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자유로운 배우가 되고 싶다”

정의내릴 수 없는 그의 단단한 욕심

2007-01-25     신성아 기자
조재현은 한 눈에 척 봐도 꽃미남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에게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그를 유심히 지켜봤다면 누구라도 그의 강하고 촘촘하기 짝이 없는 카리스마에 깜박 정들어 버릴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바쁘게, 그리고 부지런히 달리고 있는 배우 조재현. 그가 2004년 <에쿠우스> 이후, 3년 만에 연극무대로 돌아왔다.

자신의 이름에 분명한 아우라를 새겨 넣은 배우 조재현을 대학로에서 만났다. 그런데 처음 그의 얼굴은 밝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연기와 그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조재현은 점점 에너지 넘치는 배우로 돌아와 있었다. 조재현은 결코 첫인상이 좋은 배우가 아닌 것 같다. 잔뜩 힘을 준 눈과 결코 부드럽지 않은 말투에 한 번 보면 절대 호감을 가질 수 없었다. 또, 입매무새와 눈빛이 빚어내는 까칠한 미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긴장감을 갖게 만들었다. 이러한 그의 인상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 준 강한 캐릭터들과 닮아있었다.

#.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를 만났을 때

최근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촬영을 마친 그가 지난 2004년 <에쿠우스>이후 3년 만에 연극무대에 오른다. 조재현은 오는 1월 25일부터 두 달간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에서 경숙이 아버지 역을 맡았다. “일부 사람들은 고향에 돌아왔다는 표현을 쓰는데, 전 그 말이 싫어요. 연극을 지키겠다는 마음은 더 없고요. 그럴 자격이 안 되니까요. 단지 연극을 좋아해서 하는 것뿐이에요.” 그는 단순히 충동적으로, 어떻게 하다 보니 연극 무대로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니다. 작년 여름, 영화 천년학을 찍으면서 연극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현가능성을 미리 계획해 놓았던 것이다. 극단 골목길의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는 2006년 올해의 예술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한 작품으로 조재현은 당시 초연을 보고난 뒤, 올해 공연의 출연과 제작을 자청했다고 한다. “물론 새로운 작품도 좋죠. 하지만 훌륭한 박근형 연출가와 함께 해보고 싶었고, 어차피 연극이라는 게 배우에 따라 조금씩은 달라지잖아요.” 그는 우스운 말로 자신은 평범하지 않고 약간은 변태성이 있다며, 마치 외줄타기처럼 연극의 긴장감을 즐기는 것 같다고 덧붙인다. “연극은 새로운 긴장감과 신선한 마력이 존재해요. 영화와 드라마에서의 긴장감과는 차이가 있죠. 연습을 하다보면 ‘어제보다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한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요.”

#.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조재현이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에서 연기하는 아버지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인물이다. 경숙이 아버지는 6.25 전쟁이 나자 “식구 챙기다 총 맞고 내 죽으면 누가 책임질기고”라며 아내와 딸을 남겨두고 혼자 피난길에 떠난다. 전쟁이 끝나자 집으로 돌아와서는 “꿈 펼치러 간다”며 다시 집을 나선다. 그리고는 새엄마까지 버젓이 데리고 나타나는 한 마디로 염치없는 아버지다. 이 작품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전형적인 아버지에서 벗어난 경숙아버지와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조재현도 한 아들의 아버지로서 경숙이 아버지를 어떻게 보냐는 질문을 던졌다. “어려서는 이해 못하겠지만, 나중에 커서는 아버지의 손을 잡아줄 것 같아요. 아마 20대 중반의 여성들은 경숙이 아버지를 이해 못하고, 짜증을 낼 수도 있어요. 반면에 남성들은 그의 자유스러움이 옳지는 않으나 부러울 수도 있겠고요. 성별과 나이에 따라 보는 시각이 천차만별이죠.” 그렇다면 그는 실제로 어떤 아버지일까?“솔직히 높은 점수의 아버지는 아니에요. 그저 제가 평범한 아버지였다면 아들이 더 행복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 연기에 색깔을 입히다

현실 속의 우리는 한정된 영역에서 아등바등 거리며 살고 있다. 배우는 그런 현실의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배우라는 이름의 틀 안에서 무한한 여러 형태의 삶을 살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노동자, 포주, 범죄자, 형사, 선생님, 아버지 등. 조재현은 자신의 얼굴을 다채롭게 바꿔왔다. 사랑 때문에 눈물을 꾹 참다가도 이내 구수한 사투리를 쓰고 있는 정겨운 사내가 되었고, 야심에 휩싸인 위험한 남자가 되는가 싶더니, 털털함과 웃음을 가진 멋진 한 사람으로 변신한다. 조재현만큼 영화나 드라마 속 다양한 캐릭터를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배우도 드물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변신을 의도한 건 더더욱 아니다. 주로 카리스마적인 역할을 변주해오던 그가 정통멜로를 택했을 때도 그건 변신강박증의 산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폭넓은 필모그래피 기저에는 일관된 모티브가 있었다. 그건 바로 살아 숨 쉬는 열정으로 탐색하는 연기의 세계이다. 그런 조재현에게 있어 작품을 고를 때 뚜렷한 원칙이나 기준이 있는지 궁금했다. “원칙은 일단 스스로도 신이 나야 해요. 여기에 인간적인 관계와 약속에 충실해 작품을 고르죠. 영화를 선택하는 부분에서는 잘 못한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요.” 그리고는 드라마, 영화, 연극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에 대해 물었다. “드라마는 극본이고, 영화는 감독, 그리고 연극은 배우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어요. 좋은 대본 없이 좋은 드라마가 나올 수 없고, 영화는 감독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가 달라질 수 있거든요. 연극도 배우가 관객들 앞에서 약 2시간 동안 연기하는 실제상황이기 때문에 배우의 역량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하죠.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연출이 아닌가 싶어요. 그동안 많은 작품들을 해오면서 이 세 가지가 잘 맞았던 건 드라마 ‘피아노’였고요.”

#. 꿈꾸는 벗과 함께

“편안하고 자유로운 배우이고 싶어요.” 배우 조재현은 어떤 잣대를 들이대더라도 그의 이미지와 스타일을 정의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TV 드라마,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영역에 출연한 그는 그만큼 연기의 폭이 넓고 자유로운 배우인 것이다. 그리고 스타라는 허울에 매달려 있는 흔해빠진 스타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갈 길을 고집스럽게 걸어가는 진짜 스타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당당한 자신감을 가진 배우이다. 한편, 조재현은 연극 <에쿠우스>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다음에는 대극장에서 직접 공연할 계획이다. 아울러 언젠가는 ‘에쿠우스’연출에도 도전할 생각이라고 한다. 연극 연습시간이 다 되자, 서둘러 일어나는 조재현. 단 1분이라도 연습 시간을 어기려하지 않는 그에게서 현재의 위치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점검의 시간이기도 했다.
강한 드라마부터 가벼운 코미디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배우 조재현은 분명 자유로운 배우다. 그래서인지 어떻게 경숙이 아버지를 그려 놓았는지 매우 궁금하며, 무대 위에서 펄펄 연기할 그의 모습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연기를 한다는 것, 특히 무대에 선다는 것은 긴장감과 함께 말 못할 행복감을 안겨준다.” 자신이 하고 싶은 연기를 하고, 그 연기를 함께 보며 공감해줄 관객이 있기에 그는 항상 무대를 꿈꾸게 된단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