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慈悲의 시간들

2021-01-13     김준현 기자
[사진=시사뉴스피플 大記者겸 칼럼니스트]

[시사뉴스피플 = 김준현 기자] 넉넉한 여유가 남을 도와야 하는 당연한 이유가 아닌 것과 같이 평생 쓰고도 남을 정도로 많이 지녔다고 해서 모두가 불쌍한 이웃을 위해서 성금을 흔쾌히 쾌척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현대인들은 먹거리가 풍족해지고 삶의 여유가 개선될수록 쾌락과 즐거움을 찾아 혈안이 되고 이기적 행위로 한 없이 천박해 지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타고난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루마니아 태생, 종교 철학자인  엘리아데 (Mircea Eliade,  1907 ~ 1986년,  미국 시카고 사망) 는  그의 수필 <역사의 공포> 에서 "민족과 전인류는 물론 우리들 각자 개인의 운명은 모두 한결 같이 역사와 삶의 구체적 시간 속에서 대치 불가능한 오직 단 한 번의 연출이 되는 것이다."  라고 하면서 역설적인 인간성에 따른 역사와 조심스러운 삶의 두려움을 말한다.

개인의 발자취가 바로 역사이며 운명을 비켜 나가는 것이 인간의 의지요 마음이 아니던가?
배려와 나눔의 세상은 평화롭고 여유로운 안정으로 인류가 꿈꾸는 이상이다.

그러나 이기적 개인주의와 경쟁으로 점차 각박해져가는 어두운 현대문명은 속절없이 <엘리아데의 비극> 으로 해괴하고 우려스러운 인류역사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아무개 그는 법정스님의 말을 빌려 불쌍한 사람을 대하여 연민의 정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자비> 라면서 궁핍한 내 마음을 달래며 위로하면서도  그의 실천적 자비 행위는 남 다를 뿐만아니라 실로 대단하다.

아무개 그는 성실하게 일을 하는 데에도 근면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건전한 방법으로 치부하는 일에도 가히 천재적이다.

그는 사회에 성금을 희사하는 일에 게으르지 아니 할 뿐만 아니라 일상의 생활이 자비와 연관되지 아니하는 일이 없다고 할 만큼 독특하다.

이웃의 젊은 부부가 열심히 사는 모습이 아름답기에 도와줄 수 있는 합리적 길을 찾아 적절한 도구를 마련할 성금을 아끼지 않는다든지 길을 다니다가 감동을 받는 일을 보면 처음 만나는 모르는 사람이라도 격려금을 쥐어주는 등 <자비의 달인> 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필자는 지난 반년 동안을 잘난(?) 목소리 하나로 자비를 베풀어 보았다.
재능기부는 매 주말마다 종로3가역 인근 탑골공원 정문 버스킹 공연이다.

서울 종로, 그곳은 노인들의 천국이라고 할 만큼 오갈고 없는 어르신들의 메카이다.
목소리(노래) 재능기부는 어르신들에게도 당사자인 나 자신에게도 보람(힐링)이고 행복(즐거움) 이다.

필자는 올해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 즐거운 마음으로 자비를 습관 해 가기로 한다.

'코로나19' 로 인해 사회가 많이 어둡고 우울하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 구석 구석에 '꽃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자비의 향기' 를 뿌리며 살아 가는 '마음부자' 자비인들이 많다.

물질 등 갖가지 달란트로 수고하는 그들을 응원하고 싶다.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마냥 향기롭고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