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쓴맛 속에 감춰진 진정한 단맛을 찾아서
2007-02-26 장정미 기자
그대로 있다는 기분이 든다.
생활과 방편이 바뀌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 얼굴은 그대로다.
나아지는지 나빠지는지 알 수 없다.
-성석제『참말로 좋은 세상』작가의 말 中
우울할 땐 달콤한 초콜릿을 먹으라 한다. 기분이 한결 나아진단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드는 달콤함은 먹는 이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입가에 스리슬쩍 미소를 짓게 만든다. 세상이 모두 내 것 같은 행복감에 젖어들게도 만든다. 언제부터였을까? 사람들은 쓴 맛을 즐기기 시작했다. 쓰디 쓴 다크 초콜릿 열풍이 불고 있고, 쓰디 쓴 에스프레소를 찾는 사람이 늘어만 간다.‘몸에 좋은 약은 쓰다’라는 옛 말을 새삼스럽게 깨달아 버렸기 때문일까? 과거 사람들에게 견딜 수 없는 달콤함을 선사하던 이야기꾼이 있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마냥 유쾌하고 즐겁게 만드는 천상 이야기꾼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 달콤한 이야기꾼은 쓰디 쓴 인생 이야기를 꺼내며“한번 들어나 보시오”라 말한다. 그 맛을 즐기고 즐기지 않고는 순전히 보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며 말이다.
변화
우리네 인생살이는 마냥 행복하지만도, 그렇다고 마냥 불행하지만도 않다. 살다 보면 좋은 일도 겪게 되고, 또 나쁜 일도 겪게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아직까지는 낭만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성석제의 소설이 달라졌다 말한다.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 한없이 초라해지고 여지없이 무너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해피엔딩은 눈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 없다.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혹 신변의 변화라도 겪은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성석제는“사실은 너무나 잘 지냈습니다”라고 답한다. 그저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란다.
“소설이란 이야기인 동시에 개인의 역사입니다. 존재 가치가 있고 기록할 만한 것들을 제도화 시킨 거지요. 이전에는 이야기의 재미에 관심을 가졌지만 현재는 개인의 존재와 풍속을 얼마나 포괄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라 말하는 그다. 『참말로 좋은 날』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이야기의 인물들이 직면한 상황을 고스란히 느끼게 만드는 성석제는 이야기꾼이다. 1986년‘유리닦는 사람’으로 등단한 성석제는 이후 동서문학상, 이효석 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국내의 내로라 하는 문학상을 휩쓴, 실력을 인정받은 소설가다.
일탈
우연한 계기로 글을 쓰게 되었다 말하는 성석제.“글이 없다면 저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됩니다. 저를 존재하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지요”라 답하는 그에게 있어 글은 세상과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 버렸고, 그를 먹고 살게 해주는 수단이 되었으며,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행복을 찾게 해주는 도구가 되어 주었다. 글을 쓰다 보면 종종 빠지게 되는 매너리즘을 그는 몸을 혹사시킴으로서 벗어난다고 한다. 무작정 걷기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산도 오르내리면서.
가장 큰 일탈이 시를 쓰는 것이었을 정도로 순탄한 인생을 살아온 그에게 있어 재미있는 소설은 99%의 지루함이 에너지가 되어 1%의 번뜩이는 재치를 찾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 한다.“작가가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가지고 글을 쓰느냐에 따라 글의 재미가 달라집니다”라는 그의 말에 따르면 분명 성석제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글을 쓰고 있음이 틀림없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그는 언제나 일상적이면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신기하다. 그닥 특이한 소재도 아닌데,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인데 한번 책을 잡으면 책장을 덮을 때까지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이 성석제가 지닌 진짜 매력이다. 다양한 부류의 친구들을,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얻어낸 소설적 소재들을 거뜬히 소화해 내고 있는 성석제의 능력은 참말로 마르지 않는 화수분인가 보다.
글
성석제는 스스로를 운이 좋은 사람이라 말한다. 시를 위해 목숨을 던질 만큼 시를 사랑했던 좋은 친구들을 만난 것이 바탕이 되었고, 우연한 계기로 시집에 들어가지 못한 글을 정리하다가 모인 원고를 묶어‘소설’이라 분류하여 출판하고 소설가의 대열에 들어섰단다. 쓰다 보니 버티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들이 독자의 입맛에 맞아 오늘의 성석제를 가능하게 해주었단다.
글을 쓸 때 자신의 판단과 의도가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성석제는 독자의 반응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많은 이들이 성석제의 글을 원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책들 중 독자의 비위에 맞추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여실히 보이는 것들은 왜 그리 많은지. 이해는 한다. 출판시장이 많이 어렵다고들 하니 말이다. 하지만 독자의 반응을 염두에 두고 나온 그러한 글에서는 솔직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온갖 기교는 잔뜩 부려놓았어도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뒤돌아서면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공허하다. 이러한 공허함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일상에 지친 독자들은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책을 선택하고 싶기도 하니까 말이다. 성석제의 글은 솔직하다. 자신이 느끼는 대로 의도하는 대로 거침없이 써내려간다. 그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 글을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글은 그러한 글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끄는 글이 아닌, 우리를 이끌어 주는 글을 바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성석제는 이 시대에는 여전히 젊고 좋은 작가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잠재적인 독자들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는 좋은 현상이라고도 한다.
쓴맛
성석제는 지금껏 인생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말한다. 무언가 목표를 세우고 꼭 완수해야겠다는 오기도 없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무상의 행동들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더 큰 보상을 주기도 한단다. 단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는 것이 진정 독자를 생각하는 작가의 역할이라 말하는 그. 『참말로 좋은 날』을 통해 그가 던진 질문은‘광기나 다름없는 극한 앞에 인간을 버티게 하는 진정한 힘은 무엇인가?’이다. 이쯤에서 한번쯤 자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희망조차 포기했던 이야기 속의 인물들을 보며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쓴맛 뒤에는 수많은 맛이 숨어 있습니다. 처음에 쓴맛, 떫은 맛, 신맛은 맛을 볼 때 단맛을 보는 것보다는 괴로울 수 있지요. 하지만 쓴맛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쓴맛 안에 감춰져 있던 단맛은 더욱 강하게 그 힘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그 단맛은 설탕의 단맛이 아닌, 아주 깊이 있는 단맛입니다”라 말하며 성석제는 많은 이들이 쓴맛을 경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다양한 맛을 즐기기를 바라고 있다. 음악이나 영화는 그것이 시작되는 공간에 있다면 보고 싶지 않아도 보아야 하고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책이라는 것을 그렇지 않다. 보고 싶으면 책장을 넘기면 되고, 보고 싶지 않으면 책장을 덮어버리면 그만이다. 성석제는“책이라는 것은 타 매체에 비하면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그 맛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넘어서면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맛은 아마도 평생 동안 기억 속에 각인될 겁니다”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에게 쓴맛을 맛보게 해준 소설가 성석제. 앞으로 그를 통해 맛보게 될 깊이 있는 단맛을 살짝 기대해본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