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슈] 대선을 장식하는 마지막 관문, TV토론회

대선 정국 막바지에 가서 최대 변수로 작용

2007-10-31     장인혜 기자

1960년 세계 최초로 미국 대통령 후보 간의 TV토론회를 통해 당시 부통령이었던 닉슨과 케네디는 운명이 바뀌었다. TV토론회를 라디오로 들은 사람들은 닉슨이 토론해서 승리했다고 응답했지만 TV로 이들의 토론을 지켜본 사람들은 케네디에게 표를 던졌다. 늙고 초췌한 모습으로 화면에 비춰진 닉슨에 비해 젊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준 케네디에게 대통령으로서의 신뢰를 느낀 것이다.

TV에 비춰지는 모습을 통해 지지율을 뒤집은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지난 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김대중 후보는 TV라는 매체를 적절히 활용해 이회창 후보에게 뒤지고 있던 지지율을 회복했다. 김 후보는 선거 전략을 TV방송 위주로 짜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미디어 선거전이 시작된 셈이다. 김 후보는 토크쇼에 나올 때에는 노타이 차림을 했고, 말투는 부드럽고 친근하게 고쳤다. TV를 시청하는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김 후보의 친근한 이미지에 표를 던진 셈이다. 이때부터 대선 후보들의 미디어 이미지 관리가 시작됐다. 16대 대통령 선거 때에는 대선 후보들이 단순히 이미지 전략으로 나가지 않았다. 후보들은 TV토론회를 통해 자신들의 대선 전략과 공약을 공유하고 검증하기 시작했다. TV토론을 두고 당시 빅2 후보였던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는 각기 TV 합동토론 예행연습을 해가며 이미지와 더불어 언변을 통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당시 노 후보에 비해 TV토론회 경험이 많았던 이 후보였지만 TV토론회에서 보여지는 노 후보의 안정된 이미지와 토론의 달인이라 할만한 토론 실력으로 인해 결국 판세는 뒤집혔다.

각 캠프마다 TV토론회 전담반 활약

TV토론회는 이렇게 대선 정국 막바지에 가서 최대 변수로 작용한다. 상대후보를 만나서 공식적으로 오래 볼 수 있는 자리가 바로 대선후보의 TV토론회다. 후보들은 상대를 직접적으로 앞에 두고 몇 시간을 보내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상대를 향한 어떤 비방에도 견딜 수가 있지만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방송에 들어간다지만 실제 면전에 맞닥뜨려 공격을 받거나 심한 공세를 퍼붓는 것이 결코 모두 다 진심일 수 없다. TV토론회의 흥미를 위한 적절한 격론이 경선 흥행의 열쇠가 되기도 하기에 실전에 임하게 되면 더욱 과격해지는 후보들이 있기도 하다.
TV토론회를 통해 후보의 의상, 메이크업, 표정, 발음과 말투, 상대 후보를 대하는 태도, 임기응변의 자세까지 3천만 유권자는 그들의 겉모습부터 움직임 하나하나에 귀추를 주목한다. 노출 되는 것은 순간이지만 그것은 후보의 이미지로 각인될 수 있는 확률이 크고, 이는 곧 여론을 형성하게 되어 지지율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TV토론회는 매순간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선 캠프에서는 TV토론회 준비위원회나 미디어대책위원회 등의 이름으로 TV토론회를 전담하는 팀을 꾸려 분주히 움직인다. 대선을 한달 여 앞둔 시점에서 새롭게 꾸려진 각 캠프의 TV토론회 전담반은 상대후보의 모니터부터 시작해 돌발질문에 대한 대처법, 카메라 테스트 등 세밀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무궁무진하다. 이명박 후보 측의 한 인사는 “TV토론회 일정이 잡힌 날에는 다른 스케줄은 거의 없다. 보통 오후 늦게나 밤에 진행되기 때문에 하루종일 토론회 준비를 하는 경우가 많다. 원고를 보거나, 예상 질문과 답변을 미리 예측하는 등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한다”고 전했다. TV토론회는 대부분 생방송으로 진행되다 보니 그날 먹는 음식에서부터 생리적인 작용까지 모두 조절해야 하는 등 철저한 대비가 요구되는 것이다.

