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선핵포기, 北 통미봉남
MB정부의 안개 속 대북 기조
2008-05-06 장인혜 기자
사건의 발단은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지난 3월 19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개성 공단 입주 기업 대표 20여명과의 간담회에서 김 장권은“북핵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을 확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있고, 통일부가 대북정책안을 발표한 다음날인 3월 27일 북한은 행동으로 화답했다. 개성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에 상주하던 남쪽 정부 인력 11명 전원에 대해 철수를 요구한 것이다. 이어 28일에는 서해상에 3발의 미사일 발사를 했고, 같은 날 방공훈련도 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그 즈음 김태영 합참의장의 인사청문회가 진행되었는데 당시 한나라당 김학송 의원은 김 의장에게“북한이 소형 핵무기를 개발해 남한을 공격할 경우 어떻게 대처하겠느냐”고 질문했고, 이 자리에서 김 의장은“중요한 것은 핵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확인해서 타격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미사일 방어 대책을 강구해서 핵이 우리지역에서 작동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는 북한이 핵 공격을 하려하면 선제타격을 하겠다는 취지로 일부 이해되기도 했는데, 북한은 김 의장의 이 같은 발언을‘선제 타격 폭언’이라고 단정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29일 남북장성급군사회담 북측 대표단 단장은 남측 수석대표에게 보낸 전화통지문에서“김 의장의 발언에 대해 취소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모든 북남 대화와 접촉을 중단하려는 남측 당국의 입장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국방부는‘선제 타격’이란 말은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지만 3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우리식의 앞선 선제타격이 일단 개시되면 불바다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 잿더미로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지난 달 1일 <노동신문>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역도’,‘매국 역적’,‘장사군기질밖에 가진것 없는 리명박’이라고 표현하는 논평을 냈다. 논평에는 그간의 모든 남측 고위 관료들의 대사는 물론 새 정부의 대북 정책안,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비핵․개방 3000> 계획에 대해서“극히 황당무계하고 주제 넘은 넋두리로서 민족의 이익을 외세에 팔아먹고 대결과 전쟁을 추구하며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반통일선언”이라고 서술했다. 또한“‘북핵포기우선론’은 핵 문제의 해결은 고사하고 장애만 조성하며, 북남관계도 평화도 다 부정하는 대결선언, 전쟁선언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에 2일 남측은‘북한의 긴장조성 행위 중단’과‘부가침 합의 준수’의 내용을 담아 전화통지문을 보냈고, 다음날 북측은 이에 대한 수용을 거부하고“군사적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답변을 보내왔다. 남북장성급회담 북측 단장인 김영철 중장의 명의로 된 이 전통문에서는“남측의 어제 입장은 한갓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면서“군사적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남측은“전날 북측에 보낸 전통문을 통해 남측 입장을 충분히 밝혔기 때문에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며“그러나 군사당국 간 접촉과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고 말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북한이 우리의 국가 원수에게‘역도’라는 표현을 쓴 것은 지난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 이후 처음이다. 제1차 정상회담 이후 남북간 갈등 상황이 발생해도 북한은 김 전 대통령을 거론하지 않고 남한 당국 일반으로 돌려 비난했고, 뭉뚱그려‘남조선 군부’,‘군 당국자’등의 표현을 사용해왔다.
‘북핵문제 진전상황을 보아가며’
북한이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했던 <비핵․개방 3000 구상>의 내용에는 북핵문제 해결 촉진과 지원 방안, 남북경협기업의 애로사항 해소, ‘푸른 한반도’구현을 위한 북한지역 나무심기를 추진하는 산림분야 협력, 농수산 협력, 자원개발 협력, ‘나들성 구상’구체화, 이산가족 상시상봉 체계 구축,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 해결 진전,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강화, 대북지원 분배투명성 강화, 북한 인권 개선 노력 등의 구체적인 추진방향과 이행계획이 들어있다. 북핵문제 진전상황을 보아가며 남북관계 발전의 속도와 폭, 추진방식을 조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통일부는 남북경협의 4대 원칙을 정해 넣었다. △북핵진전 △경제적 타당성 △재정부담 능력 △국민적 합의로 이루어진 4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실용과 생산성을 따지고, 비핵화나 남북대화 등의 원칙을 철저하게 고수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실용과 생산성을 판단하기 위한 대북정책 5대 실천 기준에는 △국민들이 동의하는가 △비용 대비 성과가 있는가 △북한주민의 생활향상에 도움이 되는가 △북한의 발전적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가 △ 평화통일에 기여하는가라는 5가지가 있다. 북한과의 유연한 대화와 접근을 허용하겠다고 하면서 따질 것은 따져가면서 진행하겠다는 새 정부의 실용주의가 듬뿍 담긴 대북 정책이라 할 수 있다.
