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30부작.7 ] 차홍규 교수의 대륙의 암호를 풀다
대륙의 붉은 물결: 샤오미는 어떻게 '좁쌀'에서 '태산'이 되었나?
미(米)의 철학: 좁쌀 한 알에 담긴 14억의 실용주의와 팬덤 미학
베이징 중관촌(中關村)의 서늘한 열기, 좁쌀 죽 한 그릇의 혁명
[시사뉴스피플=차홍규 객원편집위원]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베이징 중관촌은 중국 명문 칭화대학이 자리한 인근으로 그 곳의 새벽은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열기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곳이다. 칭화대 교수 시절, 필자는 그곳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젊은 엔지니어들이 좁쌀 죽(小米粥)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우며 밤을 지새우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그들이 먹던 그 소박한 좁쌀은 훗날 전 세계 가전 시장을 뒤흔든 거대한 '태산'이 되었다. 바로 '샤오미(Xiaomi)'의 시작이다.
많은 이들이 샤오미의 성공을 단순히 '가성비'나 '짝퉁 전략'으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하이브리드 아티스트의 시각에서 샤오미는 단순한 제조 기업이 아니다. 그것은 중국의 오랜 실용주의 철학과 현대의 디지털 팬덤 문화가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문화 유기체'다. 마오쩌둥이 '권총과 좁쌀'로 대륙을 통일했듯, 레이쥔(雷军)은 '스마트폰과 좁쌀'로 전 세계 젊은이들의 일상을 점령했다. 이것은 기술의 승리이기 이전에, 대중의 결핍을 정확히 읽어내고 그들과 함께 호흡한 '공감의 미학'이 거둔 승리다.
팬덤이라는 이름의 현대판 '꽌시(關係/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한 상호 관계)', 미판(米粉/쌀국수)의 탄생
중국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엔진은 예나 지금이나 '꽌시'다. 샤오미(샤오미(小米)'라는 이름은 2010년 회사 설립을 논의하던 날 창립 멤버들이 함께 먹었던 좁쌀죽에서 영감을 받아 지어졌습니다)는 이 전통적인 인간관계의 에너지를 '미판(Mi-Fan)'이라는 강력한 디지털 팬덤으로 치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소비자가 아니다. 제품의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고, 소프트웨어의 버그를 함께 잡아내며, 스스로 샤오미의 홍보대사를 자처하는 '참여형 동반자'들이다.
필자는 칭화대 제자들과 이 현상을 토론하며 '사용자 중심의 민주적 창작'을 강조했다. 과거의 예술이 거장의 일방적인 선언이었다면, 샤오미의 제품은 수백만 팬의 피드백이 켜켜이 쌓여 완성된 '집단 창작물'이다. 레이쥔은 스스로를 교주나 회장이 아닌, 팬들의 친구로 포지셔닝(Positioning/이미지를 심어주려고)했다. 이러한 수평적 유대감은 권위주의에 지친 중국의 젊은 세대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좁쌀 한 알이 모여 거대한 창고를 채우듯, 개인의 작은 의견들이 모여 거대한 브랜드의 서사를 완성해가는 과정은 가히 현대판 '대동(大同) 사회'의 디지털 버전이라 할 만하다.
생태계라는 거대한 그물망, 일상의 하이브리드화
샤오미의 무서운 점은 스마트폰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밥솥부터 공기청정기, 전동 킥보드, 심지어는 수건과 베개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의식주 전반을 '샤오미 생태계'라는 거대한 그물망으로 엮어버렸다. 이는 필자가 주창하는 '하이브리드 예술'의 실생활 판이다. 서로 다른 영역의 제품들이 하나의 앱(App)으로 연결되어 사용자에게 통합된 경험을 선사한다.
이것은 과거 중국의 사대부들이 문방사우(文房四友)를 갖추어 자신의 공간을 하나의 완결된 세계로 구축하려 했던 탐미적 욕구의 현대적 변용이다. 이제 중국의 젊은이들은 '미 홈(Mi Home)'이라는 디지털 사랑방 안에서 자신의 일상을 통제하고 예술화한다. 기술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고, 오직 사용자의 편의와 아름다운 디자인만이 남는 '미니멀리즘의 승리'다. 샤오미는 대중에게 단순히 도구를 판 것이 아니라, '세련된 일상'이라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문법을 제안한 것이다.
