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30부작.4 ] 차홍규 교수의 대륙의 암호를 풀다
스타벅스를 이긴 보이차의 무서운 뚝심시간의 발효
시간의 발효, 속도의 문명을 잠재운 대륙의 검은 보석
베이징 하이뎬구(海淀区)의 아침, 커피 향을 압도하는 묵직한 기운
[시사뉴스피플=차홍규 객원 편집위원] 칭화대 교정에서 맞이하던 베이징의 아침은 늘 팽팽한 긴장감으로 시작된다. 중국 최고의 수재들이 모인 그곳에서 느껴지는 속도전은 가히 숨이 막힐 정도다. 하지만 그 긴장감을 뚫고 필자의 후각을 자극하던 것은 세련된 서구식 에스프레소 향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백 년의 세월을 머금은 듯 묵직하고 텁텁하면서도, 끝 맛은 한없이 맑아지는 묘한 흙 내음, 바로 보이차(普洱茶)의 기운이었다.
당시 중국 시장은 스타벅스를 필두로 한 글로벌 커피 프랜차이즈들의 공세가 시작되고 있었다. 번화가마다 초록색 로고가 들어섰고, 젊은 세대들은 종이컵을 들고 걷는 것을 근대화의 상징처럼 여겼다. 많은 경제학자와 문화 비평가들은 전통 차 문화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하여 곧 박물관으로 사라질 것이라 예언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승자는 누구인가? 대륙의 뚝심은 결국 자본의 속도 대신 시간의 미학을 선택했다. 스타벅스의 화려한 인테리어 뒤편에서, 중국인들은 여전히 작고 투박한 찻잔 속에 담긴 '시간의 발효'를 즐기며 그들만의 제국을 공고히 하고 있다.
기다림의 미학, 자본의 속도를 넘어서다
보이차의 무서운 힘은 '시간' 그 자체에 있다. 찻잎을 따서 바로 마시는 녹차나 향을 즐기는 우롱차와 달리, 보이차는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을 지하 저장고에서 삭히고 익혀야 비로소 제맛이 난다. 이는 곧 '기다림'이 가치가 되는 문화다. 자본주의가 말하는 '속도'와 '효율'의 정반대 지점에 보이차가 서 있는 것이다.
필자가 하이브리드 아티스트로서 주목하는 지점은 바로 이 '발효의 철학'이다. 중국인들에게 보이차를 마시는 행위는 단순한 음료 섭취가 아니다. 그것은 세월의 켜를 마시는 일이며, 조급한 현실 속에서 내면의 평정을 찾는 고도의 심리적 의식이다. 아무리 빠른 5G 네트워크와 AI가 세상을 지배해도, 인간의 오감과 영혼은 결국 발효된 시간처럼 깊은 울림을 원한다. 보이차가 스타벅스를 이긴 비결은 맛의 우위가 아니라, 현대인이 상실한 '기다림의 권리'를 되찾아주었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넘지 못한 오감의 벽
우리는 기술이 모든 것을 정량화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만, 보이차의 세계는 다르다. 어떤 AI 시스템도 수십 년간 저장고에서 익어간 보이차의 미묘한 '진향(陳香)'과 '회감(回甘)'의 하모니를 완벽하게 재현하지 못한다. 그것은 오직 인간의 미뢰와 후각, 그리고 세월이라는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예술이다.
칭화대 교수 시절 학생들에게 강조하였던 '데이터가 넘지 못한 오감의 벽'이 바로 보이차에 있다. 커피는 정확한 레시피와 기계적 통제가 가능하지만, 보이차는 생산지의 토양, 저장고의 습도, 마시는 이의 심상에 따라 수만 가지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중국인들은 이 불확실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즐긴다. 스타벅스가 제공하는 정량화된 서비스와는 차원이 다른, 진정한 '인간 중심의 데이터 경험'인 셈이다.
집단주의의 무서운 뚝심과 인문학적 유대
많은 전문가가 보이차의 성공을 단순히 건강 열풍으로만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하이브리드 아티스트로서 필자가 얻은 결론은 다르다. 보이차가 스타벅스를 이긴 진짜 이유는 대륙 특유의 '집단주의적 유대감'에 있다.
공자는 가족의 유대가 국가 유지의 근본이라고 보았다. 중국 사회의 엔진인 '꽌시(關係)'는 이제 디지털 공간으로 옮겨갔지만, 그 본질인 '함께 나누는 행위'는 변하지 않았다. 보이차를 함께 마시는 행위는 서로의 안위를 묻고 정(情)과 의리(義)를 확인하는 실시간 네트워킹이다. 개인적인 각성제에 그치는 커피와 달리, 보이차 한 잔은 14억을 하나로 묶는 인문의 매개체다.
파편화된 현대인을 치유하는 '검은 지혜'
오늘날의 현대인은 파편화된 자아 속에서 갈등한다. 하지만 보이차의 검은 찻물은 그 파편들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다. 작가로서 한중 간 문화 활동을 하며 필자가 느낀 것은, 보이차가 단순한 차를 넘어 '치유의 예술'이라는 점이다. 찻잎이 뜨거운 물 속에서 몸을 풀고 자신의 향을 온전히 내놓듯, 우리도 보이차를 통해 굳어있던 마음의 빗장을 푼다.
칭화대 제자들에게 늘 말하곤 했다. "기술은 우리를 편리하게 하지만, 예술과 차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스타벅스를 이긴 것은 맛의 경쟁이 아니라, 인간의 본연을 건드리는 '검은 지혜'의 승리였다.
우리, 다시 보이차의 수레를 타다
대륙의 암호를 푸는 네 번째 열쇠는 '전통의 뚝심'이다. 속도에 매몰되지 않고 5,000년 전통의 박동을 읽어내는 것, 그것이 보이차가 보여준 생존 전략이다. 스타벅스를 이긴 것은 단순히 차의 맛이 아니라,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시간과 오감의 발효학이었다. 우리가 다시 보게 될 보이차는 이제 대륙의 인문학을 나르는 가장 묵직하고 믿음직한 수레가 될 것이다.
글쓴이 차홍규
시사뉴스피플 편집위원, 한중미술협회 회장
북경 칭화대 미대 교수 정년퇴임, 한국조형예술원 석좌교수
중국 료녕성 선양시 인민정부 해외이사, 미얀마 JIS/GGU 대학 석좌교수
중국 하북미술대, 선양도시대학 영구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