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사랑할 것을 약속합니다”
아들을 향한 엄마의 사랑이야기
2007-03-24 장정미 기자
나는 아이가 비뚤어진 시선을 갖지 않도록 가능한 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서 사고 훈련도 도와주고 삶을 보다 사실적으로 체험하게 해 주려고 노력했다.
-김현숙『행복은 창문으로 들어온다』中
세상엔 여러 종류의 사랑이 있다. 남녀 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등 그 종류를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랑이 있다. 어떤 사랑은 받기만 하며, 또 어떤 사랑은 주기만 하기도 한다. 일전에 개봉했던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에게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사랑 중 대부분은 어느 사이엔가 모르게 변한다. 그렇기에“영원한 사랑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건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영원한 사랑, 변치 않는 한결같은 사랑을 꿈꾸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랑 중 유일하게 무조건적이며, 일방통행이지만 언제나 한결같이 변함없는 사랑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자, 아버지의 사랑. 즉 부모의 자식을 향한 사랑이다.
절망에 대하여
“병원에서 해성이 진단을 받으려고 하는 동안 기도실에서 기도를 했어요. 어딘가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심정에 하나님을 찾게 되었지요. ‘제발 이 병이 아니게 해주세요. 제발 이 병만은 아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했는데, 결국엔 해성이 병명이 그 병이라고 판명이 났더라구요. 그렇게 해성이 병명이 밝혀진 후에 나를 버렸어요.‘하나님이 나를 버렸다’그렇게 자포자기한 상태로 살았지요”라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 아들이 장애인이란다. 내가 장애아를 낳았단다.
희귀 난치병이란다. 내 아들이 불치병에 걸린 거란다.
저토록 어여쁜 내 아들이 5년 안에 죽는단다.
작가의 아들 해성이는 척수성 근 위축증으로 혼자서는 앉을 수도, 걸을 수도 없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힘든 병이다. 다섯 살을 넘기기 힘들며 평생토록 장애를 가지고 지내야 하며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법이 없는 희귀 난치병이다. 누구든 그랬을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이가 현대 의학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병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면, 그 누구도 좌절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누구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좌절하던 중 교회 목사님의 설교가 와 닿았다는 작가. 그녀는 “교회 목사님이 ‘오늘도 해결되지 않고 내일도 해결되지 않고 앞으로도 해결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기에 오늘도 걱정하고 내일도 걱정하고 미래도 걱정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걱정하던 일이 해결이 됐다면 그동안 마음 졸이고 걱정했던 것들을 어디서 보상을 받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셨는데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오늘 하루만 행복하게 지내면 언젠가는 행복이 올 것이다’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다잡곤 했어요”라며 힘든 나날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하여 말한다.
분노, 그 현실에 대하여
“정책이라는 것은 점점 더 좋아져야 하는 건데 저는 우리나라 복지정책만 생각하면 화가 나요. 작년에 복지정책이 바뀌기 전에는 의료비 지원이 됐었거든요. 그런데 2006년 3월 2일 복지정책이 바뀐 후로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가 없어요”라며 작가는 말한다. “해성이가 크게 아파서 중환자실에 있을 때 하루에 병원비가 30만원이 들어갔어요. 그때 병원비가 총 1000만 원 정도였는데 의료비 지원이 된다는 것을 알고 부랴부랴 서류를 준비하고 제출해서 2-300만 원 정도 지원이 되더라구요. 근데 작년에 복지정책이 바뀐 후로 의료비 지원 대상의 재산을 조사해서 지원대상자의 커트라인을 설정했는데 해성이는 그 대상에서 제외가 됐어요”라며 행정당국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다.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니까 불편을 겪는건 당연한데,
왜 자기불행을 남한테 하소연하냐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장애인은 기본적으로 앓고 있거나 가지고 있는 장애만으로도 충분히 힘들다.
