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구 감독이 말하는 여자핸드볼
우승한 성적과 현실의 아이러니
2007-01-25 최정희 기자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여자 핸드볼 대표 팀은 금메달을 차지하고 당당히 금의환향했다. 그러나 대표 팀 강태구 감독은 이틀 뒤 그의 소속팀이었던 부산 시설관리공단으로부터 재계약 불가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온 감독이 받은 이런 처사는 핸드볼의 우승한 성적과는 전혀 다른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의 국제 경기 성적표는 상당히 우수하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으로 5회 연속 우승을 달성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유력한 금메달 종목으로 꼽힌다. 그러나 우수한 성적도 현실의 벽은 넘지 못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여자 핸드볼 팀은 6개밖에 없다. 강 감독은“팀이 저변화가 많이 되어 있지 않다”며“팀이 있다고 해도 선수와 감독이 모두 1년 계약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말한다. 기업들이 창단하지 않고, 시청 지자체와 공단, 공사들이 팀을 창단하기 때문에 정식사원이 될 수 없어, 선수와 감독이 비정규직으로 남아있다. 1년 후 자신의 신변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제대회메달의 기념품은 경질?
부산 시설관리공단은 창단멤버라고 할 수 있는 강 감독을 예산절감과 팀 관리 소홀을 이유로 경질시켰다. 이에 강 감독은“대표 팀에 대한 전지훈련 및 아시안 게임 훈련 등을 하다보니까, 부산에 자주 못 내려간 것이 사실이지만, 팀에 소홀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오용기 코치(부산 시설관리공단의 현 감독)를 직접 데리고 와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힌다. 더구나 강 감독은 부산 시설관리공단에서 핸드볼이 창단되었을 당시, 좋은 선수들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몇 천 만원의 사비를 털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강 감독 입장에서는 이런 측면을 알아주기 않은 부산 시설관리공단의 조치가 야속할 뿐이다. 감독 경질은 단지 부산 시설관리공단의 문제만은 아니다. 경남 개발 공사 팀, 창원 경주 팀도 지금 강 감독과 같은 상황에 있다. 구단과 1년 계약으로 체결되는 지금의 계약방식으로는 감독이 지속적으로 선수를 관리할 수 없는 상황이고, 성과계약을 맺는 경우도 있어, 1년 안에 성적을 내야한다는 엄청난 부담감이 존재한다. 강 감독의 열정과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은 옆에서 10년 정도 지켜보았던 선수들뿐이다. 강 감독이 경질되면서, 이공주, 이민희 강지혜 선수가 부산 시설관리공단의 이런 조치에 감정이 상해 같이 짐을 싸기도 했다.
전통과 열정을 받쳐주지 못하는 현실
강 감독은“핸드볼은 사실 여자들이 하기 어려운 운동이다”며“한국 여성들만의 끈기, 인내심, 모성, 희생 등이 핸드볼을 하는데 좋은 점이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여자 핸드볼 선수 중에는 외국으로 가고 싶어도 국내 핸드볼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선수들도 있다. 우수한 성적의 원동력은 이런 선수들이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과거에는 한 팀에 보통 12명 정도의 선수가 축구, 야구 등의 인기 종목에 치우쳐 지금은 초, 중, 고 합쳐서 7~8명밖에는 없는 현실이다.(핸드볼은 모두 7명이 뛴다) 대한핸드볼 협회는“여자 핸드볼의 경우 선배들이 세운 빛나는 전통과 이를 이어받으려는 지도자 및 선수들의 뜨거운 열정이 있지만, 이를 받쳐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문제”라고 말한다.
“정책적 지원과 프로화만이 살길이다”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 선수들은 한국에서 은퇴한 후에 외국 진출을 한다. 최고의 전성기 때 외국 진출을 하지 않는 것이 다른 스포츠와 다르다. 잘 하는 선수들이 국내 구단 팀에 있어야 팀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퇴 후라도 우리 선수들은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빠르고 기술이 뛰어난 우리나라 선수들을 선호한다. 강 감독은“유럽으로 전지훈련을 가서 유럽 팀과 연습 게임을 하면 관중들이 꽉 찬다. 덴마크나 노르웨이에서는 축구 다음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가 핸드볼이다”라며, 부러움을 표한다.
강 감독은 유럽같이 되려면,“세대교체가 필요하다. 아테네 올림픽 때부터 아줌마 부대가 있었는데, 그때 신인들을 많이 선발했다. 대부분 나이 많은 선수들이 뛰어 신인들은 뛰고 싶어도 못 뛰는 마음이 있었다. 이것을 이용해 신인들에게 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 지금은 그것이 많은 효과를 발휘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대한 핸드볼 협회도“이런 현실을 깨는 방법은 핸드볼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초등 핸드볼의 저변확대에서부터 성인 핸드볼의 리그 화를 추진하는 등 현실의 벽을 계속 두드리는 것이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현실의 벽을 넘으려면 정부가 축구나 야구처럼 정책적으로 지원해주어야 한다. 지금의 시청 팀, 지자체 팀보다는 기업 팀이 창단함으로써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이렇게 해야만 감독과 선수가 구단과 계약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고, 외국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는 방식 등의 프로화가 가능하다. 강 감독은“지금은 프로화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최소한 준 프로화라도 되어야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강 감독은 한국 실업핸드볼 연맹과 대한핸드볼 협회 등과 핸드볼의 프로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적 지원이나 홍보가 없어 아직 프로화의 길은 멀기만 하다.
2008년 중국 베이징 올림픽은 여자 핸드볼 대표 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경기다. 베이징 올림픽을 개최하는 중국은 4~5년 전부터 어린 선수들을 계속 키우고 있다. 강 감독은“더 열심히 해서 무조건 금메달을 따야 한다”고 절실하게 말한다.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따야 그나마 잠깐의 주목이라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대회 메달을 생명수로 유지하는 핸드볼은 열악한 현실로 인해 위태로워 보인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