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말의 구슬보다 한 톨의 씨앗으로 족하게 하소서”
진솔한, 그래서 더 아름다운
2007-01-24 장정미 기자
-박완서『옳고도 아름다운 당신』中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나목>으로 등단한 박완서. 1981년<엄마의 말뚝>으로 이상 문학상 수상, 1994년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으로 제 25회 동인문학상 수상, 1999년 <너무도 쓸쓸한 당신>으로 제 14회 만해문학상 수상, 2001년 <그리움을 위하여>로 제 1회 황순원문학상 수상 등 국내의 내노라 하는 권위 있는 상들을 수상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한 그녀는 이 시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다. 이름 석 자만 대면 누구나 ‘아, 그 사람!’할 정도로 너무나 유명한 작가, 출간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버리는 작가. 분단과 여성, 그리고 우리네 삶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로 한국 소설계에 커다란 한 획을 그은 그녀 박완서. 한국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전혀 낯설지 않은 그녀에게는 무언가 특별함이 있다.
슬픔과 고통에서 느낀 큰 사랑
종교는 사람의 나약함을 보듬어 주고, 삶의 방향을 이끌어 주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종교란 그런 것이다. 인간이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함과 거룩함을 갖추고 있되, 우리네 생활과는 동떨어지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종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신의 존재를 잊은 채 살아간다. 고통이, 절망이 바닥까지 치닫게 되면 우리는 그제서야 비로소 절대자인 신을 떠올리며 종교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박완서는 “행복할 때 신은 나에게 없어도 좋고 있으면 더 좋은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뜻하지 않은 고통과 고독의 밑바닥으로 던져졌을 때 비로소 그 분이 옆에 같이 있어 준다는 걸 의심 없이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슬픔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그녀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 올린 이는 다름 아닌 언제나 그녀의 옆에 있어 주었던 그녀의 신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신이야말로 자신이 겪고 있는 모든 번뇌와 고통, 그리고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 줄 것이라고. 물론 절대자인 신이 할 수 없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신은 무턱대고 사람들에게서 고통을 제거해주지는 않는다. 사람들 스스로 일어설 기회를 줄 뿐이다. 신은 결코 인간이 견디지 못할 시련은 주지 않는다. “인간에게 손을 뻗어 고통으로부터 구해주는 게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그 고통의 밑바닥을 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혹은 고통에 의미를 발견하고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용기까지 주는게 신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박완서는 자신의 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더러 주일 미사를 거르기도 하지만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기도를 많이 한다는 그녀는 기도에서 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힘을 얻곤 한단다. 이것이 그녀의 신앙이자 생활이다.
박완서, 그녀의 인생 그리고 글
글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쓰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글 속에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대중의 호응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면에서 박완서는 대단히 성공적인 작가임에 틀림없다. 내놓는 작품마다 족족 베스트셀러로 등극을 하니 말이다.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녀에게 꾸준한 인기의 비결을 물으니 “쉽고 정직하고 아름답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 대답한다.
박완서 자신이 “내 소설은 무릇 소설이 다 그렇듯이 꾸민 이야기인 동시에 내가 살고 견디어 낸 우리 근세사의 사실적인 기록이기도 합니다. 제 소설엔 판타지가 없다는 평도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제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는 제 소설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비춰보는 재미 때문에 좋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녀의 글은 허구인 동시에 사실이다. 박완서의 작품이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일들을 주된 소재로 사용하고 있기에 독자들은 그녀의 글을, 그리고 그녀의 인생을 고스란히 진정 마음으로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완서의 글은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다. 글을 읽어 내려갈 때 문장 하나 하나가 작가의 혼신의 힘을 기울인 노력의 결정체라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때론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프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희노애락을 느끼게 하는 호소력. 그것이 박완서가 지닌, 그리고 그녀의 글이 지닌 진정한 힘이다. 작가는 자신의 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양한 간접 체험의 기회를 선사한다. 그 간접 체험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독자들은 작가의 글로 인해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일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그것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작가와 독자는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교통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뛰어난 작가일수록 독자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글을 쓴다. 이러한 점에서 박완서에게 당대 최고의 작가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결코 아깝지 않다.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을 다양하게 비틀어 보여줄 수도 있고, 현실의 구질구질함을 잊게 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라 시도를 해보지 못한 분야이지만 그쪽도 부러워하고 좋아합니다. 어떤 문학이던지 그 궁극의 목적이 인간의 정신적인 영역에 대한 탐구와 확장이라는 데 있어서는 같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박완서. 그녀에게 있어 인생은 곧 글이며 문학인 것이다.
