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하는 교육부 행정

수험생을 볼모로 한 위험한 도박

2007-08-30     장정미 기자
고려대 서강대 숙명여대 등 일부 사립대가 2008학년도 정시모집 내신 실질반영률을 20% 이내로 잡았다. 정부 권고안인 30%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정부와 대학 간 또 한 번의 내신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대학들의 이런 결정에 교육부는 일단 “두고 보겠다”며 즉답을 피했으며, 김신일 교육부총리는 “학생부 중심의 교육 방향은 잡혀 있다”면서 “대학에 따라 형편이 다르겠지만 될 수 있으면 그 수준에 맞췄으면 하고 두고 보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고려대는 지난 7월 30일 안암캠퍼스 정시모집 일반전형에서 내신 실질반영률을 17.96%로 확정해 발표했다. 입학처는 “총점은 1000점으로 내신 500점, 수능 400점, 논술 100점으로 배정했고 각각 기본점수는 470점, 268점, 95점”이라고 설명했다. 숙명여대도 이날 정시 일반전형에서 학교생활기록부 실질반영비율을 19.94%로 결정했다. 지난해 1.4%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 대신 내신 1∼4등급에서 각 등급 간 점수 차이를 2∼3점으로 최소화하고 5∼9등급은 4∼18.5점으로 늘렸다. 서강대도 20% 이내에서 반영률을 확정할 전망이다. 김영수 입학처장은 “18~20% 선에서 결정될 것”이라며 “내신 등급 간 점수를 등급별로 차등화해 다르게 주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내신 실질반영률
교육정책에 있어 일관성을 보이지 못하는 교육부의 행정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 6월 정부는 대입 내신반영비율을 50%로 요구했다가 대학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30%로 긴급 수정했다. 또 교욱부는 교육사립학교법을 바꾸려다 사학들이 반발하자 물러서고 청와대 행정관을 교장급 연구관에 임용하려다 교육단체 반대에 부딪혀 슬그머니 철회했다. 교육부는 최근 교원인사위원회의 기능 강화 등이 포함된 사립학교법 일부 조항을 개정하기 위해 시도 교육청을 통해 의견을 수렴했으나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사학들의 반발과 지난 7월 고친 법으로 한 달 만에 또 고치느냐는 지적이 일면서 개정을 포기했다. 유영국 학교정책실장은 “교직단체들의 의견이 대립하고 있어서 사립학교법 개정은 현시점에서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번에 개정하려던 조항은 학생 수 감소로 남게 된 교사의 처리문제나 민주화 관련 교사들의 특채 문제 등 지난달 개정된 법조항과는 관계없는 것들이었다. 한 달 만에 재개정하느냐는 지적과는 맥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교육부는 또 청와대에 파견됐던 전교조 출신의 평교사를 교장급 연구관에 임용하려다 교직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당사자가 철회했다며 슬그머니 포기했다. 60만 수험생들의 신뢰가 걸린 입시정책과 관련해서도 처음에는 내신반영률 50%를 지키라던 요구를 접었다. 일부 대학에서 시작돼 대학총장들과 교수단체까지 나서면서 30% 이상이면 된다고 물러선 것이다. 지난 6월과 7월 대학들과 교육부는 약 한달 동안 내신의 반영률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대학은 내신 반영비율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었으며, 교육부는 실질 반영률을 50%로 하라, 30%로 하라면서 그렇지 않으면 제재를 가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았다. 대학들은 당시 2008학년도 대입계획에 있는 자율이라는 말을 근거로 교육부와 공공연히 충돌을 일으켜왔다. 결국 교육부는 대학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고 완전히 거부했었던 셈이다. 그러나 초기 50%의 반영률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대학의 반발로 교육부는 그 수위를 30%로 낮추었다. 이에 대학들도 한발 양보하여 적정수준에의 타협을 이루어낸 것이다. 김영수 서강대 입학처장은 “과거 학생들의 입학 성적을 토대로 적정 반영비율을 놓고 고민 중이다. 18~20%선에서 실질반영비율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문흥안 건국대 입학처장도 “실질반영비율을 25% 안팎에서 결정하는 것을 적극 검토중”이라고 말했으며 성재호 성균관대 입학처장은 “내신반영비율이 두 자리가 되겠지만 정확히 어느 정도 선으로 결정할지는 계속 고민 중이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는 지난 4월 발표한 입시안에 따라 학생부 실질반영비율을 50%(교과 40%, 비교과 10%)에 맞추기로 했으며 단국대 역시 50%를 실질반영비율로 적용키로 결정한 바 있다.

