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형 연쇄살인범’, 우리사회가 만들어낸 잿빛 그림자
급격한 사회변화가 낳은 연쇄살인마, 강호순
2009-03-02 이나라 기자
특히, 이번 연쇄살인사건으로 시민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하면서 누구나 살인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걱정과 위기의식이 확산됐다. 회식 등은 최대한 자제하고 귀가 시간을 앞당기며 신변을 보호하려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아내를 위해 귀갓길 에스코트를 자처하는 남편들까지 등장하는 등, 밤거리 풍속도도 크게 바뀌고 있다. 한 이동통신업체에 따르면, 위치추적서비스 신규 가입건수는 지난해 10월 9천여 건이던 것이 강호순 사건이 발생한 12월에는 2만 5천 건, 지난달에는 1만 7천 건으로 늘어났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경보기, 스프레이, 3단봉, 전기충격기 같은 호신용품이 지난달 들어서만 40% 이상 판매가 증가하는 등, 범죄 예방 호신용품은 이제 여성들의 필수품이 됐다. 이와 함께 도로변 가로등과 골목길 보안등, CCTV 추가 설치 민원이 쇄도해 시도, 구군청 등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강호순 사건 이후 한바탕 몸살을 치르고 있다. 한편, 사이코패스 열풍으로 인해 평소 거의 팔리지 않던 사이코패스 관련 서적이 하루에 수백 권씩 팔려나가고, 온라인상에서는 네티즌들 사이에 사이코패스를 확인하는 테스트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강호순의 인권을 옹호하는 취지하에 개설된 강호순 팬카페는 개설 4일 만에 사이트 방문자가 5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점차 논란이 확대되자 폭주하는 비난 속에 카페는 결국 폐쇄되었지만 우리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과 혼란을 야기 시켰다.
급격한 사회변화가 강호순 같은 살인마를 키웠다
미국에서는 연간 대략 35명의 연쇄살인범에 의한 피해자가 5천여 명에 이른다. 미국 내 살인사건의 3분의 1 정도가 연쇄살인에 해당한다는 연구도 있다. 통계적인 분석을 보면 연쇄살인범 중 84%가 남성이며, 처음 살인을 할 때의 평균 나이는 27.5세였다. 범행 동기는 거의가 힘과 통제에 집중됐다. 피해자가 비명을 지르고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무릎 꿇고 간절히 애원해도 연민의 정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즐기고 우월감을 과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엽기적 살인사건은 종종 있어왔다. 1970년대에는 모두 17명을 살해한 김대두 사건, 1980년대에는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으며, 1990년대에는 부유층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지존파 등 폭력조직에 의한 다수 살인사건이 이어졌다. 이들은‘부자를 저주한다’는 강령을 만들기도 했다. 온보현, 막가파 사건도 이 시기에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사회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품고 살인하는 경우가 늘어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 정남규가 그 주인공이다.
‘급격한 사회변화가 강호순 같은 살인마를 키웠다.’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을 바라보는 범죄사회학 분야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우리 사회가 급속히 발전하는 과정에서 강호순과 같은 비인간적인 흉악범들이 방치됐다는 것이다. 즉, 자본을 중시하는 물질 중심 사회로의 빠른 변화가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인간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설명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너무 갑작스럽게 경제성장이 이뤄지다보니 전통적인 가치가 묵살되고 물질만 숭상하는 자기중심적인 사회가 됐다”며, “자신의 성공이나 목표를 위해 남을 제거할 수밖에 없는 사회 분위기가 결국 흉악범죄를 좌시한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일어났다. 당시 한국은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하며 선진국 대열로 들어서려고 노력했다. 연쇄살인 연구가 가장 진전된 미국의 경우를 보면, 미국 영화‘조디악’의 소재가 됐던 실제 연쇄살인이 일어난 시기 역시 미국 산업이 급속한 성장을 보인 1960년대 후반이다. 미국판 강호순이라 할 수 있는 미남형 사이코패스 테드 번디가 등장한 것은 그 직후인 1970년대다. 이 같은 연쇄살인사건은 급속한 경제성장이 이뤄지는 시기에 나타났다는 이유로‘선진국형 범죄’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이번 강호순과 같은 사이코패스가 저지른 연쇄살인사건은 과거 김대두, 지존파, 막가파 사건과 같은 다중살인 혹은 연소살인사건과 구분된다. 