싶다는 말이다. 특히 추리소설분야에 대하여 사람들의 인식을 전환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는 작가 이수광. 아직은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여행을 떠날 시간조차 없다는 그. 그의 바람처럼, 그의 글처럼 언제까지나 그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대중들과 함께, 사람냄새 나는 글을 쓰는 작가로 남길 바란다.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