입학사정관제
교육부는 지난 6월 14일 입학사정관제 도입을 위해 6-9개 대학에 20억 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입학사정관제는 대학이 고등학교 교육과정, 대학의 학생선발 방법 등에 대한 전문가를 채용하고 학생의 성적, 개인환경, 잠재력 및 소질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신입생을 선발하는 제도다. 교육부는 입학사정관제 도입 대학으로 6~9개교를 선정해 오는 2009년까지 매년 2~3억 씩 총 2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 사업에 참여를 원하는 대학은 학생선발의 기본방향, 대입전형계획 및 향후 운영계획에 대한 설명자료, 입학사정관제 운영계획 등을 교육부에 제출해야 한다. 교육부는 이와 관련하여 “당장의 1~2점 점수 차 보다 대학입학 후 발휘될 잠재능력을 위주로 학생들이 선발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입학사정관제에 대하여 서울 소재 7개 사립대의 올해 입시 계획을 분석한 결과 3개 대학은 도입조차 하지 않는
등 온전한 의미의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고 있는 대학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각 대학들은 “(입학사정관제)는 한국 현실과 맞지 않는다” “교육부의 방침이 구체적이지 않다”등을 이유로 내세웠다. 서강대 김영수 입학처장은 “미국에서는 입학사정관이 당락을 좌우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지만 한국에서 그렇게 하면 ‘유착’ ‘비리’ 등의 얘기가 나올 것”이라며 “올해 입시에서 도입 방침을 갖고 있지 않으며 당장 추진할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성재호 입학처장은 “현행 입시제도 하에서의 입학사정관제 도입은 적절하지 않다”며 “교육부에서 입시 관련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상황에서는 기대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밝혔다. 연세대는 지난 2005년부터 대학 자체적으로 시행해 온 입학사정관제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 입학사정관 초빙 범위를 외부인사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재용 입학관리처장은 “지난 2년간 학부대학 학사지도교수를 활용해 재외국민·외국인 전형과 UIC(언더우드 인터내셔널 컬리지) 전형에서 입학사정관제를 시범 운영해 왔다”며 “2008학년도 입시에서도 2개 전형에 지원하는 학생들에 대해서만 입학사정관제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국내학생을 대상으로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는 것은 2011학년도 부터나 가능할 것”이라며 “그동안 연세대에 맞는 학생을 뽑기 위한 다양한 기준을 만들어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처장이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입학사정관이 권력기관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는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대학 자체적으로 선발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전임교수가 포함된 심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입시 투명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간섭 우려에 대해 이 처장은 “지나친 간섭이 있다면 그 즉시 정부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3불정책
3불정책을 놓고 정부와 대학간 갈등이 정면충돌 양상으로 비화되고 있다. 교육부는 ‘3불정책’은 “지난 50여 년간의 경험에서 나온 최소한의 사회적 규약”이라고 밝혔다. 김광조 교육인적자원부 차관보는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 본고사를 금지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소위 3불 정책은 헌법과 교육기본법상에 규정된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그 동안 우리사회에서 학벌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 50여 년 간의 경험에서 나온 최소한의 사회적 규약”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본고사에 대해서도 “국·영·수 위주로 대학입학이 이루어져 고교 교육과정의 파행은 물론, 사교육의 팽창 등 교육적으로, 그리고 사회경제적으로 큰 폐해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학들은 이 3불정책 때문
