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새로운 역사를 다시 쓸까?

태국 사태로 바라본 태국의 정치와 입헌군주제의 이면

2008-12-29     김희준 기자
정치 지도자들의 무능과 부정부패로 최근 큰 홍역을 치르고 있는 태국. 이제 태국도 진정한 민주화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지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탁신에 이어 사막, 솜차이 총리로 이어지는 이른바 '탁신 세력'은 최근 반대파의 거센 시위에 밀려 수도 방콕에 들어서지도 못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부정부패에 찌든 탁신 세력이 퇴진하고 새로운 태국이 들어서는 것은 누가 봐도 맞는 얘기지만, 이 태국사태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세력 싸움이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이 싸움의 뒷면에는 '국왕'이라고 하는, 태국에서는 감히 바라보기도 어려운 거대한 존재가 자리하고 있다. 태국의 사태를 가만히 짚어보면 우리나라의 민주 항쟁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과거 우리나라도 80년대의 아픈 과거를 딛고 진정한 민주화를 이루었기에 태국의 현 사태는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 하지만 태국은 현재 부정부패를 참지 못한 국민들의 분노로 인해 망가져 가는 것이 아니다. 새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낡은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태국은 본래 절대군주제를 고수하던 나라였으나 지난 1932년 청년 장교 및 관료를 중심으로 한 민주개혁 쿠데타를 계기로 입헌군주제로 바뀐 후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같은 입헌군주제 국가이지만 국왕은 거의 상징적으로만 존재하고 있는 영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태국의 국왕은 의회, 행정부, 사법부를 통해 각각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태국 군의 최고 통수권자이자 내각 및 18명 이내의 추밀원 위원, 각급 판사, 헌법재판소 재판관, 반부패위원회 위원 등을 임명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내각은 총리 1명과 35명 이하의 각료로 구성돼 있고 이들은 모두 국왕이 임명하고 있으며 총리의 임기는 4년이다. 총리는 헌법상 국왕이 임명하고 국회의장이 부서하며 하원의원만이 총리에 임명될 수 있는데, 총선 후 하원 첫 소집 30일 이내에 하원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선출된 총리 지명자를 국회의장이 국왕에게 임명을 제청하는 방식으로 선출된다. 입헌군주제이긴 하지만 국왕의 권한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막강하다. 특히 태국인들의 왕실에 대한 자부심과 존경은 남다르다. 태국인들의 절대 다수가 신봉하는 종교는 불교인데, 불교에 관한 행사를 왕실이 주로 관장하고 있다. 종교적 권위까지 가미된 정치적 권위가 바로 왕실에 있는 것. 또한 현재 푸미폰 국왕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은 각 종교의 '신'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그간 독립을 지킨 외교적 수완, 개인적 스캔들이 없는 청렴한 삶 등은 그의 카리스마를 더욱 높이는 요소가 되고 있다. 한편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쿠데타, 독재, 부패 등을 이유로 군부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평가하고 있지만, 태국에서의 군부는 그간 어지러운 정국 속에서 태국의 독립과 왕실을 수호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그만큼 군부의 입지 또한 탄탄한 편이다.

현 태국 사태는 이미 3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3년 전만 하더라도 태국 정치가 이처럼 혼란에 빠질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뿐더러 당시 탁신 총리 역시 절대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미국과의 FTA를 성공적으로 체결하는 등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실시하면서도 태국 내의 각종 복지정책을 의욕적으로 확대했고 이러한 복지정책의 수혜자였던 농민, 노동자, 빈민들은 탁신을 절대적으로 지지했고, 반대 세력은 이러한 정치를 포퓰리즘, 금권 정치라며 비난하기도 했지만 유권자들은 선거에서 탁신과 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 2005년 탁신을 총리로 선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불과 3년 만에 탁신은 총리는 물론 자기 나라에도 맘 놓고 드나들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간 탁신은 민주주의와 빈민층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보여왔지만 지난 2004년 남부 무슬림 분쟁을 강경 진압하여 80여 명을 사살한 이력을 갖고 있고 이 사건은 한동안 남부 지역에 반 탁신 정서를 고조시키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탁신이 정치적 위기의 벼랑으로 내몰린 것은 잇따른 부정부패 스캔들이었다. 탁신은 총리 임기동안 권력을 이용하여 엄청난 재산을 축적한 것이 드러났고 그간 그를 지지해왔던 농민, 노동자, 빈민층은 심한 배신감과 함께 2006년부터 반 탁신 시위가 시작됐으며, 2006년 10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기에 이르렀다. 당시 외국 순방 중이었던 탁신 총리는 영국으로 망명했고 곧 군부 정권이 수립됐다. 이때 푸미콘 국왕은 쿠데타를 사실상 묵인했으며 정치에 큰 권한을 가지고 있던 국왕이 묵인하자 군부 정권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하지만 군부 정권은 그간 탁신이 추진했던 각종 복지 정책을 모두 없애버렸고 이는 농민 및 노동자들의 불만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결국 총선은 다시 열리게 되었고 탁신의 세력은 다시 승리했다. 탁신은 다시 태국으로 귀환했고 탁신의 측근인 사막 순다라벳 총리가 집권에 성공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간 탁신의 세력에 반대하던 PDA(탁신의 부패 스캔들, 족벌 정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등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그 시위를 주도하는 세력. 자유 민주주의 연합이라는 가명을 쓰고 국왕의 힘을 빌어 탄생한 단체로 실제 서민과는 가깝지 않은 또 다른 기득권층이다)와 왕정주의자들의 반대는 더욱 거세졌다. 그 와중에 사막 총리는 TV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해 개인적 이윤을 획득했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받아 퇴진하는 일이 벌어졌고 사막 총리의 뒤를 이어 역시 탁신의 세력 중 한명인 솜차이가 총리 자리에 올랐다.

