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또 나가란다

떠돌이 풍물벼룩시장의 길은 어디에

2007-01-25     장인혜 기자

서울시는‘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과 관련해 운동장 일대 노점상들의 생존권 보장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발전협의회를 구성해 전국노점상연합 회원들과 지난 달 16일 1차 회의에 들어갔다. 당초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을 발표할 당시‘노점상들에 대한 배려는 배려일 뿐’이라고 일축했던 것에서 서울시가 한 발 물러난 셈이다.


동대문운동장 공원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 후 동대문운동장의 구체적 활용방안이 지난 해 공개되었었다. 오 시장은 후보자 시절 동대문운동장 2만5,000평 가운데 2만평을 녹지로 조성하고 나머지 5,000평에는 파리 퐁피두센터와 같은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서울시의 발표에 따르면 서울 동대문 축구장과 야구장이 공원으로 바뀌면서‘패션의 메카’로 변신한다. 동대문운동장이 헐리고 그 자리에 디자인 관련 연구시설과 전시장을 갖춘‘디자인 콤플렉스’가 들어선다. 콤플렉스에서는 각종 섬유와 금속 등 다양한 패션 소재를 직접 접할 수 있다. 또 세계 각국의 디자인 전문서적이 갖춰진 디자인 교육실 등 예비 디자이너들이 꿈을 키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된다. 서울시는“타당성 조사 등을 거쳐 2010년까지 동대문운동장 공원화사업 부지에 연건평 1만2000평 규모의 디자인콤플렉스를 건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8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디자인 콤플렉스는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비용 등의 문제로 최신 디자인 정보를 접할 수 없었던 동대문 일대의 실력파 디자이너에게 요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는 2007년도 예산안을 확정하는 가운데 동대문운동장 공원화사업에 2542억원을 편성했다. 서울시의 이와 같은 동대문 운동장 공원화 사업 계획은 청계천, 동대문 공원, 낙산공원으로 이어지는 도심 환경축을 복원하고, 시민들에게 깨끗한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차원에서 시민들로부터 호감을 사고 있는 미래 계획 중의 하나다. 하지만 현재 동대문운동장 안에 있는 894개의 노점상은 또 다시 생계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해있다. 동대문‘풍물벼룩시장’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노점상은 없는 것이 없는 벼룩시장의 형태를 띠고 지금도 영업 중이다. 서울시의 동대문운동장 개발계획에는 이 노점상들에 대한 대책이 빠져있다. 난관이라고 하기에는 꽤 큰 난관이다. 오 시장은“풍물시장 노점상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 중에 있다”며“사업수행에 지장이 우려되지만 조심스럽게 접근하되 의지를 갖고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었고, 그 대책중의 하나가 풍물시장 노점상인들과의 완만한 합의를 도출해나기 위한‘발전협의회’구성이었다.