이웅혁 경찰대 교수는“이번 강호순 사건은 5년 전 유영철 사건과 같은 전형적인 선진국형 범죄”라며,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막연한 증오심을 품고 무차별적으로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강호순이 쉽게 점거될 수 없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민수홍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한국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가정을 통해 사회화과정을 거쳤다”며,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가정의 역할이 축소되고, 자연스럽게 사회화작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강호순 같은 살인마가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가정의 역할이 점차 줄어들면서 지역사회 역시 와해됐고, 예로부터 중시해오던 가치와 규범들의 의미가 많이 퇴색됐다”며, “결국 가정과 사회 모두 사람들에게 올바른 도덕적 가치관을 정립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근 연쇄살인범죄자들의 나이가 특정 연령대로 수렴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유영철과 강호순은 1970년생이고, 정남규는 1969년생으로 동년배다. ‘연쇄살인 프로파일링’에 관한 범죄학 교과서를 펴낸 적이 있는 염건령 중앙경찰학교 교수는 우리사회에서 30대 말~40대 초반에 연쇄살인범죄자가 집중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통상 20대 남성의 경우 연쇄강간범죄는 있지만 살인은 잘 안 한다. 또한, 50대가 넘어가면 대학을 졸업했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비교적 다 평등해진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30, 40대 남성은 평등하지 않고 경쟁의 압박을 심하게 받는 시기를 겪는다. 부인의 지위나 자녀교육에서도 비교를 당하는 입장이다. 이런 긴장 또는 스트레스 요인을 고려하면 하나의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쾌락형 연쇄살인범’의 등장, 잇따를 수 있는 연쇄살인의 경고
그렇다면 강호순은 왜 범행을 저질렀을까. 전문가들은‘왜곡된 성 욕구로 인한 습관적 강간’을 이유로 지목한다. 성을 지배나 통제의 방편으로 생각하는 강호순이 여성을 성적으로 제압할 때 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범행이 용이한 여성을 대상으로 강간과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범죄심리학자나 프로파일러들은 한결같이“강호순이 유영철, 정남규 같은 연쇄살인범보다 더 세다”고 말한다.
8명의 부녀자를 납치해 무참히 살해한 연쇄살인범 강호순. 그는 검거되기 전까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사람이었다. 호감 가는 얼굴에 돈도 있었다. 범행당일 CCTV에서 그는 에쿠스 차량에 앉아 번듯한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듯 멀쩡해 보이는 생김새와는 달리 그는 누구보다 잔인하고 치밀했으며, 수사관과 심리전까지 벌일 정도로 논리적인 살인마였다. 먹고 살만 하면서 성적 쾌락만을 위해 여성을 잇달아 살해한 강호순을 전문가들은‘쾌락형 연쇄살인범’이라는 새로운 유형으로 분류했다. 그간의 연쇄살인범들은‘사회가 나를 버렸다’는 분노에서 비롯된‘분노형 연쇄살인’이었으나, 강호순은 개인적인 욕구를 위해 치밀하게 살인, 은폐하는 이른바‘쾌락형 연쇄살인범’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1970년대 미국에 쾌락적 연쇄살인이 등장한 직후 연쇄살인의 광풍이 불었다”며, “우리 사회에 살인사건이 잇따를 수 있다는 경고”라고 강호순 사건을 해석했다.
한편, 지난 2006년 독일월드컵 열기에 묻혀 주목받지 못했던 회사원 김모씨의 연쇄살인사건이 바로 이 같은 쾌락형 연쇄살인의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을 나와 번듯한 직장에 다니던 그는 아무 이유 없이 3명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범죄심리학에서는 이들을‘양복 입은 뱀’으로 부른다. 평범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도 있었다는 김씨. 그는 사회적인 분노도 없었고, 어려웠던 어린 시절도 없었다. 그러나 김씨는 밤늦게 귀가하는 여성들을 자신의 차량으로 납치하기 시작했고, 피해여성을 차에 태운 뒤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했다. 이는 범죄를 저지른 수법이 강호순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씨는 말과 논리가 뛰어났으며, 과학적 근거를 갔다 대기 전에는 자백도 하지 않았다. 반성이나 후회, 자책감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강호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면에서 강호순은 미국의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와 닮아있다. 지난 1989년 전기의자에서 사형당한 테드 번디는 1970년대 미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연쇄살인범으로, 준수한 외모를 갖춘 시애틀대 법대생이었다. 흔히 연쇄살인범은 못생기고 돈도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테드 번디는 준수한 용모와 지적인 언어 구사, 신사 같은 매너를 무기로 30여명의 여성을 농락한 뒤 살해했다. 강호순 또한 호감형 외모와 언변으로 피해자들의 경계심을 허물어뜨려 성폭행과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표창원 경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피해자들에게서 폭력이나 납치의 흔적이 없는 것을 보면 그렇다”면서, “강호순처럼 오직 쾌락과 탐욕을 충족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유형이 테드 번디형”이라고 말했다. 이상현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사람 유형에는 내배엽형, 중배엽형, 외배엽형이 있다”며, “예전에는 우락부락하고 공격적인 중배엽형이 살인을 저질렀다면, 최근엔 호리호리하고 호감형 외모인 외배엽형이 연쇄살인범으로 많이 잡힌다”고 말했다.
