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을 만드는 책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펴냄 >

2008-08-04     장인혜 기자
서로 같은 취미를 가진것 만으로도 호감을 가질 수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하물며 취미에 대해 정보를 나누고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또 그 대화가 잘 통한다면 서로에게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랑 수다 떨기, 책에 나오는 남자주인공 사랑하기, 책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따라하기, 책에 나오는 음료와 음식 먹어보기, 책에 나오는 암악 찾아 듣기, 책이 알려주는 장소 가보기 등의 취미를 가진 사람은 그런 취미를 가진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함께 행동에 옮겼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 정혜윤과 취미를 함께한 이 책에 등장인물들을 함께 모아‘그들’이라고 표현한다면,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그들의 인연과 미래를 시작한 셈이다. 책 제목처럼.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라는 부제가 붙은 <침대와 책>으로 독서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정혜윤은 역시 같은 주제 ‘책’을 가지고 두 번째 에세이를 냈다. 문화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독특한 개성의 인물 11명의 인터뷰 모음집이다. 저자는 주인공들을 만나서 ‘당신을 만든 책은 무엇인가’라는 독특한 주제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답을 통해 한 인물의 정신적 행로를 그려 보이고, 짧은 텍스트 안에 응축된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문학적, 사상적, 철학적 시발점을 만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세상의 독서가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유혹이 하나 있다면 바로 어떤 저명인사의 인생을 바꾼, 그 사람을 있게 만든 ‘책’이 무엇이고, 그 책을 내가 보았을 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하는 것이다. 과연 그 유명인들처럼 나에게도 그 책이 심각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는지, 나한테는 그저 그런 책으로 전락하게 될지 책 깨나 읽는다는 사람들은 내심 시험하고 싶어 한다. 저자 정혜윤은 바로 그 코드를 잡았다. 베스트셀러 작가 공지영, 영화배우 문소리, 진보성향의 진중권 교수, 소설가 정이현 등 그들이 어떤 시간을 통과해왔기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하며 우리를 매혹시키고 있는지 궁금해 할 독자들 꽤나 있을 것이다. 주인공들은 낯익은 작품 속의 인물들과 주제, 작가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다. 공식적인 발언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인터뷰이 개개인의 비밀스럽고 사적인 체험은 덤이다. 진중권의 실랄한 비판적 정신이 마크 트웨인에 빚지고 있음을, 변영주의 우렁찬 목소리 뒤에 김지하의 시가 있음을, 임순례의 소외된 계층에 대한 관심 저변에 제인 구달과 소로우의 철학이 깃들어 있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이진경이 꼽는 가장 아름다운 책이 <벽암록>이고, 박노자가 첫 번째로 꼽는 책이 <장자>이고, 변영주가 인생의 교훈을 얻은 책이 <슬램덩크>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들의 숨겨진 일면에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사적인 독서 체험을 확장시켜 소통으로 가는 길을 모색했다는 저자는 동일한 책을 매개로 끝없이 이어지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책에 관한 수다는 책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과 이를 통한 존재의 다양한 실존 가능성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인생이 한없이 유쾌할 때도 있지만, 지독히 엄숙할 때도 있다. 그런 인생의 구석구석에 책이 있고 고뇌가 있으며 변화와 성장이 뒤따른다. 책의 무게에 압도되지 않고, 오히려 책을 자유롭게 이용해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간 이야기, 책과 만나고 그 책을 통해 다시 세상과 만난 이들의 이야기, 그들만의 독서 방법 등은 책 자체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충분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NP