하드웨어의 민주화, 가격이라는 장벽을 허문 인문학적 배려
샤오미의 성공 뒤에는 '이익률 5% 제한'이라는 파격적인 선언이 있었다.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이는 자살행위에 가깝지만, 레이쥔의 안목은 이익이 아닌 '점유'와 '신뢰'를 향해 있었다. 필자는 칭화대 재직 시절, 가난한 농촌 출신의 천재적인 제자들이 값비싼 생활용품 앞에서 좌절하는 모습을 보며 늘 안타까워했다. 샤오미는 바로 그들의 결핍을 채워주었다. 고급 기술을 소수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대중의 권리'로 되돌려준 것이다.
이것은 맹자가 주장했던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재산(항산)이 있어야, 비로소 그 마음이 올바르고 선하게 유지된다(항심)' 는 뜻은 가르침의 현대적 해석이다. 물질적 기반이 갖춰질 때 비로소 인간의 품격이 살아난다는 믿음이다. 샤오미는 저렴한 가격으로 세련된 디자인의 제품을 공급함으로써 중국 대중의 미적 기준을 상향 평준화시켰다. 과거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던 문방사우의 격조가 이제는 샤오미의 보조배터리와 로봇 청소기를 통해 평범한 서민의 거실로 파고들었다. 기술의 보편화가 곧 미학의 보편화로 이어진, 대륙 특유의 거대한 인문학적 실험이 성공을 거둔 셈이다.
보이지 않는 신뢰의 그물, IoT 생태계의 철학적 연대
샤오미의 무서운 힘은 제품 간의 '연결'에서 극대화된다. 밥솥이 다 되면 스마트폰으로 알림이 오고, 공기청정기가 집안의 습도를 감지해 가습기를 가동하는 시스템은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선다. 필자가 하이브리드 아티스트로서 주목하는 지점은 이 '상호 연결성'이다. 이는 만물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동양의 연기(緣起) 사상을 디지털 공간에서 구현한 것이다.
사용자는 샤오미라는 브랜드 아래에서 자신의 일상을 하나의 완결된 예술 작품처럼 조율한다. 각기 다른 하드웨어들이 하나의 앱(App)이라는 정신적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협주와도 같다. 샤오미는 단순한 가전 제조사가 아니라, 사용자의 삶을 총체적으로 디자인하는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터'로 진화했다. 이러한 생태계 전략은 대중에게 '나의 일상이 관리되고 보호받고 있다'는 강력한 심리적 안전망을 제공하며, 이는 곧 브랜드에 대한 종교적 수준의 신뢰로 이어진다.
좁쌀에서 태산으로, 21세기 대륙의 새로운 자부심
결국 샤오미가 보여준 '붉은 물결'은 단순한 시장 점유율의 확대가 아니다. 그것은 중국인들이 스스로의 기술과 디자인에 대해 갖기 시작한 '문화적 자긍심'의 발현이다. 짝퉁의 오명을 벗고, 전 세계 젊은이들이 'Mi' 로고에 열광하게 만든 것은 대륙의 실용주의가 거둔 위대한 승리다.
필자가 한중 간 문화 활동을 하며 늘 강조하는 '하이브리드적 사고'의 정수가 바로 여기 있다. 서구의 기술을 받아들이되, 그 속에 중국인의 생활 양식과 대동(大同)의 철학을 녹여내는 것. 샤오미는 가장 차가운 기술로 가장 따뜻한 일상을 만들어냈다. 현대에 대륙의 암호를 푸는 일곱 번째 열쇠는 '실용의 예술화'다. 좁쌀 한 알에서 시작된 이 혁명이 태산처럼 거대한 문화적 흐름이 되어 전 세계를 적시고 있다. 작가로서, 그리고 한 시대를 관통하는 지식인으로서 필자는 이 붉은 물결이 단순한 소비를 넘어, 인류의 일상을 더욱 풍요롭고 평등하게 만드는 진정한 '미(米)의 철학'으로 남길 기대한다.
글쓴이 차홍규
시사뉴스피플 편집위원, 한중미술협회 회장
북경 칭화대 미대 교수 정년퇴임, 한국조형예술원 석좌교수
중국 료녕성 선양시 인민정부 해외이사, 미얀마 JIS/GGU 대학 석좌교수
중국 하북미술대, 선양도시대학 영구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