서울시 홍보 약속, 지키지 않아 손님 발길 끊겨

동대문 운동장은 1926년 동대문 옆 성터에 지어진 국내 최초의 체육시설이다. 잠실운동장이 생기기 전까지 국가 대항전 축구, 야구 대회가 열리는 등 우리나라 체육의 역사가 서려있다. 특히 동대문 야구장에서 열린 고교 야구대회는 장안의 화제였고, 최근까지 고교야구와 아마추어 야구 경기가 계속되었었다. 축구장은 2003년 3월 폐쇄돼 임시주차장과 풍물시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풍물시장에는 청계천 복원과 함께 청계천에서 동대문운동장으로 이전한 상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 전국노점상연합(전노련) 최인기 정책위원장에 따르면“청계천변 5.8km 구간에는 3,000여점의 노점상이 있었습니다.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서울시의 배려로 청계천변 상인들은 동대문운동장 안에서 제한적으로 장사를 할 수 있게 임시허가를 받았고, 그렇게 구제된 상인들이 약 900여명입니다. 나머지 1,000여명의 상인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아직 청계천 주변으로 500여명의 상인들이 남아있습니다.”라고 동대문 풍물시장의 구성에 대해 설명했다. 문화와 역사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청계천의 복원은 오늘날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되었고, 도심 속에 자리 잡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여름에는 발을 담글 수 있고, 겨울이면 찬란한 조명들로 도시미관을 장식하는 원천이 되었다. 그런 청계천을 복원하는 당시에도 개발계획을 발표하고 개발로 인한 노점상의 이주 대책 마련에는 부실했었다. 당시 노점상들의 강력한 반발로 얻어낸 결과가 바로 동대문운동장 내 공간을 마련해서 풍물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장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문서나 제도를 통한 합법적 절차는 없었지만, 폐쇄된 공간 안으로 들어가 장사를 하게 된 상인들이 상권 확보에 우려를 표시했고, 서울시 측에서는 풍물시장의 홍보와 시설 지원을 약속했었다. 하지만 동대문 풍물벼룩시장 개장 2년을 맞이한 지금에도 풍물시장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시민들이 태반이다. 동대문 일대의 불균형적인 상권 탓도 있지만, 서울시의 안일한 홍보력 또한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중간에 장사를 포기하고 떨어져 나간 상인들만 해도 수 십명이다. “시장의 임기가 끝나고, 새로운 시장으로 바뀔 때마다 노점상 문제는 늘 제기되어 왔습니다. 전 시장이 내놓았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몰자니 여론이 반대를 하고. 노점상과 시정과의 관계는 이렇게 끊임없이 왔다갔다 하기를 번복하고 있었습니다.”

볼거리 풍성한 동대문 풍물벼룩시장

동대문축구장의 트랙부분에 자리잡고 있는 동대문 풍물벼룩시장은 청계천 황학동 벼룩시장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 각종 민속품과 골동품, 생활용품 등 쉽게 접하기 힘든 물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옛 추억이 담긴 축음기와 LP판, 옛날 화폐와 양은도시락, 등잔대와 장롱과 같은 공예품, 병풍과 액자 등의 물품들은 중·장년층에게는 옛 추억을 살리는 역할을 하고, 신세대와 학생들에게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볼거리를 선사한다. TV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각종 소품들과 재미있는 물건들로 가득한 풍물벼룩시장에는 다양한 먹거리도 마련되어 있어 한 공간 안에서 쇼핑과 식사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풍물시장을 자주 찾는다는 20대 파티플래너 이모씨는“파티의상이나 소품 같은 것을 사려고 자주 옵니다. 이곳 풍물시장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서 서울 시내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옛 것들을 찾을 수가 있어요.”라고 밝히며 초소형 확성기를 구매하고 있었다. 시장을 찾는 주 고객들은 중·장년층이 대다수이지만 최근 개성이 충만한 젊은이들의 발길이 늘고 있고, 디지털카메라의 확산과 함께 새롭고 신기한 물건들을 사진으로 담기 위한 출사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30년째 장사를 해 오고 있다는 장모씨는 주제에 상관없이 이것저것을 모두 올려놓고 장사를 하고 있다. 남성용 벨트, 시계, 모자, 장갑, 각종 공구 등 좁다란 가판대에 더 이상 올려놓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건들이 즐비해 있었다.“그래도 이렇게 장사해서 자식 3명이나 가르쳤고, 대학까지 다 나왔지요.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요 몇 년은 너무 힘든 시기입니다.” 장씨는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전노련의 최인기 정책위원장은“7억여원의 자비를 들여서 생성한 공간입니다. 서울시 지원은 하나도 없었고요. 하지만 정작 장사가 잘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기만 한다면 충분히 매력이 있는 공간이고, 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곳입니다. 이만한 규모의 벼룩시장이 존재하는 것이 쉽지도 않을뿐더러, 여기 있는 물건들은 정말 없는 것이 없을 만큼 옛 것부터 최신 것 까지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적으로도 관광특화상품으로 거듭날 수 있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 대한 자력이 우리들에게는 부족합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상권인데다가 홍보 전문인도 배제된 상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제한적입니다. 정책적인 지원만 있다면 충분히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전노련 내부에서도 동대문운동장 안에 자리 잡은 풍물시장의 구매력 확보를 위해 다양한 홍보활동을 해 왔다고 한다. 자체적으로 중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해보기도 하고, 주말마다 각종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손님들의 시선을 끌어보고자 노력을 했지만 결국 큰 소득은 없었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한 계획과 시도들이었기 때문에 그 성과도 미미해질 수밖에 없었고, 상인들의 반발도 늘어가 지금은 자포자기 한 상태다. 그런 와중에 이번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 방안이 발표된 것이다.