MB, 투명한 상호주의 대북 기조
지난 달 북한이 보여주었던 일련의 모든 과정들에 대해 청와대측은“새 정부는 남북문제에서 진정성을 갖고 대화하려고 한다”며“북한도 이제까지 해오던 방식에서 조금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발표할 때마다 호들갑을 떨며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겠다며 정부는 로키(low key)로 침착하고 실용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대한민국도 그런 방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우리는 그대로 북한만 자세를 바꿔달라는 게 아니라 남과 북이 모두 세계 조류에 맞게 대화를 해 나가야만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핵을 끼고는 우리가 통일하기도 힘들고 본격적인 경협을 하기 힘들 것”이라며 북한의‘선핵포기론’과 함께“한미관계가 좋으면 남북관계도 선순환할 것”이라며‘선미종북(先美從北)론’을 펼쳐온바 있다. 대북론에 있어‘상호성’과‘투명성’을 강조한 것이다. 기존 정권과 대북정책에 있어 뚜렷한 대비를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새 정부의 대북기조에는‘할 말은 하겠다’,‘과거 처럼 끌려가지 않겠다’는 식의 원칙적이고 단호한 대응책을 가지고 있다. 지난 10년간의 대북포용정책과는 확실하게 대비되는 논리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달 13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남북 관계가 지난 10년간의 기존 틀이 새로이 정립되는 조정기간을 거치고 있다며 최근 있었던 북한의 도발적인 언동들에 대해 한국 정부는 그러한 관저에서 원칙을 갖고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싱가포르 합의사항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공식적으로 미국도 발표도도 안했으나 그런 것들을 포함해서 모든 것은 한국을 제끼고 미국과 한다는 북한 전략은 성공할 수 없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한다”며 통미북남론을 비판했다. 그동안 공공연히 밝혀왔던 한미동맹과 국제적 협력 우선, 북핵 폐기 우선, 상호주의 강화와 같은 대북 기조에서 한 발 물러나 보다 큰 틀에서 사태를 인식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북핵에 대해서는“6자회담을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협력하고, 북한 주민 생활에도 깊은 애정을 갖겠다”고 밝혀 북한의 핵과 인권문제를 함께 두는 것으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문을 통한 북한의 도발적인 행동들에 대한 발언이 있던 지난 달 13일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은 미국에 대해 대북 적대정책 포기를, 남한에 대해서는 10․4선언 이행을 강조하는 발언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군축위원회 연례회의에서 북한 대표가 요구했다고 밝혔다. 북한 대표는“내외 반공화국(반북), 반통일 세력들의 무모한 책동”으로 한반도에 긴장된 정세가 조성되고 있음을 말하며“이런 행위들은 화해와 협력으로 지향되던 (조선반도) 지역의 긍정적인 정세를 대결 국면으로 외돌려 세우려는 것으로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에 대해서는“핵 보유국들 특히 세계 최대의 핵무기고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이 핵무기의 완전한 철폐를 지향한 실질적인 핵군축 조치들을 공약하는 것으로 회의의 목적 달성에 기여할 것”을 요구했다고 조선중앙방송은 전했다.
北, 핵 신고 문제 두고 수 개월째 답보
지난 해 2월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만들어낸 해법인 2․13합의에 따라 6개국은 3단계로 나눠서 해결하기로 했다. 1단계에서는 영변 핵 시설을 폐쇄하고, 2단계에서는 불능화와 모든 핵 프로그램의 정확하고 완전한 신고가 이루어지며, 3단계에서는 검증에 이어 모든 핵을 폐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미국과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의 행동에 발맞춰 중유 등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하기로 했다. 계획대로라면 북한은 지난 해 말까지 모든 핵 프로그램을 정확하고 안전하게 신고하고, 6자회담 당사국들로부터 에너지를 지원받기로 돼 있었다. 미국은 대신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고 적성국 교역법 적용도 해제하는 절차를 시작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북한은 우라늄 농축 계획과 시리아와의 핵 협력 의혹과 관련해 미국과 심각한 견해차를 보이면서 마감시한을 지키지 않았다.
