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미술인이 본 영화 ‘건국전쟁’

2024-02-27     뉴스피플

우리는 아직도 흑백논리로 편 가르기를 

[사진=컬럼니스트 겸 한중미술협회 차홍규 회장]

[컬럼니스트=차홍규 한중미술협회장] 스스로 문화인이라고 자처하면서 직접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관람 한 것이 아마도 20여년은 훌쩍 넘은 것 같으니 어찌 문화인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모순덩어리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이번 영화 관람도 자의에 의하여 간 것이 아니라 주위의 권유와 강압에 의하여 소 끌려가듯 코엑스 몰 극장에 가서 남이 구입해 놓은 표를 가지고 반강제적으로 자리에 앉았다. 첫 느낌은 오랜만에 몸이 한가해지니 (잠이 올까봐) 영화의 1/2은 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속에 자리에 앉았다.

영화의 시작을 보니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그야말로 최소의 예산으로 만든 다큐영화로 좋은 시나리오를 가지고 많은 돈을 투자하여 일류 배우를 출연시키며 픽션이라고 하면서도 치밀하게 의도된 결론을 관객들에게 간접적으로 주입시키는-소위 재미있다고 말하는 흥행 영화와는 비교가 안 되니 언제쯤 잠이 오나 스스로 자문하며 화면을 보았다.

필자가 영화 평론가는 아니니 영화의 어느 한 장면을 가지고 왈가왈부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리란 생각이 든다. 해방 전후의 조국, 6.25전쟁, 4.19 혁명, 그리고 이승만 전 대통령의 출국과 사망 후 귀국 등을 자료에 근거하여 여러 사람들이 한사람의 생애와 조국의 운명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이 영화의 주된 스토리로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끝까지 보게 되었다.

[사진=작품명 절합 , 절단된 우리 사회가 상생하여 한마음으로 합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린작품]

나라의 힘이 별 볼일 없으니 힘이 강한 일제에 대항하여 싸움은커녕 목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도 못하고 쥐죽은 듯 정복당했고, 해방조차도 우리의 노력과는 관계없이 더 힘이 강한 나라들에 의하여 타의에 의하여 선물을 받았으며, 해방된 우리의 땅도 역시 강대국들의 편의에 의하여 남북으로 찢어져버린 안타까운 현실로,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못 살고 별 볼일 없는 조그만 나라였던 우리 대한민국.

필자는 6.25전쟁 직후 태어난 전 후 세대로 전쟁 후 폐허인 나라에서 한편으론 공부를 하고 한편으론 생활인으로 어렵게 학업을 마쳤고, 유신의 군대 제대 3일 만에 조국부흥이라는 기치아래 수출을 위하여 나라의 기능공들이 필요한 시기이기에 그럴듯한 구호인 ‘조국근대화의 기수’를 양성하기 위한 기능인 양성소인 직업훈련원 교사를 거쳐 우리 나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다른 나라인 중국에서 교수로서 정년을 하였다.

학생시절 당시 정부에서는 북한이 못 산다고 교육을 하였지만, 필자가 고등학교 때까지도 우리보다는 북한이 엄연히 잘사는 나라였으며, 돈 없는 사람은 매혈(買血)조차도 마다하지 않았고, 필자가 어릴 때는 유엔군으로 참여하여 우리를 도와주었던 미군 부대는 물론 지금이야 우리보다 한참 못 사는 나라들이지만 다른 여러 나라 부대 주변에 가서 ‘기브미 초코렛’을 외치며 구걸도 솔선하여 하였던 시기였다.

어린 시절 필리핀은 그야 말로 꿈의 나라이었다. 당시에 아시아에서 유명하였던 막사이사이상(Ramon Magsaysay Award)은 필리핀의 전 대통령 라몬 막사이사이를 기리기 위해 1957년  제정된 국제적인 상으로 ‘아시아의 노벨상’으로도 불렸듯이 필리핀은 일본에 이어 아시아 제 2위 부국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라면 색안경을 쓰고 보던 시절이 있었다. 못 살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실행하였던 새마을 운동이나 고속도로 건설 및 세계적으로 잘 갖춰진 우리의 의료보험 제도는 분명 사회주의 사상에 가까운 것 아닌가 한다. 돈 많고 잘사는 어느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을의 주민이나 국민이 잘 살자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인가? 그렇다고 인정하기에는 여러 의문이 많다. 사회주의는 사유 재산 제도를 폐지하고 생산 수단을 사회화하여 자본주의 제도의 사회적, 경제적 모순을 극복하여 궁극적으로 전 국민이 다 같이 잘 살자는 제도이나, 어느 한 가문이 3대에 걸쳐 80년 동안이나 주민을 다스려 국민의 대다수가 부적절한 환경 속에서 생활을 하고 있고, 그 어려움을 벗어나려고 탈북민들이 줄을 잇는데 어찌 사회주의 국가라 할 수가 있겠는가?