왜곡된 태국 사태에 대한 시선
우리나라 및 해외에서 보는 태국에 대한 시선은 약간 왜곡돼 있다. 그간 탁신 총리의 부정부패에 치를 떤 시민들이 탁신 총리를 밀어냈고 그 끄나풀인 사막 총리와 솜차이 총리까지 밀어내기 위해 시민들이 용감하게 민주화 항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탁신이 비록 부정부패에 얼룩지긴 했지만 태국이란 나라에 유래 없이 서민을 위한 정책을 아낌없이 진행했던 사람이다. 대부분의 태국 시민들은 탁신의 그러한 정책에 큰 이득을 봤기 때문에 아직도 탁신의 지도력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많다. 현재 탁신을 밀어내기 위한 세력은 그의 지지도가 너무 올라가자 자유민주주의 연합 즉, PDA이라는 이름하에 탁신의 세력을 과감히 뒤집으려고 하는 형태라고 보는 것이 맞다. PDA는 무력으로 진압하기 어렵다. 그들 뒤에는 바로 국왕이 자리 잡고 있으며 태국에서 국왕은 '신'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재투표를 하는 것도 꺼리고 있다. 투표하면 또다시 탁신 세력이 뽑힐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왕은 왜 PDA의 뒤에서 그들의 뒤를 봐주는 것일까? 탁신이 총리 자리에 오르기 전만 해도 국왕은 그야말로 태국의 신이었다. 하지만 탁신이 민주주의의 표상인 '투표'로 당선되고 나서부터 국왕의 입지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탁신 전 총리는 수많은 개혁 중 특히 서민들을 위한 개혁으로 대중의 엄청난 지지를 받았고 그의 파워는 점점 커지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국왕과 그의 추종자들은 그를 시기하면서 자꾸 그의 문제를 들추기 시작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결국 착신은 부정부패로 퇴임당하게 되고 새로운 투표로 사막 총리가 당선됐다. 하지만 사막 총리 역시 탁신의 세력 중 한명이었기에 서민들에 대한 탁신의 신뢰가 굳건하다는 것을 다시 보여준 계기가 되었고 PDA의 반대시위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게 되었다.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는 태국 사태
PDA가 바라는 것은 탁신 세력이 완전히 물러나는 것과 군부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태국 군부 역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쿠데타를 일으켜 새롭게 정부가 탄생한다고 생각했을 때, 새로운 총리를 선출하기 위한 투표는 불가피하다. 이때 탁신의 세력 중 한 사람이 다시 총리에 오를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탁신 세력을 뿌리 뽑으려는 것이 주목적인 PDA의 쿠데타에 대한 명분이 없는 셈. 또한 현 솜차이 총리 역시 군부의 지원으로 PDA를 해산하는 것은 큰 무리가 있다. 그들의 뒤에는 국왕이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쉽게 해산시키지도 못하는 입장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태국에서 국왕의 존대는 아직도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태국은 아직도 각 도시 거리마다 국왕의 사진이 걸려있고 극장에서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도 국왕에게 묵념하고 영화를 관람할 정도로 그의 파워는 그야말로 막강하다. 이러한 국왕이 뒤에서 버티고 있는 PDA를 진압하는 것, 이것은 국왕을 반역하는 그야말로 대역죄인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현재 태국 상황은 조금은 진정됐다고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탁신 세력은 부정부패에 얼룩졌지만 여전히 서민들의 지지가 높고 아직도 서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게다가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인 투표로 당선된 세력이기에, PDA는 여전히 탁신 세력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그간 계속 시위로 일관해 왔던 것이다. 또한 탁신 세력이 부정부패를 통해 엄청나게 재산을 불렸다고는 하지만, 태국 국왕의 재산은 과연 탁신보다 적어서 그들을 시기하고 반대하는 것일까? 언론은 연일 탁신 세력의 부정부패와 이면을 보도해 왔지만, 어느 보도가 정말 믿을만한지 태국 시민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현재 태국은 탁신의 세력과 PDA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대립 때문에 관광객들은 발이 묶이고 국내 관광객들도 일부 발이 묶이거나 귀국이 늦어지는 소동을 겪어야 했다. 일단 태국 국민들은 탁신의 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서민들이 뭉치고 일어나 PDA를 거부할 순 없다. 왕을 거스른다는 생각에 서민들도 쉽게 탁신의 편에 서지 못하고 있는 것. 이번 태국 사태가 과연 진정한 민주주의로 들어서는 길인지, 아니면 자기 집단의 권력과 안위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또 하나의 치욕스런 사건이 될지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