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거리는 아세안, 움찔거리는 한국
아세안 정상들‘합승(合乘)’에 합의
2007-01-25 장인혜 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참석해 에너지 안보, 금융협력, 교육, 조류 인플루엔자, 재난 대응 등 다섯 가지 의제에 관해 공동 노력하자는‘동아시아 에너지 안보에 관한 세부 선언문’에 서명했다. 또한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아세안+3 과학영재센터’를 설립하기로 각국 정상은 합의했다. 2008년 경상남도에 설립될 이 센터는 동아시아 과학영재교육의 중심지로 육성될 예정이다. 아울러 노 대통령은 동아시아자유무역지대(EAFTA:East Asia Free Trade Area) 설립 관련 사업별, 분야별로 심화연구를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EAFTA의 추진과정을 한 차원 높인 시도로 향후 자유무역지대 창설에 견실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할 수도 있다. 노 대통령과 아세안 10개국 정상들은‘한-아세안 행동계획 제 1차 이행보고서’를 채택했다. 각국의 정상들은 서비스·투자 교역에 관한 협정을 금년 11월까지 체결하기로 했다. 이번 정상회의 참석을 통해 한국과 아세안 간 협력관계의 폭과 깊이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올해로 창설 40주년을 맞이하는 아세안은 우리에게 있어 정치?경제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정치적으로 볼 때 아세안은 냉전시기 국제무대에서 우리를 지지해 준 편이며, 지역통합의 시대인 오늘날에는 동아시아 지역통합을 함께 추진해 가는 귀중한 동반자인 것은 분명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된 지역협력체의 하나로 발돋움하기까지 아세안을 유지해온 각국의 노력은 응당 칭찬받을 만하다. 법적?제도적 기반이 없는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만남을 가져온 것은 분명하지만 아세안의 발전과 진보를 도모하는 구체적 혁신이나 중차대한 사안들이 결여되어있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아세안+3 정상회의를 통해 아세안에 법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회원국간의 규칙과 규례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방침이 굳어질 전망이다. 아세안 국가들의 이러한 변화 낌새는 유럽연합이 가지는 그 양상에 한 발 다가서고자 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현재 아세안에는 회원국들을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 내정 간섭이나 협의, 합의 등이 이루어 질 수 없는 만큼 아세안 국가들의 이번 정상회의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나타난 아세안 헌장을 통한 제도화 움직임은 아세안이 동북아 국가들을 포함한 동아시아로의 확대를 지향하는 동시에 내적으로 아세안 안보 공동체, 아세안 경제공동체, 그리고 아세안 사회문화 공동체를 먼저 달성하여 자기 정체성과 응집력을 강화하려는 연장선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아세안 나라들은 이런 발전 방향에 동의하고 있다.
만찬에 불참한 노 대통령, 왜
이번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의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주최로 열린 정상 만찬에 불참한 것은 국내에서 또 다른 화제 거리였다. 세부 샹그릴라 호텔 마르케홀에서 열린 만찬엔 노 대통령을 제외하고 아세안 회원국 10개국 정상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정상회의 의상인 바롱(필리핀 전통 의상)을 입고 참석했다. 노 대통령의 만찬 불참에 대해 노 대통령의 피로누적에 따른 것으로 주최측의 양해를 얻고 이루어 졌다고 당국의 발표가 있었지만 각 언론과 여론은 개헌을 둘러싼 편치 않은 대통령의 심기가 드러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난무했다. 노 대통령은 만찬 다음날인 15일 아로요 대통령이 주최한 오찬 행사에도 불참했다. 세부 인터네셔널 컨벤션센터 내 오찬장에서 열린 이날 오찬은 당초‘업무 오찬’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사교 오찬’으로 성격이 바뀌어 참석하지 않았다고 청와대 측은 설명했다. 아베 총리와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오찬에 불참했다. 그간 우리의 정상들이 피로누적을 핑계대고 공식 일정을 거른 것은 처음이라 노 대통령의 잇따른 행사 불참은 세간의 관심을 더욱 집중시켰다.
아베 총리는 노 대통령을 피했을까.
최근 일본의 한 언론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달 14일 필리핀 세부에서 열린‘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고립시키기 위한 작전을 폈다고 밝혔다. 이 언론에 따르면 아베 총리가 대북 포용정책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노 대통령 고립감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중·일 정상회담 시간을 지연시켜 3국 정상회담 개최시간을 늦췄다는 것이다. 일본 언론의 이와 같은 추측성 보도와 맞물려 국내에서도 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만나지 않은 것에 대해 일부 언론들이 의구심을 제기한 바 있다. 이것은 단순히 노 태동령과 아베 총리의 부자연스러운 관계를 벗어나 아베 총리의 한·중 순방 이후 관계가 더욱 호전된 중·일 관계를 생각해 볼 때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지도 모른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이번에 아베 총리와의 회담에서 오는 4월 일본을 방문하겠다고 확약했다. 이러한 청신호들은 그동안 냉각상태에 있었던 중·일 관계가 빠르게 식고 있는 것은 의미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도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에 반해 중국은 한·중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의 원쟈바오 총리의 방한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원쟈바오 총리는 금년 상반기중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방한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동북공정 문제와 관련, 중국정부는 한국의 관심사항을 중시하고 있으며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언급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아세안과의 협력 확대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매년 300만 달러의 한-아세안 협력기금을 조성해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사업을 전개해 왔으며, 대외 무상 원조의 약 20%를 아세안 10개국에 지원해 왔다. 정부의 이와 같은 노력들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긴장을 하고 각국의 추이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