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 “문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다”
일상의 소소함을 담백하게 풀어내는 작가, 정이현
2007-12-27 이나라 기자
서른두 살.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다.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 우울한 자유일까, 자유로운 우울일까.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달콤한 나의 도시』中 -
# 첫 장편 소설,『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은 문단에 데뷔한 이래 등장인물, 문체, 내용, 형식 등 모든 면에서‘도발적이다, 감각적이다’라는 칭찬과 함께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녀의 첫 장편 소설『달콤한 나의 도시』는 도시적 삶의 코드를 전면에 내세워 젊은 여성들의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작품으로, 인생의 터닝포인트 앞에 선 사람들의 풍경을 유쾌하면서도 날카롭게 그려내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Q : 신인소설가로서 신문연재소설이라는 다소 파격적이고 모험적인 선택을 했는데
- 처음 함께하자는 제의가 들어왔을 때 무슨 얘기인지 못 알아들었을 정도로 당황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 당시만 해도 달랑 책 한권 펴낸 신인 작가였기 때문이죠. 운명이라고 하면 거창하겠지만, 문득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어떤 시기가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당시 한국에 젊은 작가가 없다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었고, 왜 영화를 하지 않고 소설을 하느냐, 일본 문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등 제 문학에 대한 질문보다는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었던 시기였거든요. 저는 그 때 한국에 젊은 작가들 없지 않다는 말을 많이 했었지만 그런 말이 정말 공허했어요. 어떻게 보면 한국에도 이렇게 젊은 문학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던 것 같아요. 문학은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렵거나 고리타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사소한 이야기도 즐겁게 일상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Q : 달콤한 나의 사랑, 첫 장편소설로써 애착이 클 것 같다
- 누구나 작가라면 첫 작품에 대한 문학적 욕구가 있듯이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마 신문연재라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면 다른 장편을 첫 작품으로 썼을 거예요. 그런 면에서 달콤한 나의 도시는 한계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실험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문학적으로 보면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지만, 사실 문학적인 평가라는 게 주관적인 판단이잖아요. 다음 작품은 조금 더 즐겁고 행복한 느낌이 들게 썼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에요. 물론 달콤한 나의 도시가 제 족쇄가 될 거라는 것도 너무 잘 알아요. 달콤한 나의 도시의 작가로 기억되는 게 앞으로의 문학생활에 있어 어떻게 작용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다 안고 감수해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달콤한 나의 도시를 생각하면 참 복잡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작품이에요. 자랑스러워하는 것과는 별개로 정말 친한 친구를 사랑하는 것 같은 그런 마음이죠.
# 그녀만의 감성적 문학코드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인 문장, 속도감 있는 전개, 무엇보다 젊은 도시남녀의 생활코드를 솔직 담백하게 담아낸다는 점에서 정이현은 이미 확고한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다. 그녀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젊은 여성들은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굴레 속에서 자신의 숨은 욕망을 실현하며 살아간다. 그 무엇보다 개인의 욕망에 충실한 그녀들을 보며, 독자들은 내심 질투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 모습이 현재의 우리와 너무도 닮아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Q : 이미 확고한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하는데
- 문학은 서사만 보면 그건 드라마나 영화와 별반 다른 부분이 없다고 생각해요. 줄거리만 요약해서 보면 이야기 자체는 너무 뻔하고 식상하거든요. 문학은 90%가 문장과 문장 사이의 긴장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독자가 그 문장을 읽으면서 받았던 그 순간의 느낌을 얘기하지 않고 커다랗게 어떤 이야기만으로 그 틀을 부어놓고 낙인찍을 순 없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혹여 역사에 남을 문학이 아니더라도 그 순간의 소통들이 중요한 거죠.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은수가 했던 이야기들이 제가 모르는 어떤 사람에게 사소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사소한 위로가 모여 작은 영향을 만들고, 결국 그것을 통해 소통할 수 있다면, 그거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해요.
Q : 소설 속에 유난히 30대 여성들이 자주 등장한다
- 아무래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관심이 있는 것에 자연스럽게 손이 가고 눈길이 머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여성들인데, 문학 안에서도 그렇고 여태까지 그들에 대해 오해된 부분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여성뿐만 아니라 누구나 일상의 자연스러운 부분들 속에서 많은 욕망을 품고 살아가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안에도 여러 가지 욕망들이 뒤섞여 있고, 그 욕망 중에서 뭔가를 선택할 때는 굉장히 이질적인 이유로 선택하지만 그 이질적인 이유가 온전히 제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간접적으로라도 그들의 욕망에 대해 옳고 그르다는 식으로 누군가 단죄할 수는 없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 그것들 모두가 한 마디로 규정되어 왔던 것 같아요. 바로 제가 경험하고 지나온 부분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점들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 시작, 그리고 또 다른 시작
데뷔 5년차, 앞으로 갈 갈이 너무 멀다고 말하는 그녀는 이제 조금씩 뭘 해야 되는지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고 말한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게임은 게임이라는 것, 그러나 오로지 자신과의 게임이라는 것을 알겠다는 정이현은 지금도 자신과 고독한 싸움 중이다.
Q : 문학 지망생 시절, 그리고 지금
- 20대 후반이 되니 내 인생이 그냥 이대로 흘러가는가라는 허무함과 함께 어떻게 되든 인생을 한 번 던져보고 싶다는 열망이 일었어요. 아마도 일상에 지치면서 그런 순간이 왔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시절엔 언젠가 문학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지만, 힘겨운 20대 후반을 거치면서 어떻게 보면 충동적으로 문학공부를 시작하게 됐죠. 지금은‘또 이 얘기야’라는 말을 들을까봐 두려우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진득하게 물고 늘어져야하지 않을까’하는 두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틈 사이에서 조금씩 저만의 길을 모색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무엇보다 제 소설을 읽으시는 분들이‘아 맞아, 나에게도 뒤통수가 있었지’하고 만져볼 수 있는, 놓치고 있었던 뒷모습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어요. 굉장히 안전하고 편안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갑자기 이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갑자기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지금 이 시간에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거고요. 일상 뒤에 숨어있어 우리가 모르는, 우리가 미처 예측할 수 없는 일들, 그런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요. 일상이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죠. 혹여 그런 일상 속에서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우리는 평생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것, 그러니 스스로에게 너무 미안해하지 말자, 그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요.
정말 식상한 말이지만 너무 감사한다고 정이현은 말한다. 그녀의 말처럼 우리 주위엔 단돈 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누릴 수 있는 기쁨도 참 많다. 그러나 그녀의 책 한권, 그녀의 이야기가 선사하는 진정한 만원의 행복은 그 가치를 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서울이라는 상징적인 공간 속에서 앞으로도 독자들과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정이현, 그녀와 함께 발맞춰가는 걸음 속에서 한줄기 작은 위안을 얻고 싶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