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기업지배구조개선 정답 될까
소유구조 단순화되지만, 경영투명성은 멀어
2007-07-24 최정희 기자
2006년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현황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말 지주회사는 LG, GS홀딩스, 우리금융지주 등 총 31개사(일반지주회사 27개, 금융지주회사 4개)였다. 지난 4월 13일 지주회사 전환 요건을 완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 이후, 금호산업 등 7개사가 지주회사로 전환했고, SK, 한진중공업, CJ 등이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 중이어서 앞으로 지주회사 수는 상당히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1999년 기업구조조정 원활화 및 금융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도입된 지주회사 제도는 기업지배구조 개선 및 구조조정 등으로 인해 지주회사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2004년 22개, 2005년 25개, 2006년 31개, 2007년 4월 기준 38개로 점차 증가해왔다. 정부는 지주회사 증가 추세를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 제고, 제조부문과 투자부문을 분리하는 과정에서의 기업 가치 극대화 등을 활용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에 따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재벌체제가 만든 복잡한 순환출자
기존 기업의 지배구조는 한국형 재벌 기업 형태를 유지해 왔다. 재벌 기업은 상호출자와 상호보증 등을 통해 계열사가 하나의 집단으로 묶이고 이들 전체를 한 사람이 지배하는 기업 체제를 말한다. 예를 들어, 삼성은 이건희 일가가, 현대는 정주영 일가가 지배하는 형식이다. 한 기업의 사업 분야가 너무 다변화되어 있어, 전혀 상관없는 여러 회사를 문어발식으로 운영해왔던 형태가 대표적인 재벌 체제였다고 볼 수 있다. 그로 인해 생겨났던 문제가 복잡한 순환출자다.
순환출자는 A사→B사→C사→A사 형태로 출자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상호출자, 상호보증으로 인해 한 기업이 망하게 되면, 다른 기업까지 연쇄적으로 붕괴되는 악순환의 위험이 있다. A사가 100억 원의 자본금을 갖고, B사의 유사 증자에 참여해 50억 원을 출자하고, B사는 C사에 30억 원을 출자하고, C사가 다시 A사에 10억 원을 출자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A사는 100억 원으로 B, C사의 대주주가 될 수 있고, 자본금도 110억 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자본금이 장부상의 자본금일 뿐, 실제 자본금은 100억 원이며, 나머지 10억 원은 거품이 된다. 이런 식의 순환출자는 B사가 부도가 나면 A사의 자산 중 50억 원이 사라지게 되는 위험이 있다. 현행 상법과 공정거래법에서는 A사와 B 두 계열사 간 출자를 금지하고 있지만, 순환 출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을 두지 있지 않다. 순환 출자 규모나 내용을 파악하는 일이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에서 순환출자를 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순환출자를 통한 자본을 형성하지 않고, 단일회사로 서로 다른 여러 개의 사업체를 운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기업 전반에 깔려있는 보편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복잡한 순환출자를 형성하는 재벌 체제는 지배권과 의결권에 괴리를 가져오는 문제도 있다. 보통 재벌의 경우, 한 회사의 지분을 적게는 1%에서 많게는 20% 정도 보유하고 있지만, 상호출자 등을 통해 추가로 해당 기업의 주식을 간접보유하게 됨으로써, 이 지분까지 의결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1%의 주식을 가지고 30%의 의결권을 행사하게 되는 경우가 일어나게 된다. 지주회사 전환은 계열사 간의 출자를 제한해, 지배권과 의결권의 괴리를 줄이거나 없어지게 할 수 있어 자신의 지분만큼 의결권을 발휘하게 돼, 상대적으로 소액주주의 의결권이 커지는 혜택이 있다. 반면, 대주주가 자회사의 일정 지분을 소유해 대주주의 권한 강화로 재벌 체제를 더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상반된 의견도 제시된다. 이런 이유로 인해, 미국은 1920년대 전력과 가스부문의 지주회사를 규제했고, 일본도 1997년 지주회사를 금지했고, 국내에서도 1999년까지 지주회사를 금지해 왔다. 그러나 IMF 체제 이후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기업지배구조 변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하게 되었다. 공정위 관계자는“90년대 지주회사 설립이 금지되었는데, IMF를 거치면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등에서 대기업들이 구조 조정하는데 지주회사가 도움이 된다고 해서 제한적으로 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해왔다”고 말했다.
