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대통령을 꿈꾸지 말고 대통령을 꿈꾸라”

2007-10-04     진태유
요즘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한나라당 총재, 그리고 민노당의 심상정의원, 두 여성 대권후보들은 제각기 자신들의 당내 남성 대권 후보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남성대 여성의 성대결 구도라 그만큼 국민의 관심도 더 높다. 사실 요즘 시대에 ‘성대결’이란 단어 그 자체는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인 개념을 내포하고 있어, 한낱 이벤트용으로 사용되는 오락적 개념으로 보이기도 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는 조선시대로부터 전래된, 하도 써먹어 낡고 닭은 이 진부한 속담은 아직도 현재 우리사회의 여성에 대한 비하심리(卑下心理)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왜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면 안 되는 것일까? 어떤 집단이나 단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능력을 더 발휘한다면 당연히 여성이 일을 해결하고 진행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만약, 남성우월주의에 빠져 능력이 열등한 남성에게 일을 맡겨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 집단과 단체에 속한 개개인은 치명적인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박근혜, 심상정 두 여성 정치 리더가 자신이 속한 정당에서 능력이나 실력에 반해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쟁의 룰을 공평하게 적용받지 못하고 불이익이나 거세를 당한다면 그녀들이 속한 정당은 과거의 조선봉건시대의 당으로 회귀하는 꼴이 될 것이다.
시대와 나라를 불문하고 한 사회의 기득권세력들은 한결같이 여성의 삶을 규제해 왔다. 사회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19세기 산업혁명 이전에는 힘, 권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패러다임(paradigm)의 시대였다. 때문에 가정이나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남아선호사상(男兒選好思想)이 대두되어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는 당연시 되었다. 보수주의자와 현실주의자들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두뇌가 우수하고, 인격적으로도 여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은 고급두뇌로써 사회(직장)에서 쓰이고 이런 관계로 사회적 지위도 남자는 여자에 비하여 상위에 있으며 가정에서는 남자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거기에 상당하는 대우를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받는다. 사회에서도 핵심적인 일이나 중대한 일은 남자가 주도해 나아가고 여자는 남자를 보조,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즉물적 현상적’ 실례를 들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의 여성에 대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지금 우리 국민들의 생각 속에 무의식적 심층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박근혜, 심상정과 같은 대한민국의 여성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가장 큰 문제는 한국 사람들의 정서상 ‘여성이 최고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는 것을 허용치 않겠다’는 내면적 심리인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04년 7월 14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려진 당시 한나라당 전 총재였던 박근혜 관련 페러디(parody) 사건은 여성 정치인에 대한 성적비하의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는 아들 우선이었고 여성으로서의 차별을 받고 자랐다. 학교 다니면서 학생운동을 할 때에도 주류는 늘 남학생들이었다. 노동운동을 할 때도 금속노조의 95%는 남성이어서 그 안에서도 역시 설움과 차별이 있었다. 결혼을 하고 나니 남편과 아이 사이에서 또 여성으로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2007년 시사뉴스피플 7월호 인터뷰에서 심상정 의원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비하에 대한 개인적이지만 솔직하고 실감나는 증언을 한 적이 있다. 박근혜의 페러디 사건에서 본, 여성의 인격을 모독하고 성적 수치심을 유발시키는 노골적인 누드 페러디가 대한민국 정부의 심장인 청와대 홈페이지에 버젓이 게재된 사실은 정치 지도자의 자질이나 능력과는 무관한 여성성을 비하하는 내용이다. 문제의 패러디 사진에서 박 대표로 희화화된 여자의 행동을 부적절하게 연출함으로써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은 ‘성’이다. 사진 속의 여자가 무슨 잘못한 일을 했다거나 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 그저 성을 상상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한 것밖에 없음에도 여자는 타인에게 비웃음을 받을 행위를 한 셈이 돼버렸다. 이 사건의 책임소재가 어디에 있느냐가 관건이 아니라 이러한 페러디의 착상은 대중의 여성비하 심리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여성성의 성적 상상력을 동원한 박근혜 개인의 정치적 성공 이미지를 조작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하겠다. 또한 심상정 의원의 여성차별에 대한 개인사적 경험을 통해보면, 대한민국의 여성들 대부분이 심상정 의원과 유사한 경험을 겪었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남녀의 경제적 지위의 차이가 가부장제를 낳게 하고 사회의 계급적 분열에 의해 남존여비(男尊女卑 ) 풍습이 생겼다. 아들 우선의 무의식적 잠재적 남성우월사상은 가족에 대한 절대권력이 남성에게 있는 가부장제의 성립을 필연적으로 낳게 하였다. 더 나아가 직장에서의 여성차별은 심상정 의원이 경험한 여성의 남성에 대한 보조역할과 여성의 사회참여가 차단되어 수에 있어서의 절대적 부족현상으로 소수의 차별을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성별, 혼인 또는 가족상 지위, 임신, 출산 등의 사유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채용 또는 근로의 조건을 달리하거나 기타 불이익한 조치를 취하는 차별도 발생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유형별 성차별을 살펴보면 우선 임금에 있어 기본급, 호봉산정, 승급 등이 성에 따라 그 기준을 달리 적용함으로써 차별 하고 있으며 또한 노동의 질, 양 등에 관계없이 노동자에게 생활 보조적, 후생적 금품 중 임금의 범주에 포함 되는 것을 지급함에 있어 성을 이유로 차별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는 뿌리 깊게 내리고 있는 남성 중심의 고정 관념과 여성비하의 심리적 이해관계가 우리사회의 가치, 규범과 제도 속에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리더쉽이 남성위주로 행해지고 남성과 지배세력의 결탁이 자연스럽게 수용되었던 반면 21세기에 즈음해서는 여성적 리더쉽에 대한 관심과 필요가 새롭게 등장하였다. 