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이슈 > 울고 웃는 공천 풍경
멀고도 험한 국회의원이여
2008-03-03 장인혜 기자
어느 당을 막론하고 제18대 총선 공천신청자들은 두둑한 참가비와 최대 21개의 신청서 서식을 준비해야 한다. 지난 달 한나라당은 18대 총선 공천신청에서 1173명의 공천 신청자들이 몰려 창당이후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공천 신청자들에게 180만원의 특별당비와 80만원의 공천심사비를 받아 약 27억원의 수익이 생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드디어 공천 신청과 심사가 시작된 통합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의 경우는 신청자들이 대거 몰리지는 않아 공천 수익이 한나라당에 비해 미미하다. 자유선진당의 심사비는 50만원이고, 특별당비는 100만원이다. 접수된 심사비 및 특별당비는 공천 심사 결과에 상관없이 일체 반환되지 않는다. 통합민주당 역시 특별당비와 심사료를 받는데, 공천심사료가 100만원으로 심사료 자체만으로는 가장 비싸다. 특별당비는 150만원이다.
공천 신청자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비단 돈뿐만이 아니다. 당별로 까다롭고 복잡한 공직후보자 추천 신청서 역시 험난한 코스다. 자유선진당의 제출서류는 17종에 해당기관에서 발급받아야 하는 서류가 5개다. 통합민주당의 제출서류는 21종으로 역시 해당기관에서 발급받아야 하는 서류가 또 6개다. 공천 신청자들은 저마다 이력서와 각종 증명서를 비롯해 적게는 A4 1매에서 3매에 이르는 자기소개서를 써서 제출해야 하고, 선거전략, 선거공약, 의정활동계획서 등 보다 구체적으로 소신을 펼쳐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각 당의 공천심사위원회와의 면접 또한 최대의 난관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그 첫 관문부터 수월하지 않다.
한나라당, 우열을 가리기 힘든 공천 대박
가장 일찍 공천심사를 시작한 한나라당은 1차 공천심사를 마치고 2차 공천심사에 돌입하면서 공천 탈락자들의 반발을 받아내고 있다. 여타 당들이 이제 신청서를 받고 심사에 돌입한 것에 비하면 한나라당의 행보는 매우 빠른 편이다. 이미 후보자를 내정하고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 여유롭게 선거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여유로울 수 있는 공천 심사 통과자는 한정되어 있고, 심사 결과에 강한 불만을 표기하는 세력은 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나라당 여의도 당사 주변은 공천심사에서 낙마한 신청자들과 지지자들이 날마다 몰려와 확성기를 이용해 연일 시위를 하고 있는가 하면, 공천 단계에서 밀실 공천 의혹을 제기하는 신청자도 있었다. 또한 경남의 한 지역구에서는 신청자 다수가 공천 심사 결과를 반대하는 탄원서를 공심위에 제출했고, 일부 탈락자들은 무소속 출마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도 떠돈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지난 달 12일부터 8일간 무려 700명에 육박하는 공천 신청자에 대해 심사를 벌였다. 매일 100명에 가까운 신청자들과 얼굴을 맞대는 면접을 하는 강행군이었다. 하루 평균 4시간에서 5시간을 진행했고, 대략 3분에 1명꼴로 심사를 한 셈이다. 심층면접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전국적으로 4.8대 1이라는 역대 최고의 공천 경쟁률을 자랑한 이번 한나라당 공천에서는 서울지역에서만 270여명이 신청했다. 서울 48개 지역 중 10명이 넘는 공천 신청자가 몰린 곳도 9곳이나 됐는데, 은평갑(16), 금천(15), 구로을(14), 양천을(11), 강서을(10), 광진을(10), 중랑갑(10), 중랑을(10), 동작갑(10) 등이다. 이들의 경우 1차 압축작업을 마쳤으나 3명 안팎의 신청자가 있다 보니 우열을 가리기가 더욱 힘들어졌다고 한나라당측은 밝혔다.
공천 심사 결과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철새 정치인과 정당을 이번 총선을 통해 반드시 심판해 여의도식 구태정치를 청소하자”고 말하며 철새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비호감을 표시했다. 강 대표는“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우리는 한나라당이라는 간판으로 떳떳하게 국민 선택을 받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합민주당, ‘변화, 변화, 변화’
지난 달 21일 통합민주당의 전북도의회 기자회견에서 손학규 대표는 막 시작된 공천에 대한 기준과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손 대표는 연신 통합민주당의 이번 18대 총선 공천에는‘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겠다”,“공심위의 권한을 보호하고 독립성을 유지하겠다”,“품격있는 공천을 진행하겠다”는 포부를 자주 밝히며 당이 쇄신하는 모습을 공천을 통해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공천의 5대 기준을 정했다”며“정체성, 기여도, 의정활동능력, 도덕성, 당선가능성”이라고 설명했다. 또한“기득권 배제, 계파안배 배제, 청탁 배테의‘3무 공천’”이라고 덧붙였다.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한나라당의 공천에 대해 언급하면서 손 대표는“계파 안배와 지분싸움이 어떻게 되고 있느냐”라고 말했고, 이어“외형적으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지분싸움과 계파안배가 한나라당 공천의 주된 관심”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공천 결과에 대한 잡음을 없애기 위해 통합민주당의 공천심사위원회는 외부 인사를 더 많이 두는 방향을 선택했다. 완전한 정도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공정성과 객관성을 충분히 건질 수 있다고 손 대표는 자신했다. 손 대표의 출마설에 대해서는“당에 대한 관심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현실이다. 신뢰와 희망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 먼저다”라고 직답을 피했다.