에 우수한 학생들을 마음대로 선발할 수 없고, 결국 교육 전반의 하향평준화가 발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대가 3불정책(본고사·기여입학·고교등급제 금지)을 대학 발전의 암초로 지목한 데 이어 사립대학 총장들과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역시 3불정책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전국 158개 사립대 총장들로 구성된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회장 손병두 서강대 총장)는 3불정책이 대학 경쟁력을 가로막는 대표적 규제라며 폐지를 정부에 건의키로 결정했다. 손 총장은 “대학의 학생 선발권 보장 차원에서 이제 3불정책을 재고할 때가 됐다”고 전했다. 3불정책 폐지를 여러 차례 주장했던 정운찬 전 총창도 가세했다. 정 전 총장은 서울대 국제대학원 주최 강연에서 “교육부는 고등교육에서 손을 떼야 한다”며 “3불까지는 아니더라도 본고사와 고교등급제는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과 교육부는 3불정책 유지 입장에 변함이 없음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대덕특구 지원본부에서 열린 과학기술분야 업무보고 및 오찬간담회에서 “몇몇 대학들이 잘 가르치는 경쟁을 할 생각은 안하고 잘 뽑기 경쟁을 하면서 3불정책을 마구 공격하고 있다”면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학생들을 입시경쟁으로 내몰고 학원으로 내쫓는 정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공교육이 본고사로 가버리면 교육기능을 학원에 빼앗기고 선생님들은 존경도 못받고 교육이 전체적으로 붕괴된다”고 지적했으며, 교육부도 “3불정책 위반 대학에는 법령이 허용한 모든 제재수단을 동원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정부와 대학 갈등으로 수험생만 고생
일관성 없는 교육부의 정책, 대학의 반발로 학생들만 다급해졌다. 9월 7일부터 시작하는 수시 2차 모집 원서접수가 코앞에 다가온 가운데 어느 대학에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교사와 학생들의 시름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대학들은 올해 수시 2차에서 전체 모집정원의 절반 정도를 뽑을 예정이어서 수험생들의 관심이 크게 쏠리고 있으나 논술·내신·특기자 전형 등 대학별 모집요강이 워낙 다양한 데다 세부 입시안이 아직 나오지 않아 입시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초 대학들은 수시 2학기 모집 윤곽을 발표했으나 최저학력기준과 학생생활기록부 등급화 점수, 그리고 특정 전형에 몇 명을 뽑는지 등이 담긴 세부 입시안을 아직 발표하지 않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관계자는 “일부 대학이 여러 사정으로 세부 입시안을 제출하지 않아 예년보다 5일 정도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고교 3학년인 C군(18)은 “수시는 정시보다 합격 여부 판단이 어렵고 모호하다. 수시든 정시든 빨리 목표를 정하고 맞춤 대비를 해야 하는데 충분한 정보가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교사나 학생들 입장에서는 수시 2차 지원을 위한 충분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수시 2차만 준비할 수도 없고, 정시를 남겨둔 상황에서 수능공부를 게을리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경기도 고교 교사 B씨(45)는 “학생부 성적이 우수한 여학생이 찾아와 선생님 말만 믿고 수시만 준비했는데 이제 정시까지 준비해야 하느냐고 원망하듯 물었다”며 “수시 2차와 정시 중 어느 전형에 지원할지 결정하지 못한 학생이 예년에 비해 배 이상 늘었다”고 전했다.
교육부는 이처럼 수험생을 볼모로 삼아 대학들을 상대로 위험한 도박을 벌이고 있다. 학생들을 위한 정책이 결국 학생들의 속앓이의 원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정부만의 책임도, 대학만의 책임도 아닌 정부와 대학의 공동책임이다. 수능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만큼, 대학과 정부는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는 것보다 학생들을 위한 최선책을 찾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