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해외 투자 촉진할 수밖에

일본산 들어오고, 국내산은 못 나가는데

2007-07-24     최정희 기자
엔저가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국내 수출 기업은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고, 정부의 환율 하락 유도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엔저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가 화두가 된 가운데, 엔저로 인한 경제 전반에 이상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또 엔저를 부추기는 낮은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다른 나라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 일본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적어 엔저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7월 13일 원엔 환율은 100엔당 749원을 기록했다. 원 달러 환율도 916.90원으로 지난해 12월 7일 913.80원 이후 7개월 만에 최저치였다. 전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콜금리를 인상했다. 금리 인상과 주가 급등이 환율 하락을 촉진시키는 원인이었다. 지난 5월말 광의유동성(L) 잔액은 1,913.5조원으로서 월중 13%증가해 어쩔 수없이 금리 인상을 강행했다. 금리인상이 원엔 하락이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원엔 환율은 원 달러 환율과 엔 달러 환율의 변화에 따라 조정 받는 재정환율에 의해 결정된다. 즉 원엔 환율은 원 달러 환율을 엔 달러 환율로 나눠서 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분자인 원 달러 환율이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도 분모인 엔 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원엔 환율은 자동적으로 하락하게 되는 셈이다. 엔화는 달러화에 비해 약세를 보이는데 비해, 원화는 달러화에 대해 강세를 지속하는 데 따른 결과다. 경제협력개발기구와 국제결제은행 등은 실질실효환율과 관련해 원화가 너무 절상돼 있어 앞으로 절하되는 것이 경제에 맞는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원화가 평가 절하되기 위해서는 일본이 금리를 획기적으로 인상하는 등의 직접적인 요인이 필요하다.