한편, 강호순의 범행은 전형적인 연쇄살인범이나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인 사이코패스와 유사한 점이 많다. 사이코패시(Psychopathy)는 정신병의 일종으로 반사회적 인경장애 중의 하나다. 원인은 뇌의 전두엽의 이상이 오는 것 때문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사이코패스(Psychopath)라 부른다. 이 같은 사이코패스는 단순히 미친‘사이코’와는 다르다.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해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살인과 같은 범죄를 저지를 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병자와 사이코패스에 대한 법적 제재도 다르다. 범행 당시 정신이 정상이 아니었다고 판단되면 정신과 치료 병행을 전제로 비교적 가벼운 형량이 내려지는 반면, 자신이 저지르는 것이 범죄인 것을 알고도 범죄를 저지른 사이코패스에 대한 형은 무겁다. 사이코패스는 상대의 고통이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한다. 사이코패스는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 사진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설명이 영화나 드라마에도 종종 등장한다. 사이코패스는 지능적이라 한 번의 살인으로는 체포되지 않는다. 여러 차례의 살인, 즉 연쇄살인을 하고 나서야 덜미가 붙잡힌다. 모든 연쇄살인범이 사이코패스는 아니지만 사이코패스는 대부분 연쇄살인범이다.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등이 사이코패스로 분류된다. 특히, 강호순은 면담한 경기경찰청 과학수사계 범죄분석팀 프로파일러들은 강호순의 성격을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규정했다. 생리학적으로도 사이코패스는 냉혈한으로, 동물이 죽는 끔찍한 사진을 보여줘도 동공이 커지지 않거나 롤러코스터를 타도 심장 박동이 빨라지지 않는 등, 통상적인 공포 반응이 나타나지 않거나 적게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강호순은 수사 도중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 채 뻔뻔함으로 일관하면서 수시로 웃음을 터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경찰청의 과학수사계 범죄분석관 공은경씨는“표정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았는데, 피의자를 면담하러 다니면서 그렇게 많이 웃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또, 경찰에 의하면 강호순은“내가 저지른 범행을 책으로 출판해 아이들이 인세라도 받도록 하고 싶다”, “한번 놔줘 봐요, 다음엔 안 잡힙니다”, “사람을 죽이고 나서 바로 애인을 만날 수 있지 않냐”는 등, 엽기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표창원 교수는“강호순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등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그런 성향이 지속적이고 고질적으로 나타나느냐는 좀 더 전문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단서를 붙였다. 한편, 전문가들은 연쇄살인 같은 흉악범죄를 막기 위해 정부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범죄심리학회 회장인 장석헌 순천향대 교수는“연쇄살인범들은 반경 10km 이내 지역에서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며, “실종사건이 연이어 접수된다면 경찰이 인근 지역 경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쇄살인사건=사이코패스 성향자의 소행’식 도식 남발은 위험
사이코패스 분야의 개척자인 정신과의사 허비 클렉클리는 1941년‘멀쩡한 가면’을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 클렉클리는 사이코패스 연구의 고전이 된 이 책에서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세밀하게 잡아냈다. 사이코패스는 겉보기로는 멀쩡할 뿐 아니라 매력적인 사람으로 비치기까지 한다. 희생자들이 깜박 속아 넘어가는 이유다. 보통의 정신병자는 불안감과 초조함을 곧잘 드러내고 환각이나 비합리적 생각에 사로잡히곤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불안, 초조함 없이 자신을 합리적으로 잘 통제한다. 게다가 상당한 지적능력도 갖고 있어 전문분야에서 성공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래서 능력 있고 친절한 인간으로 주변의 호감을 사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우월감과 오만함에 사로잡힌 채 감정이 극도로 메말라 있다. 공격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충동적이고 책임감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다. 