LG는 지주회사로 지분율 50% 강화
IMF 체제를 겪은 재벌 그룹들은 회사 내 구조조정본부를 세우게 되었다. 기존에 있었던 기업의 구조조정본부 역할을 지주회사가 하게 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경영부문의 재벌 보좌기능을 수행하면서, 각 그룹의 사업부문 및 계열사 매각이나 대기업 간 사업 맞교환 등의 업무를 주도해 왔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김선웅 소장은 많은 기업의 지주회사 전환에 대해“현재 재벌그룹의 경우 구조조정본부가 지주회사로 설립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 자체에 대한 리스크는 없지만, 지주회사로 전환된 이후 어떤 사업에 투자를 해서 수익성을 높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지주회사 전환 기업이 증가하는 이유는 회사분할 및 합병을 하는 과정에서 재벌총수들의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으로서 최초로 지주회사로 전환한 LG의 경우 두 동업자 가문의 분리도 원인이 되었지만, 지주회사 전환과정에서 지배주주들의 지주회사 지분율을 50% 이상 강화시켰다. 김 소장은“지주회사 전환을 통해서 사업구조조정 재편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주회사 전환은 인적분할, 주식현물출자, 물적분할, 자회사 비중 증가 등의 4가지 방식에 의해 설립되지만, 국내 많은 기업들은 인적분할의 방식을 채택해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대표적인 예가 LG, GS, SK 등이다. 인적분할은 지주회사가 되는 회사와 자회사가 되는 회사가 현재 회사의 주주구성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어, 주주들이 지주회사를 선택할지, 자회사를 선택할지 결정하게 된다. 김 소장은“주주들은 사업성이 있는 사업자 회사의 주식을 더 선호한다면, 지주회사 주식을 팔면 된다. 인적분할의 경우 주주구성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고, 이 과정에서 재벌총수들이나 특수관계인들이 지주회사 지분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사업자회사의 지분확대는 재벌총수들이 직접 자신의 돈을 들이지 않고 지주회사 자금을 이용하여 지분을 확대하면 되기 때문에 재벌들이 인적분할을 선호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지주회사 되면, 세금 혜택에 주가 상승까지
지주회사로 전환하게 되면, 대주주는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지분율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일반 투자자들은 기업투명성 확대를 통해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좋은 점이 있다. 태평양의 경우 대주주는 지주회사로의 전환과 지주회사와 영업회사 간의 유상증사(실제로는 주식스왑)를 통해 지주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기존 27%에서 57%로 상승시켰다. SK그룹도 지주회사로 전환 이후 지주회사와 영업회사간의 주식 스왑을 통해 SK C&C의 지주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기존 11%에서 26%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기존 복잡한 순환출자로 얽혀있던 재벌체제의 지배구조에서 탈피해 지주회사, 자회사, 손자회사로 단방향으로 출자되는 기업 지배의 투명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 지주회사 전환을 발표하면, 일반적으로 주가가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UBS는 지난 4월 24일 지주회사로 전환한 온미디어, 태평양, 대상, 대웅, LG, 농심, 풀무원, 세아홀딩스 등의 시가총액 1천 500억 원액이상의 국내 지주회사 9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주회사 설립 후 1년 간 시가총액은 43% 늘었으며, 주가는 코스피 지수 대비 9포인트 올랐다고 분석했다. UBS 한국 리서치 장영우 대표는“지주회사를 설립하기 전 1년간 시가총액이 평균 4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주가도 코스피 지수 대비 41% 포인트 더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주회사가 설립되고 난 후 12개월보다 전 12개월 동안 기업 가치가 훨씬 높아지고, 지주회사 설립 6개월 이후보다는 이전 6개월 시점에서 기업 가치가 더 향상됐다”덧붙였다. 지주회사 전환을 발표한 기업의 주가 상승은 지주회사 구조 개편에 대한 기대심리가 주가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지주회사로 전환하게 되면 각 기업이 가지고 있었던 계열사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수익이 적게 나는 계열사는 처분하게 되어 기업의 핵심 계열 사업에 집중하게 되어 기업가치가 상승하게 된다. 장 대표는“지주회사를 설립하게 되면 더 명확한 소유구조를 유지하게 될 뿐만 아니라, 법에 따라 부채비율을 100% 아래로 떨어뜨리기 위해 자산을 매각한다. 동시에 재벌일가가 개인 자금을 이용해 지분을 늘리는 경향이 있고 60~100%에 달하는 비과세 배당수익으로 인해 지주회사의 경우 세금 혜택도 누릴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증권선물거래소는 6월 25일 최근 주요 대기업들이 지주회사로 전환을 추진함에 따라 주가지수운영위원회 심의를 걸쳐 지주회사의 코스피 200 편입 기준 내용을 발표했다. 현재 코스피 200에 편입된 지주회사는 우리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한국투자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GS홀딩스 등이다. 구성종목을 바꾸는 정기변경 결정(5.28)을 할 때, 코스피 200편입 결정을 유보한 LG는 올 9월 선물시장의 최종거래일 다음 날인 9월 14일에 편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로 인해 LG에 대한 주가 상승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주회사라도 재벌체제는 없애지 못해