현대 사회에 접어들면서 정치적 시민권의 확장은 남성과 여성에게 동등한 선거권을 부여하여야 했고, 사회적 시민권의 이념이 등장하면서 여성에게도 똑같이 정치, 사회에 관한 참여권리를 제공해야 했다. 요즘 여성의 사회 진출이 빠르게 늘어나고 그 중 몇몇 여성들의 위치가 각 분야에서 급부상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총재, 그리고 심상정 민노당 의원이 리더격으로 앞장서고 있다. 정치계의 지도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더 부각되어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여성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행하고자 하는 노력은 역사적으로 계속되어 왔다. 역사에 나타난 황진이나 신사임당 같은 경우는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이었지만 근대에 와서야 여성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공업화가 늦게 시작되었고, 헌번상으로 1948년 8월 15일에서야 국가수립과 함께 참정권이 부여됨으로써, 독자적인 여성운동의 출현은 서구에 비해 상당히 늦게 나타나게 되었다.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우리나라에서도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한 여성의 정책결정과정의 참여가 증가하게 되었다. 더욱이 1995년 6월 27일 4대 지방선거(기초의회, 광역의회, 기초단체장, 광역단체장) 이후로 지방의 발전에 여성이 공동 참여하고 공동 책임지는 역할이 확대되고 있으며 국가의 여성 관련 정책도 이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앞서 문제제기한 전통적인 여성비하 심리로 인해 2007년 대선을 앞둔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여성의 정치 참여 수준은 그렇게 높지 않다. 국회의원 13%, 광역지방의회의원 12%, 기초지방의회의원 15%로 세계 188개국 중 77위에 그친다. 박근혜와 심상정의 대권경쟁참여에도 막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즉 여성후보를 여성조차 잘 지지하지 않는 정치문화 풍토 속에서 여성의 대표성이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대통령 후보로 보수에서부터 진보까지 박근혜 전 대표, 심상정 민노당 의원 등이 의외로 부상하고 있다. 이같이 여성 대통령이 급부상하게 된 이유에는 우선, 여성의 전반적인 사회 진출이 늘어나 여성의 영향력이 커진 것과 조직과 돈을 바탕으로 한 대규모의 군중 동원식의 선거 운동에서 21세기형 미디어 정치로 선거운동 방식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이와 더불어 1990년대 냉전시대의 이념 대결 구도의 와해와 동시에 국방 같은 중요한 정책이 약화되어 대결의 정치보다는 화합의 정치가 더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지, 교육, 인권 등이 중요한 이슈가 되면서 여성 정치인의 리더십이 상대적으로 필요한 까닭이기도하다. 따라서 박근혜와 심상정은 여성인구에 비례한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한 실천과제로 우선, 여성차별에 의한 여성 참여의 배제는 정치적 대표성의 평등사상과 기회 균등 원리에 위배될 뿐 아니라 인간존중 사상이라는 민주주의 이념에도 상반되는 인권문제임을 깨닫고 여성의 이익과 요구 중에는 여성 지도자에 의해 대변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즉 여성 대표가 없는 경우 여성문제가 남성정치인들의 관심사 순위에서 뒤로 쳐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여성문제의 해결을 위해 여성의 대표성은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철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박근혜와 심상정은 여성문제에 대한 실천적 의지를 가져야 할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남녀간의 동등한 가치를 존중하는 정치문화와 여성들 스스로의 자각을 계몽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시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21세기의 여성 운동과 정치는 남녀의 공정한 관계에 근거한 대안적인 사회를 어떻게 창조할 것이냐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다문화 사회인 현대의 대한민국은 남녀의 시각 차이, 가치 설정의 우선순위의 차이, 정치 성향의 차이가 뚜렷한 만큼 남녀의 각기 다른 가치를 정치체계에 정확하게 투입하여 정치의 질적 향상을 제고한다는 점에서 남녀간의 균형 잡힌 대표성 보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여성 대통령이 목적이 아닌 남녀평등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치참여(대권경쟁)가 이루어 져야 한다. 이것은 역사적 필연성이자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최대의 과제이기도 하다.
어쨌든, 2007년 대통령선거의 초미의 관심사는 ‘여성 대통령 탄생’ 가능성이다. 이번 대선에는 전례 없이 많은 여성 후보들이 ‘최초 여성 대통령’을 향한 출사표를 던졌고, 박근혜, 심상정은 자신들이 소속한 정당의 유력 후보로 경선에서 당선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여성 대통령 탄생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여성유권자연맹 회원 45%가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선택 의향을 묻는 질문엔 49%가 ‘찍겠다’고 했다. 자질과 능력을 갖춘 후보만 출마한다면 남여구별 않겠다는 인식이 높아져서 여성 후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만 보완한다면 얼마든지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다고 본다. “여성대통령을 꿈꾸지 말고 대통령을 꿈꿔라”라는 구절과 같이,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 완벽한 젠더(gender)에 도달하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성을 우선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가진 ‘인간 여성’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