삶의 목표나 계획 따위도 세우지 않는다. 거짓말과 속임수에 아주 능해 무심코 대했다간 속아 넘어가기 딱 좋다. 내면 감정이 없다 보니 자신의 범죄행위도 태연하게 재연할 수 있다. 동정심이나 양심의 가책, 죄의식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한편, 이런 사이코패스의 특성은 선천적 요소와 후천적 환경이 결합해 나타난다는 게 일반적인 결론이다. 정신과 학계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성인의 약 1%가 이 같은 사이코패스 성향을 띠는 것으로 분류되며, 선천적인 요인이 강하고 여기에 불우한 가정환경 등이 더해져 극대화돼 나타난다고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혼, 이산 등으로 가족해체현상이 늘어나고 폭력이 용납되며 노력하는 과정은 무시되고‘성공 제일주의’가 확산될수록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사이코패스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다종다양한 능력을 바탕으로 희생자 사냥에 나선다. 무엇보다 상대의 약점이나 단점을 재빠르게 읽어 이용가치가 있을 경우 매력적인 태도로 접근해 신뢰를 얻는다. 첫인상이 좋기 마련인 이들은 매너와 말솜씨까지 화려하다. 카멜레온처럼 수시로 변신해 상대를 조종하는 교활함은 기본, 그러다 결정적 기회가 오면 가면을 벗고 가차 없이 본능의 이빨을 하얗게 드러내는 인간 포식자들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사이코패스의 사전에는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없다. 일이 잘못되면 다른 사람이나 환경, 운명과 같은 외부조건으로 책임을 돌리는 덮어씌우기의 달인들이다. 임기응변능력이 워낙 탁월해 믿거나 말거나 결백을 주장하는 거짓 증거는 얼마든지 태연히 들이댄다. 피해자와 피해사실이 명확히 밝혀져도 자기 잘못이라기보다 피해자 탓으로 돌려버릴 만큼 뻔뻔하다.
작년 경기대와 한림대 범죄심리 연구팀은 전과가 있는 강력범 450명을 테스트해 25%, 100여명을 사이코패스로 판정했다. 사이코패스는 재범률이 80%나 된다지만 이들을 추적, 격리하는 대책이 없다. 워낙 멀쩡해 보이니 미리 찾아내 예방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이들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능력을 키워 불행을 사전에 막는 게 현명하다. 즉, 모르면 당한다. 훌륭한 방어책은 늘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 상식에 입각해 판단하라는 얘기다. 자기감정의 자동입력장치와 약점이 무엇인지 알아두는 것도 요긴하다. 사이코패스는 상대의 약점과 부족함, 두려움을 간파해 이용하는 명수이기 때문이다. 뒤늦게 실상을 깨달았더라도 과감히 관계를 끊어야 더 이상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 한번 맺은 관계를 운명으로 여겨 계속 유지한다면 그건 제 발로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일이다. 유혹은 달콤하다. 그러나 방심한 채 미끼를 덥석 물었다간 돌이킬 수 없는 피해자가 되기 쉽다. 최악의 상황은 사이코패스의 인질인 피해자가 문제의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리며 자책하는 일이다. 따라서 육체적, 심리적 학대를 당하고 있다면 숨기지 말고 빨리 외부의 도움을 구하는 게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한편, 한 가지 경계할 것이 있다면 정황이 비슷하다며 섣불리 사이코패스 딱지를 붙이는 일. 사이코패스의 답은 정해져 있지도 않고, 설령 어떤 사람이 사이코패스라 하더라도 아주 정상적인 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조금만 이상한 사람이 있으면‘저 사람 사이코패스 아닌가’하고 단정해버리고 마는 것은 문제가 크다. 전문가들은 언론 등을 통해‘연쇄살인사건=사이코패스 성향자의 소행’식의 도식을 남발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이코패스는 아직까지 정식적으로 공인되지 않은 개념으로, 사이코패스와 관련한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따라서 연쇄살인마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사이코패스라고 단정 지어서도 안 되고, 여러 방면으로 관련 전문가들의 진단을 거쳐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 혼동하지 말자는 것이다. 사이코패스의 거짓말과 보통사람의 거짓말은 근본부터가 다르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번 강호순의 사례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주의를 환기시키는 계기다. 무엇보다 사회병리현상과 병든 인격의 합작품이라는 진단이 내려진 이번 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이러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책당국과 사회 구성원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