순차적으로 진행되리라 기대했던 북한 비핵화 문제는 현재 2단계를 진행시키지 못한 상태다. 핵 신고 단계인 2단계를 북한이 실행하면 바로 비핵화 3단계인 북-미 관계 개선과 핵 폐기 단계로 넘어가겠지만 신고 문제를 두고 수 개월째 답보 상태에 있다. 2단계에서는 북한이 핵 신고서를 6자회담에 정식으로 신고해야 하는 절차와 북한 핵 시설 불능화 마무리, 중유 등 대북 경제적 지원도 완료되어야 3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지난 달 8일 2단계에 해당하는 북한 핵 신고 문제를 풀기 위해 미국과 북한의 싱가포르 회동이 있었다.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싱가포르주재 미국대사관에서 양자회동을 가졌다. 그러나 회담을 마친 후 힐 차관보와 김 부상의 입장차가 확인되었다. 김 부상은“10․3합의 이행을 완결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미국의 정치적 보상 조치와 핵 신고 문제에서 양측의 견해 일치가 이룩됐다”고 밝힌데 반해, 힐 차관보는“싱가포르 회담에서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 이행돼야할 부분이 남아있다”고 답해 약간의 입장 차이를 보였다. 힐 차관보는“최종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지난 달 11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프랑크 발터 스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진 뒤 기자회견에서“북한 정부로부터 받은 모든 핵 관련 문서와 신고는 반드시 검증돼야 하고 검증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라이스 장관은“북한 정부가 핵신고와 관련해 의무를 이행했는지의 여부를 판단할 단계이 이르지 않았다고 말해 미북간 싱가포르 회동 이후 북한이 발표한 낙관적 기류를 경계했다. 분명한 것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북핵문제가 결부되어 있고,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관계의 눈에 띌만한 진전은 어렵다는 것이다. 북핵이라는 장애물이 언제 걷어질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현 정권이 끝날 시기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비관론도 있다. 정부가 북한 국민의 소득을 3000달러로 올려주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면 하루빨리 무엇이든지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NP
[ 북한 노동신문 4월 14일 논평 내용 ]
( 중략 )
우리의 응당한 경고에 정통을 찔리우고 저들의 반통일적죄상이 낱낱이 드러난데 바빠맞은 보수패당은 지금 아무 변명도 하지 못하면서 궁색한 처지를 모면해보려고 그 무슨 <기싸움>이니, <시험해보려는것> 이니 하며 그 의미를 약화시켜보려고 꾀하고 있다. 이것은 아직도 사태의 엄중성을 바로 못 보고 저들의 반민족적립장을 정당화하며 살구멍을 찾아보려는 자들의 가소로운 망동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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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새로 들어앉은 남조선의 리명박 <정권>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떠들면서 시대에 역행하는 반동적인 남조선미국 <관계우선>론과 <실용주의>를 들고나왔으며 그에 기초한 <비핵, 개방, 3000> 따위의 대결론을 내흔들며 6․15이후 북남사이에 이룩된 귀중한 성과들을 뒤집어엎으려고 날뛰였다. 우리는 이에 대해 할말도 참으면서 인내성있게 지켜보았으며 리명박 <정권>이 리성을 되찾고 옳은 길로 나오기를 기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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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명박패당의 남조선미국 <관계우선론>과 <실용주의>, <비핵, 개방, 3000>은 명백히 북남대결과 북침전쟁의 론리로서 털끝만치도 용납될 수 없다.
( 중략 )
우리는 력사적인 6․15 공동선언과 그 실천강령인 10․4선언을 부정하고 <우리 민족끼리>리념을 존중하지 않는 민족반역의 무리들과는 절대로 상종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흥정도 하지 않을 것이다. 비극인 일찍이 기업이나 하고 장사군기질밖에 가진것 없는 리명박인지라 민족문제, 북남관계문제 역시 수판알로 튀기며 장사판의 흥정대상으로 삼아보려 하고있다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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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명박일당은 대세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시대에 역행하는 반민족적이며 반통일적인 책동을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