저금리로 일본 수출은 파란불
엔저의 원인은 다양하다. 산은경제연구소 김은영 선임연구원은“미국경제의 둔화와 글로벌 중앙은행의 긴축기조 지속으로 일본과 다른 나라들과의 금리차가 크다. 또 엔 캐리 트레이드가 지속돼 엔화 약세를 유지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상대국가에 비해 낮은 금리를 갖고 있는 나라의 환율이 평가 절상되고, 반대로 높은 금리를 갖고 있는 나라의 환율은 평가 절하돼 두 나라의 금리 차이만큼 이익이 환차손으로 상쇄된다. 그러나 엔 캐리 트레이드 현상은 정반대다. 일본의 낮은 금리는 환율을 평가 절하시키고 있다.
올 초 일본의 단카이 세대들이 퇴직을 하는 시기라, 연금이 대거 일본 주식 시장으로 갈 것을 예측하고, 일본 펀드가 많이 팔렸다. 그러나 일본의 개인 투자자들이 낮은 금리를 활용해 엔화로 돈을 빌려 다른 나라의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더구나 대부분의 나라들이 긴축 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글로벌 증시가 호황이라 유동성이 높아지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산은경제연구소는 최근 2년간 국내로 유입된 엔 캐리 트레이드 규모가 약 6조7천억 원 정도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는 1조 달러까지로 추정하고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의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의 저금리 때문이다. 일본은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과거 10여 년간 극심한 경기침체인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했기 때문에 제로 금리를 유지해왔다. 근래 몇 년 사이 경기가 회복하면서 금리를 0.25%씩 상승시켰다. 그러나 한국은 4.75, 미국은 5.25, 영국은 5.0, 유로 지역은 3.50인데 비해, 일본의 금리는 0.50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은행(BOJ)은 지난 2월 21일 금리를 기존 0.25%에서 0.50%로 인상하면서, 후쿠이 도시히코 총재는“금리를 시간을 두고 천천히 조정해갈 것이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저금리로 수출 호조를 보이는 일본으로서는 다른 나라의 눈치를 보며 금리를 인상할 이유가 없다. 재경부 관계자는 일본의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해“일본의 정책금리 결정은 일본 중앙은행의 고유한 독자적 권한이기 때문에,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감안하여 다른 나라 정부가 공개적으로 일본의 금리 인상 시기 및 가능성을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 빨리 청산되면 타격 커
엔화는 지난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 때보다 실질실효환율이 더 떨어진 상태다. 실질실효환율은 환율 변화에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구해지며, 한 나라 상품의 국제 가격경쟁력을 측정하는데 널리 이용된다. 지난 5월 일본은행은 실질실효환율을 계산해본 결과 94.9로 나타나 1973년 3월을 100으로 봤을 때, 플라자 합의 당시인 94.8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플라자 합의는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로 일본, 유렵, 미국 간의 무역마찰을 줄이고자, G5 재무장관들이 뉴욕 플라자호텔에 모여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말한다. 1985년 엔화의 평가절상을 위해 플라자합의를 했던 미국이 엔화 절상에 팔을 걷어붙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도 엔 캐리 트레이드로 이익을 보고 있다는 것이 전반적인 분석이다. 김은영 선임연구원은“엔저현상이 미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데다,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다시 미국으로 재투자되고 있어 암묵적으로 용인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금리 인상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정치적인 입장이 있다. 일본은 7월 29일 참의원 선거를 실시한다. 최소한 선거 전까지 금리가 인상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지율 바닥의 아베 신조 총리가 서민 경제의 부담이 되는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선거 이후는 어떨까? 일부에서는 참의원 선거 이후, 일본 금리 상승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전반적으로 일본이 금리 상승을 강행하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다수다. 김은영 선임연구원은“일본은 하반기 한 차례 정도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전망돼, 급진적인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은 기대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환율의 상승세도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원엔 환율은 소폭 상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려면 일본의 금리가 인상되고 글로벌 유동성이 축소되어야 한다. 그러나 엔 캐리 트레이드가 급격하게 청산되면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어, 조심스럽다는 반응도 많다. 1998년 롱텀캐피털(LCM) 파산 사태로 엔 캐리가 급격히 청산되었던 사례처럼 국제 금융시장에서 예기치 못한 일시적 충격이 발생할 경우처럼 될 수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다. 재경부 관계자는“캐리 트레이드는 국제 투자자들이 금리, 환율 등에 대한 기대에 따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조치를 통해 확대되거나 청산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가격경쟁력에서 밀려 대일 수출 어려워
그러나 엔저 현상이 지속되면서, 국내 수출 기업이 겪는 어려움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국무역협회는 올 3월 원화는 최근 3년간 엔화대비 약30%, 달러대비 20%가 절상되었다고 발표했다. 원화만 강세를 보이고 있어, 수출업체는 채산성 악화, 경쟁력 약화에 맥을 못 추고 있다. 부품, 소재의 높은 대일수입 의존도로 인해 원자재 수입이 두 자리 수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는 반면, 내수 부진에 따른 소비재 수입은 올해 1/4분기 1.3% 감소했다. (주)한일맨파워는“전년대비 15% 수주금액이 증가했으나 엔화로 환산하면 3%지만, 원화로 환산하게 되면 약 15%나 감소한다”고 원고현상의 어려움을 말했다. 또 협력업체가 기존 600개에서 작년 250개로 줄었고, 한국산제품 비율은 50%에서 30%로 줄었다.
자동차 수출 업계의 어려움도 크다. 지난해 말 현대자동차‘베르나’의 미국 판매가격이 2005년 9월 10,985불로 경쟁차종인 도요타‘야리스’보다 286불 낮았으나, 2006년 9월에는 12,565불로 640불 비싸졌다. 환율 하락으로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무역협회는 대일 순 수출이 연간 3백 만 불 이상, 엔화 결제비중이 50%이상인 중견 수출기업 22사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가격경쟁력 악화를 환율 하락의 어려움으로 꼽은 업체가 전체의 75%이상이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최근 몇 년간 지속적인 원화 환율 하락으로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한계상황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우리나라 수출이 일본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원엔 환율 하락은 대일 무역수지에는 물론 우리나라 수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원엔 환율 하락이 가속화되면서 대일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와 수출둔화가 가시화되고 있으며, 국내시장에서의 일본 부품의 시장잠식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환율 조정해야
최근 원엔 환율 하락은 원화의 독자적인 강세보다 엔화의 약세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엔화가 유로화 등 다른 통화에 대해서도 유독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외환시장의 안정을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고, 이를 위해 외화에 대한 수요를 확대(환율 상승 요인)하기 위하여 해외투자 활성화 등 수급 대책을 수립, 추진 중에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나친 쏠림현상 등 시장교란 요인으로 원화가 국제적인 환율시세를 제대로 반영하는 못하는 경우를 걱정하고 있다. 필요한 범위에서 스무딩 오퍼레이션 등을 통해 대응해 나간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재경부 관계자는“환위험 관리 등 수출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 노력도 병행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분간은 일본의 금리 인상 및 글로벌 유동성 축소 등의 외부적인 경제 변화가 환율을 조정해주기를 바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김은영 선임연구원은“단기외채 차입을 조정하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환율 급락 시 적정 시점의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이 필요하다. 또 기업들은 연초 발표한 해외투자 촉진 방안 활성화로 자본 유출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엔화, 달러화에 비해 원화만 계속해서 평가 절상되고 있다. 원엔 환율과 원 달러 환율이 모두 낮은 상황이다. 지난해 많은 대기업과 중도업체들은 낮은 환율에 대비해 과도하게 선물환을 매도하는 경향을 보여, 환율 하락을 촉진시킨다는 비판을 들었다. 최근 수 년 간 원화가 강세인 이유는 수출 호조 및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에 따라 경상, 자본수지가 동시에 흑자를 지속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국내 수출 호조로 기업들이 앞 다투어 환율이 오를 때마다 선물환을 매도했다는 얘기다. 재경부 관계자는“환율은 기본적으로 외환수급이나 경제 펀더먼털을 반영해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하고 있으나, 최근 원 엔 환율의 하락으로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많은 만큼, 이에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