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간 우발적 충돌 가능성 최고조에 이르러

북한 입장에서 장거리미사일은 매력적인 카드

2009-03-02     장정미 기자
지난 1월 30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성명을 통해 ‘남북간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와 관련된 모든 합의사항’을 무효화한다고 선언하면서 실제로 군사적 도발이라는 ‘행동’에 나설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이미 1월 17일 우리측 합동참모본부에 해당하는 북 총참모부가 전면대결태세를 선언한 뒤 2주 만에 정치기구인 조평통이 이를 뒷받침하는 성명을 내놓아 남북간 우발적 충돌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커진 상태다.


남북관계는 현 정부 출범후 1년만에 180도 달라졌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관광이 중단됐고, 이산가족 상봉과 경의선 열차 운행도 끊겼다. 개성공단만 근근히 운영을 계속하는 실정이다. 남북은 6·15 및 10·4 정상선언의 이행 문제를 놓고 지난해 7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합의문 문구까지 놓고 마찰을 빚는 등 1년 내내 힘겨루기를 계속했다. 북측은 지난 10년간의 햇볕정책과 평화번영정책 등 이른바 화해협력정책을 이명박 정부가 계승해야 한다고 남측을 강하게 압박했다. 남측은 기존 대북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기본 원칙의 차이는 최근 남북간 군사적 긴장상태마저 고조시키고 있다.

당장 군사도발 없어도 가능성 대비해 명분 쌓기
북한은 특히 당장은 군사도발을 일으키지는 않더라도 그 가능성에 대비한 명분쌓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북한의 후속 행동이 주목되고 있다. 북한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우선 남측에 대북정책을 전환할 것을 주문하는 고강도 압박으로 보인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지난해 말 군사실무회담부터 시작해 성명서 등을 내면서 계속 대남 압박 강도를 높여오고 있으며 그 내용도 점점 더 위협적이고 파괴적으로 나오고 있는데 이는 북한이 지난 1년 동안 남한을 지켜보면서 이미 정치적으로 나름의 결단을 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앞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지난 1월 23일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면담한 자리에서 “한반도 정세의 긴장상태를 원치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미국을 향한 메시지였을뿐, 북한은 남북관계를 철저히 대미관계에 전술적으로 이용하는 기존의 행태를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해 미국의 관심을 끌고, 미국 오바마 정부를 향해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상존하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북미관계나 북핵 문제 해결이 최대한 빨리 이뤄져야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나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와 함께 북한의 성명은 국가적 명절인 김정일 위원장의 생일(2월 16일)을 앞두고 내부 단결과 결속을 위한 것으로도 이해되고 있다. 현재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완전히 불식되지 않았고, 후계문제를 놓고도 여러 가지 얘기가 무성한 상황에서 대남 강경 성명이나 행동을 통해 내부 동요를 차단하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분석되는 것이다. 특히 북한이 조평통 성명을 통해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관련한 남북간 합의의 무효와 남북기본합의서상 북방한계선(NLL) 관련 조항의 폐기를 선언하면서 앞으로 빌미만 있으면 북측이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주변 정세상 다시 한반도에서 긴장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대남 도발조치를 행동에 옮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시기적으로는 해마다 3월쯤 열리는 한·미 합동의 ‘키 리졸브’연습 이후나 서해 북방한계선(NLL) 주변 해역에서의 긴장도가 높아지는 4월에서 6월 꽃게잡이철에 빌미거리를 찾아 긴장을 조성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는 일각의 분석도 나오고 있다.