[사진=작품명, 탄생. 우리 사회가 한마음으로 뭉쳐 새롭게 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각한 작품]

그렇다면 우리사회는 어떤가? 정치인도 아닌 범인(凡人)들까지 보수와 진보를 가지고 왈가왈부를 한다. 도대체 보수는 무엇이고 진보는 무엇인가? 보수는 급격한 변화를 피하고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사상이나 태도이고, 진보는 현재까지 일반적 가치로 인정되어 오던 전통적 가치나 정책, 체제 등에 반박하며 그 틀 자체를 허물고 새로운 가치나 정책의 창조를 주장하는 사상 또는 태도를 말한다. 좋은 것은 계속 발전시켜야 하고 나쁜 것은 고쳐야 하듯 어느 한 편이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혼용될 수도 있다. 예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도한 5.16도 진보였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화를 향한 행동 역시 진보라 할 수 있고, 두 분이 대통령이 된 후 나라를 위하여 안정되게 국정을 수행 한 것은 많은 부분이 보수일 것이다.

그야말로 세계적으로 못 살았던 대한민국. 그나마 북한은 일제의 논리에 의하여 공업이 발전하여 전력 사정도 좋았고, 흥남비료 등 공장설비도 남한에 비하여 많았고 더욱 천연자원도 풍부하였다. 형편이 안 좋았던 대한민국도 그 어려운 여건에서 싸구려 봉제 제품도 팔고, 여성들의 머리카락도 팔면서 노동집약산업을 거쳐 지금은 수출 10대 강대국으로 우뚝 섰고,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해외에 나가면 선진국 국민 대접을 받는 위치에 서 있다.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답답함은 그리도 외세에 의하여 갈가리 찢겨지고 망신창이가 된 우리나라가 이제는 전 국민이 노력하여 살만하여 졌는데도 아직도 이념전쟁에 휘말려 갈등 속에 휩싸이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갈등은 우리가 못 살고 힘이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지금도 그 반쪽자리 조그만 나라 안에서 동서갈등, 이념갈등, 세대갈등 빈부갈등에 휩싸이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 같은 중도주의자들은 자기편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흑백논리에 비탕을 둔’ 편 가르기 요구 속에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니 (소속이 불분명하여 자기편이 아니니) 양쪽 모두로 부터 외면당하며 박쥐, 키메라, 기회주의자 등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오죽하면 전공하고 있는 미술도 장르를 쓰라고 하면 이쪽저쪽(회화, 조각, 서예, 공예, 설치미술 등 어느 특정된 한 분야가 아니니)도 아니니 차마 짬뽕작가라고는 말할 수가 없어 하이브리드작가라고 밝히곤 한다.  

필자가 현재 전시 중인 빛고을 광주의 ‘전남대학교 박물관 기획초대전’에 출품한 작품의 제목은 평면작품이 절합(節合/articulation)이고, 입체작품이 탄생(誕生/geniture)이다. 평면 작품을 보면 구성된 알갱이들이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전부 달라 보기에는 각자 주장을 하는 것 같지만(합창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지만) 상호간에 조화가 이루어져서 상생(相生)을 이루는 것이고, 탄생은 이렇게 상생이 이루어져 우리나라가 새롭게 탄생하였으면 하는 마음을 작품으로 표현하여 본 것이다.

대륙문화와 해양문화의 사이에 끼여 있어 이쪽에서도 공격을 당할 수 있고, 저쪽에서도 침략을 당할 수 있는 조그만 반도 국가인 우리나라. 급변하는 강대국들의 논리와 세계 질서 속에서 과연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어떠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오늘도 아침뉴스에는 정치권들의 자기주장 목소리와 상대진영의 반대 목소리가 난무하고, 의대 입학생 정원문제로 사회는 뒤숭숭하기만 하다. 

선거철이 되니 국민을 생각한다고 하고, 애국을 부르짖고, 자신만이 적임자라고들 한다. 정치인들이야 수권(受權)이 목적이라지만 필부(匹夫)들까지 덩달아 목소리를 내고 있다. 목소리 내지 않고 가만히 있는 필자는 오늘도 기회주의자로 처신을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