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대는 잠룡 정몽준, 親李계 히든카드 되나

현안마다 쓴소리, ‘광폭 행보’ 주목

2009-03-02     장정미 기자
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의 대권행보가 사실상 시작되는 느낌이다. 그는 얼마 전 한 방송 인터뷰에서 2001년 국제축구연맹(FITA) 회장 선거와 2012년 차기 대선 도전 중 선택을 묻는 질문에 대해 “둘 다 할 수는 없고, 둘 중 하나를 잘 생각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만 답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미 대선 도전 쪽으로 기울어진 것으로 보인다.


정 최고위원은 최근 기존의 아산정책연구원의 확대개편에 나섰는가 하면 개인 정책연구소 ‘해밀을 찾는 소망’개소식을 갖기도 했다. 한나라당내 ‘친이’진영 모임인 ‘함께 내일로’에 참석하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당 회의에서는 여러 가지 쓴소리를 하는 등, 최고위원으로서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장 관심을 모은 것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단독회동을 가진 일이다. 그는 이 대통령과 두 시간에 걸친 비공개회동을 가짐으로써 여권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충분히 거두었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제 정 최고위원이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친이 진영으로 다가가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친이 진영의 차기 주자가 될 수 있겠느냐를 놓고 설왕설래 얘기가 있기도 하다.

당 안팎의 입지 굽히려는 사전 정지 작업
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이 ‘속도전’에 나섰다. 혈혈단신으로 거대 여당에 입성해 ‘2순위 최고위원’으로 등극한 데 이어, 차기 당권과 대권을 겨냥한 광폭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 지난 2월 들어 정 최고위원이 보인 움직임은 활발하다 못해 숨가쁠 정도다. 2월 6일 정책연구소인 ‘해밀을찾는소망’을 열었고, 기존 아산정책연구원도 규모 확장에 들어갔다. 사실상 대권용 ‘싱크탱크’정비다. 지난 8일엔 당내 주류인 친이계들의 ‘함께 내일로’모임에 이례적으로 참석했다. 안국포럼 출신의 친이직계 의원들조차 “너무 뜻밖”이라며 의아해 했다. 11일엔 만남을 자청해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했다. 두 시간의 비밀 회동에서 정국 현안 전반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한국 정치에서 대통령과의 독대는 단순한 회동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일각에선 “차기 당권 얘기가 오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15일엔 TV 토크쇼에도 출연했다. “FIFA 회장과 차기 대권 중 하나를 잘 생각해 결정하겠다”고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FIFA 회장 선거전이 내년 본격화되는 점을 감안하면, 차기 대선 출마 여부를 올해안에 공식화하겠다는 얘기로 해석됐다. 18일엔 ‘명박’이 되려 전남을 찾는데, 사실상의 ‘세 과시’수순이다. 이날 오후 전남대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홍구 전 총리와 구본호 전 KDI원장 등 3백여명이 참석했다. 활발한 움직임만큼이나 당내 발언 수위도 한층 높이고 있다. 지난 9일 “당에 영혼이 없다”고 쓴소리를 던진 데 이어, 18일엔 ‘표밭’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수층 끌어안기에도 나섰다. 정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 중진 연석회의에서 “한나라당이 우파에 무관심하다”며 “겉멋 부리기에 골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고 했다. 정권 교체의 주역 가운데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도 있었는데, 당이 소홀하게 대접하고 있다는 것. 이 같은 발언은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분명히 해 당 안팎의 입지를 굽히려는 사전 정지 작업으로 풀이된다.

2012년 대선,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그러나 정 최고위원이 여권 내 차기 주자 반열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이 공통된 진단이다. 아직 친이 진영 내에서는 그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가 대세를 이루고 있고, 친박 진영에서는 그가 박근혜 전 대표의 경쟁감이 되지 못한다며 평가절하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정 최고위원의 차기 행보에서 우선적인 과제는 당내 세력기반을 구축하는 일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물론 한나라당 내에서 자신의 세력기반을 구축하는 것은 그로서는 긴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한계가 따르는 일이다. 한나라당에 이제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사람이 갑자기 무슨 수로 당내 세력기반을 구축하겠는가. 정 최고위원에게는 그에 앞선 과제가 있다.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국민에게 선명하게 제시하고 지지를 구하는 일이다. 그의 경우에는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하면 당내 세력기반 구축도 어려워지는 현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정 최고위원이 국민에게 던져준 정치적 비전과 메시지는 대단히 불분명하다. 그는 과연 차기 주자로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를 선명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2012년을 정치인생의 최종 목표 중 하나로 설정한 이상, 그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먼저 현실적으로 공존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친이계와 친박계가 당내 세력구도를 양분하고 있는 상황에서 친이계의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여기서 가장 큰 변수는 이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다. 대권행보를 너무 일찍 하면 대통령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질 것이고, 너무 늦으면 친이계 대표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현대 출신 기업인’이 정 위원의 뿌리란 것도 정 최고위원이 극복해야 할 난제다. 태생적 한계가 될 수도 있는 이런 이미지는 같은 기업인 출신인 이 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영의 성패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비교적 높은 대중적 인지도와 달리 당내 취약한 지지기반은 앞으로 그의 노력 여부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당내에선 정 최고위원이 한나라당의 취약한 고리인 호남에 신경을 쏟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우호세력 확대를 위한 계산된 행보로 읽힌다. 또한 ‘정몽준’하면 떠오르는 어떤 ‘컨셉’이 없는 상황이 내내 계속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정몽준이라는 이름만 있지,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는 것. 사실 2002년 대선정국에서 ‘정풍’(鄭風)이 한계를 드러낸 것도, 막연히 새롭다는 것만 강조했지, 한국 정치사회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과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 자신도 혼란스러운 단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정 최고위원은 18일 느닷없이 극우파라는 소리를 듣는 보수단체 인사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나섰다. 그는 “정권교체는 대다수 우리 국민이 주역이었고 그 국민 중 ‘아스팔트 우파’라는 분들이 계셨는데 당이 이들에게 너무 무관심하다”고 비판했다. 2004년 ‘국가보안법 사수집회’를 주도해 집시법 위반 및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상 혐의로 기소된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 등을 가리킨 말이었다. 정 최고위원이 우파진영의 지원을 얻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으로 연결되었다.