장거리 미사일은 위기를 가장 극대화하는 수단
지난 2월 16일 조선중앙통신은 장거리미사일 발사설을 부정하면서도 “무엇이 날아올라갈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미사일을 쏠 수 있다고 강력히 시사한 셈이다. 북한 입장에서 장거리미사일은 여러모로 매력적인 카드다. 무력 충돌의 부담 없이 위기를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장거리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면 손쉬운 핵무기 운반 수단이 된다. 장거리미사일 발사는 핵무기를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이 얼마든지 핵미사일을 쏠 수 있다는 점을 방증해 준다. 이 때문에 실제 발사를 하지 않고 ‘발사 유예’만으로도 많은 대가를 챙길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대미 압박에 효과적이다. 최근 거론되는 대포동 2호 개량형은 사거리가 최대 1만2000∼1만5000㎞에 이른다. 이 정도면 미국 본토 캘리포니아 지역까지도 타격이 가능한 셈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미국 입장에서 미사일의 성능은 중요하지 않다”며 “단지 본토에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미국에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줘 북한은 정세를 단숨에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 있다. 실제 1998년 대포동 1호 발사 이후 미국은 본토 공격 가능성에 화들짝 놀라 북한과 미사일 협상에 본격 나섰다. 그 결과 빌 클린턴 대통령 임기 말인 2000년 후반 미국이 3년간 매년 북한에 10억달러를 현금으로 지불하고 인공위성을 쏴주기로 하는 선까지 의견을 모았다. 2006년에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대화 자체를 계속 거부하자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대포동 2호를 발사했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9월엔 핵실험이라는 고강수로 다시 응수한 끝에 북미 양자대화 구도를 만들어 냈다. 장거리미사일은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도 유용한 수단이다. 1998년 당시 북한은 대포동 1호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위업으로 강조했고 이때부터 김정일 체제가 본격화됐다. 올해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을 목표로 각 분야에서 ‘혁명적 대고조’를 강조하고 있다. 체제 결속과 내부 동력을 이끌어내야 하는 상황에서 미사일 발사는 상징적 이벤트로 손색이 없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장거리미사일은 북한 주민들에게 자긍심을 심는 역할이 매우 크다”며 “연일 강성대국을 부르짖는 북한 입장에서 구체적인 성과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북한 미사일 탐지 뒤 바로 요격에 나서기엔 역부족
지난해 9월 25일 국방연구원 김태우 부소장은 워싱턴에서 헤리티지재단 주최로 열린 한반도 세미나 회의에서 “휴전선 인근에 배치된 북한 미사일은 발사 1분도 안 돼 서울을 공격할 수 있다”면서 “한국이 도입 중인 구형 패트리엇 미사일(PAC-2)과 해상용 요격미사일인 SM-2로 구성된 한국의 자체 방공망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고 밝혀 충격을 던졌다. 하지만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대부분 군 관계자들은 공감하고 있다. 현재로선 북한 미사일을 탐지한 뒤 바로 요격에 나서기에는 시간상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휴전선 외에도 북한의 강원도 이천군 지하리 미사일 기지에서 발사한 미사일은 127㎞ 떨어진 서울까지 도착 시간이 불과 3분이며, 평양 인근 상원동 미사일 기지(168㎞)에서 발사되면 4분, 강원도 문천군 옥평 노동지구 미사일 기지(191㎞)는 5분 만에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 한국군이 2012년까지 한국형 미사일방어(MD) 체제로 평가받는 ‘작전통제소’(AMD-Cell) 구축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이 현재 개발했거나 개발 중인 탄도미사일은 스커드C 개량형, 노동 1호, 대포동 1호, 대포동 2호 등 모두 4종류다. 문제는 이미 실전 배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스커드 B(사거리 300㎞), 스커드 C(〃 500㎞), 스커드 D(〃 700㎞), 노동 1호(〃 1000㎞) 미사일 등에는 생화학탄과 핵탄두가 장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북한 미사일 공격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군의 미사일은 어떨까. 40년이 넘는 미사일 개발 역사를 자랑하는 북한에 비해 우리 군의 전력은 한참 뒤처진다. 1977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백곰’이라는 시험용 미사일 개발에는 성공했으나, 백곰 개발에 놀란 미국이 기술 제공을 거부함에 따라 실전용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79년 미국과 ‘한미 미사일각서’를 교환했다. 이 각서는 ‘미국이 미사일 기술을 제공하되 한국은 최대 사거리를 180㎞로 한정한 탄도미사일만 개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로 인해 현무 미사일(현재 현무-1)의 최대 사거리는 180㎞로 한정됐다. 1987년 한국이 백곰을 업그레이드한 ‘현무’ 개발에 성공하자 북한은 소련제인 스커드-B를 토대로 사거리를 늘린 노동미사일을 만들어냈다. 이에 자극받은 한국은 미국에 한미 미사일각서의 폐기를 강력하게 요구했고, 폐기를 조건으로 2001년 2월 사거리 300㎞ 이내 탄도미사일 개발만 허용하는 MTCR(미사일기술통제체제)에 가입했다. MTCR는 속도가 빠른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는 제한해도 잠수함이나 함정에서 쏠 수 있는 순항미사일의 사거리는 제한하지 않는다. 여기에 착안한 한국은 2000년대 초반 사거리 500㎞의 순항미사일 ‘독수리-1’을 개발했고, 이를 토대로 사거리 1000㎞의 ‘독수리-2’개발에도 성공했다. 이들 미사일은 양산체제에 들어가면서 각각 현무-3A, 현무-3B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와 함께 2007년에는 사거리 1500㎞의 순항미사일(현무-3C) 개발에도 착수,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현무-3C는 INS 항법장치와 함께 GPS 수신기도 탑재돼 미국제 ‘토마호크’미사일만큼이나 초정밀 사격이 가능하다. 또 우리 군은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현무 외에 미국산 에이태킴스(ATACMS·사거리 300㎞)와 요격용 미사일로 국산 중거리 지대공미사일인‘철매-Ⅱ’(〃 40㎞), 지난해 말 도입한 패트리엇 미사일 24기를 갖추고 있다.