지지율 높은 후보 TV토론회 서두르지 않아
우리나라는 지난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때 대선후보의 TV토론회 제안이 처음 시작됐다. 14대 대통령 선거 당시 김대중 후보는 김영삼 후보에게 TV토론을 열자는 제의를 했었다. 하지만 김 후보가 거절하는 바람에 두 후보 간의 TV토론회는 성사되지 않았다. 사실 초반 지지율이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 후보와 TV토론에 나가 불필요한 출혈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지지율 1위 후보는 상대 후보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을 것이 분명한 상황인지라 TV토론을 일찍 시작할 이유가 없다. 지난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후보는 정몽준, 노무현 후보들과의 합동 TV토론회를 거부했었다. 거부 이유는 방송사의 공정성 확보 장치가 미흡하고, 후보로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합동토론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이와 비슷한 연유로 지난9월 KBS의 후보 초청 TV토론회에 참석하겠다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역시 TV토론회를 거부한 바 있다. KBS는 “이명박 후보 초청 KBS 토론회가 방송 3일전 이 후보 측의 납득할 수 없는 거부 이유로 무산됐다”며 “이 후보 측은 토론회장 즉석에서 이뤄지는 국민 패널의 질문 내용이 사전에 후보 측과 협의되지 않는 점을 이유로 토론회 거부 의사를 밝히고 형식의 변경을 KBS에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에 이 후보 측은“범여권 후보가 결정되기 전 토론회를 갖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 아래 대담형식으로 진행할 것을 역제안했다”며 KBS측이 일방적으로 100여명의 방청패널이 참여하는 ‘국민패널 토론방식’을 통보해 와서 토론이 무산됐다고 대응했다. 이후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역시 범여권 후보가 정해지지 않은 시점에서 이 후보는 MBC의 ‘100분토론’에 참석해 대선후보로서 시민논객들과 즉흥 접전을 벌이는 토론에 참석했다.

TV, 라디오, 인터넷 실시간 소통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점차적으로 TV의존도 보다 인터넷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유권자들 또한 대선 후보를 접하는 방식이 인터넷으로 많이 전이되었기 때문에 대선 후보들의 TV합동토론회는 사실상 그 기능이 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TV를 떠나는 시청자들을 잡기 위한 방송사와 토론회 준비자들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TV토론회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처음 실시되었던 UCC 토론회 방식은 그 대표적인 예다. UCC 토론회 방식은 미국에서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투브’를 통해 일반 유권자들이 직접 제작한 동영상(UCC)를 대통령 후보자들에게 보여주고 직접 질문을 하고 후보자들이 대답을 하는 형식이다. 이는 미국 대선 후보들의 TV토론회에서 사용되었던 방법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처음 이용되었다. 이후 많은 토론회에서 이와 같은 방법을 차용하기도 했다. 또한 TV토론회의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또 다른 방법으로는 방송과 인터넷의 실시간 소통을 이용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 2007대선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과의 연계를 통해 인터넷 이용자 누구든지 실시간으로 대선 관련 뉴스를 접하고 소식을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후보들의 TV토론회를 생방송으로 접할 수도 있는데 여기에는 네티즌들의 실시간 댓글과 가상 공간을 이용한 네티즌끼리의 또 다른 토론 공간이 탄생한다. 공중파 TV를 통해 방송되는 TV토론회의 경우 방송사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인들의 실시간 토론회 참여를 유도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터넷으로 유권자의 관심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TV토론회와 인터넷의 접목으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이 2007 대선의 큰 특징이다.