여성과 인생, 그리고 페미니즘
많은 이들은 말한다. 박완서의 작품은 페미니즘적 경향이 강하다고 말이다. 이에 대해 박완서는 “제가 추구하는 건 휴머니즘이고 페미니즘도 그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열렬히 투쟁해 온 운동권 청년이 여성 동지들은 잔심부름이나 하는 하녀로 취급하는 걸 보며 크게 실망하고 그 운동권을 가짜처럼 느꼈던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런 맥락에서였을 겁니다”라 답한다.
페미니즘의 목적은 여성에 대한 품위를 떨어뜨리는 의식을 전환시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각 여성은 자신을 남성들과 동등한 특권과 권리를 소유하는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키고자 한다. 따라서 여성은 스스로를 정의 내려야 하며, 다양한 부문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박완서는 스스로도 말했듯이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다. 박완서의 작품에는 종종 남성의 부재가 느껴진다. 하지만 박완서는 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남성의 부재를 독립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페미니즘 작가와는 달리 그녀는 여성의 특혜만을 부르짖지 않는다. 작가 박완서가 원하는 것은 남녀의 차이는 인정하되, 여성의 권리가 보장받는 사회다. 그것이 그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추구하는 사회이며 페미니즘이다. 박완서의 이러한 페미니즘적 경향은 그녀의 어머니의 영향이었을지 모른다. 박완서가 작품 곳곳에 말하듯이 그녀의 작품세계의 근원은 다름 아닌 자신의 어머니였다. 아들을 성공시키고 딸을 신여성으로 키우겠다는 어머니의 강한 의지 덕분에 그녀는 ‘열린 사고’를 가질 수 있었다.“한국전쟁을 전후해 극심한 남북간의 이념대립으로 인한 고통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그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작가의 길로 이끈 어머니에 대한 책임감이었습니다”는 박완서의 말처럼 그녀가 한평생 문학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를 통해 이야기가 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내 문학을 페미니즘 문학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저는 페미니즘 이론을 잘 모릅니다. 다만 제 어머니가 어려서부터 자식들에 대해 남녀 차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무엇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삶을 힘들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김치수 교수는 그러한 박완서의 소설을 두고 “혼자 살기 위해서 삶의 고통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살기 위해서 그 고통을 이기고자 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작가의 재능이란 놀라운 것”이라 평하기도 했다.
언제나 함께 하고 싶은 그녀
“40세에 처음 등단을 했습니다. 그전까지 보통 주부들과 다름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아이를 다섯이나 낳아서 다 젖 먹여 길렀고 막내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해에 이제부터는 내 일을 가져도 되겠구나 생각해서 시작한 것이 소설쓰기였습니다. 남들이 너무 늦은 등단이라고 하는 것이 저에게는 무리 없는 순리였다고 생각합니다”라 말했던 박완서.
올해로 76세가 된 그녀는 이제 잠시 쉬고 싶은가 보다. 지난 1월 15일 “동인 문학상 심사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는데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자의 반, 타의 반이입니다. 자의도 내 뜻이고, 타의 또한 내 뜻입니다. 망령 부리지 않고 정정하게 늙고 싶은데 그 정도의 건강이라도 보전하려면 내 몸의 눈치부터 살펴야 하는 한심한 나이가 되어 버렸습니다다”며 박완서는 심사위원 종신제를 채택하고 있는 동인 문학상에서 심사위원직을 떠난다고 공식발표를 했다. 지난해 연말 “더 이상 남의 작품을 읽는 것이 육체적으로 벅차다”며 사의를 표명했던 그녀에게 운영위원회와 심사위원회는 심사숙고한 끝에 그녀의 뜻을 받아들였다. 책 읽는 것 외에도 영화 보기와 마당 가꾸기를 좋아한다는 그녀를 위해 이제는 그녀의 시간과 휴식을 돌려줄 차례다. 대중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녀가 앞으로 건강하게 행복한 하루 하루를 보내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