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민선5기 지방의회
금품 비리, 뇌물 선거, 성매매 등 광역·지방의회 천태만상
지방의회의 뿌리 깊은 병폐 근절하는 대책 마련돼야
지난 7월 민선5기 지방의회의 후반기 의장단이 선출됐다. 그러나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지방의회 의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비리, 적절치 못한 처신으로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초유의 뇌물 사건, 성매매와 술접대 제공, 직무유기까지 지방의회를 둘러싼 갖가지 비리와 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방의원 유급제가 시행되고 의정비가 대폭 인상됐지만 지방의회의원들의 수준과 자질이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달 19일‘성매매 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는 서울시 자치구 의회에서 의원들의 성매매 의혹이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시 중구 의회에서 9명의 의원 가운데 6명의 의원이 동료 의원의 제공에 따라 성매매에 연루됐다는 의혹이다. 시민단체인‘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는 중구 의회의 한 의원이 지난 7월 의장 선거를 앞두고 의장에 당선되려고 다른 의원들에게 성매매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강서구 의회에서도 술접대 제공 의혹이 제기됐다. 역시 의장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의 한 의원이 같은 당 의원들에게 술을 접대하거나 식사를 제공하는 등 의장에 당선되기 위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추문이다. 또한 충북 충주시의회에서는 일부 의원들이 해외연수 중 성추문에 대한 비난이 일었다. 해외연수 중 성매매 의혹을 산 일부 충주시의원들은 경찰의 무혐의 내사종결로 사법부로부터 면죄부를 받았지만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물론 언론에 공개된 이후 주민들의 사퇴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제천시의회 역시 성추문 논란이 빚어졌다. 제천시의회의 한 의원은 모 동사무소 건강관리실에 여성과 함께 있다가 출동한 방범업체 직원과 경찰에 적발돼 망신을 샀고, 차기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지방의회의 비리와 추문은 접대문화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지방의회에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허울만 해외연수인 관광행위가 최근 충북도의회에서 일어났다. 충북도의회 건설문화위원회 소속 의원 4명은 지난 1월에 필리핀으로 해외 골프여행을 다녀왔다. 그러나 여행 시점이 의장선거를 앞둔 데다 의장 보궐선거 출마 후보를 지지하는 의원과 후반기 의장 출마 의사를 밝힌 의원이 포함돼 보궐선거 또는 후반기 의장선거와 관련한 접대성이 아니냐는 논란을 빚었다. 또한 괴산군의회의 한 의원은 5?31지방선거 출마 전 주간지 기자에게 자신의 홍보기사를 써달라는 대가로 금품을 제공했다가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서울시의회 의장은 동료 의원들을 돈으로 매수해 당선됐으나 구속된 신세고, 부산시의회도 의장단 선거를 두고 돈 봉투가 오갔다고 해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대전시의회도 의장단 부정선거를 이유로 의장 선거 무효 소송을 제기하며 갈등을 겪고 있다. 인천시 남구의회는‘의장단 전원 사퇴’를 요구하는 구의원들의 농성으로 후반기 첫 정례회가 본회의 한 번 열지 못한 채 폐회됐다. 구의원 8명은“상임위원장 및 간사 선출과정에서 운영규칙을 무시하고 날치기로 하면서 나눠먹기식의 독선적 의회 운영이 이뤄지고 있다”며 의장실을 점거, 폐회 때까지 농성을 이어갔다. 이 같은 파행이 계속됨에 따라 저소득층 국민건강보험료 지원조례 개정안, 영유아 보육조례 개정안 등 민생 관련 조례안은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일부 지방의회가 의장선거 후유증으로 의회를 열지 못하거나 상임위원장을 뽑지 못해 각종 민생 현안들을 처리하지 못하는 등 파행 운영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시의장 구속, 소속 의원 30여명 수사 대상
지방의원들 겸직 제한 필요
