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영화 속의 법률 이야기-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잘못된 혼인에 대한 법적 평가

2009-03-30     김미희 기자
꽃피는 봄이 되면 청춘 남녀들은 한 마리의 벌과 한 송이 꽃과 같이 운명적인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의 결실을 맺기 위하여 결혼식을 거행하게 된다. 하지만 그 결혼식 이후의 삶이 신혼여행에서 보낸 첫날밤과 같이 달콤할지 여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영화‘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에 나오는 치과의사 주환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노래 작사가 크림과 운명적인 결혼을 한다. 이에 반해 신부 크림은 치과의사 주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아니한다. 단지 신부 크림은 불치의 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케이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으며, 200일 밖에 남지 않는 케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하여 주환과 사실상 위장 결혼을 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케이는 크림과 주환을 결혼시키기 위하여, 주환의 약혼녀 제나를 설득하여 주환과 맺은 약혼을 깨도록 유도한다. 케이의 소원대로 크림은 주환과 결혼식을 올리게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크림도 이 세상에서 케이와 다하지 못한 진정한 사랑을 위하여 죽음을 선택하여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케이와 크림이기 때문에 이들의 영화 속 행동에 대하여 법적 잣대를 갖다 댄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이러한 일이 현실 세계에서 일어났다면, 주환은 어떠한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주환은 장래가 촉망되는 치과의사로서 케이와 크림의 계획된 행동으로 사랑하는 제나와 약혼 파기,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크림과의 혼인, 혼인 후 신부의 계획된 죽음 때문에 인생에 단 한 번 밖에 없는 결혼을 완전히 망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상적으로 주환은 크림 및 케이를 상대로 형사 고소(사기 결혼, 혼인빙자간음죄) 및 법원에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우리는 통상 사기 결혼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의 형법에는 사기 결혼이라는 죄명은 없다. 단지 우리는 혼인의 한 상대방이 혼인을 하는 과정에서 허위의 사실(직업, 학력 등)을 상대방에게 적시하고, 이에 속은 상대방이 결혼을 하게 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통상적으로 사기 결혼이라 부른다. 하지만 법적인 의미에서 사기 결혼이란 혼인을 하는 과정에서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이에 속은 상대방이 혼인이라는 일련의 절차에서 금전적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을 말한다.

본 영화에서 크림은 케이와 진정한 사랑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주환과 결혼을 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주환은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이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툼은 있지만, 크림 및 케이가 살아 있다면 이들은 사기죄로 처벌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 속에서 크림과 케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관계로 주환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그리고 주환이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카드로 일반인들이 잘 알고 있는 혼인빙자간음죄를 검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혼인빙자간음죄는‘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이 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경우’에 한하여 그 죄가 성립되지, 부녀가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것 자체는 아예 형법의 규율 대상 밖이다. 그렇다고 부녀가 혼인을 빙자하여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이 없는 남성을 기망하여, 간음하는 경우에 항상 처벌을 받지 아니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러한 과정에서 금전적인 문제가 생기면, 그 부녀는 위에서 살펴본 사기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마지막으로 주환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크림 및 케이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본 사건에서 크림 및 케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그들의 상속인도 거의 없어 실제 민사소송을 하여 손해 배상을 받는 것도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실제 판례로 나타나는 사기 결혼과 관련된 민사소송은 상당히 있으며, 그 주된 내용은 전문 자격증이 없으면서 자격증이 있는 것으로 기망하거나, 공무원이 아니면서 공무원으로 신분을 기망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송에서 순수하게 신분(직업)을 기망한 것과 관련하여, 상대방에게 배상하는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결국 사기 결혼으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결혼이라는 중대사를 결정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혼인을 숭고한 것으로 간주하여 혼인할 때에는 신중했을 뿐만 아니라, 한 번 혼인을 하면 좀처럼 깨뜨리지 아니하였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많이 변해 예전보다 혼인도 쉽게 하고, 이혼도 아주 쉽게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지만 결혼하지 아니하는 청춘 남녀에게는 사랑과 결혼은 아주 달콤한 유혹임에 틀림없다. 비록 현실은 불경기로 인하여 잿빛으로 가득 찼지만, 4월의 대지는 새봄의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 이 축복받은 계절에 영화‘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과 같은 가슴 아픈 사랑은 저 멀리하고, 4월의 꽃향기처럼 희망차고 가슴 설레는 새로운 사랑을 한 번 해보는 것은 어떨까? NP

- 영화를 좋아하는 변호사 안병걸(hanalawyer@hanmail.net) : 쇼박스(미디어플렉스) 이사