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성의 이중주, 고금(古今)의 어울림
유년의 기억과 향수를 허수아비에 담아
2007-03-29 정재우 기자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산, 연인산 자락에는 깔끔하고 운치 있게 지어 놓은 ‘허수아비마을’이 있다. 이곳은 경원대 응용회화과 교수인 남궁원(南宮沅) 화백이 조성해놓은 곳이다. 그리고 그의 그림 주제 대부분이 ‘허수아비-삶’인데, 그 그림들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는 것인지 자못 흥미롭다.
지난 1월 15일 경기도 문화예술인단체 총연합회장 선거에서 경원대 교수인 남궁원 화백이 당선되었다. 그리고 2월 6일, 천여 명의 회원들과 내외인사들이 모인 가운데 취임식을 마침으로써 앞으로 침체된 경기예총의 새로운 도약을 예고했다. 그는 “각 지부에 적극적인 협력책을 마련해 시, 군 지부의 결속력을 다지는데 중점적으로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지며, 4만여 경기예총 회원들의 수장으로서 봉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자연과 인간, 전통과 현대의 경이로운 조우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정겨움을, 인간과 자연의 만남은 경이로움을 준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서로에 대해 이익적 관계, 실용적 관계 이상의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우정, 사랑, 친밀함과 공감, 이런 것들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자연을 수탈과 지배의 대상으로만 여기면서 자연과 인간의 진정어린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희생, 신성, 초월을 통해 도달하는 참다운 관계 말이다. 남궁원 화백은 논바닥에 서 있던 허수아비들을 그의 화폭에 옮겨서 그린다. 그는 전통성과 현대성을 상호보완적 방식으로 채택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있다. 허수아비를 통해 인간과 자연이라는 만남의 열매가 영글어간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남궁원 화백 작품 속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색다른 소재 허수아비의 결합이 빚어낸 조화에 감탄하게 된다. 화가의 초창기 작품들은 아이들의 세계에 중점을 두고 유년(幼年)의 기억과 향수를 허수아비에 담아 동심의 세계를 표현했다. 80년대 초, 유년시절을 경기도 가평 산촌마을에서 보낸 그의 시각은 점점 도시화되는 고향을 늘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지키던 허수아비에 머물렀다. 이후, 기억 속의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던 허수아비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화가의 화폭에서 주된 소재로 자리했고, 해를 거듭할수록 사실적으로 표현되던 허수아비의 형체는 점차 허물어져 의인화되며 삶의 진중한 무게를 싣고 있다. 아울러 신윤복과 같은 18세기 화가들의 서정성을 잇는 화풍으로 그려내기도 하고, 인상주의 화가나 쉬라, 마티스를 연상시키는 채광을 담아 한국과 서양을 동시에 아우르면서도 그만의 정적인 힘, 절제미와 섬세미를 보여준다. 근간 작품에서 형상을 드러내기보다 추상적인 형태로 선보이고 있는 허수아비는 고향의 색을 담은 황토색에서 현대화, 단순화되어 푸른색 등 다양한 색감으로 표현되고 있다. 또한 웃는 허수아비, 우는 허수아비, 나는 허수아비, 아픔의 허수아비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의 삶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승화시키며, 화면 위에 남겨진 종국의 흔적들을 통해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끈질기게 탐색하고 있는 듯하다.
그의 꿈은 들판에서 익어가고
남궁원 화백은 초인적인 정신과 신념을 가진 예술가이면서 입지전적인 경력의 교육자이기도 하다. 1947년에 태어난 그는 전쟁 중에 아버지를 여의었고, 숙부의 슬하로 들어가 사촌들과 함께 자라며 학교를 다녔다. 어렸을 때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화가의 꿈을 키웠지만, 가난이라는 현실의 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미술대학의 진학을 포기하고 춘천교대와 인천교대를 거쳐 초등학교 교단에 섰다. 그러나 좀처럼 식지 않은 그림에 대한 열정은 그를 중등미술준교사 자격검정고시에 합격하게 만들었고, 명지대로 편입학을 하게 했다. 그 후, 성남여주중고에서 교편을 잡는 와중에 연세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로 진학, 대학원 과정을 마치게 된다. 그리하여 1979년 경원대학 교단에 선 이후 지금까지 후학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인생에서 허수아비가 좋아 1998년 고향마을 경기도 가평군 북면 백둔리에 ‘허수아비 마을’을 조성하게 되는데, 남송미술관을 비롯해 수영장, 카페허수아비, 아트홀, 수련원 등 숙박은 물론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춰 놓았다. 여기에 허수아비축제, 누드크로키, 민속주 축제 등 각종 예술제 등을 개최하여 문화예술의 불모지였던 이곳에 예술의 씨앗을 뿌렸다. 이 같은 남 화백의 문화예술 활동은 한국미술작가수상(96), 교육부총리상 수상(2004), 경기미술 대상(2004), 평화미술대전초대작가 국무총리상 수상(2005), MANIF서울국제아트페어 특별상 수상(2006) 등 50여 차례나 수상하는 영예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그가 이렇게 작품 활동을 하며 예술인들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내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전했다. 성남음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부인 김순미 여사는 평소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고 다정다감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아들 남궁환 역시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파리유학에서 돌아와 현재 목원대에 출강하며 젊은 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등 한 마디로 남 화백의 집안은 예술가족이다.
한편, 남송미술관의 주최 하에 오는 4월 8일까지 성남아트센터에서 ‘제1회 남송국제아트페어’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성남 최초로 이루어진 아트페어로 응모기획전, 초대작가전, 특별작가전, 작품 경매전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며, 관람객들은 전시를 통해 우수한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한 장소에서 다양한 세계의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다. 남궁원 회장은 “작가들의 작품경향과 예술성을 조망하여 품격 있는 아트페어를 만듦으로써 세계미술 중심의 마켓을 이루겠다”고 비전을 제시했다. 더불어 “국내 예술계의 발전을 위한 역할수행에 언제든지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경기예총의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작품 구상에 여념이 없는 그의 도전과 꿈은 이처럼 아름답고 무한하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