정상인들은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중산층 사람들 중에서는 막대한 치료비가 부담스러워 의료비 지원 대상이 되기 위해서 집을 파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아무리 중산층이라고 해도 막대한 치료비에 대해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한 환우 어머니가 저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나는 세원이에게 종일 매여 있어서 내 직업이 무어냐 물으면 세원이 엄마라고 대답한다. 나는 우리 세원이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의료비 지원까지 받지 못하게 만드니 황당하다’라고 말이예요. 어떻게 갈수록 정책이 후퇴하고 있는지. 생각할수록 화가 나요.”진정한 복지정책이란 잘 사는 사람만을 위한 것도 아닌, 그렇다고 못 사는 사람만을 위한 것도 아닌, 누구나 다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행복에 대하여
작가 김현숙은 “해성이와 둘이 있을 때 가장 행복해요. 해성이가 종달새처럼 잘 지저귀거든요. 둘이 많이 싸우기도 하고. 해성이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불쑥 불쑥 할 때마다 가슴이 쿵쿵 내려 앉기도 해요”라며 해성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털어 놓는다.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가능한 한 아이가 긍정적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도록 훈련시켰다.
그녀는 저서『행복은 창문으로 들어온다』에서 “모든 문이 닫혀 있다고 느꼈을 때 신은 나에게 창문을 열어 주었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온다”라고 말한다 . 5살까지밖에 살지 못할 거라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해성이는 이제 17살의 사춘기 소년이 되었다. 이는 해성이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그리고 해성이를 너무나 사랑하는 어머니로서의 작가와 가족의 힘이 만들어 낸 기적이다. 작가는 이제 고통의 터널을 지나 행복으로의 길을 걷고 있다. 때때로 힘이 들기도 한다는 그녀는 여전히 해성이의 엄마이기에 사랑하는 해성이를 위해 오늘도 모든 순간순간을, 그리고 24시간 해성이와 함께 하고 있다. 그것이 아이를 둔 엄마로서의 즐거움이자 기쁨이다. “우리가 원하는 행복은 평범한 것, 건강한 아이가 있는 거예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더 높은 것을 향해 치닫고 있어요.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 말이죠”라며 행복이란 거창한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아주 사소한 일들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고 덧붙인다. 이제 해성이는 몇 년 후면 성인식을 치르게 될 아들 해성이를 위해 작가 김현숙은 “성인식을 크게 할 거예요. 동네방네 소문내서 아는 사람들 다 초대하고 크게 해줄 거예요”라고 한다. 5살까지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던 해성이가 지금껏 그녀의 옆에서 웃어주고 있다는 것, 그것이 그녀의 삶에 있어 기적이자 기쁨이요, 행복이다. 어머니로서의 사랑,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쏟아 붓는 그녀. 그녀의 마음이 곧 모든 어머니의 마음이요, 그녀의 사랑이 곧 어머니의 사랑이다.
꿈, 그 희망에 대하여
작가 김현숙은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정말 그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제가 해성이에게 무언가를 해주려고 노력을 하면 그게 꼭 이루어졌거든요”라며 희망에 대하여 말한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앞만 보고 달려온 긴 터널의 끝을 볼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터널의 중간쯤 왔을지, 아니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아주 많이 남았을지는 알 수 없다.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나의 일상들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 그것은 터널의 끝에 다다를 때까지 하늘이 내게 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작년 12월 24일에 유재석씨와 노홍철씨가 집으로 찾아오셨어요. 우리 해성이가 유재석씨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얼마 전 해성이의 여자 친구를 만났어요. 그 전까지는 온라인상에서만 만났던 아이였는데 해성이가 많이 보고 싶어 했어요. 제가 해성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모 방송국의 소원 들어주기 프로그램에 신청을 했는데, 놀랍게도 제가 신청한 소원이 당첨됐더군요. 그런걸 보면 우리 해성이가 인덕이 많은 것 같아요. 일일이 고마움을 표할 수 없을 정도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계시거든요. 아픈데 인덕마저 없었다면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라며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던 작가는 “앞으로도 살다 보면 해성이가 원하는 것이 또 생기게 될 거고, 그러면 저는 또 그 소원을 이루어 주기 위해 또다시 노력을 하겠지요. 사랑하는 내 아들이니까요”라며 아들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동화<파랑새>에서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찾던 행복의 파랑새가 바로 옆에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나 갈구하는 행복은 어쩌면 너무나 가까이 있기에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만이 진정한 모성이라 말하지 않겠다. 또한 진정한 사랑이라고도 하지 않겠다. 자식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이 우리네 어머니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희망이 무엇인지에 던지는 질문의 답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를 향한 엄마의 무조건적 사랑. 이것이 각박해져가는 우리 시대의 가족들에게 작가가 하고 싶은 마지막 말인지도 모른다. 해성이와 해성이를 사랑하는 엄마의, 앞으로의 나날들에 항상 행복과 사랑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