유권자를 감동시키는 TV토론 되어야
지난 9월 ‘대통령 후보 TV토론의 효율적 운영방안’이라는 주제를 두고 중견 방송인 모임인 여의도클럽 회원들이 토론회를 가졌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올해 TV를 통해 중계될 대선 후보들 간의 토론회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국회에 5인 이상의 소속 의원을 두고, 전국 선거 지지율이 3% 이상이며, 여론조사 결과에서 5%를 넘으면 토론회 초청 대상이 된다. 따라서 현행 선거법대로라면 올해 선거 막바지까지 가더라도 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4명 이상의 후보자들이 토론회에 참여할 확률이 높다. 이는 원만한 토론 진행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의견과 동시에 군소 후보와 주요 후보가 함께 어울리는 토론이 바람직하다는 상반된 의견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대선 후보 입장에서는 TV토론회가 손해 보는 장사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대비와 나름의 노하우를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시행된 각당 경선후보들의 TV토론회를 보면 후보들의 무차별적인 집중 공격과 충동적인 발언들이 나오기도 했다. 토론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예사고, 아예 동문서답형 토론을 진행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결국 TV토론회를 통해 기껏 쌓아올린 지지율에 흠집을 내는 경우가 초래되기도 했다. 상대 후보의 공약에 대한 철저한 검증 준비, 상대 후보의 공격에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는 자세, 토론회의 흥미를 위한 적당한 재치 등은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 올라선 주자들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3천만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대선 후보들을 TV토론회를 통해 만나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NP

지난 달 9일 KBS 본관 시민광장에서는 KBS라디오 열린토론에 참석하기 위해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 후보 3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선 파행이 거듭된 지 8일 만에 세 후보가 한자리에 모인 날이라 라디오 토론회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어 TV토론회의 열기를 방불케 했다. 세 후보는 토론회 시작 30분 전에 차례로 입장해 방송 시작 15분 전쯤부터 자리에 앉아 토론회 자료를 검토했다. 방송 시작 5분 전에는 손학규 후보는 일찌감치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어두고 편안한 자세를 잡아갔고, 이해찬 후보는 꾸준히 원고를 검토하고 있었으며, 정동영 후보는 카메라 기자들을 보고 웃음을 띠기도 하는 등 마음을 가다듬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토론회가 시작되었지만 세 후보가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얼굴을 맞댄 자리라 어색한 분위기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진행자는 시간제한이 없는 상호 자유 토론을 제안했으나 초반이어서 그랬는지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손 후보는 상대적으로 진행자와 눈을 맞추어 가며 토론을 진행했고, 이 후보는 진행자 대신 카메라를 응시하거나 다소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정 후보는 역시 전공자답게 질문자, 진행자, 카메라 등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옮기며 천천히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일관했다. 질문을 해 놓고서 답변을 들을 때에는 딴청을 피운다거나 메모를 하는 등의 행동도 잦았고, 자신을 제외한 상대 후보끼리의 설전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연신 메모에만 열을 올리는 후보도 있었다. 손 후보는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한 통의 물을 다 비울만큼 물을 자주 마셨고, 상대적으로 정 후보는 물병에 거의 손이 가지 않았다. 무겁고 딱딱한 분위기가 연출될 때마다 후보들은 서로가 적절히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등 그간 여러 차례의 토론회를 통해 토론 형식 자체에는 서로가 많이 익숙한 듯 보였다.
사실 라디오 토론이기 때문에 후보들의 겉모습은 별로 중요치 않았으나 이날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TV카메라도 토론회를 생중계하다시피 했다. 토론 중간쯤에 대통합민주신당의 첫 번째 모바일 경선 투표 결과가 발표되면서 후보들 간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즉각 반응은 생방송의 묘미를 더욱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토론회가 끝난 후 후보들 간에는 간단한 악수를 끝으로 제각각 흩어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경선 파행 직후의 토론회여서 그랬는지 어색한 분위기는 더욱 토론회장을 긴장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