‘해밀을찾는소망’은 대권용 발판다지기
‘해밀을 찾는 소망’이라는 이름을 붙인 정책연구소는 지난해 한나라당 대표 경선 당시 캠프에서 활동했던 정태용 전 국방장관 보좌관, 홍윤오 전 홍보특보 등이 주축이 돼 운영할 계획이며, 이와 별도로 정 최고위원이 사재를 털어 설립한 아산정책연구원을 확대해 외교안보, 남북문제와 관련한 정책을 집중 연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지난 19일 제주에서 ‘국가발전과 제주특별자치도의 역할 정립’이라는 주제로 간담회를 개최한데 이어, 향후 전국을 순회하며 지방분권화와 국토균형개발에 대한 토론회와 간담회도 열 계획이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정 최고위원의 ‘정책이미지 강화’노력을 두고 차기 대권을 위한 ‘발판 다지기’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으나 정 의원 측은 정책연구소 설립이 대권과는 무관하다며 순수한 정책 활동임을 강조했다. 정 의원 측근은 “아산정책연구원의 경우 한승주 전 외무장관이 이사장을 맡는 등 정치권과는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며 “정책연구소도 본인과 당 소속 의원들의 입법 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일 뿐 대권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정 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지난 1월 27일 “향후 입법 활동과 정책 개발을 위해 연구소를 설립키로 했다”면서 “이 연구소는 정 최고위원의 입법 활동뿐만 아니라 국가적 사안에 대한 정책 어젠다를 제시하는 역할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 앞 H빌딩에서 개소식을 갖고 본격 출범한 이 정책연구소의 이름은 ‘해밀을 찾는 소망’. 해밀은 ‘비가 온 뒤에 맑게 갠 하늘’이란 순우리말로 정 최고위원이 직접 작명했다는 후문이다. 이 연구소의 실무 책임은 지난해 한나라당 대표 경선 당시 캠프에서 대외협력특보로 활약했던 인병택 전 도미니카 대사와 정태용 전 국방장관 보좌관, 홍윤오 전 홍보특보가 맡기로 했다. 정 최고위원이 정책 개발에 적극 나선 것은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서 ‘정책 이미지 다듬기’와 함께 인적 네트워크 구축을 본격화하기 위한 포석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차기 대권주자인가 미완의 대기인가
한편 지난 2월 11일 정몽준 최고위원이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의 독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배경을 물론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면서 ‘당내 존재감’이 부쩍 높아지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정 최고위원은 공교롭게도 청와대 회동 사실이 알려지기 직전인 15일 밤 방송된 KBS ‘박중훈 쇼’ 토크쇼에서 ‘2011년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냐, 2012년 차기 대선 도전이냐’는 질문에 “둘 다 할 수는 없고, 둘 중 하나를 잘 생각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여운을 남기는 등 향후 자신의 정치적 거취와 관련된 발언과 오버랩 되면서 각종 정치적 해석을 낳고 있다. 문제는 친이-친박계라는 계파가 확실히 양립해있는 현실적인 당내 상황에서 오랜 무소속 경험에 따른 당내 기반이 없는 데다 아직도 꼬리표처럼 달고 있는 현대중공업 대주주 이미지 등 여전히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적지 않은 정 최고위원이 한나라당 차기 대권주자로서 ‘친이계’의 ‘박근혜 대항마’로서 ‘히든카드’가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의 단독 회동은 ‘포스트 이명박’ 도전 의사를 우회적으로 밝히는 동시에 차제에 박 전 대표의 경쟁자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하겠다는 이중의 정치적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은 물론 최근 정 최고위원의 정치적 행보와 맞물려 상당한 정치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정 최고위원이 지난 2월 8일 당내 친이계 의원들의 모임인 ‘함께 내일로’의 모임에 참석하는 등 친이계 진영에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며, 실제로 친이계 진영에서는 그를 차기 대권주자로서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보는 긍정적 견해와 아직 검증되지 않은 ‘미완의 대기’라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당내 일각에서는 “정 최고위원이 아직도 정치를 잘 모르는 것 같고, 인간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이 별로 없으며, 친이계에서도 친박계 견제를 위해 잠시 활용하는 카드 정도에 불과하지 않겠느냐”는 견해가 없지 않다. 친박계 쪽에서는 온도차가 있지만 정 최고위원을 차기 대권의 경쟁상대로는 보고 있지만, 친이계 진영의 대표 주자로 낙점될 것이라는 데는 대체로 회의적인 반응이지는 정치권 일각에서선 최근 김문수 경기지사가 차기 대선에 참여할 뜻을 접는 듯한 행보를 보이면서 정 최고위원이 친이 진영의 후보가 될 가능성이 다소 높아졌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정 최고위원이 명실상부한 차기 대권주자로 설 수 있느냐 여부는 여권 내 권력지형과 역학관계 등 다양한 변수들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그의 최근 행보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