노점상 문제는 사회 구조에 걸친 문제

“노점상 문화는 사회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내수경기가 침체되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것은 곧 노점상도 증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IMF이후 노점상이 급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고학력 노점상인들도 늘어나고 있고, 연령대도 점점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정규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인력들이 길거리로 나오게 되는 것은 제대로 된 사회의 모습이 아니지요.”라며“그래서 비정규직 철폐와 FTA 반대 같은 운동에 전노련이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들은 우리의 생존권과도 물론 관련이 있지만, 더 나아가서는 사회 구조적인 파괴가 올 수도 있는 문제니까요.”최 위원장은 전노련의 각종 사회 노동단체, 시민단체, 진보단체 들과의 시위 연합의 이유에 대해 이와 같이 답변했다. 결국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에서 비춰지는 전노련과 노점상인들의 과격하고 극단적인 행동에 시민들이 가지는 여론은 좋을 리가 없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장사를 해 나가는 생계수단형 노점상들도 많지만, 매점매석을 일삼고, 사회 암조직과 연계해 권력을 취해 나가는 기업형 노점상들의 행태 역시 노점상의 어두운 면일 것이다. 이와 같은 양면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서울시, 여론, 노점상인들의 첨예한 대립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노점상인들로 인해서 시민들이 보행권을 침해받고, 환경·위생적으로 깨끗하지 못한 것은 분명 노점상들이 극복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기업형 노점상의 근절과 매점매석의 행위도 마찬가지지요. 노점상도 자기 자정력을 가져야 하는데 집단이기주의나 소상인 기질 등은 역시 근절해야 하는 노점상의 이면입니다. 하지만 선진국들의 노점상 해결 사례들과 같이 우리도 충분히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거리문화를 풍요롭게 하고 다양한 먹기리와 볼거리를 제공하고, 이것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여 우리나라만의 거리 문화를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최 위원장은 개발을 위해서는 미시적 접근을 하되, 선진 미래를 위한 구상에 있어서는 거시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발전협의회의 구체적 활동방안 나와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 공원을 조성할 경우 10년간 수백억원의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교수 및 전문가, 상인모임인 동대문포럼(운영위원장 유상오)이 발간한 '동대문지역발전백서 2002'에서 노태욱 강남대 교수는 '동대문 운동장 공원화의 경제성 분석'이라는 논문을 통해 동대문운동장에 공원을 조성할 경우 10년간 순현재가치(NPV)가 972억원으로, 경제성이 충분할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그 전망에 동대문 풍물벼룩시장의 복원과 육성도 함께 들어 있는 것인지, 들어있지 않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제외시킬 것인지, 그리고 그 제외에 따른 상인들의 생존권과 인권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해 서울시는 분명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서울시와 전노련은 지난 달 16일 1차 협의를 가진 이후 지속적인 만남과 대화, 방안을 모색하는 것에는 합의를 했다. 서민 경제를 살리겠다고 상권을 개발한다는 서울시가 직접 나서서 만들어낸 발전협의회의 구체적 활동이 요구되는 시점이다.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