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빼앗긴 고미술품 환수에 앞장서

전통 고미술품에 대한 30년의 애정

2007-10-30     황인상 전문기자
작가만의 독특한 사상이나 교리를 담은 예술 작품을 일반인들은 이해하기도 힘들다. 하물며 그것이 말씀이나 교리를 담은 종교 예술이거나, 독특한 사상적,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고예술품의 경우 더욱 그렇다.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도 힘든 불교미술, 고예술품에 일생을 바친 사람이 있다. 33년간 불교미술에 매료되어 아직도 붓을 놓지 못한 청곡(淸谷) 정호천 화백을 만나보자.


“불교미술을 주로 한 선현들의 전통예술을 접하고 그를 복원하려 노력하던 와중에 섬세한 기법과 다양한 색채의 농도, 깊은 미적 감각의 재현을 위해 다양한 부문에 걸친 전통미술 전반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고미술품을 접하게 된 지도 벌써 30여년이 흘렀네요.”정호천 화백은 인간문화재 48호 故 원덕문 옹으로부터 깨우침을 얻었고, 전국의 유명 사찰과 궁의 옛 서화를 복원, 보수하는 고미술전문가다. 전통불교당채화가이자 고금당의 대표이기도 한 정 화백은 덕수궁의 일월오악도, 군학도, 군녹도, 삼각산 문수사, 강원도 치악산 구룡사 대웅전 및 일주문, 종각 등을 그의 손길에 의해 재탄생시켰다. 이 같은 화려한 경험들은 그에게 고미술품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연구자료나 기록이 풍부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선인들의 소중한 유산을 가까이 두고 보존하면서, 그 멋과 깊이에 심취될 수도 있기에 감사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30여 년간 고미술품에 대해 공부만 한 것이 아니라 그가 모은 고미술품들 수는 천여 점이 넘는다. 그 중 450여점의 고서화와 도자기 등은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하였고, 지난 10월 세 번째로 그것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전시회를 가졌다.

명성황후의 영정 그림도 최초로 공개
정호천 화백은 지난 10월 고향인 원주시 원주치악예술회관에서‘오천년 역사문화사료전- 소박한 아름다움, 조상의 얼展’을 성공리에 마쳤다. 그는“일본의‘오구라’라고 하는 골동품상이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국보급 보물 문화재가 컨테이너 17개나 되는 막대한 양이었습니다. 그 골동품상은 그 유물을 팔아 일본 전역에 오구라호텔 8개를 지었고요. 얼마나 통탄스럽고 가슴 아픈 일입니까. 저는 일찍이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우리나라를 지배했거나 관계한 나라 5개국을 대상으로 우리의 문화재를 환수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정 화백은 일본을 대상으로 빼앗긴 우리의 문화재를 되찾아 오는 일에 열과 성을 다했다. 일본을 왕래하며 사재를 털어 우리 선조의 고미술품을 환수해 온 그의 노력은 범애국적이다. 따라서 지난 10월의 전시회는 정 화백의 그런 취지를 비롯해 그간 겪은 고초를 짐작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전시회에서 지난 30여 년간 수집한 고미술품 수천 점 가운데 엄선한 그림 200여점, 간찰 150여점, 서책 100여점, 청자 70여점, 백자 80여점, 토기 120여점, 민속품 30여점 등 총 760점을 선보였다. 그중 명성황후의 영정 그림도 최초로 공개 돼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정 화백은“‘살짝 곰보’인 명성황후의 얼굴 그림은 일본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을 토대로 일본 화가에 의해 4개월에 걸쳐 그려졌습니다. 7개월 후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시호가 내려진 후 그림위에 다른 작가가 경과에 대한 글을 적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그림 위에 적힌 글로 미루어 보면 명성황후의 시해는 물론 그림 작업까지도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이뤄졌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라며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밖에도 선조의 얼굴이 담긴 영정들, 금동약사여래입상을 비롯한 불교 조각품들, 청동제은입사정병(靑銅製銀入絲淨甁)을 위시한 불구(佛具)들, 안평대군과 추사를 비롯한 대가들의 서예작품, 청자압형수적(靑瓷鴨形水適)을 포함한 각종 도자기들, 단원 김홍도를 비롯한 화가들의 그림들, 고구려인의 기상을 표상한 귀면와(鬼面瓦)와 각종 와당들, 단계연(端溪硯)과 신라토기 등도 이번 전시회에서 주목을 받았던 진귀한 명물들이다. 우리 민족의 질박한 심성과 아름다운 자연산천, 유구한 역사성이 녹아 스민 작품들로 관람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깊이 빠질 수밖에 없는 오묘한 아름다움
정호천 화백은 1987년 불교미술로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97년 일본 도쿄21C모리노홀에서 제2회‘전통불교당채화전’을 개최했던 고문화재 전문인이다. “우리 선조들의 얼과 정신과 예술혼이 담긴 작품들을 보면 볼수록 깊이 빠질 수밖에 없는 오묘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기하학적인 선과 그윽한 문양, 심원한 예술철학과 해학이 투영된 작품들은 저마다 독창성을 가지고 있고, 우리 선조들의 체취가 그대로 묻어 있습니다.” 정 화백은 단순히 고미술품 예찬론자나 소장가가 아닌 방대한 규모의 우리의 문화재를 되찾아온 장본인이다. 외국을 제집 드나들 듯 다니며 세계 곳곳에 있는 우리의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는 일에 30여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다. “대개 골동품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경영상 10개 중에 8개를 되팝니다. 저도 그런 유혹을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어려워도 참고 수장가 본연의 계획을 초심으로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는 조만간 원주시 흥업면에 자신의 호를 딴 청곡박물관 건립을 예정하고 있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