미국의 미사일 요격 실행 여부는
북한이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를 감행한다면 미국은 미사일 요격에 나설까.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요격 가능성 언급과 이후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이 맞물리면서 미국의 미사일 요격 실행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MDㆍMissile Defense)’ 체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방어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발사 직후부터 탄도 정점에 이르기 전 단계에서는 해상의 이지스함에 장착된 SM-3 미사일을, 중간 단계에서는 알래스카 등에 배치된 지상요격미사일(GBI)을, 본토에 근접하면 지상의 패트리엇-3(PAC-3) 미사일로 요격하게 된다. 발사 극초기에는 항공기에 탑재한 공중레이저발사기(ABL)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우선 대포동 2호의 발사 직후 추적되는 탄착지점이 미국 본토를 직접 위협한다면 미국의 선택은 명확하다. 가용한 모든 MD 자원을 이용해 요격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이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북한은 1998년 대포동 1호의 경우처럼 일본 상공을 지나 태평양에 떨어지는 것을 목표로 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경우 기술적으로는 동해 상이나 일본 근해에서 SM-3 미사일을 활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본토에 더 가깝게 접근한다면 GBI를 쏠 수도 있다. ABL은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을 뿐더러, 북한 상공에서 요격이 이뤄져 영공 침범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요격이 가능하다 해도 미국이 MD 체제를 실제 가동할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최근 주장에서 엿보이듯 대포동 2호 미사일을‘위성운반체’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렇게 되면 미사일 요격은 북한의 반발과 추가 도발의 빌미를 제공할 여지가 있다. 이상희 국방장관은 이와 관련, 지난 2월 16일 국회 답변에서 “군은 미사일이 요격됐을 때 부가해서 발생할 수 있는 북한의 도발을 감시, 추적하고 그런 양상이 있을 수 있다면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위성발사 여부는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군사전문가는 “ICBM과 위성발사의 원리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힘의 논리로 밀어붙인다면 이런 논란은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포동 2호 요격에 실패할 경우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점도 부담이다. 섣불리 요격에 나섰다가 실패한다면 국제적인 입지 위축과 함께 미국 내에서도 만만치 않은 MD 회의론에 불을 붙이는 꼴이 된다. 대북 정책에서도 소중한 카드 하나를 버리는 셈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 글로벌 MD 체제 구축에 힘이 실리고, 북한에 대해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라는 강력한 경고를 전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군사당국이 그 동안 공 들여 구축해 온 미사일 요격 시스템의 능력을 실전에서 확인하는 차원에서 욕심을 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한편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은 군부가 무기개발을 의도로 미사일 시험발사를 준비 중이고 미국과 한국의 압력에도 이를 강행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