『조선사 3대 논쟁』 이재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펴냄
1970년대 말 한 권세가의 작용과 권력에 아부하던 어용학자들의 부화뇌동으로 사육신 유응부를 삼중신 김문기로 대체하려 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는 사육신 조작작업, 율곡 이이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에 전쟁을 예견하고 십만양병설을 주장했으나 서애 유성룡이 반대하여 무산되었으며 이 대문에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전란을 초래했다는 잘못된 통설, 원균은 용감한 장수인 반면 이순신은 보신책에만 능한 겁쟁이라는 몇몇 논자들의 주장에 대해 그 허위를 벗기고 실상을 구명했다. 철저한 사료검증을 바탕으로 조선사 3대 논쟁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한 이 책을 통해 일부 인사들의 과장, 부회, 억측으로 오도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한다. 지은이 이재호는 현재 부산대학교 명예교수로서 한국사의 잘못된 통설을 바로잡는 책을 집필하고 각종 고전을 번역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학자다. 저자는 곳곳에서 던지는 정문일침의 경고를 통해 60여 년간 역사연구에 힘써온 노학자의 열정과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촌놈들의 제국주의』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펴냄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정책분과 의장과 기술이전분과 이사를 지낸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늘 자신을 C급 경제학자로 소개하는 우석훈의 신간이 나왔다. <88만원 세대>로 한국 경제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던 그의 이번 신간은 국제경제학과 발전경제학의 시각 위에서 로자 룩셈부르크와 도넬라메도우의 이론을 가져다 동북아 3국의 국민경제를 분석했다. 결론은 ‘한국-중국-일본 간의 전쟁’이란다. 한국은 그간 극단의 대외 의존적 수출주도형 경제를 굴려왔는데 이제는 한국 자본주의가 그 내부적 모순과 불균형을 특단의 대안 없이는 제어하기 어려운 단계, 즉 식민지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제국주의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그러나 식민지를 만들어낼 능력도, 식민지 경영의 경험도 없으면서 생존의 돌파구는 식민지가 요구되는 제국주의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한국 자본주의를 저자는 ‘촌놈들의 제국주의’라고 이름 지었다.

『혜초』 김탁환 지음 / 민음사 펴냄
실크로드를 가슴에 품은 한 불제자의 이야기를 담은 김탁환의 신작 장편소설이 나왔다. 신라의 승려 혜초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간결하고 단정한 문장으로 단 6,000자 안에 광대한 실크로드를 담아 천 년이 지나도 퇴색하지 않는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작가 김탁환은 혜초의 발길을 따라 1년여를 실크로드 위에서 보내면서 <왕오천축국전>에 가려져 있던 ‘인간’혜초를 소설 속에서 생동감 있게 살려냈다. 소설은 기억을 잃은 혜초가 고선지와 만나 시작되는 현재의 이야기와 혜초가 양피지에 남겨 놓았던 과거의 여행기가 교차되어 진행된다. 구도자로서 혜초가 길 위에서 얻는 깨달음을 잔잔히 풀어 놓으면서도 고선지의 행보에서 펼쳐지는 무협지적, 추리적 요소들로 박진감 있게 전개된다. 혜초와 고선지 외에 작가가 창조한 가상 인물, 신라 상인 김란수와 서역 무희 오름도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김영하 여행자 도쿄』 김영하 지음 / 아트북스 펴냄
김영하의 여행자 시리즈 두 번째 책이 나왔다. 카메라 ‘룰라이35’를 들고 도쿄를 여행한 이번 책에서는 도쿄의 무정부주의자, 동성애자, 범죄자, 펑크족, 공산주의자, 테러리스트, 마약중독자 등 문제적 개인들이 다수의 ‘평범한’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간다. 저자는 낯선 세 명의 남녀가 한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각자 할 일을 하는 크레이프 가게, 퇴근길 챙겨온 문고판 책을 읽으며 목을 축이는 샐러리맨들의 맥줏집 풍경 등을 통해 혼자서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가는 개인들을 보여준다. 작가는 여행이란 포기하면서 만족하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며, 한 번의 여행에서 모든 것을 보아버리면 다음 여행이 가난해진다고 말한다. 길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것을 봐야 한다는 강박을 떨쳐내고, 자신만의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자유로운 마음상태가 된 후에야 진정한 여행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김영하의 ‘여행자’시리즈는 진정한 여행을 시작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준비서 역할을 해줄 것이다.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이덕일 지음 / 한겨레출판사 펴냄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시간의 흐름은 변화를 낳기 마련이라 ‘역사적 평가’란 곧잘 뒤바뀌곤 한다. 여기 당대와는 불화를 겪었으나 지금까지도 유효한 의미를 던져주는 시대정신을 가졌던 한국사 인물 25명의 지난한 삶이 펼쳐져 있는 책이다. 변방 국가로서 생존의 빌미였던 맹목적 중화 사대주의, 사대부 중심의 신분질서, 그에 따른 적서 차별, 완고한 가부장적 질서 하의 여성 차별 등은 한때 결코 벼할 수 없는 지고의 가치였다. 하지만 이 닫힌 질서의 억압에 대해 “그건 아니요!”라고 소리 높여 외친 문제적 인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은 시대의 벽을 넘지 못하고 뜻을 이룰 수 없었지만, 역사를 통해 그 뜻이 마침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며, ‘역사란 무엇인지’느낄 수 있는 계기를 주고 있다. 최근 정치사 위주의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통해 제대로 주목 받지 못한 그 시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입체적으로 복원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작가는 풍부하고 정확한 사료에 근거하면서도 흡입력있는 문체로 대중역사서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