또한 서울시의회는 상임위원회 관련 조례를 어긴 불법행위가 적발돼 또 다른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서울시 의원 가운데 7명이 자신의 직업과 관련이 있는 상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는 상임위원회 관련 조례를 어긴 불법행위로‘서울시 의회 교섭단체 및 위원회 구성?운영 조례’7조를 보면,“의원은 자기 직업과 관련된 상임위원회의 위원이 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서울시의회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상임위원회별로 보건복지에 3명, 건설에 2명, 도시관리에 1명, 교통에 1명 등이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상임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본인 외에도 가까운 친족이 상임위원회 관련 직업을 가진 경우도 있다. 서울시의회의 한 내부인사는“교육문화위원회의 한 의원이 부인은 서울 동부지역에 큰 학원을 경영하고 있고, 교통위원회의 한 의원의 아들은 버스 광고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의 제정과 개정의 권한을 가진 시 의원들이 자신의 직무와 관련된 사적 활동을 할 경우 이해충돌이 생기고 부패의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이를 법적으로 제지하는 것인데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예 법적으로 지방의회 의원들의 겸직을 허용한다는 데에 있다. 현재 지방지치법에는 공무원이나 교사, 공공기관과 공기업 및 농축수협의 임직원이 아니라면 다른 어떤 직업도 지방의원을 하면서 동시에 주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일부 직종만 예외적으로 금지하고 원칙적으로는 겸직을 허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절반이 넘는 의원들이 의회에서 의정비도 받으면서 자기 일을 해 수입을 이중으로 챙기고 있는 현실이다. 지방의회가 유급제로 바뀐 지금 이와 같은 법 조항은 지방의회의 투명성을 저하시킨다는 지적이다. 지자체 정책에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부동산 업자를 비롯한 건축, 유흥업소, 재개발?건축조합장 등이 지방의원으로 활동할 경우 권력을 이용해 이권에 개입하는 등 편법을 이용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의회 의원들 실적도 없어
최근 서울시의회의 초라한 성적표가 공개되었다. 전체 의원 중 22.5%인 23명이 2년이 넘도록 조례안 발의, 청원 소개, 결의안 발의, 5분 발언, 시정질문을 단 한 건도 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지난 달 6일‘주민소환추진국민모임’에 따르면 2006년 7월부터 올 6월 27일까지 평가 기간을 가졌고, 지난 6월 재보궐선거에서 당선해 새로 임기를 시작한 의원 4명은 평가 대상에서 제외됐다. 발표에 의하면 조례안 발의 등의 실적이 1건인 의원은 13명, 2건인 의원은 18명으로 1~2회 정도의 미미한 의정활동을 한 의원도 31명에 달해 절반이 넘는 의원들이 사실상‘놀면서 월급을 받은’꼴이 됐다. 서울시의회 의원들의 연봉은 7천만원에 달한다고 봤을 때 32억원이 넘는 돈이 무노동의 대가로 지불된 셈이다. 조례안, 청원, 결의안, 5분 발언, 시정질문을 합쳐 10건 이상의 발의나 발언을 한 의원은 한나라당 소속 남재경, 천한홍, 양창호, 최병환 의원과 민주노동당 이수정 의원 등 5명에 불과했다. 구속된 김귀환 서울시의장 역시 조례안 발의 등 활동 실적이 전혀 없었고, 김 의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의원 30명 중 8명이 단 한 차례도 조례를 발의하거나 시정질문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례안 내용도 부실해 시의원들이 발의한 총 80건의 조례안 중 42건(52.5%)만이 가결되고 나머지는 처리되지 않거나 폐기됐다. 이에 대해 진보신당은 논평을 통해“어떤 내용의 조례들을 만들고 통과시켰으며, 어떻게 서울시행정부의 행정을 견제했는지를 따져보는 질적 평가가 전무하다”며“무엇보다 지방의회의 의정활동을 평가할 수 있는 제도적인 방법- 이를테면 의정감시단의 제도화, 의회 윤리위원회의 민간참여 보장, 의회활동보고서 발행 의무화 등-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민모임 관계자는“서울시민의 의사를 대변해 서울시정을 감시?견제해야 하는 의원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지방의회 엄격한 관리 시급
지난달 12일 행정안전부는 지방의원 의정비에 대한 기준액을 제시한 지방자치법시행령 개정안을 확정해 입법예고했다. 지방의회의 고질적 부조리를 개선하기 위한 개선책을 마련한 것이다. 지방별로 적정 의정비 산출과 가이드라인 제시를 중앙정부가 관할하며, 지방의원의 겸직 금지 대상을 확대하고 영리행위 제한을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개정 내용에 따라 전국 246개 지방의회 가운데 80%가 넘는 198개 지방의회가 내년도 지방의원 의정비를 대폭 삭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행안부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력과 지방의원 1인당 주민수 등을 반영해 지방의회별 기준액을 산출한 결과, 광역의회 12곳과 기초의회 186곳 등 전체의 80.5%인 198곳이 기준액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행안부 관계자는“내년도 의정비부터 기준액을 토대로 ±10% 범위 내에서 의정비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방자치의 그 본래적 가치인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민주성 개념을 기본으로 의정활동의 효율성을 증대할 수 있는 능률성을 갖추고 지역 주민을 위한 부가적 가치를 모색해 나가는 지방의회의 개혁이 강력하게 요구된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