통합민주당은 수도권에서의 선거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분하다. 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일정수준 이상을 회복시켜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고 그 지점이 수도권이다. 수도권은 총선의 승패를 좌우하는 지역이고 표심의 유동성도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회창 총재, 총선 출마하나
자유신당은 분명 새로이 탄생한 창당의 탈을 쓰고 있지만 국민중심당과의 합당의 내면을 가지고 있다. 국중당과의 합당을 통해 국중당 소속의원 4명이 자유신당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고, 추가로 입당한 조순형, 유재건, 박상돈, 곽성문 의원까지 총 8석의 의석을 가진 원내 제4당이다. 따라서 원내 입지로만 본다면 현재 자유선진당이 거대 야당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욕심이 무모한 것만도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도 입증되었듯이 국민들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일정 세력 건재하고 있고, 한나라당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세력으로 자유선진당이 거론되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대선 출마라는 정치 재입문을 시도하면서 총선을 겨냥한 행보임을 강조했다.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 다시 정치판에 뛰어들지 않았다는 저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자유선진당의 이번 총선에 대한 포부는 단연 실속이 있어야 한다. 자유선진당은 현재 국민중심당의 본거지인 충청권에서 입지를 분명히 굳힐 것으로 기대하는 만큼 일부에서도 20석 이상을 계산해놓고 있는가 하면, 자유선진당이 전국적으로 100여 석은 차지하지 않겠느냐는 여론도 있다. 역대 대선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온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충청권이다. 충청권 표심을 잡기 위해 원내 정당들의 피나는 노력은 익히 알려져 있다. 지역색이 잔재한 영호남 지역에 비해 충청권의 표심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데다가 충청권에 의해 선거의 판도가 변한다는 점에서 선거 때마다 가장 주목을 받는 지역이다. 자유선진당은 그런 충청권에서 국민중심당을 통해 오래도록 물밑작업을 해온 터다. 따라서 충청권에서의 이 총재의 전략적 행보가 귀추를 주목할만하다.
자유선진당과 뿌리는 같을 수 있지만 지향점이 다르다는 한나라당의 입지가 대선 이후 오히려 당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이 점 또한 자유선진당에는 호기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의 성급히 내놓았던 다양한 개혁안들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과 공천 심사 기준을 둘러싸고 지나친 내홍을 겪었던 한나라당의 지지세력들이 만약 돌아선다면 그들이 갈 곳은 자유선진당이라는 것이다. 쓸쓸히 퇴진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후광이 아직 남아있다면 통합민주당의 지지세력 또한 붙박이일리 없다. 통합민주당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여기고 당을 떠나 자유신당에 합류한 의원들의 행보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현재 자유선진당은 심대평 대표의 대전 서을에 출마가 정해진 상태고, 창당 주역이었던 강삼재 최고위원의 출마와 이회창 총재의 출마가 아직 결정되지 못했으나 출마의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 것이라고 정치권은 예상하고 있다. 원내 거대 야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의석수 확보가 중요한 만큼 승산 있는 후보를 내놓고 선거를 치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불꽃 튀는 지역구 어디인가
서울 도봉갑은 선관위에 후보예비등록을 한 후보만 13명이다. 3선인 통합민주당의 김근태 의원이 눈에 띄고, 한나라당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가 함께한다. 두 사람의 뚜렷한 이념적 대립각이 주목되는 지역이다. 서울 동대문을은 지난 28년동안 한나라당이 표를 차지해왔다. 3선의 홍준표 의원이 통합민주당의 민병두 의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로울 수 있는 이유다. 특히 홍 의원의 인지도는 민 의원에 비해 높고, 이번 대선에서도 홍 의원은 클린정치위원장으로 이명박 후보를 BBK 의혹에서 막아낸 공이 있다.
경기 고양갑 지역은 최근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심상정 의원이 눈에 띈다. 심 의원은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오랜 기간 재선을 준비해왔다. 고양갑에는 현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인 이명우 전 경기도시공사 상임감사가 한나라당 후보로 등록을 했고, 한나라당 친박근혜계로 알려진 손범규 변호사 또한 같은 당 후보로 공천 경쟁을 하고 있다.
또한 경기도 지역 최대 격전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받고 있는 곳이 안산 상록을이다. 일찍이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했던 임종인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여기에 통합민주당에서는 김재목 전 문화일보 정치부장의 출마가 유력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한나라당에서는 3배수 후보만 결정한 상태다. 본선에서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총선 이후 정당을 창당할 계획인 유시민 전 장관은 무소속으로 이번 총선에 출마한다. 그는 대구 수성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주호영 대변인과 경쟁을 하게 된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