최근 들어 대기업들의 지주회사 전환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이유는 개정된 지주회사법으로 인해 지주회사 전환에 따른 비용절감 및 감세효과가 증가한 영향이 크다. 지난 4월 17일 공정거래위원회 권오승 위원장은 같은 달 13일에 공포된‘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시행령’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개정안 내용 중 지주회사제도 개편은 자회사 및 손자회사 지분율요건 완화(상장 30%→20%, 비상장 50%→40%)와 지주회사 부채비율 한도 상향(100%→200%) 등으로 개정되었다. 정부는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체제가 거미줄 같이 복잡한 대규모 기업집단의 순환출자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으로 보고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제도개선을 추진했다. 교보증권의 지주회사 전환 관련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지주회사 전환의 가장 큰 의의는 지배구조의 투명성 개선으로 기업의 대외 신인도가 증대되어 대기업 집단의 재평가를 가져올 수 있고, M&A 등과 같은 사업 확장 전략 및 재무 영업 전략에 유리하다는 장점에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가 지주회사 전환을 촉구하는 개정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주회사 요건을 완화하는 개정안은 총수일가의 지배력 남용 및 경제력 집중 심화라는 기존 재벌체제의 문제점을 그대로 온존시킨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개정안 부결을 촉구했다.(현재‘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 시행령’개정안이 7월 3일 국무회의를 통과, 대통령 재가 및 공포 등의 절차를 거쳐 7월 14일부터 시행) 지주회사 체제가 지배구조 문제와 경제력 집중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기업조직 모델은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지주회사 체제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단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제도 설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재벌체제보다 낫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지주회사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규제 완화를 추진한 정부 정책 기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주회사가 기존 순환출자를 막을 수는 있지만, 재벌 체제를 완전히 해소할 수 있는 없다는 얘기다. 김선웅 소장도“재벌들이 지주회사로 사업다각화를 통한 기업인수에 뛰어들게 되어 그 자체로 경제력 집중현상이 심화되고, 재벌총수는 그러한 지주회사 체제를 견고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지분을 확대하는 등 지배권을 강화시키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주주 지배권 강화, 통제 장치 없어
지주회사 전환이 재벌주주의 지배권 강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소유권과 지배권의 괴리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공정위가 지주회사를 권장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기존의 복잡한 순환 출자 구조를 가진 기업지배구조보다 지주회사가 장점이 많아 기업들이 지주회사 전환을 유도하는 정책에 상당히 긍정적이다. 경제개혁연대의 말대로, 최소한 지금의 재벌체제보다 낫지 않느냐는 게 공정위의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지주회사는 출자구조 자체가 단순해지고, 시장 감시와 구조조정이 용이하고, 자회사의 출자에 대한 부담 해소 및 독립 경영 등의 장점이 있기 때문에 현재 재벌 체제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선웅 소장은“지주회사 전환으로 소유구조가 단순화되는 것은 맞지만, 경영투명성이 바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며, 지주회사 전환으로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될 것이라는 분석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지주회사의 지배권이 강화되고 자회사의 이익을 재벌주주가 독점할 수 있어 시장 감시자들이 견제할 수 있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경영투명성이 보장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 소장은 이에 대해“지주회사가 마구잡이식 사업 확대를 하지 못하도록 지주회사 계 열사들의 부당내부거래 등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고, 기업인수 시 기업결합심사를 공정위가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다. 또 지주회사에 대한 부채비율규제 및 자회사지분율 요건을 상향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의 말대로라면, 지주회사 요건을 완화한‘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개정안은 지주회사의 약점인 지배권을 오히려 강화시키고 있다. 그는“현재 재벌계열 지주회사들이 자회사 지분율을 법적으로 최소한으로 보유하고 있고, 최근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자회사 지분보유요건을 다시 완화해서 적은 지분으로 많은 계열사를 지배하는 문제가 다시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재벌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한다는 측면에 대해 행위 제한 제도를 두고 있다. 지주회사가 되려면 자회사의 지분 보유, 부채 보유 의무 부과 등이 있다”고 응대했다. 그러나 최근의 법률 개정안은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보유, 부채 보유 부과를 완화한 상태라, 재벌주주의 지배권 강화 문제를 어떻게 보완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지주회사 요건을 완화하면서 출총제(기존 25%→40%)도 같이 완화했다. 규제 완화에 있어서 형평성을 고려한 것이다. 이런 전반적인 측면에서 봐야 한다. 사실 출총제보다 지주회사가 더 규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출총제 등 사전규제는 최소화되고, 사후규제 및 시장 감시 기능은 강화하기 위한 제도로 평가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11월 15일 정부가 발표한‘대규모기업집단정책 개편 방안’에 따른 것이다. 대규모기업집단시책은 ▷사전규제는 최소화하는 동시에 사후규제는 강화 ▷제도개선을 통해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 촉진 ▷시장 및 사회적 감시 기능 강화 등이 주요골자다. 그러나 시장 감시기반이 대규모 기업집단 정보 관련 포털사이트 구축에 지나지 않아, 지주회사 전환으로 대주주의 지배권 강화를 통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